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36)
하얀 눈이 아무리 내려 본들
더러운 세상이라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깨끗하구나.
나는 손바닥으로 눈송이를 받아 보았다.
이제부터는 목숨을 건 도둑질.
긴장을 풀려고 한가로운 생각을 하는 거다.
내 옆에 선 아이들, 가장 나이가 많아서 리더를 맡은 루엘이 결연하게 말했다.
그래 봐야 열한 살이지만.
“가자, 시릭은 망을 잘 보고.”
“……그냥 오늘은 관두지?”
“안 돼,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계속 빵집만 터는 건 아니지. 그리고 우리 작전은 너무 빈번하게 써먹었어.”
지구의 기억, 경험이 있는 나는 그냥 열 살 어린애가 아니었다.
루엘은 어른스럽게 일렀다.
“오늘은 반드시 빵을 갖고 돌아가야 하잖아? 잘 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반박할 말이 없다.
루엘은 다른 아이 둘을 돌아보았다.
작전 시작이었다.
먼저 더벅머리 엘크가 빵집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러고는 빵집 출입구, 유리문을 향해서 돌을 던졌다.
쨍그랑!
기겁한 빵집 주인이 뛰쳐나왔다.
“이 미친놈이!”
“빵만 팔 줄 아는 병신아!”
욕설을 내뱉은 엘크는 죽을힘을 다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주인도 엘크를 향해서 달려가고.
그 틈에 다른 둘이 들어가서 빵을 한껏 훔쳐 오는 건데…….
와당탕!
디터와 루엘이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이놈들! 잘 걸렸다!”
“뭐…….”
가게 안에 한 명 더 있었나?
이런 작은 빵집에 사람을 고용할 여력 따위는 없을 텐데?
180cm는 됨 직한 인간 남성은 막 일어나려는 디터를 번쩍 잡더니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으아아아아!”
고작 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가 팔다리를 버둥거리는데…… 남성은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메다꽂아 버렸다.
너무나 끔찍한 소리.
디터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남성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디터의 등을 발로 누르더니 머리를 퍽 걷어찼다.
확인 사살이다.
“…….”
나는 보는 순간 못 박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카라카스로 환생하고, 사람이 죽는 건 숱하게 봤다.
그리고 우리는 좀도둑, 걸리면 두들겨 맞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죽었다!
빵을 훔치려고 했단 이유만으로, 여덟 살짜리 어린애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죽여 버린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살인을 저지른 남자의 뺨에는 검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칠죄신의 노예라는 증거.
“흥! 쓰레기 녀석.”
남자는 남은 루엘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파리 한 마리 잡았고, 다음을 잡자고.
“아, 아아아…….”
주저앉은 루엘은 굳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자기와 함께 움직이던 사람이, 벌레처럼 죽어 버리면 멘탈이 꺾인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아아아!”
“뭐…….”
소리를 질러서 시선을 유도한 나는 미리 준비해 놨던 돌을 뿌렸다.
퍼어어억!
지금 나는 열 살, 내 덩치로 성인 남성을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급소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커어억.”
사타구니에 돌을 얻어맞은 남자는 비틀거렸다.
아주 잠깐의 틈.
“가자!”
나는 얼른 루엘의 손을 잡고 내달렸다.
비틀거리던 루엘은 곧 정신을 차리고 자기 다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야 한다.
장발장이 빵 한 조각 훔치려다가 19년을 복역했다고? 그는 행복하다.
여기는 바로 죽인다.
그리고 그 죽음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경찰? 존재한다.
하지만 칠죄신의 노예인 저 남자는 면죄(免罪)다.
신의 노예가 사람 좀 죽였다고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으아아아!”
나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면서 거리를 달렸다.
사는 건 숨이 막히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은 야속할 정도로 새하야니까.
눈은 더 많이 내려서 우리들의 무릎까지 잠길 정도가 되었다.
나와 루엘은 엘크와 합류했다.
디터를 잃어버린 우리 세 사람은 침울했다.
본거지로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
나는 애써 말했다.
“……차라리 도망가자.”
“어디로? 우린 갈 데가 없어…….”
엘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카라카스에서 사람이 굶어 죽는 일은 빈번하다.
아이를 정상적으로 먹이고 재워 줄 곳 따위는 없었다.
거기다 계절은 겨울, 무작정 다니면 얼어 죽는다.
엘크가 한숨을 쉬었다.
“얼른 노예가 되고 싶다…….”
“나도 칠죄신님의 노예가 되고 싶어…….”
루엘이 덜덜 떨었다.
디터의 죽음을 코앞에서 본 충격이 여전히 남아서.
엘크가 말했다.
“얼른 열다섯 살이 되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칠죄신님의 노예로 선택받을지 모르잖아.”
“응, 그러면 행복할 거야.”
“…….”
지구에서 죽고 내가 환생한 세계, 카라카스에서는 신이 실존하고 지상에 머무르고 있다.
칠죄신.
“꼭 살아남아서 노예가 되자.”
“노예 심사에서 떨어져도 흑마력 실험체로 지원할 수도 있으니까. 그거 받고 살아남으면 되잖아.”
“……장래 희망이 그건 좀 아니지.”
오가는 대화에 나는 참다못해 끼어들었다.
엘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너 또 이상한 소리 하려고 그러지? 칠죄신님 욕하려고.”
“시릭, 다른 데서는 그러지 마. 누가 들으면 진짜 큰일 나.”
루엘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애가, 무참하게 머리가 깨져서 죽는 게 당연한 세상.
“지금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 건 칠죄신인데? 명색이 신이라는 놈이 아이들이 굶어 죽는 게 당연한 세상을 만들어? 이건 고의야!”
“시릭!”
루엘이 큰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워 보였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
“……진짜 큰일 나. 정말 조심해.”
“…….”
누가 고발이라도 했다가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내가 입을 다물자 둘 다 조용해졌다.
침묵 속에 공터에 도착했다.
거지 같은 본거지다.
모닥불을 쬐던 남자 셋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뭐야, 한 놈은?”
“……디터는 당했어요.”
루엘이 대표로 나서서 말했다.
자기가 가장 누나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실패했어? 배고픈데.”
“아까 급식소에서 돼지처럼 먹어 놓고 뭘.”
“실패했으면 벌을 줘야지.”
세 놈은 낄낄거리면서 우리들을 쓱 훑어보았다.
뜯어 먹을 먹이를 고르는 들개 같은 눈빛.
나와 루엘, 엘크는 딱 굳어 버렸다.
패거리의 우두머리, 샤크가 물었다.
“누가 형이랑 놀아 줄래?”
“…….”
침묵.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 셋 다 아니까.
샤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뻗었다.
루엘의 손을.
“…….”
그 순간 나는 안도해 버렸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그 이상으로 격렬한 분노가 몰려왔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샤크가 루엘을 끌고 가자 다른 둘이 혀를 찼다.
“여자를 쓰겠다고? 아깝잖아. 제법 미인인데.”
“미친놈, 애에게 꼴리냐?”
“야, 저거, 저놈. 눈깔 봐라.”
패거리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깔았지만, 주먹에 꽉 힘이 들어갔다.
샤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그러니까 이걸 고른 거야. 잘 봐.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 줄 테니까.”
놈들은 익숙한 솜씨로 루엘을 기둥에 묶었다.
루엘은 몸부림치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래 봐야 얻어맞고 다치기만 한다는 걸 아니까.
그저 눈을 감고,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제발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는 기도.
“자, 됐고. 규칙은 알지?”
“머리는 3점, 몸통은 1점, 심장은 10점, 팔다리는 2점. 기회는 세 번씩.”
“누구부터 할 거냐?”
셋은 단검을 꺼내 들고는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인간 다트.
사람을 과녁판 삼아서 단검을 던져 맞히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맞혀서 죽이면 아웃이다.
물론 이들이 자비로워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게임에는 일종의 함정이 필요하단 이유였다.
“…….”
몸에 칼을 아홉 번 찌르고 뽑는다?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성인도 까닥하면 죽는다.
설사 숨이 붙어도,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하니 결국 죽는다.
“칠죄신님, 칠죄신님, 칠죄신님…….”
기둥에 단단히 묶인 루엘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의 엘크는 몸을 홱 돌렸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발소리.
“야, 저거 도망가는데?”
“내가 가서 죽이고 올게.”
무리 중 하나가 달려갔다.
엘크가 달려 봐야 어린애다.
이내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이게 오지의 산적 소굴에서 벌어진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여기는 남부의 번화한 도시, 베넬라였다.
그 뒷골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죽이고 있다.
경찰? 경찰이 하는 일이라고는 칠죄신을 거스르는 이를 색출하는 거다.
칠죄신의 노예가 될 자격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의 죽음 따위는 알바 아니다.
“…….”
나는 이를 꽉 악물었다.
여기서 도망쳐?
밤중이라면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가 봐야 얼어 죽는다.
더 놀랍게도 샤크 패거리는 그나마 온순했다.
다른 곳에서는 아이들끼리 서로 결투를 시키고, 누가 죽을지 내기까지 했으니까.
그런 투견장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힘을 길러?
돈을 날렸다면서 승자를 죽여 버리는 걸 보고 탈주했다.
“지옥이다…….”
이 세상은 그냥 지옥이다.
치안은 유명무실하고, 아이들의 죽음은 빈번하다.
성인이 돼도, 칠죄신의 노예로 선택받지 못하면 다를 거 없다.
지구의 뉴스에서 나오던 치안 부재의 멕시코, 소말리아.
남의 나라 이야기로 여기던 것보다 갑절은 끔찍한 상황이었다.
“자, 봐라. 시릭!”
그때 샤크가 말했다.
사실 내가 이 패거리에 남아 있는 건, 일단 얼어 죽지는 않아서고.
그리고 샤크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해서다.
반항적인 들개에 흥미를 가지는 정도의 호감이지만.
샤크는 루엘을 보면서 단검 세 개를 잡았다.
“너, 칠죄신 욕을 한다며? 배짱 좋구나. 마음에 든다. 혹시나 무사히 열다섯 살이 된다면 친구가 되고 싶을 정도로.”
“…….”
“하지만 지금은 신에게 빌어야겠지. 안 그러냐, 루엘.”
기둥에 묶인 루엘은 나직하게 말했다.
“사, 살려 주세요. 칠죄신님. 착한 노예가 될…….”
퍽!
그 순간 단검이 날았다.
루엘의 다리 사이에 박힌 단검.
몸에 안 맞았다.
“아.”
나는 순간 안심했다.
루엘의 얼굴도 기쁨으로 물드는데…….
퍽!
그 배에 단검이 꽂혔다.
“…….”
샤크는 나를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첫 번째는 일부러 빗맞힌 것.
안도하다가 기분이 뒤집히니 어떠냐고.
뚝, 뚜우우욱.
배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에 떨어진다.
하얀 도화지가 점차 붉게 물드는 광경은 내가 본 무엇보다도 끔찍했다.
그 순간 세 번째 단검이 날았다.
퍽!
놀랍게도 샤크의 단검은…….
루엘의 목옆에 꽂혔다.
“컥, 커어억…….”
배에 칼을 맞은 루엘은 순간 안도했다.
나도 마찬가지고.
샤크는 나를 보며 웃었다.
“어때, 행복하지?”
“…….”
“이게 바로 행복이라니까.”
샤크는 또 일부러 빗맞힌 것이다.
안도와 절망, 그리고 다시 안도의 롤러코스터.
지켜보는 나와 루엘의 생명을 조롱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나와 루엘은 샤크에게 감사해 버렸다.
이놈은 명백한 개자식이고, 우리를 짓밟고 조롱하는 장본인인데도.
이 벌레 같은 목숨, 1초라도 더 살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학, 하아아악…….”
하지만 루엘의 숨결은 가빠지고 있었다.
나보다 누나라지만 열한 살, 아이가 배에 칼을 맞았는데 상태가 좋겠는가?
샤크의 동료들이 불평했다.
“뭐야, 고작 1점이야? 오늘 컨디션 안 좋냐?”
“샤크도 상태가 안 좋나 보네. 이제 내 차례지?”
저 둘은 샤크가 무슨 의미로 저랬는지 모르고 있었다.
척. 척.
샤크의 동료가 루엘을 향해서 다가가자…… 나도 모르게 말했다.
“뽑지 마.”
“뭐?”
“…….”
저거 뽑으면 루엘은 무조건 죽는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나한테도 던질 기회를 줘.”
“이 새끼가 돌았나…….”
“줘.”
“야, 샤크…….”
“주라니까.”
샤크가 노려보자, 동료들은 움찔 움츠러들었다.
샤크는 나를 향해서 턱짓했다.
“규칙은 이미 알지? 날 이기면 네 승리다. 앞으로 내 동료로 대우해 주마. 뭐 훔쳐 오라고도 안 하고. 잡일에서 해방해 주지.”
“…….”
“넌 훌륭한 노예가 될 거다. 시릭.”
나는 건네받은 단검 세 개를 움켜잡았다.
기둥에 묶인 루엘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학, 하아악…….”
떨리는 눈망울.
하지만 질끈 눈을 감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에게 던지고.
너라도 살아남으라고.
“…….”
나는 단검을 움켜잡고는 숨을 골랐다.
머릿속으로 배치도를 생각하고.
투견장에서 기른 솜씨로!
홱!
돌아서면서, 샤크의 턱을 향해서 단검을 던졌다.
“흠?”
하지만 샤크는 예상했다는 듯이, 옆 놈의 손을 잡아끌어서는 그 단검을 막아 버렸다.
“끄아아악!”
손바닥이 찔린 찰스가 비명을 지른다.
젠장, 읽혔나?
나는 분해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코랄에게 달려들면서 허벅지를 찔렀다.
푸욱!
“어어어억!”
그래도 이건 먹혔다.
샤크만 어떻게 하고…….
퍼어억!
그 순간 내 몸이 걷어차이고 굴렀다.
“시도는 좋았지만 하나가 비었다.”
“컥, 커어억.”
격통.
어린 몸이 경련을 일으키면서 과부하를 호소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정신을 잃어버리면 진짜 죽는다.
나는 간신히, 턱을 들고는 비틀거렸다.
샤크는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를 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야, 샤크! 죽여!”
“뭐?”
샤크가 돌아보자, 손등에 칼이 꽂힌 찰스가 성을 냈다.
“이놈이 나에게 칼을 박았…….”
퍽!
샤크는 들고 있던 칼을 대수롭지 않게 찰스의 목에 꽂고는 뽑았다.
요구르트 병에 빨대를 꽂았다가 뽑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컥, 커어어억……. 뭐…….”
“니들보다는 쟤가 더 똑똑하거든.”
샤크는 그리 말하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야…… 나는 환생하여 지구의 기억이 있으니까.
아이답지 않으니 샤크는 나에게 흥미를 가진 거겠지.
“윽, 으으윽.”
나한테 허벅지를 찔린 코랄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루엘의 숨결이 약해진다.
“허억, 허억.”
하늘에서 눈은 하염없이 떨어지는데 곳곳에 붉은 피가 흐른다.
이미 죽었거나 곧 죽을 이들.
유일하게 멀쩡한 샤크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지막 기회다. 지금 잡고 있는 칼을 과녁에 던져. 그러면 나에게 이빨을 들이댄 걸 용서해 주지.”
“…….”
나는 호흡을 골랐다.
샤크는 나직하게 말했다.
“왜 그러지? 설마 용기가 없는 건 아닐 테고. 날 이길 자신도 없을 텐데?”
“그야…… 결국 너도 칠죄신의 노예 심사에서 떨어진 낙오자잖아?”
“…….”
샤크는 마력이 없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흑마력을 받아들이는 실험체로 지원한 것도 아니고.
갈 데 없는 애들을 공포로 위압하고 짓밟지만, 결국 이놈도 하류 인생이다.
샤크는 혀를 찼다.
“깡은 좋은데 그 낙오자가 널 죽일 수 있거든?”
“……난 노예가 되겠다고 사는 게 아니야. 그건 아니지.”
“뭐?”
체력을 회복하고 호흡을 고른 나는 이를 악물었다.
“장래 희망이 노예일 순 없어!”
내가 설사 여기서 루엘을 찌르고.
어떻게 연명하더라도 그다음에는?
대체 뭐가 남지?
내가 환생한 세상, 카라카스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설사 내가 무사히 성인이 되고, 인생이 잘 풀린다고 해도 칠죄신의 노예가 될 뿐이다.
샤크는 묘하게 나를 보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나?”
“내가 왜 죽어? 이제부터 널 죽이고 살아남을 건데.”
허세다.
샤크는 다른 둘과 질이 다르다.
알지만 칼을 내릴 순 없었다.
“…….”
내 각오를 알았는지 샤크의 얼굴도 달라졌다.
코랄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려고 한다.
내게 남은 단검은 하나.
그래도 어떻게든 돌파를…….
“가련한 광경이로군.”
신비로운 목소리였다.
대치하던 샤크와 나는 반사적으로 돌아보았다.
몸에 딱 붙는 하얀 로브, 붉은 테두리가 인상적인 복장의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겉은 하얀데 속은 푸른색인 청백발.
금색 눈동자.
지상에 내려온 눈의 여신이었다.
“……뭐야? 누구야?”
샤크가 당황했다.
여성은 멈춰 서서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검지로 자기 턱을 누른 그녀는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농담을 공부하면서 지나가던 마녀다.”
“…….”
저거 뭐야.
샤크는 나를 관찰했다.
나 역시도 모르는 상대라는 걸 안 샤크가 입을 열려는데…….
여자가 더 빨랐다.
“나는 길거리에 쓰레기가 굴러다니고 있으면 일단 주워 버려. 그리고 그다음에는 두리번거리면서 쓰레기통을 찾지. 참 피곤한 성격이야.”
“……뭐, 뭐라고?”
“요약하면 간단해.”
여자는 지팡이를 잡았다.
“어린애를 죽이는 건 눈 뜨고 못 봐 준다고.”
미쳐 버린 세상에서.
정상적인 소리를 하는 마녀.
그게 하시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