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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37화 (136/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37)

꿈의 시작

마녀.

나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인간 여자처럼 보이지만 안팎이 다른 빛깔을 띤 신비한 머리카락이 특징이다.

장수하는 미녀들이지만 괴팍해서, 건드리면 문제가 된다고 한다.

“뭐, 뭐야. 저 여자…….”

나에게 허벅지에 칼을 맞고 헐떡거리던 코랄이 침을 꼴깍 삼켰다.

“야, 샤크. 저 여자 뭐 저렇게 예쁘냐? 잡아서 시장님에게 바치면…….”

“……그러면 네가 잡아 봐.”

샤크는 노골적으로 경계했다.

상대가 인간이 아닌 마녀라는 걸 알아보고.

샤크는 재차 말했다.

“코랄, 네가 잡으면 네 마음대로 하게 해 주마. 해 봐.”

“지, 진짜지?”

코랄은 무릎을 누르면서 일어났다.

허벅지에 칼이 박혀 있는데도, 눈앞의 여자에게 정신이 팔린 것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여자기는 했지만…….

어쩐지 불길하다.

“후우, 후우우…….”

코랄이 다리를 절면서 다가오는데 여자가 문득 나를 바라보았다.

“이건 네 잘못이 아니다.”

“……예?”

“내가 죽이는 거야. 그러니 마음에 두지 마라.”

여자는 생긋 웃더니만 코랄의 하반신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코랄이 바보처럼 웃는데…….

쭈우우욱.

“어어어억!”

여자는 코랄의 허벅지에 박혀 있던 단검을 가볍게 뽑아내고는.

대뜸 코랄의 목에다가 박고 그어 버렸다.

털썩!

코랄이 쓰러진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서로 합이라도 맞춘 것 같았다.

더 기이한 건, 여자에게는 피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는 거다.

샤크는 입을 다물고는 뒤로 주춤, 물러났다.

“…….”

나 역시도 샤크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앞의 여자는 이상하다.

사람을 대뜸 죽여서? 그것만 따지면 샤크 패거리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은 남을 공격할 때, 점화 단계가 있다.

이 상대를 없애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과정.

하지만 저 마녀는 그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상관없지.”

“뭐?”

샤크가 반사적으로 나를 돌아보는데, 나는 놈에게 덤벼들었다.

샤크는 얼른 팔을 휘둘러서 나를 쳐 냈지만 어디까지나 견제, 지금 자리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푸욱.

내 단검이 너무나 쉽게 샤크의 복부를 찔렀다.

“뭐, 뭐야. 우리 둘이 힘을 합쳐서…….”

“미쳤냐?”

나는 힘주어서 검을 뽑아냈다.

덜 성장한 몸, 힘이 약해서 어려웠지만 안간힘을 다해서.

“커어억.”

샤크는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아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미치광이가 죽어 간다.

“…….”

나는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당방위라고는 하나 나도 정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손을 더럽히는 일은 몇 번이고 해 왔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진작 죽었을 거다.

마녀가 다가오면서 웃어 보였다.

“내 도움은 필요 없었나?”

“…….”

분명히 도와주고 미소까지 띠었는데…… 안심할 수가 없었다.

이 여자의 행동은 뭔가가 누락되어 있었다.

“아, 저기 여자애도 묶여 있네. 풀어 줘야지.”

“아, 예.”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른 기둥으로 달려갔다.

나는 일단 내 옷을 벗어서 바닥에 깔고는 루엘을 눕혔다.

눈이 내리는 차디찬 바닥, 하지만 내가 가진 거라고는 넝마 하나였다.

하지만 루엘의 얼굴에는 핏기가 싹 가셔 있었다.

금방이라도 꺼져 버릴 듯이 가는 호흡.

“의사. 의사를…….”

“이건 너무 늦었어.”

여자의 말대로 루엘의 안색은 너무 파리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복부의 단검을 뽑는 순간, 바로 숨이 끊어질 것이다.

아니, 의사를 찾아도 치료할 돈도 없잖은가?

“쿨럭, 쿨럭.”

그때 루엘이 잔기침을 했다.

꺼져 가는 눈빛, 루엘이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죽어 가는 루엘,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 우리는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침묵의 한참 뒤에.

“배고파…….”

“…….”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

내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는 결말이었다.

“뭐 이런…….”

머리가 뜨겁다.

어린애의 유언이 배고파라니.

너무 끔찍해서 내가 멍해지는데…… 여자는 루엘의 눈을 감겨 주었다.

“혹시 박제할 건 아니지?”

“예?”

여자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가끔 상대를 너무 사랑하는 인간들은 박제로 만들어서 보관하더라고. 그건가 싶어서.”

“…….”

이 마녀는 제정신인가?

나와 루엘은 그런 사이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닐 텐데.

여자가 손짓하자 루엘의 시신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신비한 광경.

여자는 밝게도 말했다.

“여기다 묻을 거야? 아니면 그냥 놓고 갈 거야?”

“도시 밖에다가…… 묻고 싶어요.”

공동묘지에 매장하려고 해도 돈이 든다.

결국 암매장할 수밖에 없다.

애들 죽는 걸 숱하게 본 나로서는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여자는 루엘의 시신을 띄우더니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쓱, 하고는 사라졌다.

내가 깜짝 놀라는데 여자가 설명했다.

“잠깐 안 보이게 한 거야. 이제 가자.”

“아, 그 전에…… 여기 주변에 다른 애가 하나 더 죽었는데요.”

“그래? 그래서?”

“걔도 데려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나는 말하면서 눈치를 보았다.

이 마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도통 모르겠어서.

마녀는 산뜻하게 말했다.

“그러지, 뭐.”

나와 여자는 두 아이의 시신과 함께 도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중간에 행인들이 여자를 주목했지만, 정작 여자는 긴장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평지를 찾았지만 이미 눈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겨울의 추위에 얼어붙은 땅, 팔 도구도 없다.

손으로 파려고 결심한 내가 소매를 걷는데 마녀가 말했다.

“아, 땅도 파야지? 기다려.”

마녀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파바박, 하면서 땅이 순식간에 파여 들어갔다.

“염동력이야. 신기하지?”

“예, 뭐.”

엄청 신기한 광경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 너무 지쳤다.

하루 사이에 내 근처의 아이들이 몰살당했고, 우리들을 박해하던 패거리들도 죽어 버렸다.

생각할 힘이 있을 리가.

구덩이에 두 구의 시신을 내려놓은 내가 그간의 일을 회상하는데…….

파바바박!

여자가 순식간에 흙으로 덮어 버렸다.

“아니, 잠깐만요!”

“어? 왜? 더 묻을 게 있었어?”

“…….”

아니, 사람이 시신을 내려다보면서 감상에 젖는데, 그걸 모르나?

내 얼굴을 본 여자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미안해. 슬퍼하는 중이었구나? 다시 파 줄까?”

“……아닙니다. 마저 덮어 주세요.”

다시 파내는 것도 또라이 짓이지.

결국 무덤을 완성한 나는 일어나서 막막하게 바라보았다.

묘비도 없다.

그저 눈이 하염없이 내려서, 아이들의 무덤을 덮어 주고 있었다.

“…….”

혼자 남았다.

이제 어쩌지?

마녀는 무슨 생각인지, 계속 내 옆에 서 있었다.

좀 이상하긴 해도 강하다.

이대로 헤어지는 게 아니라 뭔가 더 얻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물에 빠진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 무작정 매달리면 염치가 없지.

내가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는데 문득 마녀가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지?”

“시릭입니다. 성은 없고요.”

“그래, 시릭. 왜 아까 세 남자에게 덤벼들었지? 넌 마력도 없고, 이길 승산이 적다는 건 알고 있었을 텐데?”

“…….”

다 보고 있었나?

여자는 한가롭게 말했다.

“내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넌 죽었을 거야. 고맙다고 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이유는 듣고 싶어.”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유는…….”

상대를 사로잡을 말을 짜낸다?

아니다.

나는 이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적고, 괜히 머리 굴려 봐야 불신만 산다.

“목만 붙어 있다고 다가 아니니까요.”

“그래?”

“……예, 적어도 저는 그래요.”

나는 지구, 한국의 기억을 갖고 있었다.

“빵 훔쳤다고 사람 죽여도 되는 세상에서 굽실거리면서 살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다가 죽을 텐데?”

“어차피 오래 못 살걸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인간 어린애가 살아남으려면 마력을 깨쳐야 한다.

보통은 이차성징 시기.

하지만 이 험악한 세상에서 내가 그 나이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자는 검지로 턱을 긁다가 불쑥 말했다.

“내가 좀 많이 이상하지? 기분 나쁘고.”

“……좀 그렇지만 사실 이해했습니다. 아까 하신 말이 절 위한 것도요.”

여자가 코랄을 없애기 전에 하던 말.

그건 내가 이 피바람과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 의미였다.

아이가 도덕적인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여자는 모자를 누르면서 말했다.

“마녀들은 원래 다들 이상해.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하나 없거든. 뭐가 없는지는 다들 다르지만.”

“……그래요?”

“가령 나는 슬픔을 몰라. 그래서 남이 죽은 걸 슬퍼하는 마음에 따라갈 수가 없지. 감정이입이 전혀 안 된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

이 여자가 어딘가 이상한 건 그 탓이리라.

여자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니 나는 지금 네 마음을 전혀 몰라. 내가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여자를 향해서 몸을 돌렸다.

“제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초면에 대단히 무례하고 실례되는 건 알지만 부탁 하나만 더 드려도 될까요?”

“넌 애인데 다 큰 어른처럼 말하네?”

나는 자세와 말투에 신경 쓰면서 말했다.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먼발치에서 따라다녀도 되겠습니까? 제 몸은 제가 알아서 챙기겠습니다. 또 절대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처신하겠습니다. 그저 앞길이 막막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안 돼.”

즉답.

거절을 예상하고 내가 여러 가지 말을 준비해 뒀는데…… 하나도 안 통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재차 입을 열려는데…….

“멀리 말고 옆에서 따라다녀.”

“예?”

뜻밖의 말.

여자는 낭랑하게 말했다.

“보통 이종족들은 자기들끼리만 살지. 하지만 마녀들은 감정이 하나씩 없어. 그래서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부딪치지.”

“감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까?”

“태어날 때부터 없던 게 배운다고 배워지나? 각성하는 거야. 보통 각성의 계기는 사랑에 빠질 때지만, 나는 기약이 없네.”

하얀 마녀가 나를 보며 웃는다.

“세상은 정신이 나가 있고 나도 미쳐 있는데, 너는 아이답지 않으면서도 사람처럼 구는구나.”

“…….”

“이 추운 날씨에, 너는 아까 죽은 아이를 눕히기 위해서 서슴없이 옷을 벗었지. 이런 세상에서 슬퍼할 줄 알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생명은 너무나 귀하지.”

마녀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러니 나는 너를 옆에 두고 배우려고 한다. 슬픔을 배울 수는 없지만 흉내 낼 수는 있겠지.”

“……매우 감사한 제안입니다만 제가 도움이 될진 모르겠네요.”

그냥 눈 딱 감고 받아들일까 싶었지만.

사실 망설여지는 것도 있었다.

카라카스에서 나는 인간을 많이 보았지만, 이종족을 이리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다.

마녀는 검지로 턱을 긁더니 웃었다.

“내 수발을 드는 거야 할 수 있겠지? 이래 보여도 나는 생활에 아주 서투르더라고. 방금도 지도를 사려고 했는데 까먹고 도시 밖으로 나왔잖아.”

“그럼 뭐 빨래, 식사 준비, 길잡이 정도를 하면 됩니까?”

“그리고 말동무.”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저울 눈금이 안 맞지.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준다고 했으니 나도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마.”

“예?”

“마녀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뜻밖의 제안.

하지만 입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애가 배고프다면서 죽는 세상.

이 미쳐 버린 세상에서 노예로 살 수는 없었다.

“칠죄신을 죽이고 싶습니다.”

“…….”

아, 실수했다.

이 여자는 척 봐도 강자다.

칠죄신의 세상에서 기득권, 이걸 들으면 찬동할 리가 없다.

한데 하얀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들어줄게.”

“……칠죄신은 강자에게는 나름 관대하지 않습니까? 칠죄신의 노예로 살면 편안한 삶을 구가할 수 있을 텐데요.”

“계속 이렇게 더럽게 살 수는 없잖아?”

담백한 말.

하지만 나도 전면적으로 동의하는 말이었다.

나는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이미 밝혔지만 저는 시릭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고마워.”

“……아니, 존함을 말씀해 주시라고요.”

내가 어이없어하자 마녀는 아차 싶은 얼굴이었다.

얼굴은 예쁜데,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여자였다.

“하시아 티어리스다. 아, 마녀에게 성은 꽤 부끄러우니까 어디 가서 말하진 말고.”

“알겠습니다.”

하시아가 가볍게 말했다.

“자, 그럼 신을 죽일 방법을 찾으러 가자.”

추하고 지독한 세상을 새하얀 눈이 덮어 버리는 날.

나는 스승을 만났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피를 뒤집어써야 이룰 수 있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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