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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31화 (130/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31)

착한 마녀의 나쁜 짓

심야.

마검탑에서 가까운 건물 옥상.

설계도를 봤으니 마령화비가 쓰는 9층의 구조는 알고 있다.

“여차할 경우에 알베르트에게 연락할 수 있게 조치는 끝냈고.”

간다.

나는 가볍게 발을 구르면서 위로 솟아올랐다.

휘이이잉!

내 몸이 밤하늘로 날아오른다.

비행.

사용하는 동안 정신력을 기하급수적으로 먹지만, 이런 심야 침투에는 효과적이다.

황성이라면 상공도 경비하지만, 마검탑은 아니지.

이런 부분이 허술하지.

휘리리릭.

그래도 만에 하나가 있으니 위로 크게 올라갔다가 하강 침투 하는 방식을 골랐다.

마검탑 최상층에 접근한 나는 염동력으로 내 몸을 이동시켜서는 위치를 조절했다.

착.

창틀에 발을 붙이고 창문에 달라붙는 데 성공했다.

안쪽에서 아른거리는 불빛.

아직 심야인데 안 자는 모양이다.

나는 품에서 잠입 도구를 꺼내서 창문에 붙이고는 한 바퀴를 돌렸다.

고층이니 특수한 유리를 쓰겠지만 다크엘프의 도구는 통한다.

찰칵.

나직한 소리와 함께 창문이 떨어져 나갔다.

“…….”

몸통이 통과할 만한 구멍.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착.

무릎을 꿇고 앉아서 주변을 살핀다.

마령화비는 마검탑의 최상층을 홀로 쓰고 있지?

“…….”

인기척은 없는데…… 내가 넘어온 창틀에 먼지가 앉았네?

최근 청소도 못 하게 했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는 투시력을 발휘했다.

벽 하나 너머.

라운지에 열원이 보인다.

“…….”

매무새를 가다듬은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문을 통해서 건너갔다.

별이 반짝거리는 창가.

의자에 앉은 여성은 무릎 위에 삼각뿔 모자를 올리고, 그 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잠들어 있었다.

자는 모습도 단정한 미녀.

8황후 마령화비 유하.

“…….”

얼른 깨우기 망설여진다.

유하는 기척을 느꼈는지 먼저 눈을 떴다.

나를 돌아보며 반사적으로 말하다가 멈칫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재촉해도…… 헉.”

기겁한 숨소리.

나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유하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부끄러워하는 기색, 자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낭패한 얼굴, 외간 남자의 침입을 허락해서?

온갖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여자다.

“…….”

나는 손을 흔들어 보이는 채로 천천히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안녕?”

“……누, 누구세요?”

“리젠 리브라타. 마령화비 황후 전하께서 공사다망하시다니, 직접 만나 뵈러 왔습죠.”

“도, 돌아가세요. 당신과는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용무로 온 게 아닌데?”

나는 턱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그리고 지금, 내 이름만 말했는데도 대충 눈치를 챘네? 원탁회의에서 선출된 2대 황제 후보가 너를 만나려고 온 이유도 능히 짐작하고 있겠지? 그런데 왜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나를 피하는 건데?”

“……피한 적 없습니다.”

“여전히 거짓말은 못 하시는군.”

나는 양반다리로 편하게 앉고는 유하를 바라보았다.

의자에 앉은 유하는 반사적으로 자기 옆에 놓여 있던 숄을 건네주었다.

“맨바닥에 앉지 말고 이거라도 까세요.”

“그리고 여전히 잘 챙겨 주고.”

나는 숄을 받고는 쓴웃음을 흘렸다.

전쟁터에서 구르던 나는 진짜 대충대충 사는 경우가 많았다.

렌시엘이 내 체면이나 정치적인 영향력을 생각해서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걸 챙겨 준다면.

유하는 그냥 순수하게 날 걱정해서 챙기는 편이었다.

6계위인 내가 찬 바닥에 엉덩이 좀 깔고 앉았다고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냥 보기 안쓰러우니까 저러는 거다.

“착한 마녀라…….”

“…….”

내가 별명으로 부르자 유하는 입을 다물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표정.

나는 숄을 내려다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 정도는 이미 들었겠지? 내가 시릭 카라카스의 환생이라고.”

“…….”

“그게 맞지만 억지로 믿어 달라고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유하, 지금은 나를 지지해 줘야 해. 지금 천년제국은 자칫하면 내란이 일어난다. 4황후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나를 지지해야, 피해가 최소한으로 줄어들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호선랑, 암살여왕, 천리정후가 나를 지지한다. 그리고 너까지 지지하면 이걸로 과반은 넘지.”

“…….”

“무슨 일이 있어도 인명 피해는 줄여야 한다. 위치헬의 소란은 내가 잠재워 줄 테니까 황성으로 와라. 그래야 4황후의 위세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고.”

유하는 한참 말이 없다가 말했다.

“그다음은요?”

“남은 황후 둘의 지지까지 얻어 내야지. 그러면 4황후는 혼자 남게 될 거고, 서부군의 위세는 줄어든다. 먼저 황도로 진격하면 카운터를 치면 되고…….”

“안 돼요.”

유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요.”

“…….”

“가족끼리 공격하는 일, 그건 한 번으로 충분해요.”

“당연히 즐거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반란은 애들 장난이 아니야. 어영부영 넘어갈 수 없다. 아니, 반란만이 아니지…….”

제국해방군이 지금까지 수립한 작전들.

그게 전부 다 4황후의 머리에서 나왔다면?

너무 죄가 크다.

유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이 정말 시릭 카라카스라고 치고, 지금 차고 온 검이 칠성칠요라고 하더라도 그다음은요?”

“뭐?”

“4황후를 배제하고서, 돌아올 칠죄신을 정리할 자신이 있나요?”

유하는 단호하게 말했다.

“칠죄신은 돌아와요. 그때가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그걸 알지?”

유하는 마녀다.

인간과 일곱 이종족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종족.

다른 종족들은 잘 모르는 신비로운 지식,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유하는 나직하게 말했다.

“애당초 칠죄신을 추방한다는 자체가 매우 힘들고 억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임시변통이었어요.”

“그렇게라도 해야 했잖아.”

“그때야 그랬지만…… 4황후 없이 칠죄신을 다시 상대할 자신이 있나요?”

“…….”

솔직히…… 있어 주면 편하지.

아니, 사실 철혈성군은 제국의 장군으로서 내게 요긴한 인재였다.

최악의 경우, 다시 칠죄신과 전면전을 할 때 반드시 필요한 카드다.

문제는 그게 반란을 일으켰다는 거지.

내가 한숨을 쉬는데, 유하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 합류하는 조건은 하나입니다. 4황후에게 죄를 묻지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억지지.”

“공을 세우면 죄를 갚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몇 번이나 그리해 왔잖아요? 당신을 배신한 이들도 감싸고 부하로 받아들여 줬으면서 이번에는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건가요?”

“이젠 내가 시릭이라는 게 전제네.”

유하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 조건이라면 저도 합류하겠습니다.”

“…….”

유하의 마음씨는 곱고도 갸륵하다.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고 싶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반란을 없던 일로 할 순 없어.”

“……파군을 고칠 수 있다면요?”

“…….”

움찔.

이건 절대 넘어갈 수 없는 말이었다.

칠성칠요의 마지막 검, 파군.

부러져서 그 생명을 다한 검, 그래서 칠성칠요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파군을 고칠 수 있다면, 칠죄신과의 남은 싸움에서 아주 큰 힘이 되리라.

“그게 가능하단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하지만 그건 교섭 조건으로 걸 수 없어. 네가 만약 파군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건…… 인류에 대한 반역이야.”

“그렇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마음이 바뀌면 다시 돌아오세요. 여긴 너무 위험합니다.”

유하는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칠성칠요는 태초의 검, 칠죄신이 상대라고 해도 날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파군을 부러트린 건 바로 네 언니, 1황후였지. 그리고 너는 마녀, 마력검을 벼리는 검의 종족이지.”

“…….”

“파군을 고칠 방법을 알고 있다고?”

“예.”

“알았다. 그러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멈칫했다.

유하가 한 말.

“잠깐,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유하는 왜 날 만나는 걸 거부했지?

내가 시릭이라서?

지금 품고 있는 소망을 들어줄 리가 없으니까?

그게 얼굴 보는 걸 피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나는 유하를 보며 말했다.

“여긴 위험하다? 여기가 어디지? 이 도시? 아니면 이 방?”

“…….”

“애당초 지금 경비 배치는 이상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야. 안에서 밖으로 못 나가게 촘촘하게 막고 있어. 그게 맞아?”

유하는 입을 다물었지만.

발소리.

“어디가 위험하냐면 내가 위험하지.”

뒤에서 들려온 소리.

아는 여자의 목소리다.

나는 멈칫했다.

등을 타고 흐르는 전율.

위험하다.

뒤를 잡혔다.

까닥하면 죽을 수도 있다.

유하는 내 뒤를 보고는 말했다.

“허튼짓은 하지 마세요.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시간은 됐어. 우리의 내기는 내가 이겼다. 약속대로…… 시릭이 혼자서 왔잖아?”

목소리가 매끄럽게도 말한다.

“이래야 시릭이지. 목 하나로…….”

“……끝나는 전쟁이면 아주 좋으니까.”

나는 대답하면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목소리로 상대와의 거리를 측정하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다.

등 뒤의 여성이 맑게도 웃는다.

“하하하, 그대는 여전하군.”

“……그랬냐.”

속았다.

아니, 착각했다.

나와 저 여자는 본래 적대하는 군을 이끄는 입장이었다.

서로의 전술, 전략을 파훼하기 위해서 얼마나 머리를 싸맸던가.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서부에서 변고가 일어나면, 나는 당연히 서부를 설득하는 척을 하면서 시간을 끌 것이다.”

“제국의 피해를 줄여야 할 테니까.”

“당연히 적의 본진, 서부에 적의 총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병력을 모으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황도에 있던 그대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움직인다. 아니, 오히려 서두른다. 내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고 조급해한다.”

내가 말하고 여자가 대답한다.

“한편으로는 외교적으로, 황후들을 만나서 설득하려고 할 것이다.”

“황도의 황후들은 전부 설득했고, 남은 건 황도 근처의 위치헬에 사는 유하지.”

“내가 병력을…….”

“끌고 오지는 않겠지. 너무 시선을 모으니까. 다른 황후들? 각자 임무를 맡길 테지. 너는 제국의 안정을 우선하니까. 그리고…….”

목소리가 짓궂어진다.

“유하를 생각해 주는 마음도 있겠지.”

“외통수네?”

“그래, 장군이지.”

“한 수 물려 주는 건?”

“조건에 따라서는 생각해 보지.”

“조건이라면?”

“지금 당장 나와 함께 서부로 가는 것.”

나는 눈을 감았다.

앞에는 유하, 예전에는 6계위였는데 이제는 더 강해졌을 거다.

그리고 뒤의 상대는 7계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왕을 잡는 거지.”

“잡으러 왔다가 반대로 잡힐 수도 있을 텐데?”

“전쟁이니 각오했지.”

“그러냐.”

나는 마음의 준비, 전신의 감각을 일깨우면서 허리의 탐랑을 움켜잡았다.

움직임이 없다.

외려 목소리가 재촉한다.

“얼굴이 보고 싶군. 자, 당당하게 돌아서게, 시릭.”

“…….”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는 돌아섰다.

희푸른 달을 등진 여성.

푸른 피부의 마족.

화려한 미모가 매력적인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오랜만이로군.”

4황후 철혈성군.

엔라 워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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