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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35화 (134/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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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탄 카라카스.

나와 엔라의 아들이다.

나는 제국 최강이자 제국군의 총수였고, 엔라는 제국군에서 나 다음가는 장군이었다.

인류의 모든 힘이 모인 군대에서 쌍벽인 우리 둘의 아들, 그것도 장남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제국군에 입대했고.

현재 동부군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앙군으로 대뜸 달려와서는 터무니없는 요청을 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황성.

응접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내 오른편에 앉은 다크엘프, 오르카가 어색한 침묵을 하고 있었다.

계속 나를 흘끔거린다.

“할 말이 있는 거 아는데…… 그냥 세탄 오면 하자.”

“으으음.”

오르카는 신음인지 대답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발소리들.

중앙대장군 레릭과 제국군, 그리고 그 제국군이 둘러싸고 있는 마족 청년이 보인다.

푸른 피부에 붉은 눈.

엔라를 빼닮은 색 배합, 바로 내 큰아들이었다.

레릭은 나를 향해서 경례했다.

“1황자 전하를 모셔 왔습니다.”

“대장군님, 저는 지금 황자로서 찾아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동부군의 천검장으로서 방문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부군의 천검장이 멋대로 여길 왜 오는데? 황자면 군율이고 뭐고 무시해도 돼?”

나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본 순간 너무 반가웠고, 동시에 착잡한 마음도 들었다.

엔라를 직접 벌하겠다고 달려오다니.

“너 지금 이거 탈영이다?”

“저기, 폐하. 그게…….”

“넌 끼어들지 말고 닥쳐. 나중에 돌려줄 테니까.”

내가 딱 자르자 레릭은 깨갱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세탄은 당당했다.

“저는 중앙군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들었습니다. 동부대장군님이 말씀하시기를 중앙에서 혼란이 계속되는바,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저에게 중앙군을 지원하라고 하셨습니다!”

“……부대는?”

“없습니다! 저 혼자입니다.”

나는 이마를 눌렀다.

이거 아주 정치적인 제스처다.

중앙군이 대뜸 반군을 토벌 못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남부나 북부, 동부군도 반란에 가담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이게 나라냐고? 그래서 실시간으로 망해 가는 중이잖아.

하지만 지방군의 입장도 난감하긴 할 거다.

제국에 여전히 충성하고자 중앙군을 지원한다?

중앙군이 그 지원부대를 어떻게 믿을까? 지원부대가 황도와 중앙군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동부대장군은 지원부대랍시고, 황자인 세탄 혼자만 중앙군으로 보낸 것이다.

이러면 다들 동부군이 중앙군을 지원하는 거라고 간주하지.

“어차피 황자의 입장도 난처해졌을 게 뻔하고. 남부와 북부가 설사 딴마음을 품고 있어도 이걸 보면 경거망동 못 하지. 아주 좋은 수기는 한데……. 레릭, 너 이거 사전에 알고 있었냐?”

“몰, 몰랐습니다. 동부 녀석이 일방적으로 저지른 일입니다.”

“내가 나중에 확인해 본다? 틀리면 알아서 해라?”

“저, 정말입니다! 폐하!”

레릭은 자기 가슴을 갈라 보일 기세로 부르짖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다 좋아 보이지? 문제는 딱 하나야. 세탄, 이렇게 나선 이상 네가 엔라를 공격해야 해. 동부에 박혀 있었다면 핑계라도 댈 수 있는데…….”

“전 그럴 각오로 왔습니다.”

세탄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사사로이는 모자 관계라고는 하나, 저는 제국군입니다. 한때 같은 제국군이었으면서도 제국을 배신한 여자를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사사로운 정은 끊어 냈으니 내 손으로 직접 그자의 목을 쳐서 제국의 정기를 바로 세울 것입니다.”

“…….”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누구 아는 사람 있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오르카도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외려 세탄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난 그래도 되지만 내 자식이 그러는 거 보고 싶진 않다.”

“……실례합니다만. 소문에 따르면 당신이 제 아버지의 환생이라고 하는군요. 더욱 실례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세탄의 어조는 정중했지만 의심이 가득 차 있었다.

오르카도 모호하게 나를 바라보았고.

“레릭, 애들 데리고 돌아가라. 가족끼리 이야기하련다.”

“……알겠습니다. 폐하.”

레릭은 경례를 바치고는 돌아섰다.

다른 제국군도 나를 향해 경례를 어설프게 하다가 돌아섰다.

일반 병사들은 내가 시릭이라는 데 여전히 긴가민가했다.

“조만간 저것도 정리를 해야겠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됐다. 세탄, 오르카. 너희 둘 다 내 아들이지만 내가 아버지라는 걸 당연히 못 믿겠지. 내가 너희들을 납득시킬 여러 방법을 생각해 봤다만…… 밤이 되면 곧 다들 모일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너희들도 궁금해했을 거다. 대체 나와 황후들이 왜 갈라섰는지. 이야기를 다 들으면…… 엔라가 반란을 일으킨 까닭도 감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정말입니까?”

세탄이 눈을 크게 떴다.

오르카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단 듣고 생각합시다, 형. 사실 전 아직도 감이 안 와요. 환생의 개념은 저도 알지만 왜 하필 아버지가 이 상황, 이 타이밍에 환생한 겁니까? 너무 수상하지 않아요?”

“오르카, 넌 여전히 눈치가 없구나. 당사자 앞에서 할 말이냐?”

내가 어이없어하자 오르카는 입을 다물었다.

실수했단 얼굴.

사실 내내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있다가 엉겁결에 뱉은 모양새다.

“으이구. 짜식.”

내가 오르카의 머리를 흐트러트리자, 오르카는 얼른 고개를 젖혀 피했다.

“아, 좀. 머리 신경 썼는데.”

“음? 뭐냐, 오르카. 여자 사귀었냐?”

“……뭐?”

나까지 흥미진진해하자 오르카는 어이없는 눈길로 우리 둘을 보았다.

“가족들 다 모이는데 신경도 안 써요? 형은 머리가 너무 길잖아요. 그리고 아ㅂ……. 황제 후보는 옷이나 좀 제대로 입어요. 재킷 왕창 구겨 가지고 그게 뭡니까? 그 모습으로 누님들 뵐 거예요?”

오르카가 닦달하자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아, 진짜 안 갈아입을 거예요?”

“괜히 유난 떨고 싶지 않다.”

“예?”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 정도로만 들어 줬으면 좋겠다.”

침묵.

탕!

오르카는 테이블을 치고는 나를 쏘아보았다.

“야, 황제 후보.”

“…….”

아니, 갑자기 아들이 반말을 하네?

원래 오르카는 내가 리젠일 때는 반말했지만, 아버지가 환생했다고 밝혔으면 좀 받들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오르카는 단호했다.

“당신이 정말로 내 아버지의 환생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금 누님과 어머님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계셔. 사람을 불러서 옷을 고르고 치장하고 계신다고.”

“뭐? 왜?”

“왜?”

세탄도 내 말을 따라 했다.

오르카는 우리 둘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여자 마음을 그렇게 몰라? 오늘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각오를 다지고 있는 거지. 거기다가 이렇게 많은 가족이 다들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그것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불러 모으는 게 대체 얼마 만인데?”

“1, 100년?”

내가 더듬거리자 오르카는 다시 테이블을 소리 나게 쳤다.

아, 놀라라.

내가 움찔하자, 세탄도 움찔했다.

“110년이 넘었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머니와 누님들은 각각 마음을 달래려고, 그리고 아버지에게 보여 주는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필사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요! 근데 당신은 뭐? 구겨진 거 입고 그냥 오겠다고?”

“……어, 음.”

“그래, 당신이 내 아버지 맞네. 황제면서 옷차림이고 뭐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기저기 앉고 눕고 뒹굴어서 주변 사람 속 확확 불태웠지. 기억나! 다 기억난다고! 그런 건 기억하기 싫었는데!”

오르카가 으르렁거리자 나는 세탄을 돌아보았다.

세탄은 자기 군복을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머리만 깎으면 되는 거냐?”

“……아, 형님은 대충 됐어요. 문제는 이 자칭 환생 아버지지.”

“야, 알았어. 갈아입으면 되잖아.”

“……뭐 입을 건지 들어나 봅시다.”

아, 꿀맛이다.

내가 지금 꿀 먹은 벙어리가 됐거든!

오르카는 심각하게 말했다.

“혹시 몰라서 사람 불러 놓기를 잘했네. 하란 대로 하세요.”

“……고맙다, 아들아.”

“…….”

오르카가 나를 더욱 싸늘하게 보았다.

초저녁.

결국 나는 오르카가 불러 둔 디자이너의 코디에 맞춰서 입었다.

황제복과 은근히 유사한 검은 복장.

정시에 맞춰서 남성의 중앙응접실로 가니…… 이미 다들 모여 있었다.

“으음.”

오르카가 나에게 지적할 만했다.

평소에는 치장하지 않는 랑에이도, 화장을 하고 옆트임이 인상적인 미니 드레스를 입었다.

이셀렌은 언뜻 갑갑할 정도로 감싼 셔츠와 바지 차림인데, 자세히 보니 클레비지룩이었다.

셔츠의 정중앙이 파여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살짝 가슴이 드러나는 게 요염하다.

렌시엘은 베이지색 이브닝드레스, 허리부터 다리, 발목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은근히 드러난다.

옆에 앉은 미리엘과 똑같은 디자인이라서 참 보기 좋은 모녀…….

“야. 미리엘은?”

“저도 아저씨 이야기를 들을 거예요.”

미리엘이 고집스럽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가 들을 이야기 아닌데.

내가 렌시엘, 그리고 다른 이들을 둘러보았지만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들 미리엘을 설득했지만 실패했나 보다.

“……으음.”

나는 렌시엘에게 눈짓했다.

미리엘의 반응을 보고 적당히 대처하란 의미로.

나는 아내들과 좀 떨어져서 앉은 자식들을 돌아보았다.

리세라는 간단한 평상복. 메이호는 움직이기 편한 캐주얼한 차림이다.

오르카는 평소의 요원복 같으면서도 디자인이 은근히 다르게 훨씬 더 정중한 느낌이었다.

맏아들 세탄은 제국군 군복, 머리 잘랐고.

그리고 또 떨어져서 앉은 마령화비 유하.

내 마지막 아내는 로브를 기조로 한 검은 비로드 드레스 차림이었다.

삼각뿔 모자를 허벅지에 올리고는 고개를 수그린 게 상당히 긴장한 모양이다.

“…….”

유하의 옆에 앉은 카미르가 말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차와 과자를 준비해 뒀습니다. 술도 필요하다면 가져오죠.”

“마실 사람은 마셔. 그리고 이야기를 더 못 듣겠으면 언제라도 나가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부채꼴 형태로 앉은 내 가족들.

그 앞에 위치한 의자에.

“먼저, 못 박아 둘 게 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다. 자기 기억과 다른 부분이 있어도 당장 말하지는 말고, 다 끝난 다음에 정정해라. 도중에 맥이 끊기면 나도 어려워질 것 같으니까.”

“얌전히 듣겠다.”

랑에이가 대표로 말했다.

아내들에게 일러둔 나는 자식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해 두지만, 약속해라.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내 편을 들지 마라. 너희들의 어머니 편을 들어야 한다.”

“…….”

“그래도 돼. 나는 멘탈이 강하니까.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멘탈이 강하지.”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스승님이 나를 골라서 초능력을 전수해 주신 거다. 멘탈이 약한 놈은 초능력을 다룰 수가 없거든.”

“초능력?”

“내 스승이 누구인지는 알 거다. 아니, 제국민들은 다들 알지. 황도의 이름이 에덴시아니까.”

내 말에 자식들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아내들은 굳은 얼굴을 했고.

“내 스승님, 너희들이 1황후라고 알고 있는 마녀왕 하시아의 이름을 따서 붙인 거다.”

“……1황후 전하?”

“칠죄신과의 최종 결전 전에 돌아가신 분 아니에요?”

메이호가 의아해했다.

그 이름이 대체 왜 나오나 싶어서.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랬으면 차라리 좋았을까?”

“……예?”

“처음부터 말해 주마.”

나와 스승이 만났을 때부터.

모든 것이 끝장난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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