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14)
두 개의 밀담
오드벨의 대답에 나는 이마를 눌렀다.
“네놈 머리면 내가 은밀하게 일 진행하는 걸 알 텐데. 근데 내가 황제 안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멋대로 유언비어를 살포하셨다?”
“폐하를 향한 충심이었습니다!”
“아오, 이 뱀 새끼. 진짜 징그럽네.”
나, 시릭은 죽기 전에 황제를 관두고 싶어 했다.
오드벨은 내가 또 양위 소리 꺼내기 전에 막겠다고 선수 친 것이다.
오드벨은 힘차게 대답했다.
“영광입니다.”
“칭찬 아니야!”
나는 염동력으로 벽장에 박혀 있던 책, 열댓 권을 꺼냈다.
그러고는 머리를 박고 있는 오드벨의 머리와 엉덩이 위에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시간 잰다.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이 상황에서 저런 소리면 보통 아첨인데 이놈은 진심이다.
나는 일단 정황부터 확인했다.
“내 정체는 누구에게 들었냐?”
“혼자 추리했습니다.”
둘러대기?
아니, 오드벨은 침묵할지언정 나한테 거짓말은 안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봐.”
“제국군과 헌병대, 중앙경찰, 그리고 세 황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분은 시릭 카라카스 폐하밖에 없습니다.”
“그게 끝?”
“최근 은밀하게 알아본 결과, 아르센과 레릭이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 합니다. 헌병대와 제국군이 부득이하게 작전 활동을 같이 하더라도 양쪽의 수장이 동시에 기분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만한 필연, 즉 돌아온 폐하를 모시니 입이 찢어지는 겁니다.”
“또?”
“황성 안에서 폭탄이 터지는 건 후궁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는 건 시릭 폐하밖에 없습니다.”
정보들을 맞춰 보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오드벨이 머리가 좋고, 나 관련으로는 사람이 달라지니 가능한 일이겠지만.
한데 오드벨이 계속 술술 말했다.
몹시 기쁜 목소리.
자기가 이러이러해서 알아본 걸 칭찬해 달라고.
“사실 저도 긴가민가했습니다. 엘프들은 환생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진 않습니다만. 제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도 없고, 또 너무 솔깃해서요. 그래서 검증을 거치려고 한 겁니다.”
“다 보는 앞에서 나에게 환생했냐고 물어보는 게 검증이냐?”
“별로 놀라지도 않고 둘러대지 않으셨습니까? 제위에 대한 야심이 있으시면 그렇게 못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뭔가 하나 더 얻으려고 할 겁니다.”
머리를 계속 박고 있던 오드벨이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
문과에다가 엘프인 이놈은 육체 고통에 취약하다.
하지만 쏟아 내는 말은 멈추지 않았다.
“가령, 시릭 폐하를 존경하고 그분의 환생은 아니지만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쁘다, 뭐 그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리젠 리브라타라는 인물은 말을 잘한다는 평판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
“하지만 폐하께서는 그 화제가 진저리가 난다는 것처럼, 싹 몸을 빼셨습니다. 양위하려고 하셨던 분이니 제 발이 저리신 거죠.”
아까 질문은 견제구.
내 반응까지 보고 완전히 확신을 얻으셨단 거네.
“기뻐? 내가 발 저린 거 보니 기쁘고 황홀해? 좋겠다? 나 엿 먹여서 좋아?”
“폐하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기쁩니다! 헉, 허어억…….”
오드벨이 다 죽어 가는 소리를 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내 아내 오빠라서 진짜 콱 죽여 버릴 수도 없고.”
오드벨은 6황후인 엘프의 공주님, 정령무희(精靈舞姬)의 오빠다.
즉, 사적으로는 처남이지.
내 속도 모르고 오드벨은 필사적으로 말했다.
“폐하! 폐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는 언제라도 자결하겠습니다! 헉, 허어억. 폐하의 충신, 제국의 충신이라면 목숨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법입니다!”
“유서에 내 이름 쓰고 자살해.”
“이미 써 놨습니다. 보시겠습니까?”
“…….”
놈은 머리를 박은 채로 품을 뒤지려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책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난리도 아니다.
나는 염동력으로 책들을 치워 주고는 말했다.
“야, 그냥 일어나.”
“헉, 허어어억. 폐하의 노여움이 풀리실 때까지 계속하겠습니다.”
“용서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일어나.”
“…….”
오드벨이 일어나서는 나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보았다.
얼굴이 먼지투성이인데 털 생각도 안 하고.
나는 딱 잘라서 말했다.
“황명이다. 너, 내 허락도 구하지 않고 한 번만 더 이딴 일 벌였다가는 나 황제 안 한다.”
“폐하! 어찌 신하와 백성들을 저버리시려고 합니까! 저희들은 폐하의 지도력이 없으면 그저 한낱 길 잃은 양일 따름입니다!”
“그럼 다들 알아서 풀 뜯어 먹고 살겠네.”
“폐하! 폐하가 없으신 100년 동안 저희들은…….”
“나 없이 1,000년 더 해 볼래?”
오드벨이 비통하게 외쳤지만 나는 눈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이놈은 저질러 놓고 묵비권을 행사하고, 여차하면 자기 목을 바치면 된다는 놈이라서.
목줄을 꽉 걸어 놔야 한다.
오드벨은 시무룩해져서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확인차 물었다.
“아까 8황후가 날 지지한다는 이야기는 뭐야? 미리 동의받은 거야?”
“아닙니다. 공갈이었습니다.”
“뭐! 거짓말이라고!”
나한테야 꼼짝 못 하지만 오드벨은 제국 행정부의 톱이자 6황후의 오빠다.
즉, 정치적인 책임이 무겁다.
이 소식을 듣고 8황후가 그런 적 없다고 부정하면? 오드벨은 단숨에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다.
그런데도 그냥, 나에게 힘을 실어 주겠다고 귀족원에서 거짓말까지 일삼은 거다.
진짜 나 관련으로는 막 저지르네.
“……너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설마 나보고 8황후 설득하라고?”
“아닙니다. 하지만 폐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왜 무리수를 뒀는데?”
“귀족원과 8황후는 최근 밀접한 관계입니다.”
오드벨이 서슴없이 말했다.
“폐하가 다시 지존의 자리에 앉으시려면 원탁회의를 거치는 게 보다 덜 소란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원탁회의를 거친다고 해도 모든 황후들이 인정을 해야 합니다. 반대로…… 단 한 명의 황후라도 반대하면 진척이 느려집니다. 귀족원도 그 정도 계산은 합니다.”
“귀족원은 2대 황제 탄생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 황후 하나를 꽉 잡아 놨고 그게 8황후다?”
“호랑이 없는 산에서는 여우가 왕, 황제가 없어도 제국만 돌아간다면 귀족들에게는 하나도 나쁠 게 없습니다.”
“…….”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내가 죽은 지 100년, 지금 귀족들의 다수는 다 내가 죽은 다음에 태어났지.
거기다가 12가문은 신흥 세력, 그중의 인간이 황제가 된다면?
가문의 세력과 역사가 더 긴 귀족들로서는 아니꼽겠지.
“8황후와 귀족들이 뭘 거래했지?”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재를 뿌렸으니 귀족들이 8황후의 의사를 다시 확인해 보겠다고 부산을 떨 겁니다. 그 뒷덜미를 잡아채면 만사 해결 아니겠습니까?”
“말은 맞다. 말은 맞는데…….”
나는 정색했다.
“넌 너무 지나쳐. 황후들은 사적으로는 내 아내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전에 나에게 보고해야 맞다. 그런데 너는 네 멋대로, 내 아내를 대뜸 정치적인 곤경에 몰아넣으려 하고 있어.”
“…….”
“아르센이나 레릭은 그냥 말을 험하게 하는 정도였는데 너는 아주 적극적이시네? 신하로서의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오드벨은 입을 다물었다.
“잔머리 계속 굴릴래? 내가 너에게 얼마나 더 실망해야 하냐? 묵비권 행사하면 내 기분 풀릴 거라고 생각하냐?”
“……죄송합니다. 원하시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뭘 어쩔 건데? 귀족들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발언들 취소하고 다닐래?”
“이럴 때를 위해서 열두 개 정도의 사회적 추문을 준비해 놨습니다. 소문은 소문으로 덮어서…….”
“그만.”
나는 딱 잘랐다.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마라. 나 더는 실망시키지 말고.”
“죄송합니다. 폐하가 돌아오신 게 너무 기뻐서, 보다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제위에 편하게 오르실 수 있게 신하인 제가 알아서 모든 준비를 착착…….”
“착착 황제 관둘까?”
“…….”
오드벨은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내 아내도 아내지만, 너도 자칫하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잖아. 누가 그러래? 가뜩이나 피곤한데 내가 너까지 걱정하고 신경 쓰고 살아야 해?”
“폐하! 소신은 폐하를 위해서 이 한목숨, 얼마든지…….”
“집어치우고 몸 건강히 오래오래 살아. 뭐 입만 열면 매번 목숨, 목숨 거려.”
나는 투덜거렸다.
오드벨도 나와 함께 칠죄신과 맞선 전우였다.
사적으로는 처남인 이 남자는 동족인 엘프들을 설득해서, 제국군에게 합류하게 만들고 많은 공을 세웠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귀족원과 8황후의 연결 고리, 확인하고 나에게 동향 보고해.”
“예! 은밀하게! 막힘없이!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원탁회의 정리하려고 한다. 뭐 주의 사항이라도 있냐?”
오드벨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떻게 정리하실 작정입니까?”
“무력, 칼로 한판 뜨자고 할 거다.”
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12가문 안에 칠죄신의 사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런 판을 벌이면 당연히 뛰쳐나오겠지.”
“의심스러운 곳이라도 있습니까?”
“리브라타는 아니고. 케드릭과 사지타리, 아리에드, 스코피오도 아니라고 봐야지.”
리브라타야 내 가문이고, 뒤의 넷은 내가 깨트리거나 회유한 가문이다.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말했다.
“사도가 인간, 가주거나 그 대통을 이을 놈이라고 봐야 해.”
“왜 그렇습니까?”
“사도 디에르크가 이미 사지타리에 잠복해 있었으니까.”
음모만 꾸밀 거라면 디에르크 하나로 충분했다.
나는 정리했다.
“너도 알 거다. 일련의 사태, 크로셀 후작의 반역부터 제국 철도, 그리고 황도의 온갖 소동들이 촘촘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걸.”
“예.”
“사도 디에르크는 제국군의 폭탄을 빼돌리고, 자기 단말로 황도를 장악한다. 사도 토구로는 쿠데타를 부추겨서 계엄을 선포하고 무력을 장악한다. 그리고 이 혼란 속이라면 2대 황제를 바라는 열기가 확 뜨거워진다. 그때 원탁회의가 열리면?”
“아, 그러면…….”
“그래, 자기들이 미는 인간을 2대 황제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테러범들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즉, 12가문의 가주거나 적장자. 여차할 경우에 2대 황제를 노릴 수 있는 녀석이 바로 사도다.”
오드벨은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될 겁니다. 폐하가 계시니까요.”
“그래, 내가 돌아왔으니까.”
“……폐하! 정말 잘 돌아오셨습니다!”
오드벨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제 딴에는 북받친 모양인데, 나는 민망하다.
나는 이야기를 돌렸다.
“아까 토끼 같은 마누라와 여우 같은 마누라 있다고? 혹시 결혼했냐?”
“아닙니다. 독신입니다.”
“……그런데 왜 그딴 소리를 했는데?”
“폐하가 맞는지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폐하는 기혼자에게 관대하시니까요.”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그래, 그러셨어? 유부남 놀려 보겠다고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하셨어?”
웃음이 나오네.
웃음이 나와!
오드벨이 비장하게 말했다.
“폐하가 말씀하시면 당장이라도 결혼하겠습니다. 저 좋다는 여자들은 행정부에 많습니다. 그중 원하시는 여자와 결혼하겠습니다.”
“니가 결혼하는데 내가 왜 골라?”
“레릭에게는 여자를 몇 번이나 소개해 주셨잖습니까?”
“…….”
뭔 소리야.
한데 오드벨의 표정이 불퉁했다.
나는 기가 막혀서 물었다.
“폐하는 레릭에게는 몸소 소개팅까지 시켜 주는데 나한테는 왜 아무것도 없을까? 삐졌어? 그걸로 황제 폐하의 총애 다툼이야?”
“그냥…… 좀, 매우, 몹시, 많이 섭섭했습니다.”
“야, 뭔 소리야. 넌 입 다물고 내 이야기만 안 하면 주변에 여자 많잖아.”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폐하가 소개시켜 주는 게 부러워 죽겠는데.”
“…….”
머리가 핑 돈다.
이놈도 엘프니까 미남, 차가운 도시 남자 스타일이다.
냉미남 상사가 쿨하고 묵묵하게 일만 하고 있으면 여직원 사이에서 인기 만발이겠지.
내 옆에만 오면 맛이 가지만.
나는 이마를 누르고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난 신하 복이 없어. 아르센이 그나마 멀쩡하다는 게 슬프다.”
“아르센이 결혼했다고 총애하시는 겁니까? 저도 오늘 당장 할 수 있습니다!”
“아르센이 이혼해도 넌 총애 안 해, 머리 박아.”
“예!”
오드벨은 기뻐하면서 다시 머리를 박았다.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너도 레릭처럼 나한테 혼나는 게 좋냐? 그래서 지금 싱글벙글이야?”
“만백성의 아버지인 폐하가 저를 아껴서 꾸짖어 주시는데 기쁜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
난 슬프다.
이런 놈을 재상이라고 믿고 써야 한다니.
황제 살려.
* * *
밀실.
제국의 쟁쟁한 귀족들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거 일이 아주 골치 아프게 됐구려. 설마 올해로 원탁회의를 끝내겠다니.”
“……만약 2대 황제가 탄생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려울 겁니다. 원탁회의는 100년이나 무산되지 않았습니까?”
“상황이 다릅니다. 리젠 리브라타는 황후들의 대리인이라고 봐야 해요. 즉, 수인과 다크엘프, 천족의 황후들이 하나로 뭉쳤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역시 리젠 리브라타가 2대 황제가 되는 겁니까?”
“우리에겐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황제는 시릭 카라카스, 그분 하나로 족합니다.”
“암요. 이제 와서 황제라니. 거기다가 12가문들은 다들 근본도 없는 것들 아닙니까?”
12가문들은 초대 황제가 유언장으로 지목한 가문들이었다.
나름 세력이 있는 가문들도 있었으나, 다수가 신흥 가문이었다.
당장 귀족원의 거물만 해도 12가문의 네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아리에드나 스코피오보다 훨씬 더 강했다.
“안 될 말이죠. 차라리 황자, 황녀들을 새 황제로 모신다면 모를까. 고작 100년도 안 된 뜨내기들을 황제로 모시고 고개를 숙이라니.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하겠소이다.”
“12가문이라고 해 봐야 유언받고 나대는 벼락귀족 아닙니까.”
“너무 걱정들 하지 마세요. 2대 황제가 탄생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다른 황후 네 분이 분명히 반대를…….”
“그게 그렇지도 않습니다.”
정적.
노인, 토비우스 공작의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토비우스는 귀족원 안에서도 거물로 대접받고 있었다.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일이 벌어질까 봐, 귀족원의 여러분들이 상당히 많은 일들을 해 왔습니다. 물론 아주 큰일은 아닙니다만.”
“아…….”
눈치챈 이들이 숨을 죽였다.
방금 발언, 원탁회의가 결론을 내지 못하게 배후 공작이 있었다는 것 아닌가?
어렵지 않은 일이다.
12가문, 그중에서 유력한 이가 있다면 반대 파벌에 힘을 실어 주면 되니까.
토비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젊은이, 리젠 리브라타는 기세가 정말 심상치가 않아요. 12가문의 4대 공왕이라고 불리는 네 유력 가문, 아리에드를 파괴하고 스코피오를 포섭했습니다.”
“그럼 남은 둘이 있잖습니까? 레오가와 타루스 말입니다.”
“그것도 물론 하겠지만, 궁극적인 문제는 황후 폐하들입니다.”
토비우스가 느릿하게 말했다.
“황후 중 한 분이라도 저희와 뜻을 같이해 주시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4황후는 군부에 몸담으셨고, 6황후는 정령수에 머무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7황후는 만나 뵙기도 어려우니…… 결국 8황후와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지만 오드벨이 굳이 8황후를 짚어서 이야기했다는 건, 그도 알고 있단 이야기입니다.”
토비우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리젠 리브라타, 세 명의 황후, 그리고 재상 오드벨은 이미 한배를 탔어요. 그렇게 생각 안 하면 우리가 당합니다.”
다들 마른침을 삼켰다.
젊은 귀족이 성급하게 말했다.
“그럼 방법이 없습니까? 저희는 그냥 앉아서, 신출내기 귀족이 황제가 되는 걸 지켜봐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토비우스가 노회한 웃음을 지었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그놈의 원탁회의를 망칠 겁니다.”
“어, 어떻게 말입니까?”
“가장 확실한 건 12가문의 하나를 불참시키는 거지만 그건 선례가 없죠. 그러니 참가하게 하고 안에서 망치겠습니다.”
여귀족이 은근하게 물었다.
“그러면 레오가나 타루스를 움직이실 겁니까?”
“꼴찌였던 리브라타가 갑자기 턱밑까지 치고 들어오면 1, 2위를 다투던 두 가문도 심기가 불편하겠죠. 그리고…… 레오가의 차남은 철없는 망나니라 유명하더군요.”
토비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서 소동을 벌이고, 밖에서 끝내면 됩니다. 이번 원탁회의는 제대로 열리지도 못할 겁니다.”
“밖이라면…….”
“8황후 전하에게 연락을 해야죠. 그분이 다 알아서 정리해 주실 겁니다.”
토비우스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8황후.
마령화비(魔令化妃)는 반드시 움직여서.
원탁회의를 막아 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