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28)
내전을 막으려면
4황후의 반란.
나는 가볍게 말했다.
“본래 중앙정권이 혼란해지면 지방에서 변란이 일어나는 법이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네.”
랑에이가 분연하게 말했다.
“내가 직접 그녀를 처단하겠다. 군사 3만을 내어 준다면 반드시 반군을 격파하겠다.”
“안 돼. 우린 적을 아직 모르는데 적은 너를 대비하고 있을 거다.”
“시릭, 그러면 내가…….”
“이셀렌, 네가 정리하는 것도 무리야. 걔는 우리들이 이럴 거 알고 있을걸.”
나와 4황후 철혈성군은 본래 전장에서 적으로 만난 사이였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함께하게 되었지만.
서로를 잘 안다.
철혈성군은 일반적인 대비책은 다 마련해 뒀을 거다.
두 사람이 연달아 퇴짜 맞자 렌시엘이 나섰다.
“그러면 설득을 하죠. 당신이 시릭의 환생이라는 걸 입증하면 그녀도 이해하고 깃발을 내릴 겁니다.”
“안 내린다.”
“예? 대체 왜…….”
“그야 이 계획은 수십 년 전부터 짰을 테니까. 못 돌아가지.”
내 유언을 빙자한 12가문의 선정, 4황후 철혈성군과 7황후 용공주가 관여했다.
그 시절부터 준비했단 거다.
짝!
나는 손뼉을 쳐서는 이야기를 정리했다.
“철혈성군은 군사행동의 무게를 안다. 그런 여자가 돌아갈 리가 없어. 설득보다는 향후 대책을 세운다. 아르센.”
“예, 폐하.”
“조치는 어떻게 취했냐?”
제국군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경우, 헌병대가 가장 먼저 응수하게 되어 있다.
“일단 다섯 개 역의 철로를 긴급 철거하고 퇴거했습니다. 이후 다음 철로들도 제거 예정입니다만…….”
“이미 했냐? 그러면 서부의 워길드에서 막혔지? 거기에 헌병대 집중하고, 상황 보면서 대기해.”
“미리 조치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서부로 철도 운행을 중단할 예정입니다만…….”
“하지 마. 서부 경제가 박살 난다. 서부의 백성들은 무슨 죄냐?”
제국의 경제는 철도 운송, 유통을 기반으로 짜여 있었다.
그걸 막아 버리면 단숨에 숨통이 턱 막힌다.
아르센은 멈칫하다가 말했다.
“외람되지만 폐하, 서부에 물자를 계속 유통하시면 서부군의 기세만 오를 겁니다만.”
“일단 저쪽에 이야기를 들어 보겠다는 제스처를 취해.”
“……폐하, 상대는 반란군입니다.”
“진짜로 협상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렇게 착각할 정도만 해 둬. 시간을 벌라고.”
“그러면 우리들이 반란군이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아르센이 거듭 말하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철혈성군은 제국군 안에서, 특히 장수들에게 신망이 높아. 우리가 무작정 공격한다면 다른 지방 제국군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짐작이 안 간다. 상황 파악하고 정돈할 시간이 필요해.”
“예?”
“지금 근본적인 문제는…… 4황후는 제국군에서 둘째가는 지휘관이었고, 나는 리젠 리브라타라는 거지.”
“폐하가 바로 제국군 총수 아니십니까?”
“보통 그렇게 생각을 못 합니다.”
오드벨이 나섰다.
머리 좋은 놈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환생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반면 4황후는 100년 전의 외모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선 제국군의 장졸들이 지금의 폐하와 4황후,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4황후를 더 신뢰하게 되겠죠.”
“내가 시릭이라고 밝히고 지지하면?”
“그것도 방법입니다만…….”
랑에이의 제안, 오드벨이 말끝을 흐리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시릭이다, 아니다 프레임은 우리가 무조건 불리해. 4황후는 본인인데 나는 환생이니까.”
“으으음…….”
“프레임 싸움에 휘말리면 안 된다. 내가 시릭이건 아니건, 나는 지금 원탁회의에서 내세운 후보다. 2대 황제에 오를 자격을 갖췄단 말이지. 그걸 기반으로 일을 풀어 나간다.”
레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서부군은 어쩌실 작정입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일단 협상 제스처를 취하고 시간을 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앙군과 서부군이 싸우면 남은 세 방면이 가만히 있을까? 말 나온 김에 동부군과 남부군, 북부군의 반응은 어떻지?”
“공식적인 반응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 사적인 반응은 하나 있습니다. 동부대장군이 서부군 뚝배기를 깨러 갈 테니까 올라가도 되냐고 물어보더군요. 마음은 알겠으니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레릭의 대답.
나는 정리했다.
“잘했다. 중앙군과 서부군이 정면충돌하면 결국 제국 전체가 휘말리는 내전이 된다. 그건 가능한 한 피하고, 충돌하더라도 남은 세 방면을 정리한 다음이다.”
“아, 그렇군요.”
일단은 서부군만 4황후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방면도 이미 처리 끝났을지 모른다.
내가 중앙군을 서부로 투입하면 빈 황도를 치는 계책일 수도 있다.
렌시엘이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거죠?”
“살살 말려 죽여야지. 서부군을 내부에서 붕괴하게 만든다. 일단 남은 황후들, 자식들을 모조리 내 쪽으로 끌어들인다. 그것만으로도 대의명분은 내 쪽으로 크게 쏠리니까.”
나는 그리 말하고는 오드벨을 보았다.
“오드벨, 아까 말한 대로 토비우스하고 귀족원 정리할 테니까 준비해라. 이제 다들 돌아가서 일 봐.”
“이걸로 끝이에요?”
렌시엘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걱정스러운 얼굴.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배고프니까 뭐 먹고 해야겠다. 레릭하고 이셀렌, 오드벨은 의논할 게 있으니 남아라. 나머지는 돌아가고.”
“…….”
랑에이가 노골적으로 나가기 싫단 얼굴을 했다.
나는 정색했다.
“다들 지금 뒷수습에 정신이 없어야지? 일이 없으면 내가 만들어 줘?”
“……알겠다.”
“그, 그럼 폐하. 밤에 찾아뵙겠습니다.”
“밤이면 퇴근해서 아내랑 저녁이나 먹어.”
랑에이와 아르센, 렌시엘이 나갔다.
“후우우…….”
공적인 일은 여기까지.
이제 사적인 처리다.
“이셀렌, 큰애는? 여전히 제국군 동부군에 있나?”
“3일 전까지 여전했어. 다시 확인할게.”
나와 4황후의 피를 이은 장남.
제국에서 제일가는 두 지휘관의 피를 이은 큰아들은 지금 제국군에서 복무 중이었다.
나는 레릭을 돌아보며 말했다.
“동부대장군이 반역에 가담했을 확률은?”
“확률이 낮을 겁니다. 폐하도 아시겠지만 동부와 서부는 서로 지역감정도 있고…… 또, 동부 녀석이 워낙 괄괄하지 않습니까? 제가 넌지시 떠보니까 황후고 뭐고 철혈을 피철철로 바꿔 주겠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동부군이 반란에 가담했을 확률은 낮다.
문제는 장남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졌다는 건데…….
“아, 애가 걱정되네. 이거 어쩌지? 자기 엄마가 반란군의 수장이 되어 버리면 엄청 심란할 텐데.”
“아드님을 불러올리시죠?”
오드벨의 말에 나는 혀를 찼다.
“넌 네 동생이나 황도로 불러와.”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고 뭐고 해야 해. 황후, 황자, 황녀들은 모조리 황도로 집합. 불응한다면 4황후에게 가담했다고 간주한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엘프들에게 경고해. 정령무희 안 올려 보내면 니들 집에 불 질러 버린다고.”
“저야 폐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만. 엘프들이 반발을…….”
“진짜로 할 거다.”
나는 정색했다.
“제국군과 제국군이 싸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냐?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피해가 날 거다. 난 그걸 막기 위해서라면 정말 뭐든지 다 할 거고.”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반드시 설득하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제 동생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시릭이라는 괜한 소리는 하지 마. 오히려 의심만 산다.”
이셀렌이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러면 남은 건 7황후 용공주와 8황후 마령화비네. 용공주는…….”
“용공주는 일단 뒤로 미뤄. 막내는 황도 근방에 살잖아. 내가 쳐들어간다.”
나는 일방적으로 말했다.
“지금까지는 가능하면 너희들을 존중해 주려고 했지만, 내란은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
“시릭, 좀 이상하지 않아?”
“…….”
이셀렌은 정색하고는 말했다.
“지금까지의 정보대로라면 아귀가 안 맞아. 4황후는 네가 죽기 전부터, 12가문을 선정하면서 이 음모를 꾸몄다는 거지? 일단 왜 그랬지?”
“추측은 금물이다.”
반란의 목적은 정권 탈취다.
4황후가 자기 아들, 장남을 황제로 만들고 싶어서 세운 계획이었다면…… 장남을 자기 옆에 둬야지.
설사 직접 여제가 되려고 하는 거라도, 민심을 위해서라도 4황후는 장남은 반드시 데리고 있어야 한다.
어딘가 이상하다.
“…….”
하지만 내가 이리 생각하면 신하들까지 생각이 어그러진다.
내가 단호하게 4황후 목을 칠 생각을 해야 애들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나는 이마를 누르고는 말했다.
“애들은 어쩌고 있어?”
“리세라와 미리엘, 메이호가 이번 원탁결전에서 부상자를 방문하고, 사망자의 유족을 찾아서 위로하고 있어. 민심 안정을 위해서.”
“……그래, 잘했다. 정말 잘했네.”
랑에이 효과도 한계에 달했는데.
황녀들이 발로 뛰는 위문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애들 경호는 빈틈이 없지? 이거 누가 생각했냐?”
“미리엘이 하고 싶다고 렌시엘에게 부탁했어. 다들 바쁘니까 자기도 뭐 하고 싶다고.”
“그래? 으음.”
정말 내 딸 장하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이셀렌이 물었다.
“네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를까?”
“아니, 일하게 놔둬. 난 나중에 봐도 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드벨을 보았다.
“오늘 밤에 귀족원의 우두머리인 토비우스를 깬다. 내가 갈 테니까 저녁에 보자고 해. 가능하면 자기 파벌들 다 모으라고 해.”
“예.”
“오늘로 귀족원을 완전 장악, 황도에서 찍소리도 안 나게 정리한다.”
“예!”
황도의 군사는 이제 다 내 손안에 들어왔다.
제국 정부, 황성도 이제 내 세력권이고.
이제 남은 건 귀족원 하나.
원래 귀족원이라는 게 강력하지만 책임은 모호한 친목 단체기는 한데…….
“레릭, 너도 따라와라.”
“예? 제가 말입니까?”
“야근 수당 쳐줄게, 인마.”
“아닙니다! 우히히.”
“…….”
왜 저렇게 소름 돋게 웃어.
내가 어이없어하는데 반대로 오드벨은 부글부글 끓는 눈치였다.
“……니들 설마 그거야? 오드벨 재상님이 열심히 계책을 세웠는데 제국군의 늑대 놈이 마지막에 수저 얹으려고 한다, 뭐 그거?”
“열심히 세운 계책은 아닙니다만.”
오드벨이 불만이 가득해서 말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내가 앓아누웠다가 일어나도 이러냐. 아, 한 번 죽고 나서 돌아와도 이랬지? 그래, 그냥 영원히 이래라.”
“야, 오드벨.”
“그래, 머리 박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박지 마. 내가 예약해 둘 테니까 나중에 박아.”
“예?”
“오늘은 토비우스부터 머리 박게 할 테니까.”
* * *
저녁.
황도의 토비우스 공작 저택.
스무 명의 귀족들이 라운지에 모여서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1시간 뒤에 도착한다는 2대 황제 후보, 리젠 리브라타의 방문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거 참…….”
“결국 리젠 리브라타가 원탁회의에서 선출됐군요.”
“거기다가 시릭 폐하의 환생이라니. 으으음.”
“정말 환생이 맞을까요? 재상의 속임수 아닐까요?”
“민중들은 상당수가 믿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4황후 전하가 서부에서 일어나셨잖습니까? 황후들끼리 짜고 치는 거 아닐까요? 속임수 말입니다. 속임수.”
“황후들이 이제 와 속여서 뭘 얻는단 말입니까?”
“제가 그걸 어찌 압니까? 반대로 4황후 전하가 군사까지 일으킬 이유는 뭐랍니까?”
“황실 안에 뭔가 문제가 있어요, 문제가. 시릭 폐하는 말년에는 황후들을 찾지도 않으셨다잖습니까? 무슨 큰 곡절이 있었어요.”
“100년 전의 이야기를 해서 뭐합니까? 어차피 우리는 알 수도 없으니 지금이 중요합니다.”
쏟아져 나오는 논쟁들.
토비우스가 헛기침을 하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토비우스 파벌이니까.
“지난 과거를 따져서 무엇 하겠습니까? 문제는 우리들의 태도입니다. 리젠 리브라타가 괜히 우리를 보자고 한 게 아니에요. 우리들을 자기편으로 삼으려는 거예요.”
“허허허…….”
“하긴 정사를 논하려면 우리 귀족원을 빼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황제 후보 아닙니까? 벌써 우리와 손을…….”
토비우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리젠 리브라타에게 가장 급한 건 황후들의 인정이에요. 4황후야 이미 군사를 일으켰다지만, 나머지 황후들의 동의를 전부 얻어 내면 제위가 더 가까워지니까요. 그리고…….”
“아, 마령화비 전하.”
“8황후가 우리 귀족원, 토비우스 공작님과 친분이 있으시니까요.”
토비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결국 우리들에게 다리를 놓아 달라고 부탁하시려는 거겠죠.”
“하하하, 그러면은…….”
“뭘 얼마나 받아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로군요.”
귀족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지만 사실 토비우스는 내심 초조했다.
‘……마령화비가 왜 안 움직이지?’
본래 토비우스의 계획은 원탁회의를 안팎에서 무산시키는 것이었다.
안에서는 레오가를, 밖에서는 마령화비를 동원해서.
한데 마령화비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답변은커녕 외출도 안 한다고 한다.
불안불안하다.
‘설마 벌써 리젠 리브라타와 마령화비가…….’
서로 접촉했단 이야기는 없으니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지만.
토비우스는 내심 의혹이 부풀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했다.
그는 귀족원의 영수, 그의 말 한마디면 귀족원의 1/3이 움직인다.
좀 더 노력한다면 절반까지 끌어올 수 있고.
황후라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는데.
‘……이 불안감은 대체 뭐지?’
벌컥!
갑자기 문이 열리고 하인이 들어왔다.
무례한 방문에 귀족들이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토비우스가 호통을 쳤다.
“네놈! 여기가 어디라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온단 말이냐!”
“그, 그게…… 주인어른. 그게 말입니다…….”
“어디긴 어디야. 내가 갈 테니 싹 대기하란 곳이지.”
남자의 목소리.
귀족들은 깜짝 놀랐다.
들어오는 건 제국 재상인 오드벨, 제국군 중앙대장군 레릭.
그리고 선이 가는 청년, 리젠 리브라타.
1시간 전, 기습 방문이었다.
“아, 아니. 여길 어떻게…….”
“건축학적으로, 다수의 귀족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곳이야 한정되어 있으니까.”
리젠은 혀를 차고는 귀족들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귀족원에 소속될 정도로, 각자 세력이 강성한 귀족들인데…….
매우 하찮게 본다?
다들 그 시선에 발끈하면서도, 왠지 입을 열지 못했다.
황제 후보라서?
옆에 재상과 대장군을 거느리고 있어서?
그것만이 아니라 리젠에게서 풍기는 기도.
자기가 위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기에 나오는 패기에 눌린 것이다.
“선착순이다.”
“……예?”
“머리 먼저 박는 놈, 열 명까지 살려 준다고.”
2대 황제 후보의 첫 정치.
귀족 굴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