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42)
The Decisive Collision
황후들을 은밀하게 불러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나는 다시 1황후의 후궁으로 돌아왔다.
혹시 내가 취한 나머지 헛것을 본 게 아닐까.
하지만 하시아와 꼭 닮은 서큐버스는 테이블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가벼운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마냥 기다리는 건 심심하니 같이 놀까?”
탁.
테이블에서 뛰어내린 서큐버스가 내 쪽으로 다가오려고 하자.
우우웅!
탐랑이 스스로 날아서는 서큐버스를 겨누었다.
더 오면 베겠다는 의미다.
서큐버스는 멈춰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그러는 건데.”
“……정신 사나우니까 물러나.”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 이 서큐버스의 말과 행동은 하시아와 똑같다.
칠죄신의 종복, 타락해서 영혼을 바친 이들은 일견 예전과 비슷해 보이지.
말도 통하는 것 같고, 하나도 달라지지 않아서 괜찮을 것 같지?
전혀 아니다.
가족이 좀비가 되었지만, 평소처럼 지낼 수 있다는 소망하고 다를 게 없다.
타락은 그런 거다.
“애당초…….”
“응?”
굳이 내 아내들을 불러 모아야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부터가 악의적이다.
이 서큐버스는 예전처럼 웃고 스스럼없이 굴고 있었지만 이미 칠죄신의 종복이다.
알지만 무작정 베어 버리기에는 늦었다.
이걸 해결 안 하면 나는 평생 황후들에게 의혹을 품고 살리라.
내가 침묵하자 서큐버스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뭘 새삼스럽게 그리 곤혹스러워해? 사람이 타락한 걸 본 게 처음도 아니잖아?”
“…….”
나를 따르던 병사들, 귀족들도 칠죄신의 겁박을 이기지 못해서.
죽음이 두려워서, 혹은 힘을 얻고 싶어서.
칠죄신에게 영혼을 바쳤다.
칠죄신의 종복이 된 옛 전우들이 제국을 가로막는 건 비일비재했다.
“아니면 설마 나까지 이럴 거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 했다?”
“…….”
“정말, 그토록 나를 보고 싶다고 노래해 놓고는 정작 보게 되니 안면 몰수?”
무슨 말을 하건 나는 침묵으로 무시해 버렸다.
서큐버스가 토라진 얼굴을 했다.
그때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다 같이 부른 이유 아는 사람?”
“나도 들은 바가 없어.”
“서, 설마 그런 일은 아니겠죠?”
“아, 다섯째는 여럿이서 하는 거 질색이지? 서로 사이좋아진다니까.”
“그런 불결한 이야기는 하지도 마세요!”
“흐아아암.”
“……저기, 조용히 오라고 하셨잖아요.”
황후들이 왔다.
나는 서큐버스를 견제하면서, 몸을 옆으로 돌렸다.
막 거실로 들어온 황후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폐하, 이 밤중에 어째서 갑자기…….”
“시릭.”
“저거 누구…….”
“……언니!”
비명, 소란 소리.
소음.
그리고 랑에이가 반사적으로 앞으로 나섰다.
순식간에 끌어 올리는 마력.
나는 정색하며 외쳤다.
“물러나!”
“…….”
“물러나라고 했다, 랑에이!”
랑에이는 목을 울리면서 서큐버스를 노려보았다.
명백한 적.
칠죄신의 종복을 앞에 두고 어째서 물러나야 하냐고.
나는 강하게 경고했다.
“다들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
“……무, 무슨.”
“…….”
경악, 침묵.
황후들은 당황하면서 나 그리고 서큐버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묘하다.
유하의 얼굴은 흙빛, 렌시엘은 완전히 창백해져서 뺨에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다른 황후들도 대동소이.
내 마음속에, 뭉클뭉클 불안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나는 서큐버스를 돌아보았다.
“……자, 네 요구대로 황후들이 모두 왔다. 설명해.”
“하시아라고 안 부르네.”
“제국법에 따르면 너는 하시아가 아니야. 그저 타락한 영혼이지.”
나는 침착하게 굴었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 내 아내들이 곁에 있으니까.
서큐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저었다.
“자, 그럼 다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네. 새삼스럽게 자기소개라도 하고 싶지만 시릭이 기다리다가 지쳤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문제,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
하시아였던 서큐버스가…… 허공에 손을 젓는다.
그러자 영상이 떠오른다.
비전(vision).
머릿속의 상념을 영상으로 구현해서 남에게 보여 주는 것.
초능력의 하나다.
영상은…….
근육질의 남성, 그 머리와 몸에서 풀풀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
칠죄신이 임한 육체였다.
종복들을 거느리고 앉은 칠죄신이 앞을 바라보면서 거만하게 물었다.
―영혼을 바칠 생각은 없느냐, 하시아?
“내가 그걸 하겠어?”
하얀 머리카락이 피로 흠뻑 젖어서, 주저앉은 하시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녀의 로브.
지금 이건 하시아가 기억하는 과거를 보여 주는 것이다.
―나는 네가 상당히 흥미롭단 말이지. 황제의 애첩, 아니, 그 이상인가? 그래서 죽이지 않고 권유하는 거다.
“무슨 말을 해도 무리지.”
―네 아이를 살려 준다고 해도?
영상을 보던 나는 굳어 버렸다.
뭔…… 소리야?
스승님의 아이?
내 자식!
“……아이라니?”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서큐버스 하시아는 검지로 턱을 긁으면서 말했다.
“그래, 당시 나는 임신했어. 아이가 있으니까 텔레포트를 못 한 거고. 텔레포트를 하면 태아에게 어떤 악영향이 갈지 모르니까.”
“……뭐.”
어질어질하다.
나만이 아니라 황후들도 하나같이 경악하고 있었다.
서큐버스 하시아는 나를 보며 말했다.
“보기 괴로우면 그만할까?”
“……계속, 계속 진행해.”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스승님이 칠죄신에게 잡힌 이유는 알았다.
하지만 칠죄신이 약속을 지킬 리가 없잖은가?
영상의 마녀 하시아는 독하게 마음을 먹은 얼굴이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애당초 너는 약속을 지키는 신도 아니잖아?”
―네가 날 따른다면 아이 하나 살려 주지 않을 이유가 있나? 나는 가끔은 관대하거든.
“……웃기는 소리.”
―그럼 이건 어때? 네가 왜 여기에 사로잡혔는지 알려 주는 건?
“…….”
―네가 사랑하는 남자가 왜 네가 붙잡힌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을까?
칠죄신이 사악하게도 웃는다.
함정이다.
하지만 영상의 마녀 하시아도.
그걸 10년 뒤에 지켜보는 나도.
피할 수가 없다.
하시아가 거부의 고갯짓을 보였지만…….
그 앞에 커다란 영상이 떠올랐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
얼굴이 안 보인다.
“……정말 이래도 되겠어?”
“서부의 종복들은 조무래기일 뿐이야. 하시아가 유난을 떨고 구원 요청을 보낸 거지.”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나도 이번에는 찬성한다. 그 여자는 군대의 규율을 어지럽힌다.”
변조된 목소리다.
하지만…….
나는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었다.
나는 불신, 경악의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황후들이.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이 얼어붙어 있었다.
자기들이 은밀하게 나눴던 대화가 송두리째 내 앞에서 드러났다는 걸 알고.
“하시아는 좀 쓴맛을 볼 필요가 있다.”
“칠죄신을 물리친 이후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그 여자 지분이 너무나 큽니다.”
“……마녀들의 원로회도 언니가 너무 큰 힘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시릭을 예전부터 알았다지만 너무 나대지 않아? 처음인 게 대수야?”
“이대로라면 칠죄신 이후에도 그 여자의 권세가 높아질 겁니다. 이번 기회에 꺾어 두는 게 좋겠죠.”
“그래, 실책이 필요하다. 구원군 좀 늦게 보내면 허둥지둥 도망쳐 오겠지.”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거지?”
“……다들 의견이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내가 지금 듣는 게 맞나?
나는 얼어붙어서 눈도 깜빡거리지 못했고.
황후들도 마찬가지로 겁에 질리고, 공포에 얼어붙어 있었다.
“아, 아냐!”
이셀렌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랑에이가 아주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다가오려고 하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지 마.”
“시릭, 그게…….”
“말하지 마라.”
귀에 계속 들려온다.
황후들의 대화가.
하시아에 대한 험담.
……아니, 그건 그렇다고 치자.
“……구원군을 안 보내? 하시아가 구원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는데, 묵살했어?”
“…….”
“내가 왜, 왜 그걸 몰랐지?”
나는 제국군의 총수였다.
최종 결전 역시 내가 총지휘를 했는…….
“……너희들, 다 같이 합심했구나?”
그 결론만 나온다.
하시아가 구원군 요청을 보낸 걸.
황후들이 중간에서 없애 버렸다.
“이, 이렇게 될, 될 거라고는 몰, 몰랐습니…….”
“…….”
렌시엘의 변명.
속에서 뭔가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나는 간신히 참아 냈다.
“……그래, 하시아가 구원 요청을 보냈는데. 너희들이 중간에 개입해서 싹 다 없애 버렸다?”
“…….”
“여럿이서 작정하면 사람 바보 만드는 건 쉽지. 아주 쉬워.”
당시에 나는 최종 결전을 준비하느라 정말 바빴다.
그 틈에, 내 눈과 귀가 미치지 않게 황후들이 수작을 부린 것이다.
“……그래서, 하시아가 저렇게 잡혔어? 그런 거였어?”
“…….”
“너희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참으려고 해도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너무 격렬한 감정이 올라왔다.
“……적어도 아군을 배신하지는 말았어야지! 하시아가 그리도 미우면 밉다고 했어야지! 그 아래의 병사들은? 내가 구원군을 보낼 거라고 믿고 기다리던 제국군들은! 그 수백, 수천의 병사들의 목숨을 너희들은 대체 뭐로 안 거야!”
“아, 화내지 마, 시릭. 그래서 나만 잡혔잖아?”
서큐버스가 말참견을 했다.
물론…… 정말로 황후들을 옹호하는 게 아니지.
내 속 더 터지라고 이러는 거다.
서큐버스가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인다.
“무려 칠죄신이 내게 거래를 청했지. 나만 남으면 지친 병사들을 돌려보내 주겠다고. 네가 그토록 아끼는 제국군은 적어도 이 상황에서는 죽지 않았지.”
“…….”
마음에 불길이 솟는다.
아, 황후 여러분들이 칠죄신을 물리친 다음, 제국의 권력 다툼에 유리하겠다고 미리 뒤통수를 치셨다?
“……그래, 알겠다. 권력에 환장하셨다? 됐다.”
“시, 시릭.”
“말하지 마.”
나는 황후들을 무시하고는 돌아섰다.
서큐버스 하시아는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보는 것처럼 우리들을 살펴보는 중이니까.
안 된다.
아무리 실망하고 분노하더라도 적과 아군은 바뀌지 않는다.
서큐버스는 김빠진 얼굴이었다.
“바로 용서해 주는 거야?”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야.”
공에 눈이 멀어서, 혹은 다른 이유로 명령을 위반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던 이들.
나는 숱하게 겪었다.
그걸 감안해도 너무 충격적인 진실이었지만…… 적에게 약점을 보일 수는 없다.
황후들의 처분은 이 일을 끝내고서다.
한데…… 서큐버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시릭. 내가 사랑하는 제자. 네가 그렇게 마음이 단단하니 내가 초능력까지 전수해 주었지. 그런데…….”
서큐버스의 눈이 가늘어진다.
“내가 그것도 계산하고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해야지?”
“…….”
설마, 여기서 더 있단 말인가?
영상이 다시 이어진다.
왜 구원군이 오지 않았는지.
영상을 보고 알게 된 마녀 하시아의 얼굴이 굳어진다.
표정에는 격렬한 감정.
하시아는 슬픔을 못 느끼는 거지, 분노는 보통 사람처럼 느낀다.
칠죄신이 기껍게 웃는다.
―자, 어쩔 거지, 하시아? 지금이라도 네 영혼을 바치면…… 아이는 살려 주마. 약속한다!
“……정말이지?”
안 돼.
칠죄신을 믿지 마라.
하지만 하시아는 이미 이성을 상실했다.
금색 눈동자에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내 다른 아내들의 수작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구원군을 보내지 않았고.
내 아이까지 밴 몸이라서 도망치지 못했고.
죽음만을 기다려야 한다.
누구라도 이성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타락이라도 해서, 복수해 주겠다는 마음을 품을 것이다.
―약속하지! 나는 살려 주마!
“…….”
하시아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들썩거리는 어깨.
웃음소리.
“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하얀 마녀가 몸을 떨면서 웃는다.
머리에 난 상처가 벌어지더니……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시아의 눈가를 타고 흐른 피가 아래로,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마치 눈물처럼.
“하하하하. 그래. 그렇다면…….”
피눈물을 흘리는 마녀가 단호하게 말한다.
“내 영혼을 바치겠어.”
―하하하하! 좋아! 약속대로 해 주마!
공간이 열리더니, 하시아의 머리에 검은 마력이 쏟아진다.
흑마력.
칠죄신에게 영혼을 바치는 세례.
“아아아아악!”
하시아가 괴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을 친다.
과거의 광경이라는 걸 알면서도,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자, 그럼 약속을 실행해 볼까?
……뭐야.
소름이 돋았다.
저 칠죄신의 몸은 거구의 인간 남성이다.
이 영상은 최종 결전에서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게 아니다.
하지만 내가 베었던 칠죄신의 몸은 분명히…….
영상의 칠죄신이 사악하게 웃으면서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러자 몸부림치는 하시아의 몸에서 빛 무리가…….
나는 그 순간, 염동력을 발휘해서 공간을 찢어발겼다.
영상이 사라진다.
서큐버스는 검지로 턱을 누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더는 못 보겠어?”
“……그래, 다 봤다!”
“하지만 네가 사랑하는 여자들은 아직 이해를 못 하는 모양인데?”
“…….”
하시아의 얼굴을 한 서큐버스가 잔인하게도 웃는다.
내 짐작.
어림짐작이지만.
“잠깐…….”
“설마?”
“칠죄신의 마지막 몸이…….”
황후들도 하나둘씩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내가 왜 보다가 말았는지.
“아, 아냐. 아냐!”
“우, 우리는 그, 그러려던 게…….”
“아, 아아아!”
철혈이라 불리는 엔라조차도 비명을 터트린다.
다들 멘탈이 터져서 넋이 나가 버린다.
내가 뭘 짐작했는지, 뒤늦게 깨닫고.
서큐버스는 어여쁘게도 웃었다.
“자, 다시 문제 하나! 칠죄신은 약속을 지켰을까, 어겼을까?”
“…….”
“내가 영혼을 바쳤을 때, 내 아이의 영혼도 같이 바쳐진 걸까, 아닐까?”
나와 하시아의 아이.
마녀의 아이는 마녀, 딸이다.
그리고 내가 베어 버린 칠죄신의 육체는 분명히 남성이었다.
하지만 칠죄신은 신이다.
온갖 강력한 권능을 휘두르는 신.
사람을 자기 종복으로 거듭나게 하는 신이라면.
태아를 급속 성장시키고 성별을 바꾸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문제 풀이에 관심 없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적에게 더는 끌려갈 수 없다.
서큐버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궁금해?”
“인간과 원숭이는 결국 달라. 그리고 지나간 일에 매달려도 답은 안 나온다.”
끔찍한 가정대로 칠죄신의 육체가 그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나와 하시아의 유전자는 일말도 없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적을 처리하는 게 더 우선이다.
서큐버스가 나에게 애걸한다.
옛날, 고집부리는 나를 설득하던 하시아의 얼굴로.
“네 상상이 틀린 걸 수도 있어. 우리 두 사람의 아이는 어딘가에서 잘 자라고 있을지도 몰라. 같이 확인해 보자니까?”
“됐다. 할 말은 끝났다.”
“아, 정말. 나를 못 믿어? 우리 아이는 살아 있어!”
서큐버스가 토라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
허나 타락했다는 건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일부러 아내들을 불러 모아 놓고 앞에서 폭로하는 수법.
이미 하시아가 아니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관심 없다. 넌 타락했고 우리 사이에 남은 건 하나다.”
“…….”
서큐버스의 얼굴이 굳어진다.
방금 전의 애걸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차디차게.
“……날 죽여? 나를 그토록 그리워했던 네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칠죄신의 종복은 예외 없이 말살한다.”
나는 칼자루를 꽉 잡았다.
아내들은 어른거리는 권력에 눈이 멀어서 나를 배신했고.
스승은 타락했고.
이제 나는 타락한 스승을 죽여야 한다.
“누구도 끼어들지 마라.”
얼이 빠져서 주저앉아 버린 황후들에게 경고한 나는 적을 향해 돌아섰다.
그래도 나는 싸워야 했다.
나는.
난 제국의 황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