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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33화 (132/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33)

체크메이트

결전!

나는 달려들면서 탐랑을 비검으로 던지고는 주먹을 텔레포트시켰다.

부우웅!

허나 엔라는 마력영역을 전개, 자기 주변을 확 불살라 버렸다.

텔레포트 주먹에 확 미치는 열기, 심각한 화상이었다.

한 번 카운터 친 마력영역을 또 펼칠 줄이야.

내 허를 찌른 것이다.

그리고 탐랑을 피한 엔라의 검이 사선으로 날아온다.

거대한 마력검강.

파아앗!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위로 확 뛰어올랐다.

엔라가 급히 검을 휘둘러서 나를 쫓으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비행이니까!

단숨에 수직으로 상승한 나는 빙글 몸을 뒤집어서는 엔라의 등 뒤로 떨어졌다.

“으으음!”

엔라는 얼른 검을 거두면서 몸을 빼려고 했다.

머리를 거꾸로 낙하하는 나는 거문을 비검으로 홱 던질 듯이, 오른팔을 뻗었다.

엔라는 내 오른손에 순간 정신을 집중했지만.

퍽!

내가 텔레포트시킨 왼쪽 주먹이 엔라의 명치에 꽂혔다.

엔라가 마력영역을 재차 쓴 것처럼, 나도 당하고도 다시 같은 수법을 쓴 것이다.

엔라는 마력방어를 하고 있어서 큰 타격은 아니다.

하지만 틈이 생겼다.

파고들기에는 충분한 틈!

나는 사선으로 떨어지면서 검을 직접 잡고 엔라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푸가악!

엔라가 몸을 뒤로 뺐지만, 내 검이 그녀의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크게 그어 내렸다.

여세를 몰아서 빙글 돌면서 비검을 날리려고 했는데.

그 순간 뭔가가 나를 향해서 쏟아졌다.

반사적으로 마력방어에다가 염동결계를 급히 발동했는데…….

퍼버버벅!

몸이 밀려 나간다!

당황한 나는 뒤로 확 뛰어서 피했다.

그런데도 충격이 연이어진다.

화살.

밤의 어둠을 뚫고 건물 쪽에서 나를 노리고 화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카라카스에서 화살비는 기습만 아니라면 별로 무서운 게 아니다.

마력방어에는 튕겨 나가니까.

단, 하나 예외가 있는데…… 바로 엘프의 정령마술이다.

엘프의 정령마술은 마력과는 궤가 달라서, 마력방어도 뚫어 버린다.

“…….”

착.

소리 소문도 없이, 어둠 속에서 인영이 뛰어내린다.

녹색 후드로 얼굴을 푹 가린 상대.

체구가 작은 걸 보니 아마도 여성, 손에는 새카만 장궁을 들고 있었다.

“사도냐?”

“…….”

궁수는 대답 없이 나에게 화살을 겨눴다.

저걸 막으려면 염동결계를 펼쳐야 하는데…….

엔라와 동시에 상대하는 건 무리다.

“후우우…….”

그러자 엔라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몸을 바로 했다.

중상이지만 거동은 가능하다.

“볼일은 끝났다. 시간을 끌면 우리가 불리하니 이만 돌아가지.”

“…….”

그러자 궁수는 살짝 활을 내리는가 싶더니 뒤쪽을 향해서 손을 저었다.

우우우웅.

허공에 나선형으로 빨려 들어가는 검은 구멍이 열렸다.

엔라는 내게 의미심장한 눈짓을 한 번 던지고는 구멍으로 들어갔다.

궁수도 나를 견제하면서 그 구멍으로 들어가는데…….

“흠!”

검을 내리고 포기한 척하던 나는 상대의 다리를 향해서 비검을 날렸다.

보통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 활쟁이들은 갑자기 발목으로 공격이 날아오면 얼른 대응을 못 한다.

퍽!

“큭.”

발목에서 피가 튀고는 짧은 신음 소리.

하지만 궁수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구멍 안으로 몸을 던졌다.

둘 다 사라졌다.

“공간이동인가?”

옛날의 칠죄신은 이런 짓은 못 했을 텐데.

여하튼 엔라와 궁수, 둘 다 사라졌다.

“…….”

시간이 지났다.

다 끝났다는 걸 확인한 나는 엔라가 마지막에 묘하게 던진 시선, 길바닥을 살펴보았다.

손바닥만 한 칼 조각.

파군의 파편이다.

“……아니, 세상에. 이걸 길바닥에 버리고 가냐?”

물론 정말 버린 건 아니다.

엔라는 나에게 대놓고 줄 수는 없으니, 이런 식으로 흘리고 간 것이다.

“이게 정말 파군의 파편인지 확인해 봐야겠지만…….”

진품일 거다.

내 신뢰를 사겠다고 건네준 거니까.

나는 칼 조각을 챙기고는 몸을 돌렸다.

와아아!

밤의 거리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소란.

내가 부른 병력이 들어오는 중이다.

이젠 뒷정리다.

내가 부른 기사들과 제국군이 위치헬을 점령했다.

위치헬은 제국이 마녀들의 자치를 허락한 도시다.

당연히 자치권을 침해하는 거냐는 정치적 반발이 뒤따르지.

하지만 나는 간밤의 전투를 들먹이고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자세한 건 원로회에 출석해서 해명하겠다고 미뤘고.

임시방편이 먹혀서 일단 혼란이 수습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인 오후.

마검탑 8층의 귀빈실.

나는 소파에 드러누워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내 앞에 선 오드벨이 보고했다.

“현재 위치헬을 방문한 이들 사이에서 폐하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마녀들은 제국군의 진출을 은근히 반기는 모양새입니다.”

“그야 칼 좀 쓴다는 놈들이 툭하면 쌈질했으니까.”

나와 엔라의 전투, 7계위의 검강난무는 위치헬의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시무시한 초고수가 숨어 있다는 소문, 거기에 이어진 제국군의 진주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칼잡이들이 조금은 얌전해졌다.

나는 눈을 감고 말했다.

“오드벨.”

“예, 폐하.”

“전쟁이 시작될 거다. 그러면 필요한 게 뭐지?”

“병사와 병량입니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검이 필요해. 검이.”

카라카스에서 제대로 싸우려면 전용 검이 필요하다.

나만 해도 칠성칠요를 다시 쥐기 전에는 검을 깨 먹고, 남의 걸 빌려 쓰고 했지.

“그리고 그 검을 벼릴 수 있는 건 마녀들뿐이야.”

“예, 그래서 폐하가 직접 위치헬을 찾아오셔서 정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마령화비 전하의 지지도 받아 낼 겸 해서요.”

“마녀들 사이에서 마령화비의 입지는 그렇게 높지 않아.”

“……1황후의 대체품이라고 여겨서 말입니까?”

오드벨은 그답지 않게 신중하게 말했다.

1황후를 아니까.

“그런 자질구레한 사정은 둘째 치고. 칠죄신이 정말로 돌아온다면 제국 안의 모든 종족들도 다시 하나로 뭉쳐야 한다.”

“예. 뭘 준비할까요?”

“일단 황도 근처, 위성도시들 사이에서 수상한 움직임은 없나 확인해 봐.”

엔라를 다 믿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도가 더 남아 있고, 황도를 노린다는 사실은 검증할 필요가 있다.

“내가 원로회에 출석해서 이번 사안에 대해서 해명한다는 이야기는 전달했지?”

“예. 그런데…… 좀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무슨 일 있냐?”

제국은 다종족 국가다.

건국 150년이 되지 않은 나라, 1,000년을 사는 이종족들에게는 너무 짧다.

그러니 이종족들에게는 제국 정부보다는 자기 종족 권위자들의 말이 종종 더 효과적이었다.

내가 제국군을 만들기 위해서 각 종족들을 설득할 때, 장로들을 많이 상대해야 했지.

즉, 마녀들을 휘어잡으려면 원로회를 장악하는 게 빠른 길이다.

오드벨이 말했다.

“폐하도 아시겠지만 마녀들의 원로, 그 원로회에서 가장 입지가 높은 분은 카미르 님이십니다.”

“그래.”

8황후, 마령화비의 대모(代母)이기도 하다.

즉,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나로서는 장모님이라 모셔야 할 분이지.

마녀들 사이에서 발언권이 높고,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서 마녀들이 제국군에게 협력하게 만든 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미르 님은 대의를 아시는 분이다. 시국을 알고 있으니 협조할 거야. 이 시국에 마녀들의 입지를 올려 보겠다고 뭐 딜하거나 하지도 않을걸?”

“……저도 그렇게 아는 분이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뭐가 문젠데?”

오드벨이 말끝을 흐렸다.

“죄송합니다. 다른 원로회의 멤버들에게서 이것저것 이야기는 흘러나오는데…… 하나같이 카미르 님이 단단히 작정하셨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정작 카미르 님이 어떻게 나올지는 원로들도 모르는 눈치입니다.”

“뭐 그러면 가서 맞부딪쳐 봐야지. 언제 보면 되는데?”

“내일 밤입니다.”

“빨라서 좋군.”

설득이야 지겹게 해 본 일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들을 설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얻어 낼 건 다 얻어 내야겠다. 당장 이 도시에 모인 칼잡이들, 전부 제국군으로 끌어와야지.”

“예. 저는 마지막으로 혹시 단서가 없나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겠습니다.”

오드벨이 머리를 숙였다.

다음 날 밤.

원로회실.

원형의 탁자에 일곱 명의 마녀가 앉아 있었다.

일곱 모두 외모는 젊고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천 년 이상 살아온 이들이다.

그리고 상좌에 앉은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성.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녀, 입가의 점이 매혹적인 사람이 바로 카미르다.

카미르가 말했다.

“그러면 이번 사건을 논하는 원로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답변하기 위해서 나온 건 2대 황제 후보인 리젠 리브라타, 그리고 8황후인 유하 피어리스입니다.”

“…….”

유하를 풀네임으로 부르네?

마녀에게 성은 자조적인 의미가 강하다.

이런 장소에서도 성을 붙여서 부르는 건 단단히 작정했단 의미다.

카미르는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먼저 일러두겠습니다. 귀하에게 발언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리젠 리브라타.”

“예?”

“귀하는 변설에 굉장히 능하니까요. 말할 기회를 주면 순식간에 우리를 휘어잡아 버리겠죠. 당신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순간, 이 자리는 깨지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예 말을 못 하게 만들겠다고?

내가 어이없어해도 카미르는 물러나지 않았다.

“발언을 허락할 때까지 예, 아니요로만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방적인 요청이라는 건 압니다만 부족한 이들의 최소한의 방어 장치라고 너그러이 봐 주셨으면 합니다.”

“찬바람이 쌩쌩 부네요. 취조하시려는 겁니까?”

“동의 안 하면 다들 일어나겠습니다. 당신은 우리 마녀들의 협력을 얻을 수 없을 겁니다.”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옆의 유하를 살폈다.

유하도 놀란 얼굴이다.

사전에 상의 없던 기습, 그럼 부딪쳐 봐야 안다.

나는 수락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당분간 예, 아니요로만 대답하겠습니다. 그래도 주관적이나마 설명드리고 싶으면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됐습니까?”

“무례한 요청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의 논의는 비공식이며 이 방 밖으로 흘러가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걸 약속드립니다. 그러니 진실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

“당신이 시릭 카라카스 폐하의 환생이라는 풍문이 사실입니까?”

카미르의 첫 질문, 당연한 검증이다.

나는 선뜻 대답했다.

“예.”

“아…….”

“세상에.”

마녀 원로들이 탄식했다.

새삼 놀라서는 나를 위아래로 보는 눈길.

옆에 선 유하도 나를 아연하게 보았다.

카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대한 증명은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실은 당신이 시릭 카라카스 폐하의 환생이라고 믿고, 질의를 시작하려는 겁니다.”

“예?”

이거…… 아무래도 예상 밖인데?

나는 당연히 엔라와의 싸움, 위치헬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일을 정치적으로 따져 물을 줄 알았다.

한데 원로회의 수장, 카미르가 준비한 건 아주 다른 방향이었다.

“칠성칠요의 일곱 번째 검, 일검 파군(日劍 破軍)이 파괴되었습니까?”

“예.”

“……대체.”

“진짜였어?”

마녀들이 새삼 다시 탄식했다.

카미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파괴된 겁니까?”

“주관식이로군요.”

“아뇨, 계속 들어 주세요. 리젠, 아니, 시릭 카라카스.”

카미르는 빠르게 말했다.

“칠성칠요는 칠죄신을 물리칠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습니다. 이는 모든 제국군이, 이 자리에 참여한 마녀들의 절반 이상이 직접 보고 확인했습니다. 이후에도, 언제나 칠성칠요는 건재했습니다.”

“…….”

“칠죄신을 상대할 때도 날이 빠지지 않던 검입니다. 그 검이 대체 어떻게 해야 부러질 수 있는 겁니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야 좀 짐작이 가서.

카미르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나오는지.

“그리고 유하는 왜 저리 나약하고 어리석어졌습니까? 가족끼리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요?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하지만 더 말도 안 되는 건 대체 4황후, 엔라 워프레임이 어째서 서부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겁니까?”

“…….”

“그녀가 이제 와 반란을 도모한다고 무엇을 얻겠습니까? 칠죄신의 재림을 꾀하는 무리들과 대체 왜 함께하는 겁니까?”

카미르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시릭 카라카스, 당신은 말년에 황후들과 등을 돌렸죠. 그 이유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지만 누구도 진실을 몰랐습니다. 저 역시도 유하에게 몇 번이고 물었지만, 유하는 대답을 거절했습니다.”

“…….”

“황실의 일이다? 아닙니다. 나라를 뒤흔드는 이상 이젠 그렇게 넘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 사적으로, 유하는 제가 딸이라고 여기고 기른 아이입니다. 당신과 유하 사이에서 문제가 있다면, 그건 제게 남의 집 사정이 아닙니다.”

카미르는 잠시 숨을 골랐다.

“파군이 부러진 것과 당신이 황후들을 멀리한 시기가 겹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

“이제는 없는 1황후. 마녀왕(魔女王)이 연관되어 있습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장모님의 연타가 매서우시네.

“이걸 대답을 안 하면 마녀들의 협조는 없다는 거군요.”

“100년 전에 황실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군이 어째서 부러졌고 황후들은 왜 뿔뿔이 흩어졌으며 제국은 왜 조각나 버렸는지, 그 모든 사정을 알아야겠습니다. 그게 우리 마녀들이 제국을 위해서 검을 벼리는 조건입니다.”

카미르는 단단하게 각오를 한 얼굴이었다.

100년이 넘게, 이 질문을 품고 기다려 온 것이다.

마녀들의 원로이자 내 아내의 어머니로서.

피할 수 없다.

“좋습니다.”

그러면 정면 돌파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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