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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15화 (114/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15)

원탁회의 서막

황성의 남성(南城).

본래 관리하는 시녀와 시종, 제국 관리들만이 조용히 오가는 곳이었으나.

이번에 원탁회의가 열리면서 북적거렸다.

12가문의 대표들. 그들을 따라온 호위 기사로 붐비고 있었다.

2대 황제 자리를 둔 경쟁자들의 집결.

묘한 긴장감이 흘렀지만 딱히 사건이 발생하진 않았다.

여기는 황성, 시릭 카라카스가 지내던 곳이다.

함부로 굴 수가 없었다.

더욱이 제국군과 지원사령부의 충돌이 발생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더욱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고.

그런데 객실 중 하나.

귀족 청년이 기사에게 불쑥 말했다.

“여자가 필요해.”

“……예?”

호위 기사는 어이없어했다.

이 청년이 여자 밝히는 건 알겠는데…… 황성에서 뭘 어쩌란 말인가?

황성의 시녀들에게 손을 대?

그건 황제모욕죄, 가문 전체가 결딴날 수도 있는 일이다.

“트로이 도련님. 송구하지만 당분간 조심하시죠. 여긴 황성입니다. 행동 하나 잘못하시면 가문 전체에 누가 될 수 있습니다.”

“아냐, 나도 사실 그러려고 했는데…… 좀 소동을 일으켜 달라네.”

“예?”

귀족 청년, 트로이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마음에 안 들잖아? 맨날 꼴찌고 전에 우리가 한번 대차게 밟아 줬던 리브라타가 깝치는 게. 마침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걸 좀 해 달라네. 나가게 준비 좀 해라.”

“뭐, 뭘 하시려고요?”

“전에 형이 한 것처럼, 나도 리브라타 애들 손 좀 봐 주려고.”

12가문의 최강, 레오가의 둘째 아들인 트로이가 밝게 웃었다.

* * *

황성의 객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남색의 마력이 몸을 타고 돈다.

6계위다.

이어서 내 몸을 중심으로 마력이 원형으로 퍼져 나간다.

마력영역도 사용이 가능하다.

“좋아. 그다음은 텔레포트…….”

휙.

내가 손을 뻗자 5m 밖의 문고리가 잡힌다.

정신력이 늘어나면서 텔레포트도 좀 더 잘 쓸 수 있게 되었다.

전투 중에 잘되냐면 애매하지만.

가령, 염동연격권은 전투 시의 고양, 아드레날린 분비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쓰는 식이다.

“머지않아 네 번째 초능력이 개방되겠군. 그리고…….”

나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2시간 뒤에 원탁회의가 열린다.

12가문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행동.

“내가 올해 마지막 원탁회의일 거라고 선언했으니까 각지에서 요동칠 텐데…….”

똑똑.

노크 소리.

내가 대답하자 아멜리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련님, 로데릭 도련님이 보자고 하십니다.”

“…….”

“도련님?”

아멜리아가 침대로 다가오며 걱정스럽게 불렀다.

나는 은회색 머리카락의 메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손을 뻗어서는 내 이마를 짚어 보고 안쓰러워했다.

“어디 편찮으세요? 열은 없으시고요?”

“응.”

그리 말한 나는 아멜리아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이었지만, 아멜리아는 놀라지 않고 되레 나를 토닥거렸다.

“힘드세요? 오늘은 그냥 쉬실래요?”

“꾀병 부리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도련님은 계속 열심히 힘내고 계시잖아요. 저도 귀가 있어서 잘 듣고 있답니다.”

나는 아멜리아의 어깨에 뺨을 비비면서 응석을 부렸다.

“그냥 가끔은 이러고 싶을 때가 있어서.”

“예.”

“아멜리아.”

“예.”

“따뜻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리세라가 눈이 멀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시작한 길, 끝까지 갈 것이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황성까지 따라와서는 나를 돌봐 주고 있었다.

“졸리세요?”

“응, 그러네.”

“그럼 잠시만요. 로데릭 도련님에게…….”

“앗! 내 아멜리아를 리젠이 도둑질하고 있잖아!”

칼비나의 목소리.

내가 고개를 들려는데 갑자기 칼비나가 침대로 점프했다.

“꺅!”

맨 아래 나, 중간에는 아멜리아, 그리고 칼비나 순으로 우리들은 겹쳐졌다.

칼비나는 아멜리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뺨에 입을 맞추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동생이라도 아멜리아는 양보 못 해!”

“……칼비나 아가씨! 갑자기 그렇게 뛰어들면 리젠 도련님이 다칠지도 모르잖아요!”

아멜리아가 정색했지만 사실 아니다.

칼비나가 요란하게 뛰어드는 것 같았지만 우리들을 깔아뭉개기 직전에 발끝으로 침대를 눌러서 체중을 다 싣지 않았다.

사실 지금 장난치는 거고.

“히이잉. 아멜리아는 나한테만 야단쳐! 리젠만 예뻐하고!”

칼비나는 우는 시늉을 하면서 아멜리아의 머리에 이마를 대고는 도리질을 쳤다.

아멜리아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팔 나은 지 얼마 안 되셨잖아요. 그렇게 무리하면 못 써요!”

“아멜리아가 정성스럽게 간호해 주던 내 좋은 청춘은 어디 갔나?”

“그거야 화생방 훈련 속으로 사라졌죠.”

“……그냥 전역할까? 전역하고 아멜리아와 결혼해 버릴까?”

칼비나가 웃으면서 농담을 던졌다.

뭐 이렇게 셋이 포개져서 농담하고 있으니 즐겁다.

그런데 그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칼비나, 데리러 가서는…… 니들 뭐하는 거냐.”

들어온 건 리브라타의 장남, 로데릭이었다.

근엄한 장남은 침대에 겹쳐진 우리 세 사람을 보고는 어이없어했다.

“아멜리아가 힘들어한다. 니들 장난이 너무 지나쳐.”

“아냐! 엄마는 우리들을 너무 좋아하는걸!”

“그렇지! 아멜리아 엄마는 모두의 것!”

“이 녀석들아. 아멜리아는 아직 결혼도 안 했어. 그런데 자꾸 그렇게 놀리면 혼삿길이…….”

로데릭이 근엄하게 타이르자 우리 남매는 홱 돌아보았다.

“로데릭 오빠는 아멜리아가 이상한 새끼랑 결혼하면 좋겠어?”

“내가 형에게 이렇게 실망하게 될 줄은 몰랐어. 어떻게 엄마보고 결혼하라고 하지!”

“……으음.”

로데릭은 말끝을 흐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아멜리아는 우리 3남매를 아기 때부터 업어 키웠다.

장남, 로데릭에게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러자 아멜리아는 나와 칼비나를 나무랐다.

“도련님, 아가씨. 로데릭 도련님이 곤란해하시잖아요. 그리고 침대 시트가 구겨졌어요.”

“알았어요. 일어납시다.”

“히잉, 아멜리아가 때렸어.”

칼비나는 우는 시늉을 하면서도 일어나서는 아멜리아를 거들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내 동생, 2시간 뒤에 원탁회의가 시작되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제부터 로데릭 오빠와 밀담 타임?”

“그야 뭐, 따라와 보시면 됩니다.”

“각 가문에서는 두 명씩만 참석 가능하잖아. 난 제국군이기도 하니까 불참인데?”

“그거 말인데, 칼비나. 리젠하고 이야기한 다음에 다시 말하마.”

로데릭이 나를 돌아보았다.

“좀 긴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

원탁회의.

12가문에서 각자 두 명씩 참가해서 2대 황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다.

이런 회의가 하루 만에 끝날 리가 없다.

보통 일정은 4박 5일.

내 제안에 따라서 특별히 황성에서 열리게 되었고.

그리고 각 가문의 대표들이 이제 황성에 모두 모였다.

“앞으로 2시간 뒤면 원탁회의 1일 차가 시작되네요.”

“그것 말인데…….”

로데릭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로시 자작이라는 자가 말을 전해 왔다. 귀족원은 안에서 원탁회의를 망칠 작정이다.”

“그야 그렇겠죠.”

내가 태연하자 로데릭은 깜짝 놀랐다.

“예상한 거냐?”

“제가 올해로 원탁회의를 끝내겠다고 했으니 일종의 출마 선언, 제가 황제가 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일 게 뻔합니다. 그러니 12가문 안에서도 나를 새삼스레 아니꼽게 볼 겁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말했다.

“특히 12가문의 4강. 레오가, 타루스, 아리에드, 스코피오가 문제죠. 아리에드는 쿠데타 실패로 세력이 확 꺾였고, 스코피오는 가주인 월레스가 일단 제 아래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남은 건 레오가와 타루스, 이번 원탁회의에서 이 둘만 꺾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

“이번 원탁회의가 무산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 두 가문에 힘을 실어 주겠죠.”

나는 테이블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100년 동안 황제가 없었습니다. 황제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겠지만, 반대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아요. 특히 귀족원은 강제적인 결정권이 없는 애매모호한 집단, 강력한 실권인 황제가 출현하는 건 달갑지 않겠죠. 사실…….”

나는 계속 말했다.

“사실 귀족원은 황제보다는 황후들, 구체적으로는 이종족의 통치를 바랄 겁니다. 보통 이종족들은 자기 근방의 귀족들에게 큰 신경을 안 쓰는 편이니까요. 가령 우리 리브라타도 명목상으로는 엘프의 통치 영역이었지만 간섭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잖아요?”

“……으으음.”

로데릭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리젠, 새삼스럽지만 네 안목과 통찰은 정말로 놀랍구나.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

“에이, 이거야 뭐…….”

내가 황제 시절에는 전쟁과 정치로 평생을 살았으니까.

나는 상황을 말했다.

“케드릭과 아리에드는 세가 꺾였고, 사지타리와 스코피오는 우리 편, 다른 다섯 가문을 설득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저와 형님이 레오가와 타루스를 처리하면 됩니다.”

“문제는 레오가와 타루스도 귀족원의 사주를 받았다면 원탁회의를 망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을 거다. 리젠,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참고 인내하면서 일을 진행하자.”

“저야 늘 얌전하죠.”

내가 웃으면서 말해도 로데릭은 진지했다.

“황성에 들어온 레오가의 차남이 악질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회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일이 엉키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귀족원이 노리는 것도 그거일 거다.”

“제가 애도 아닌데 뭘 그리 걱정을…….”

“도련님!”

헐레벌떡 뛰어온 가룰이 목소리를 높였다.

“얼른 와 보셔야겠습니다!”

나와 로데릭은 바로 이동했다.

가룰이 워낙 서둘러서 제대로 상황 설명도 듣지 못했다.

황성의 정원 길.

장미꽃이 만발한 가운데 칼비나와 아멜리아가 서 있었다.

일단의 무리들과 대치한 상황.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도련님, 칼비나 아가씨 좀 말려 주세요.”

나를 돌아본 아멜리아가 간절하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려던 나는 멈칫했다.

멀쩡했던 아멜리아의 옷소매가 길게 찢어져서 하얀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칼비나는 나와 로데릭이 와도 한마디도 안 하고 상대만 노려보고 있고.

쾌활하며 넉살 좋던 칼비나답지 않았다.

상대, 처음 보는 인간 남자와 기사 열 명이었다.

곱슬머리 남자, 입가가 비틀린 게 성격이 고약해 보였다.

나는 상황을 짐작하면서도 일단 확인했다.

“가룰, 무슨 일이냐?”

“그게 저기…….”

가룰이 내 눈치를 보는데, 칼비나가 으르렁거렸다.

“리젠, 아멜리아 데리고 돌아가. 지금 이건 내 독단이야. 난 원탁회의 참가자도 아니니까. 그냥 휴가 나온 제국군이 황성에서 사고 친 걸로 처리할 수 있어.”

“인원이 늘었네? 남자 놈들은 필요 없는데?”

상대 남자 놈이 입을 열었다.

내 옆에 선 로데릭이 나직하게 말했다.

“레오가의 차남, 트로이 님 아니십니까?”

“그래, 떨거지 리브라타에서도 날 알아보는 놈이 좀 나왔군.”

아까 로데릭이 주의하라고 했던 놈이다.

로데릭은 굳은 표정으로 우리 둘의 어깨를 잡았다.

오빠이자 형으로서, 자기가 정리할 테니 잠자코 있으라고.

빡 돌아 버린 칼비나도 몸에서 힘을 뺐다.

“곧 원탁회의가 시작될 텐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회의 시작 전에 시간이 남고 심심하잖아. 그래서 저 수인 메이드를 방으로 데려가려는데 저렇게 화내네.”

“…….”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트로이가 가리키는 메이드는 바로 아멜리아였다.

……그러니까 아멜리아를 자기 방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고?

찢어진 옷소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어린애도 안다.

“아, 음. 형?”

나는 내 어깨를 잡은 로데릭의 손을 툭툭 쳤다.

“이거 그냥 못 넘어가겠는데?”

“리젠, 상대는 레오가의 차남이다. 내가 잘 돌려보낼 테니 맡겨라. 원탁회의가 코앞인데 이런 일로 망칠 수는 없어. 이건 저들의 노림수야.”

로데릭은 나에게 속삭였다.

“이런 고개 숙이는 일은 나에게 맡겨도 된다. 너는 물러나서…….”

“형이 뭘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

“오빠가 그러면 나 미쳐 버린다?”

칼비나도 평소와 다르게 정색했다.

그러자 트로이가 이죽거렸다.

“지루한 회의 전에 심심풀이가 필요하지. 수인은 침대 깔개로 딱 좋다고. 네놈들이 부르기에 와 줬는데, 이 정도 서비스는 해 줘야지.”

으드득.

칼비나도, 나도 아니었다.

내 옆의 로데릭이 이를 가는 소리였다.

폭발 직전의 돌덩어리.

동생들을 말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참는 거지, 로데릭도 꼭지가 돌아 버리기 직전이었다.

“아, 그래, 그러시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더 재미있는 오락거리를 마련해 줄게.”

“뭐?”

“응, 재미있을 거다.”

나는 옆을 돌아보며 불렀다.

“칼비나.”

“왜, 참으라고?”

“칼 뽑지 말고 죽이지만 마.”

칼비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를 기다리는 치타처럼 눈을 번뜩거리면서.

로데릭이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리젠, 말했지만…….”

“상대가 이딴 식으로 나오는데 우리가 참을 필요 없습니다. 사후 처리할 방법이야 제가 생각해 뒀고요.”

“……정말로 괜찮겠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 원탁에 저딴 새끼 앉힐 자리 없습니다. 정리해 둡시다.”

세상없어도.

엄마 건드리면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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