두 번 고인 황제놀음 (149)
아들이 잘하는데 아내가
적은 다섯.
하지만 나는 뒤로 물러나서 의자에 앉았다.
오르카와 세탄이 처리하는 솜씨를 지켜보고 싶었다.
이 두 녀석도 이제 다 컸고, 자기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전투, 전쟁에서 다치는 일이 없게 실력을 확인해 두자.
“말로 할 때 곱게 따라와라.”
쳐들어온 엘프 다섯 중 꽁지머리가 나서면서 위협했다.
오르카와 세탄이 나란히 나를 돌아보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희들에게 맡기겠다고.
세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섰다.
“나는 제국군 동부군 1사단 천검장 세탄 카라카스다. 용건이 있으면 말해라.”
“…….”
야.
세탄이 정체를 대뜸 밝히자 마피아들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제, 제국군?”
“1황자라고?”
“뻥치시네! 그런다고 우리가 쫄 것 같냐?”
“……후우.”
오르카는 얼굴을 덮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나는 2황자 오르카다.”
“이 새끼들 개그 하나?”
“……야, 근데 정말로 황자면 어떻게 하지?”
“뭔 상관이야. 우리는 마우스 말만 들으면 되지.”
엘프들이 서로 속닥거리는데 세탄이 나서면서 손을 내밀었다.
“너희들의 대표와 이야기하고 싶다. 이름을 밝혀라.”
“……이름은 됐고 나랑 이야기해라. 또라이 새꺄.”
아까 나선 꽁지머리가 으르렁거렸다.
설마 1황자가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세탄은 갑자기 픽 웃었다.
“댈 이름도 없고, 자기 소속도 밝히지 못하는가? 엘프의 패밀리라면 자기 종족을 위해서 멸사봉공한다고 알고 있거늘, 퍽 한심하군. 하긴 요즘 패밀리에 지원하는 엘프들이 수준이 떨어진다고 이래저래 한탄한다던데, 정말일 줄이야!”
“…….”
꽁지머리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지켜보던 나도 상당히 감탄했다.
세탄의 말은 정연하기도 한데…… 하는 말의 마디마디에 감정을 실을 줄 알았다.
다소 꽉 막힌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직구의 파괴력이 상당하다.
꽁지머리는 주춤하고는 말했다.
“……우린 제칼의 동부를 지배하는 조커즈다.”
“아니! 너희들이 감히 어디서 지배를 말하는가? 제국은 어디까지나 내 아버지이신 황제 폐하가 다스리시고 제국민들이 살아가는 땅! 네놈들은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고 작은 이권을 탐하는 모리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새끼가…….”
“……아, 이제부터는 내가 이야기하죠, 형님.”
오르카가 세탄을 말리고는 꽁지머리를 돌아보았다.
“손등에 문신, 로이의 아들, 쿼크지? 갑자기 쳐들어와서 무슨 행패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너희들의 우두머리에게 볼일이 있다. 오라고 해라.”
“이것들이 미쳤나. 황자라는 놈들이 호위 하나도 없이 다니는 걸 믿으라고? 만에 하나 진짜 황자라도 뭐? 헤드보고 오라 가라 하라고?”
“스텔라와 항쟁 중일 텐데? 거기에 대한 실마리가…….”
“네놈들이 스텔라의 첩자들이겠지. 죽이지만 마라! 여자는 절대로 상처 입히지 말고!”
쿼크의 외침에 다들 일제히 나이프를 꺼냈다.
전용 검들.
보통 마녀들이 벼리는 검들은 다양하지만 이런 범죄 조직들은 휴대하기 편하고 작은 무기를 선호한다.
“둘 다 조심해라.”
나는 만에 하나 아들이 다칠까 봐 눈을 뜨고 주시했다.
세탄은 나이프를 옆으로 피하면서 아주 익숙하게 주먹을 날리고 적의 목을 잡고는 패대기쳤다.
홱 돌아서는 다음 적의 팔을 붙잡고는, 그걸 추로 삼아서 다른 놈들에게 날려 버리기까지!
“오오!”
내 아들이지만 장하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5계위 이하의 전투에서는 마력방어를 해도 던지기나 메치기에 쉽게 당한다.
세탄은 그걸 잘 꿰뚫고 순식간에 둘을 끝낸 것이다.
한편 오르카도 간단하게 상대했다.
삭!
적이 칼을 휘두르는 걸 피하면서 그 팔꿈치에 찔러 넣었다가 빼내는 게…… 굉장히 담백했다.
“아악!”
그리고 다음 놈으로 넘어가서는, 공격을 피하면서 무릎을 찌르고 빠진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피하고, 한 방으로 적을 무력화시킨다.
굳이 열심히 죽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하는 경제적인 전투였다.
순식간에 네 놈이 쓰러졌다.
“그래,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들이지만 잘 싸운다! 훌륭하다!
“……이, 이놈들이.”
쿼크는 이를 악물고는 세탄과 오르카를 번갈아서 보았다.
수적 우위를 믿었는데 혼자 남았으니까.
“으음.”
한데 세탄은 숨을 고르고는 오르카를 돌아보았다.
“오르카, 이 녀석은 돌려보낼까?”
“음, 그렇죠. 돌려보내서 소식을 전하는 게 효과적이겠죠. 지금 스텔라와 항쟁 중이라니까 크게 움직이지는 못할 거고. 최소한 다음에는 좀 말이 통하는 놈으로 올 겁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버지?”
세탄이 돌아보며 허락을 구하자 나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실력들이나, 이렇게 의논하면서 결정하는 거나. 전부 다 마음에 든다.
만점이다!
한데 갑자기 미레이가 내 무릎 위에 냉큼 앉았다.
팔로 내 목을 감고 다리를 꼬고 요염하게 앉은 미레이가 쿼크를 흘겨보았다.
“아빠에게 말해. 나는 이제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으, 으음. 미레이 아가씨 맞으십니까?”
“모르면 가서 물어보든가.”
쿼크는 눈치를 보면서 쓰러진 놈들을 살폈다.
한데 미레이가 날카롭게 말했다.
“놔두고 가. 선공해 놓고 너 혼자 살아 돌아가는 게 어디야? 오메르타에 감사하면서 돌아가.”
“…….”
쿼크는 망설이다가 뒷걸음질로 빠져나갔다.
나는 얼굴에 힘을 팍 주고 있는 미레이를 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늘 순둥순둥, 내가 모진 소리 해도 헤실헤실 웃으면서 케이크만 퍼먹던 미레이답지 않게 눈가에 강한 정념이 깃들어 있었다.
내 시선에 미레이는 돌아보더니 헤벌쭉 웃었다.
“특관님, 저 잘했죠?”
“……안 물어봤으면 만점이야. 내려가.”
“예. 아, 그리고 얘네 살려 주시면 좋겠는데요…….”
내 무릎에서 내려온 미레이가 끙끙거리는 엘프들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무슨 범죄 조직 접수하러 온 줄 아냐? 이거 엄연히 나랏일인데 뭘 죽여. 그냥 묶어 놓거나, 아니면 네가 알아듣게 말해 둬.”
“예, 이관 미레이에게 맡겨 주세요!”
미레이는 붙임성 있게 경례를 하더니, 쓰러진 엘프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지켜보면서 혀를 찼다.
미레이가 평소처럼 구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분위기가 다른데…….
마피아 두목의 딸, 아버지와 절연하고 철도헌병대원이라니.
미레이도 복잡한 사정이 있으리라.
세탄이 다가와서는 말했다.
“아버지, 이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보통 범죄 조직들은 얕보이면 끝이라고 생각해. 우리를 그냥 찔러봤지만 당하고 돌아갔으니. 이제 병력을 대대적으로 끌고 올 거다. 오르카?”
“예, 이미 돌아가는 쿼크에게 사람을 붙여 놨습니다. 적들의 아지트를 파악하고, 여차할 경우에 급습하겠습니다.”
“그래.”
이 자리에는 없지만 다크엘프의 요원들도 같이 데려왔다.
“그냥 무작정 밀어 버릴 수도 있지만 협조를 받는 게 좋아. 애당초 사도의 목적도 모르겠으니까.”
“그러고 보니 적은 마피아 양쪽을 상대한다고 했죠? 왜 굳이 그런 짓을 할까요?”
“음?”
세탄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피아 양쪽을 싸움 붙이려는 거겠지. 서로 전쟁 돌입 상태가 되면 싸움이 격렬해질 테고.”
“지금까지 적들은 무차별적인 테러를 해 왔습니다. 일반 시민이 휘말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요. 만약 제칼에서 소동을 일으키겠다면, 카지노를 습격하는 걸로 충분했을 겁니다.”
“…….”
세탄의 지적.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네. 세탄,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적이 정말로 사도라면, 이렇게 애매하게 일을 벌일 이유가 없어.”
제칼에 혼란을 일으킨다?
카지노의 손님이나, 시장을 비롯한 관료들을 공격해도 충분하다.
굳이 왜 마피아를 건드리지?
오르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의 말씀이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시국이 혼란스러워서 마피아들도 몸을 사리고 있어요. 간부들이 죽어 나간다고 하더라도, 전면전쟁을 벌이면 군이 개입할지도 모르니까요. 좀 소극적입니다.”
“그러면 목적이 도시의 혼란이 아닌가? 아니……. 그냥 엘프를 노린 건가?”
나는 이마를 누르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옆방으로 마피아들을 데려갔던 미레이가 후다닥 달려 나왔다.
마피아 하나를 끌고.
“특관님! 큰일 났어요! 아빠가 납치되었다는데요?”
“……엥?”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미레이의 아빠라면 조커즈의 헤드, 두목이 아닌가?
“너희 아버지도 나사가 세 개쯤 빠지셨니?”
“안 본 사이에서 그랬을지도 몰라요!”
“……저, 정말입니다.”
미레이가 데리고 나온 중년 남자 엘프가 고개를 조아렸다.
“토르랑 님의 소식이 없어서 지금 조커즈에서 사람을 풀어서 찾아 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미레이 아가씨와 일행들이 오셨다는 소리에, 혹시 무슨 단서라도 있나 싶어서 무작정 들어온 겁니다.”
“……아니, 두목의 가족도 아니고 두목이 납치를 당했다고? 어디의 누구에게? 경호는 뭘 하고?”
“경호도 다 당해 버려서……. 지금 브레인이 임시로 지휘하면서 도시를 들쑤시는 중입니다.”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어느 조직이나 그렇지만 범죄 조직들은 특히 체면을 중시한다.
자기들 두목이 납치당했다는 소리는 빈말로도 못 한다.
가오가 죽으니까.
“누가 납치했는지 뻔하잖아. 스텔라의 짓 아니야?”
“그게, 스텔라가 감히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토르랑 님은 그래 보여도 5계위의 강자십니다. 살해당하셨다면 몰라도 납치는 좀…….”
“……알겠다. 미레이, 일단 돌려놓고 와라.”
나는 지시를 내리고 생각에 잠겼다.
본래 나는 조커즈 두목의 협력을 받아서 도시에서 사도를 찾아낼 계획이었다.
“사도라면 굳이 납치할 필요가 없지. 스텔라가 5계위의 강자를 납치할 정도인가?”
“사전 조사에 따르면 스텔라와 조커즈는 막상막하였습니다. 스텔라 헤드가 나서도 납치는 무리였을 겁니다.”
오르카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텔라와 조커즈는 사도를 몰라. 서로 상대의 짓이라고 오해하고 있어. 그러면…… 스텔라가 외부의 용병을 고용해서 조커즈 두목을 납치했다?”
“전 범죄 조직을 잘 모르지만…… 이런 일에 힘을 빌려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탄이 말했다.
그때 미레이가 돌아와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안절부절못하는 기색.
절연했다지만 아버지가 납치되었다니 걱정이 되겠지.
“침착해.”
“예, 특관님.”
미레이는 그래도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안하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발끝을 탁탁 두드렸다.
“…….”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오르카, 정보 수집 쪽을 바꿔라. 최근에 스텔라의 행적을 파악해 봐. 그리고 이셀렌에게 연락을……. 아니, 설마 그건가?”
“예?”
“6황후가 최근에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보라고 해. 어림짐작이라도 좋으니까.”
황도로 올라오라고 했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원래 엘프들이 행동이 느리기는 한데…….
오르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아버지 짐작이 맞을 것 같다는데요?”
“……그러냐.”
나는 한숨을 쉬었다.
6황후, 정령무희가 바로 제칼에 있다.
“내가 결혼하러 왔다니 장인어른을 납치하셨네?”
누가 마피아들의 공주님 아니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