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25)
Rivers in the Desert
리세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미리엘을 부탁해요.”
“너, 무슨…….”
“가야 해요!”
리세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가면 볼 수 있어요. 이제 눈은 거의 다 나았어요!”
“…….”
“얼굴도 못 뵐 수는 없어요!”
리세라의 시력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이마를 맞대면 이제 상대의 이목구비가 보일 정도다.
중간에 메이호가 있어서, 나중에 따로 짬을 낼 계획이었지만.
저 사람을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리세라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동생의 소원.
메이호는 많은 말을 떠올렸다.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말, 위험하다는 말. 지금 무대와 가까운 관객들이 위로 피신하는 중이라서 내려가는 건 너무 어렵다는 말.
하지만 지금 리세라는 들을 얼굴도 아니거니와…….
쿠우웅!
“메이호!”
이변 사태에 한달음에 뛰어온 랑에이의 목소리.
가족을 우선해서 지키자는 마음이다.
메이호는 돌아보고는 결심했다.
“엄마, 미리엘을 부탁해요.”
“……뭐?”
“우린 지금 내려가야 해요!”
모녀의 시선 교환.
랑에이는 갈등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여긴 맡겨라. 동생을 부탁한다!”
“알았어요!”
메이호는 리세라의 손을 붙잡았다.
리세라는 급하게 말했다.
“저 이제 보이니까 괜찮아요. 그냥 내려가요!”
“아니, 꽉 잡아.”
메이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억지로 빨리 내려갈 테니까.”
이제 메이호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리젠 리브라타의 얼굴을.
* * *
내 귀환 선언.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바로 칠죄신이었다.
―하하하하하! 그래, 이제야 무대다운 무대가 갖춰졌군! 황제!
“어디서 친한 척…….”
화르르륵!
그 순간 무대를 둘러싸고 검은 불길이 치솟았다.
무대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몸, 칠죄신은 흡족하게 말했다.
―자, 조건을 걸까? 네가 이 무대에서 버티는 동안…… 나는 누구도 해치고 죽이지 않겠다!
“좀 더 친한 척해 줘라. 이젠 막 고마워지려고 그런다, 야.”
나는 바로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고쳤다.
저놈의 말을 어떻게 믿냐고?
못 믿지.
하지만 일단 존중하는 척이라도 해 주면 인명 피해가 덜 날 거다.
칠죄신은 불꽃의 어깨를 떨면서 웃었다.
―정말 웃기는군. 하나라도 더 살려 보겠다고 나에게 아첨하는 꼴이라니. 정작 나를 조금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아니, 무서워죽겠거든?”
나는 이제 6계위.
초능력은 세 개.
검은 아르센이 쓰던 검이다.
게임으로 치면…… 2회 차 플레이기는 한데 시나리오 절반쯤에 갑자기 최종 보스가 덤벼 오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칠죄신도 지금 성한 상태가 아닌 모양이다.
내 시선에 칠죄신은 자기 가슴을 어루만졌다.
―나는 이제 고작 양팔만 돌아온 정도다. 본래 내 힘의 30%도 안 되지.
일부러 말해 주는 거다.
내 귀환을 안 관객들로 하여금 다 듣게 하려고.
―하지만 그 30%도 안 되는 힘으로…… 오늘 네 영혼을 잡아먹겠다. 네 가족을 죽이고 네 신하를 불태우고, 네 백성들을 능멸해 주지! 그 과정에서 너는 죽이지 않는다!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혀를 깨물어도 살려 내고, 네 스스로 영혼을 받아 달라고 나에게 안달복달하게 해 주마!
“아, 왜 이렇게 나에게 집착해. 기분 나빠.”
―네놈을 곱게 다룰 순 없지. 오래오래, 아주 오래오래 가지고 놀아 주마!
정말 잔뜩 벼르고 있었네.
하긴 셀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지상에서 군림하면서 자기 멋대로 잔인하게 살아왔는데.
내가 인류, 제국군을 이끌고 추방해 버렸으니까.
나는 마이크를 들고는 마지막으로 외쳤다.
“제국민! 옆 사람을 지켜라! 이놈은 내가 상대한다!”
―그래! 그럼 놀아 주마!
놈이 손을 뻗자 검은 불꽃이 나를 향해 확 덮쳐 왔다.
아까 키릭이 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적인 불이 아니라 불타오르는 마력!
염동결계로 막을까?
아니, 막는 건 이놈이 바라는 길이다.
나는 마력질주로 피하고 달리면서 놈을 향해서 검을 내리쳤다.
“흡!”
그러자 칠죄신은 대수롭지 않게 내 검을 손으로 붙잡았다.
화르르륵!
검이 녹는다?
“뭐!”
나는 기겁하고는 반사적으로 놈을 걷어차면서 검을 빼냈다.
칠죄신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면서 손을 풀어 주었다.
푼 게 아니라 풀어 준 거다.
“…….”
내 검의 칼 끝.
놈의 세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비록 내 전용으로 커스텀된 게 아니라고는 하나…… 6계위 검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있다.
―오늘은 육체에 맞춰서 불꽃으로 커스텀해 봤거든. 마음에 드나?
“……으음.”
칼날을 잡고 순간적으로 마력을 응집시켜서 녹여 버리는 건가?
그렇다면…….
“흡!”
나는 비검으로 놈의 미간을 향해서 검을 날리고는 바로 마력질주로 뛰어들었다.
보통 이렇게 던지는 과정에서 딜레이가 걸린다.
사람이 앞으로 공을 뿌리고 즉각 내달릴 수는 없잖은가?
하지만 나는 한다.
염동력으로 관성과 물리력을 제어해서 바로!
―하하하하!
칠죄신은 오만하게도 내 비검을 잡아챘다.
엿가락처럼 녹여 버리겠다고.
그래, 그러라고 한 거다!
“하아압!”
나는 놈에게 덤벼들면서 주먹으로 후려쳤다.
이놈이 검을 잡은 온도를 높이는 순간, 다른 곳의 열기가 가신다는 걸 이미 알았으니까!
굳이 염동결계를 칠 필요도 없다!
퍼버버벅!
내가 연타를 꽂아 넣자 놈의 몸이 비틀거리면서 물러났다.
가슴이 푹 들어가고 머리가 우그러진다.
하지만…….
―흐으음.
놈은 손으로 잡고 있던 검을 나에게 휘둘렀다.
휙!
연타를 퍼붓던 내가 그걸 피해서 몸을 물리자 놈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이다음은 어쩔 거냐?
놈이 휘두르며 내던진 검이 내 발치로 들어온다.
칼이……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아. 음.”
어려운데?
당연히 칠죄신은 엄청나게 강력했다.
내가 마지막에 추방했을 때도,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이긴 거다.
칠죄신은 지금 내가 했던 걸 반대로 하는 중이다.
내가 키릭을 여유롭게 상대해서 제국민에게 희망을 보여 주려고 했다면.
칠죄신은 여유롭게 나를 찍어 눌러서 제국민을 절망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너희들의 황제가 돌아왔다고?
한 손만으로 상대해서 피떡으로 만들어 줬다.
나는 일단 반 토막이 난 칼을 다시 잡아 들었다.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어떻게든…….
“폐하아아아아!”
우렁찬 목소리.
레릭이 무대 앞까지 달려온 것이다.
“야, 들어오지 마!”
내가 기겁해서 말렸다.
지금 불꽃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기도 하거니와, 만약 레릭이 들어오려고 한다면 칠죄신이 불살라 버릴 것이다.
놈은 지금 어디까지나 나를 조롱해서, 제국민을 절망시키려고 하는 거니까.
“막아! 제국군! 대장군 뜯어말려!”
이미 레릭 주변의 제국군들이 팔다리를 잡아끌고 있었다.
다섯 명이 붙어서 말리는데도 레릭은 앞뒤 가리지 않았다.
불꽃 너머의 나를 보고 늑대가 외롭게도 포효한다.
“방해하지 마라!”
그리 말한 레릭은 몸부림을 쳐서 다른 놈들을 떨쳐 버렸다.
그러더니 자기 허리에 걸려 있던 검을 홱 던졌다.
불꽃의 너머, 나에게로.
날아오는 검.
나는 얼른 염동력으로 끌어당겼다.
“무사히 이기셔야 합니다! 아니면 전 죽어 버릴 겁니다, 폐하!”
레릭이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레릭의 검을 잡은 나는 놈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애들 돌봐!”
짝! 짝! 짝!
칠죄신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조롱이다.
검을 새로 잡았다고 그게 뭐 어쨌다고.
반 토막이 난 아르센의 칼, 그리고 온전한 레릭의 칼을 잡은 나는 심호흡을 했다.
본래 나는 칼을 여러 자루 쓰면서 싸운다.
이제 이도류다.
―얼른 오시지.
탁!
나는 한달음에 칠죄신의 앞까지 도달하면서 검을 뿌렸다.
왼손의 아르센의 검을 비검으로 날리고, 오른손으로 잡은 레릭의 검을 사선으로 내리긋는다.
―흐으읍!
칠죄신은 몸을 틀어서 비검을 피하고, 다른 팔을 휘둘러서는 레릭의 검을 막아 냈다.
하지만 날아갔던 비검이 돌아온다.
칠죄신은 보지도 않고 검을 걷어차려고 했지만…….
퍼버벅!
나는 비어 있는 왼손만 텔레포트시켜서 놈의 턱을 연타했다.
텔레포트는 원래 잘 안 되지만, 이런 근거리, 더군다나 놈에 대한 전의가 불타니 가능하다!
―흐으음!
하지만 막 돌아오는 비검이 놈의 육체를 꿰뚫으려는 찰나.
화르르르륵!
갑자기 칠죄신이 몸에 두르고 있던 새카만 불꽃이 엄청나게 격렬해졌다.
염동결계로 막고, 마력방어를 하는데도 타 죽겠다!
위기감에 나는 공격을 포기하고는 필사적으로 뒤로 빠졌다.
휙!
“헉, 헉.”
뒤로 빠져서, 돌아온 아르센의 검을 붙잡은 나는 망연자실했다.
아르센의 칼은…… 이제 칼자루만 남아 있었다.
레릭의 검도 흐물흐물해져 있었고.
안 된다.
원래 칠죄신도 강하긴 한데, 그냥 검이 못 버틴다.
“……폐하! 제가 있습니다!”
“비켜! 이 새끼들아!”
그때 무대 근처로 아르센과 오드벨이 달려오면서 내게 검을 다시 던져 주었다.
휙! 휙!
날아와서 내 앞에 꽂히는 두 자루의 검.
―뭐하나? 기특한데. 얼른 뽑고 내게 덤벼야지.
칠죄신은 손바닥을 내밀어서 내게 권했다.
얼른 뽑으라고.
결과는 똑같을 테니까.
“…….”
나는 표정을 감추면서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방법이, 방법이 없다.
두 자루 가지고는 모자란다.
그때 오드벨이 크게 외쳤다.
“칼이 있는 자! 무기가 있는 자! 모두 폐하에게 검을 바쳐라! 폐하가 지금 싸우고 계신다!”
“폐하가 싸우신다! 제국민들이여! 너희들의 검을 바쳐라!”
“절망하지마라! 모두 폐하를 믿어라!”
레릭이 뒤를 이어서 외치고 아르센이 독려한다.
제국은 칠죄신을 물리친 국가.
어딜 가나 칼을 차고 다니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십수만의 군중들 다수가 무장한 상태.
“칼을 받으시죠!”
“잘 싸우세요!”
레릭을 말리던 제국군들, 머뭇거리던 이들이 나를 향해서 칼을 던진다.
아직 내가 시릭 카라카스라고 믿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괴물, 칠죄신과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걸 믿는다.
“제 검을 써 주세요!”
“이거라도!”
그리고 하나둘, 사람들이 달려와서는 자기 검을 풀어서 내게 던진다.
나와 칠죄신 사이에.
날아온 검들이 늘어난다.
각양각색.
길이가 다 다르고, 위력도 다 다르다.
내가 쓰기에는 너무 길거나, 얇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하나다.
나를 위해서 바치는 검.
“…….”
무대 위에 어지럽게 꽂혀 있는 검들.
어느새 백 자루가 넘어간다.
칠죄신은 팔짱을 끼고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갸륵한 마음과 성원을 무시할 거냐, 황제?
“……아니!”
나는 이를 악물었다.
사실 절망적이다.
놈과 나의 전력 차, 칼이 백 자루가 되건 천 자루가 되건 달라지지 않는다.
예전이었다면, 나는 퇴각을 준비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다음 싸움을 준비하자고.
하지만 아니다.
여기서는 물러날 수 없다!
“흐아아압!”
나는 앞에 교차한 오드벨의 검, 아르센의 검을 새롭게 뽑아 들었다.
그리고 달려들면서 긋고 벤다.
하지만 일합을 나눈 순간, 검이 흐물흐물해지고 마력이 꺼진다.
검에 큰 손상이 가면서 마력도 담지 못하는 것이다.
“하아압!”
하지만 지금, 검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나는 발로 다른 검을 걷어 올려서는 다시 잡고 놈을 후려쳤다.
“아아아아아!”
검이 삼합을 버티지 못하고 토막이 난다.
새롭게 검을 뽑아도. 뽑아도.
칠죄신의 불꽃이 전부 다 삼켜 버린다.
“폐하!”
“다음 검! 다음 검을!”
“얼른 던져!”
내가 검집에서 칼을 뽑을 시간도 아깝다는 걸 안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무대로 검을 던져 준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현실을 무시했다.
내가 아무리 싸워도 진다는 걸.
지금 이놈에게 이길 방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1초라도 오래.
어떻게든 버텨 보자고.
갈수록 드리워지는 절망을 무시하자고, 승기를 찾아보자고.
“크아아!”
마력과 정신력을 퍼부어서 비검을 두 번 연속해서 날리고 놈을 걷어찬 다음에, 두 자루 검을 뽑아서 X로 그어 버린다.
하지만 칠죄신은 더러는 피하고, 불꽃을 방출해서 다시 검을 녹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염동결계와 마력방어를 뚫고 들어온 열기에 내 몸이 익어 가기 시작한다.
손등에 수포가 잡힌 게 눈에 들어올 정도.
위험하다.
장기도 위험하지만, 뇌가 익어 버리면 끝장이다.
이러면서도 칠죄신에게 아직 제대로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크아아악!”
내가 힘을 짜내서 3연속으로 비검을 날리자 놈이 두 개는 피하면서…….
―슬슬 패턴을 바꿔야지.
퍼어어억!
내 귀에 너무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염동결계를 발휘하면서 뒤로 빠졌다.
치명상……이다.
“으음.”
복부에 관통상.
큰일인데.
반사적으로 품을 뒤져 보니…… 렌시엘이 남몰래 챙겨 줬던 치료약도 변색되어 있었다.
칼이 녹아내리는 불길 속에서 멀쩡하긴 힘들지.
“아.”
그걸 알아차린 순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이건 죽는다.
칠죄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되지. 죽으면 안 되지. 나에게 영혼을 바치겠다고 빌어라.
“…….”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이 자리의 모든 생명을 죽일 거다. 몇몇은 죽고 싶단 말이 나올 정도로 해 주지. 아, 그러고 보니 너는 그걸 아꼈던가?
칠죄신의 입이 찢어졌다.
―하하하하. 그래! 기억난다! 그때! 네가 나를 추방하겠다고 마지막으로 덤볐던 때! 내가 썼던 몸!
“…….”
―그 목을 날리고 아주 감격했지? 드디어 인류의 승리라고? 정작 그 목의 정체를 알고 나니 너는 어떻게 되었더라? 하하하하하! 정말, 정말 피로 세워진 제국답군!
귀가, 뜨겁다.
숨을 고르느라 대꾸할 여력도 없다.
방법,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도박이다.
성공 가능성은 더럽게 적고, 실패하면 패배한다.
그래서 안 쓰던 건데…….
발소리.
“아빠!”
귀에 익은 목소리.
울고 있다.
나는 덜덜 떨리는 턱을 억누르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메이호의 부축을 받은 리세라가 나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무사히 돌아와 주셔야 해요! 이제야 아빠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
리세라가 무대로 다가오려는 걸 레릭이나 다른 애들이 붙들고 있었다.
불꽃의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
딸아이는 이제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시력이…… 돌아왔구나.”
“예!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작은 목소리를 알아들은 리세라는 애타게 말했다.
자식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안 되지.
나는 기운차게 웃어 보였다.
“우리 딸은 우는 모습도 어쩜 저렇게 예쁠까?”
“아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무대 곁에서 나를 보는 레릭을, 다른 놈을.
군중들을 통제하는 제국군과 헌병대.
미리엘을 옆에서 지키며 나를 보는 랑에이와 렌시엘.
관중석을 급히 내려오는 중인 이셀렌, 그리고 칼비나와 로데릭.
칠죄신을 두려워하며 나를 보는 일반 백성들.
“후우우우…….”
나는 그들의 정신력을 쭈욱 흡수했다.
조금씩이지만 수백, 수천 명의 정신력을 단숨에.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지만 나를 잘 모르는 상대의 정신력도 흡수했다.
후유증이 남을지, 남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겨야 한다.
꺾이려는 무릎에 힘을 준 나는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뭐하냐?
“와라.”
눈을 감고, 공간에 염동력을 집중한다.
강렬한 힘이 모이면서 내 손 근처의 공간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지금 이 공간을 완전히 장악해서, 내가 이미 아는 곳과 연결하려는 시도.
공간 연결.
정신력은 엄청나게 들고, 성공 가능성은 적다.
그래도 해내야 한다.
“와라. 이제 싸울 때다.”
―그러니까 뭘 하는 거…….
지켜보면서 조롱하려던 칠죄신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설마…….
“와라! 친구여!”
우우우웅!
그 순간 허공이 쭈우우욱 찢기면서…… 그 너머의 황좌가 드러났다.
“아!”
“아아아아아!”
바로 알아본 이들, 뒤늦게 알아본 이들이 신음을 지른다.
그리고 황좌에 꽂혀 있던 검이.
쓔우우우욱!
공간을 넘어와서는 내 손에 잡혔다.
두 자루가.
칠성칠요의 월검 탐랑.
그리고 화검 거문(火劍 巨文).
두 자루의 검을 손에 잡은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배의 구멍? 치명상?
적이 칠죄신?
정신력이나 마력이 바닥이라고?
상관없다.
이 검을 잡은 이는 팔이 토막 나도, 다리가 날아가도 검을 잡고 있는 한 싸운다.
왜냐하면…….
“칠성칠요는…….”
―불굴이어라!
검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
너무나 반가운 목소리에 나는 씩 웃었다.
눈앞의 적이 칠죄신이라도 이제 두렵지 않다.
“가자, 친구여!”
오랜 친구가 드디어 돌아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