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16)
고맙다고 해야지? 미안하다고 하고
가장 먼저 내달린 건 칼비나였다.
진작 빡쳐 있던 칼비나는 자세를 낮추고는 확 달려들면서 칼을 검집째 휘둘렀다.
뛰어난 순발력, 발목부터 시작해서 손목의 스냅까지 힘이 깔끔하게 전달된다.
뻑!
맨 앞 기사의 턱을 날려 버린 칼비나는 멈추지 않고 옆 놈의 턱도 연이어 날렸다.
“으음?”
“잡아!”
순식간에 두 명이 쓰러지자 남은 기사 여덟 명이 정색을 하고는 진형을 잡았다.
팔을 벌리고는 두 기사가 좌우로 포위하고, 한 놈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정석적인 진형.
“흠!”
하지만 바로 로데릭이 달려들면서, 오른쪽의 기사를 날려 버렸다.
마력을 쓰기만 해도 사람 한둘쯤은 쉽게 날려 보낸다.
남매가 전방에서 싸우는 걸 본 나는 가룰에게 말했다.
“가룰, 아멜리아 무조건 지켜라!”
적은 기사 일곱 명에 귀족 하나, 우리는 셋.
사후 수습을 생각하면 칼을 뽑지 않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 아무래도 우리에게 불리하다.
그럼 우두머리부터 잡는다!
탁, 탁! 탁!
나는 보폭을 크게 해서 적진을 우회했다.
“어어어?”
“뭐, 뭐야?”
형과 누나를 상대하고 있던 기사들이 손을 뻗어서 나를 막으려고 했지만 의미 없다.
나는 염동력을 이용해서, 불규칙 바운드로 튀는 럭비공처럼 지그재그로 순식간에 파고들었으니까.
이 사달을 일으킨 놈, 트로이 레오가의 앞까지.
“이놈!”
“북부 촌놈이 도련님에게 감히!”
그런데 트로이를 지키고 있던 기사 둘이 정색하더니, 푸른 마력을 뿜어냈다.
나를 억누르는 강력한 존재감, 마력장이다.
둘 다 5계위, 대단한 성취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둘의 마력장만으로도 굳어 버릴 테지만…….
“촌놈에게 맞으면 더 아프지!”
내 발을 중심으로 남색의 마력이 원형으로 퍼져 나간다.
6계위 능력, 마력영역.
“큭!”
“억!”
나를 위협하던 기사 둘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비틀거렸다.
내 마력영역의 효과, 카운터였다.
나는 수도를 휘둘러서 오른쪽 놈의 목을 쳐 버리고는 왼쪽 놈의 목을 잡고는 뒤로 굴려 버렸다.
“컥!”
5계위라는 대단한 성취를 이뤄 낸 기사가 통나무처럼 데굴데굴 굴러간다.
칼비나와 로데릭을 에워싸고 포위하던 기사들의 등 뒤로.
뻐억!
“크악!”
“뭐야!”
한창 손을 섞던 기사들은 내가 굴린 놈에게 얻어맞아서는 진형이 파괴되었다.
그 순간 칼비나가 자세를 팍 낮추면서, 칼집을 어지럽게 휘둘렀다.
퍼버버벅!
순식간에 기사 셋을 쓰러트리는 솜씨.
로데릭이 이어서 주먹을 날리는 걸 확인한 나는 돌아보았다.
“이 촌놈이!”
트로이는 푸른 마력을 불러일으키면서 대뜸 검을 뽑으려고 했다.
“아니, 이게 미쳤나?”
황당해진 나는 텔레포트로 손만 이동시켜서는 트로이의 뺨을 때렸다.
짜악!
생각지도 못한 일격에 트로이가 비틀거리면서 물러났다.
“뭐? 뭐…….”
“마력 색깔 보면 내가 너보다 위라는 걸 알잖아? 근데 아직도 덤벼?”
짝! 짜악!
나는 연속해서 뺨을 두들기면서 놈에게 다가갔다.
뭐에 맞는지도 몰라 하는 트로이는 전신을 마력으로 방어하면서 기어코 칼을 뽑는데…….
“손님으로 초대받은 놈이 황성에서 칼을 뽑아? 돌았네?”
나는 달려들면서 놈의 칼자루를 손바닥으로 눌러서 뽑는 걸 막았다.
마력으로 완력 강화?
이놈은 5계위고 나는 6계위다.
“크아악!”
트로이는 몸을 틀고 물러나면서 내 얼굴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회전문처럼 놈을 따라 선회하면서 피하고는…… 머리로 놈의 안면을 들이받았다.
뻑!
“억!”
트로이는 충격에 뒤로 물러났지만 별 상처는 없었다.
마력으로 방어했으니까.
트로이는 자기 안면을 문지르다가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내가 가만히 서 있는 걸 보고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었다.
“그렇지? 일단 생각 없이 일을 저질렀는데 수습할 방법은 없지? 뒷일이 걱정되지? 당연하지! 나는 12가문의 최강인 레오가의 아들이고 너는 꼴찌인 리브라타 촌놈이니까! 나한테 손대면 원탁회의고 뭐고 없는 거야!”
“아니, 그냥 나 혼자 패면 섭섭할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는 건데.”
“뭐?”
발소리에 돌아본 트로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칼비나와 로데릭이 다가오고 있었다.
호위 기사들을 죄다 쓰러트린 것이다.
우리 3남매가 3면에서 포위하자 트로이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새삼 나를 살피는 눈길, 자기야말로 뒤늦게 계위 차이를 깨달은 것이다.
“야, 니들 미쳤어? 나한테 손대면 끝이다? 내가 레오가…….”
“칼비나, 한 대 쳐.”
“…….”
그러자 칼비나는 잡고 있던 검을 언더스로로 휘둘렀다.
트로이가 다리 사이로 파고든 이물감을 눈치챘을 때는 늦었다.
뻐억!
원심력에다가 마력까지 담긴 검집의 끝이 트로이의 사타구니를 후려쳤다.
“억, 어어억.”
양다리를 꼭 붙인 트로이가 어정쩡하게 비틀거리는데 칼비나는 놈의 정수리를 향해서 검집을 내리치려고 했다.
“그만, 너무 흥분했다. 칼비나. 그걸로 머리 치면 사람 죽는다.”
로데릭이 점잖게 칼비나의 팔을 붙잡았다.
칼비나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마력을 거뒀다.
괴로워하던 트로이가 웃음을 지었다.
“그, 그래! 로데릭! 넌 전에 우리 형에게 빌었…….”
“흠.”
로데릭은 트로이의 머리카락을 잡더니 안면에 대뜸 주먹을 꽂아 넣었다.
뻑! 뻑!
규칙적이고 묵직한 연타.
말하던 트로이의 안면에 피가 터지면서 뒹굴었다.
“컥, 커어억?”
“리젠, 이제 네 차례다.”
로데릭은 트로이를 잡고 일으켜서는 내 쪽으로 넘겨주었다.
트로이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연이은 고통에 경황이 없어서 마력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한다.
나는 트로이의 머리카락을 잔뜩 잡고는 말했다.
“자, 잘 참아.”
“뭐, 뭐를…….”
나는 놈의 머리카락을 쫙 뽑아 버렸다.
완력으로만 하면 머리 가죽이 찢어지면서 피가 나지만, 힘을 적당히 주고 염동력으로 거드는 방식으로 했다.
“끄아아아악!”
그래서 고통은 있되 피는 나지 않았다.
물론 내 손에는 놈의 머리카락이 수북하고.
트로이는 눈을 깜빡깜빡하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자, 한 번 더.”
“뭐? 자, 자, 잠…….”
잡초 뽑기!
“꾸어어어어억!”
트로이의 머리카락 가운데에 주먹만 한 구멍이 뻥 뚫렸다.
염동력까지 동원했으니 모낭이 손상되었다.
고치려면 1급 치료약이 필요한데…… 대귀족도 구하기 힘든 그걸 머리카락 고치는 데 쓸 수 있겠나?
즉, 트로이는 평생 머리카락에 구멍 뚫고 살아야 한다.
몸부림을 쳐서 내 손아귀에 빠져나간 트로이는, 자기 머리를 만지고는 기겁했다.
“헉, 헉. 헉. 이게 뭐야? 니들, 니들 미쳤어!”
“아주 침착하고 이성적인데? 그래서 얌전하게 잡초만 뽑아 주고 있잖아?”
내가 바닥에 놈의 머리카락을 버리자 트로이는 아연실색했다.
나는 트로이를 빤히 보면서 물었다.
“철없이 한 일이라면 사실 이쯤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 근데 너는 일부러 했지? 그것도 아멜리아한테.”
“그, 그게…….”
“너, 칼을 왼쪽 허리에 찼으니까 오른손잡이지?”
“……뭐? 뭐?”
“아멜리아를 오른손으로 만졌다는 거지?”
나는 놈의 오른손 중지를 잡고는 뒤로 완전히 꺾어 버렸다.
뿌드득.
“끄아아아악!”
트로이는 입에 거품을 물면서 비틀비틀 돌았다.
너무 아파서 어쩔 몰라 하는 얼굴.
하지만 내가 놈을 놓아준 건 그래서가 아니다.
칼비나가 불타는 눈으로 기다리고 있으니까.
“다음은 내가 꺾어 버릴게.”
“그만, 칼비나. 이 이상 하면 아멜리아가 신경 쓴다.”
“…….”
로데릭이 칼비나의 어깨를 잡고는 내게도 눈짓했다.
이쯤에서 마무리하자고.
그러는 로데릭도 트로이를 험악하게 노려보고 있지만.
“뭐, 뭐야? 뭐야? 니들?”
너무 아파서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던 트로이는 자기 손가락을 내려다보고는 울상을 짓고 우리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대, 대체 뭘 믿고 이래? 저딴 수인 계집 하나 때문에? 니들 미, 미쳤어?”
“……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 엄마를 위협해 놓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장난기가 싹 사라진 칼비나는 서슬이 시퍼랬다.
로데릭은 잠깐 생각하다가 칼비나를 놓아주었다.
“으아아아아!”
우리에서 뛰쳐나온 맹수를 본 것처럼, 트로이는 칼비나를 피해서 필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가 부딪쳤다.
나에게.
“끄아아악!”
트로이는 고개를 흔들면서 내게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쪽에선 칼비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으아, 으아아…….”
필사적으로 도리질을 친 트로이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우리 두 사람에게 손바닥을 비벼 보였다.
“사, 살려 줘! 그, 그만해!”
“…….”
칼비나는 화가 잔뜩 난 얼굴이다가 나에게 시선을 보냈다.
어쩔 거냐고.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누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으아아악! 자, 잘못했다고 하잖아! 그럼 봐줘야지! 미친놈들아!”
트로이는 기겁하고는 엉덩이를 뒤로 밀다가 안색이 확 밝아졌다.
“혀, 형님!”
들려오는 발소리들.
새로운 기사 무리였다.
트로이는 얼른 일어나면서 그쪽으로 가려다가 확 굳어 버렸다.
나와 칼비나가 놈의 어깨를 잡아 눌렀으니까.
“…….”
기사들을 데리고 다가온 건 차분한 인상의 인간 청년이었다.
그는 우리 3남매와 쓰러진 기사들, 그리고 트로이를 한 번씩 보더니 마지막으로 다시 나를 보았다.
“나는 키릭 레오가다. 거기 있는 트로이의 형이지.”
“레오가의 장남이시군.”
“그래, 원탁회의에 초청을 받아서 왔는데 내 동생에게 무슨 짓이지? 마땅한 해명을 들어야겠는데.”
“아, 나도 마땅한 감사를 들어야겠는데?”
트로이는 우리 둘의 대화에 안도하고 있었다.
더는 맞을 일은 없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놈의 배를 쳤다.
염동권.
“어어억.”
트로이가 비틀거리면서 쓰러지려고 하자 칼비나가 꽉 잡아서 세웠다.
나는 쉬지 않고 같은 부위를 연타했다.
뻑! 뻐억! 뻐어어억!
“컥, 커어어억!”
처음에는 움찔거리던 트로이의 몸이, 이내 축 늘어졌다.
“저, 저게…….”
“미친놈인가!”
레오가의 기사들이 발끈했지만, 정작 키릭은 가만히 있었다.
결국 트로이가 의식을 잃자 나는 놈에게 어깨동무를 하고는 키릭을 돌아보았다.
“아, 이제 고맙지?”
“리젠 리브라타. 듣던 것보다 정신 나간…….”
“아니, 이놈이 호선랑님의 시녀에게 지분거리지 뭐야?”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칼비나와 로데릭도 놀라려다가 얼른 표정을 간수했다.
레오가의 기사들은 크게 놀란 얼굴이었고.
키릭이 냉정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아, 저기 은회색 늑대 수인 메이드가 2황후 호선랑님이 무척 아끼시는 아이거든. 잘 좀 지켜봐 달라고 우리에게 각별하게 부탁까지 하셨는데…… 네 동생이 감히 희롱을 하던데?”
“…….”
거짓말? 내가 나중에 랑에이에게 부탁하냐고?
그럴 필요도 없다.
랑에이와 아멜리아는 웰링 저택 시절부터 면식이 있는 사이다.
또 아멜리아의 몸가짐을 몇 번 칭찬하기도 했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면 랑에이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레오가 가문이 황성에 들어와서 2황후가 아끼는 아이를 희롱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레오가의 앞날에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우리 리브라타 가문은 다소의 위험을 무릅쓰고, 레오가 가문의 명예를 지켜 준 거지.”
나는 씩 웃었다.
“고맙지?”
“…….”
“지금 우리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트로이의 목을 잡은 손에 마력을 불러일으켰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계위를 하나씩 올리자 지켜보던 기사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파랑까지 올라가자 키릭이 눈을 내리깔았다.
“고맙다.”
“응? 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리는데?”
“……고맙다고 했다, 리브라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미안하다고 해야지?”
“……뭐?”
“우리에 대한 감사는 당연하고, 봉변을 당할 뻔한 상대에겐 미안하다고 사과해야지, 새꺄. 경우 없이 굴래?”
내가 으름장을 놓자 기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아무 행동도 못 한다.
지금 엉망이 된 트로이의 목을 내가 붙잡고 있으니까.
키릭은 한참 나를 보다가 말했다.
“……아멜리아 씨에게 미안하군.”
“그래. 그러면 이걸로 이번 일은 해결된 거지?”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동생이 좀 정신없이 굴었지만 레오가 가문의 원탁회의 참석에는 문제가 없는 거고? 만약 불참하면 개최한 우리가 사유를 이리저리 알려야 할 것 같은데.”
“문제없을 거다.”
“그래, 가져가라.”
나는 트로이를 땅바닥에 내려놓고는 퍽 걷어찼다.
정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트로이의 몸이 키릭의 다리를 덮쳐들었다.
척.
하지만 키릭도 대수롭지 않게, 발로 굴러오는 자기 동생을 밟아서 멈춰 버렸다.
무슨 축구공처럼.
키릭은 나를 묵묵히 보다가 말했다.
“그럼 회의장에서 보지.”
“그래라. 여기 뒷정리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고.”
나는 몸을 돌리고는 칼비나, 로데릭에게 눈짓했다.
이만 가자고.
우리 세 사람은 몸을 돌려서 가룰과 아멜리아에게 돌아갔다.
가룰이 붙잡고 있던 아멜리아는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빛.
“도, 도련님. 아가씨. 다, 다치시면 어쩌려고…….”
“으음.”
“…….”
신나게 날뛰었던 우리 3남매는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걱정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데 어쩌지.
나는 물론이고 완전히 눈 돌아갔던 칼비나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툭, 툭.
우리 두 남매는 나란히 로데릭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장남이니까 어떻게 좀 해 보라고.
로데릭은 헛기침을 했다.
“……나는 말리려고 했습니다.”
“와! 형! 배신자!”
“아니, 오빠! 사람이 어떻게 이래? 자기도 신나게 해 놓고 혼자서 빠져나가려고 해!”
“험, 험.”
로데릭은 부끄러운지 귀가 빨개졌다.
아멜리아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우리 세 사람에게 다가와서는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셋을 한 번에.
아옹다옹하던 우리 셋도 얼른 받아 주었다.
“……다치면 안 돼요. 알았어요?”
“그럼 엄마에게 호 해 달라고 하지.”
내 말에 아멜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끌어안은 손을 꼭 말아 쥐었다.
나는 얼른 칼비나에게 눈짓했다.
알아들은 칼비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운동했으니까 땀난다. 엄마, 같이 목욕하자!”
“……예?”
“응? 얼른. 나 아직 팔 덜 나았다니까.”
아멜리아도 이번 일에 많이 황망할 것이다.
곁에 사람이 있어 줘야 했다.
아멜리아와 칼비나를 돌려보낸 나는 로데릭과 바로 의논했다.
“레오가의 장남, 키릭이 자기 동생을 시켜서 방금 일을 꾸민 겁니다.”
“나도 의심은 한다만 증거가…….”
“놈은 아멜리아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리브라타 내부에서야, 아멜리아는 단순한 메이드가 아니다.
우리 3남매를 어머니처럼 길러 준 사람이니까.
하지만 보통 그런 사정을 모르지.
“다른 집안, 그것도 한미한 가문의 메이드 이름을 알고 있을 리가 없죠. 거기다 트로이를 지키는 기사 둘은 5계위에 마력장까지 쓸 줄 알았습니다. 레오가가 강해도 그런 실력자가 흔할 리는 없죠.”
“그러면…….”
“예, 키릭은 동생을 시켜서 우리 리브라타를 도발해서 묻어 버리려고 한 겁니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가 트로이와 기사들을 제압해 버리니,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물러난 거죠.”
“그럼 네가 황후 전하를 끌어들인 걸 조사해서 트집 잡지 않을까?”
“반은 진실입니다. 그리고 키릭도 계산은 끝났을 거고요.”
레오가도 황후인 랑에이에게 함부로 굴 순 없다.
키릭은 그냥 유야무야 묻어 버리기로 한 것이다.
내가 정리했다.
“우리 3남매에게 아멜리아가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자극하려고 해 본 거죠. 황후에게 지원을 받는 게 사실인지 확인해 볼 겸.”
“……우리가 자칫해서 트로이를 해코지하거나 죽일 수도 있었는데?”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로데릭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기 동생도 미끼로 삼다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진짜 무서운 놈이구나.”
“괜찮습니다. 제가 더 무서울 테니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갑시다, 원탁으로.”
황성의 간이 회의실.
원탁이 놓이고 12가문의 대표들이 모였다.
각각 가문에서 두 사람씩 대표로 나온다.
레오가의 차남인 트로이가 빠졌는데도 키릭의 옆에는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로데릭이 나직하게 말했다.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 친척인 모양이군.”
“미리 준비했군요.”
키릭은 트로이가 무사히 원탁회의에 참석 못 할 것도 계산하고 예비 인원을 준비해 뒀다.
“자, 그럼 100회 원탁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회의의 진행을 맡은 바르고나의 차녀, 파르메입니다.”
20대 초반의 인간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5 대 5 가르마가 인상적인 미녀다.
원탁회의의 진행은 12가문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이번에는 바르고나 차례였다.
“익숙한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분도 있을 겁니다. 첫 발언 전에 가문과 이름을 밝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파르메는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정적.
그리고 시선들이 모인다.
나에게.
“다들 나를 보고 계시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리젠 리브라타라는 걸,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원탁회의가 될 거라는 선언까지 다들 들으셨겠죠. 예, 내가 그 말을 했습니다.”
나는 좌중을 쭉 둘러보았다.
하나하나 보고 마지막에 키릭을 본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원탁회의에서 2대 황제 후보를 반드시 선출할 작정입니다.”
“시피즈의 크론입니다. 어떻게 선출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우리, 100년 동안 말은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키릭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이제 칼로 결정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