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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11화 (110/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11)

Never, Ever!

황성의 전투가 끝났다.

제국군이 황성을 점령하고 지원사령부를 제압했다.

남은 지원사령부의 4만 대군이 있었으나, 카마엘의 죽음에 대한 경위를 적당히 알리고 관대한 처분을 약속하니 항복했다.

여차하면 중앙군과 붙어야 하니, 승산이 없으니까.

이어서 지원사령부 조직의 무장을 해체하고, 조직 관리에 들어갔다.

자, 무력으로 상황 정리는 끝?

하지만…… 경제가 망했다.

내가 제국군의 쿠데타를 막을 때까지는 그나마 민심이 괜찮았는데.

황성에서 난리가 난 순간,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동요했다.

랑에이 효과?

이젠 랑에이가 있는데도 황성 전투가 벌어졌다고, 역효과가 나 버렸다.

백성들은 사재기를 하고, 각종 생필품의 물가가 치솟았다.

가게가 문을 닫고, 황도의 시민들 일부는 지방으로 피난을 가기도 했다.

이 혼란 속에서 나는…….

“좋다.”

황성의 수영장.

비치 체어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맑은 하늘.

오후의 따뜻한 햇볕.

그리고 수영장 풀 안에는 리세라와 미리엘이 같이 놀고 있었다.

참으로 가족적인 광경이었다.

“이관 미레이, 지금부터 공중제비 입수를 해 보겠습니다!”

“…….”

어느새 리세라, 미리엘과 반쯤 친구 먹은 미레이만 빼면.

미레이는 풀장 가장자리에서 풀쩍 뛰더니만 공중 2회전을 하고 수영장에 풍덩 빠졌다.

“와아아.”

미리엘은 무척 신기한 걸 봤단 것처럼, 손뼉을 짝짝 치고 있었다.

……내가 아까 공중 7회전을 보여 줄 때는 안 저랬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죠…….”

내 옆의 의자에 앉은 렌시엘이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느긋하게 말했다.

“이런 좋은 날에 햇볕 쬐면서 노는데 왜 그래? 웃어.”

“당신, 정말…….”

렌시엘이 나를 흘겨보았다.

며칠 밤을 새우면서 끙끙대기에 내가 억지로 데려온 거다.

나는 가볍게 말했다.

“이건 누가 와도 해결 못 해.”

“예?”

“사실 이제까지 황도 주민들이 용하게 버틴 거지. 테러가 몇 건이야? 쿠데타도 모자라서 황성에서 전투까지 벌어졌어. 그것도 황후가 셋이나 있는 마당에.”

나는 가볍게 말했다.

“황후들이 국정 운영에 실패했다, 뭐 그런 소리 들어도 할 말 없지.”

“그,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요? 우리가 물러나고 당신이…….”

“그건 더 안 되지.”

나를 기억하는 이종족들, 내 측근들은 어찌어찌 믿게 한다고 치자.

갑자기 이상한 인간 귀족이 자기가 환생한 시릭이라고 한다면 일반 백성들이 곧이곧대로 믿겠나?

혼란만 가중된다.

나는 가볍게 말했다.

“뭐 어려운 시기다. 그냥 꾹 참고 버틸 수밖에 없어. 일단 제국군을 단계별로 황도 밖으로 보내고 있으니까. 우리가 계엄 선포를 할 마음이 없다는 걸 보여 줘야지.”

“그리고요?”

“황도를 정리하는 일은 일견 끝난 것 같지만…… 사실 아니야. 귀족들의 사병, 기사들이 남아 있지. 행정 문제도 있고. 사법 문제도 있네? 거기다가 12가문 안에 사도도 있어.”

“마지막은 정말 못 믿겠지만요.”

“믿어.”

토구로는 오크, 거짓말은 안 한다.

12가문 안에 사도, 칠죄신의 종복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건데요?”

“그야 튀어나오게 무대를 세팅해서…….”

나는 말하면서 렌시엘을 돌아보았다가 멈칫했다.

홀터넥 타입의 검은 비키니, 수영복이 하얀 피부와 잘 어울린다.

원래 렌시엘은 노출을 자제하는 편인데, 오늘따라 대담하다.

“…….”

내 시선에 렌시엘은 얼굴을 붉히는가 싶더니만…… 날개를 들어서 가렸다.

내 상반신을.

“……미리엘이 보잖아요.”

아니, 자길 가려야지. 왜 날 덮는데?

날개로 가려 줬으니 마음껏 보란 건가?

애당초 천족이 이렇게 날개로 감싸 주는 건 배우자나 자식에게만 해 주는 일이다.

누가 보면 크게 오해한다.

“애들이 더 이상하게 본다. 그리고 더워.”

“…….”

내가 날개를 치우자 렌시엘은 눈을 내리깔고는 침묵했다.

서운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화제를 돌렸다.

“계속 미뤄졌던 회의, 12가문이 모두 모이는 원탁회의를 소집하고 사도가 튀어나오게 만든다. 그리고 때려잡는다.”

“그러고 보니…… 모레 귀족원이 모이기로 했는데요.”

“그래?”

내가 월레스와 다르갈, 로데릭과 알리시아에게 시킨 일이다.

제국 안에는 각종 세력이 있는데, 귀족원도 그중 하나였다.

렌시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귀족원과 막내가 접촉한 것 같아요.”

“8황후가?”

“예, 아무래도 귀족원에서 8황후를 끌어들이려는 것 같은데요.”

나는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8황후와 접촉할 수 있냐?”

“당장은 무리일걸요. 예전부터 우리와 만나는 것도 꺼려해서…….”

“그럼 만나지 말자. 귀족원에 붙으라고 해.”

나는 하품을 했다.

렌시엘이 깜짝 놀랐다.

“예?”

“둘이 뭉치게 한 다음에 한 번에 박살 내는 게 정리가 편해.”

“너, 너무 막무가내잖아요.”

“적들도 막무가내잖아. 그럼 나는 더 막무가내로 쓸어버리는 수밖에.”

“수습하는 건 저라고요.”

렌시엘이 투정을 부리자 나는 담백하게 말했다.

“내가 옆에 있잖아? 뭐가 더 필요한데?”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렌시엘은 말끝을 흐리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엄청 기뻐 보이네.

렌시엘은 내 시선을 피하면서 말을 돌렸다.

“미리엘에게는 언제 알려 줄 거예요?”

“……그건 모르겠네. 설명하기 복잡하잖아. 솔직히 영원히 덮어 버릴까 생각도 하는데.”

“그건 안 돼요.”

렌시엘이 날카롭게 말했다.

“애한테 아빠가 돌아왔다고 알려 줘야죠.”

“아니, 거…… 복잡하다니까.”

“언젠간 알려 줘야 해요. 예?”

렌시엘은 내 손목을 꼭 잡고는 다그쳤다.

그녀답지 않게 감정적인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았어. 안 도망간다. 손 놔.”

“…….”

“애들이 보잖아. 목소리 높이면 걱정한다.”

내가 거듭 말하자 렌시엘은 손을 놓고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나를 계속 흘끔거리는 눈초리.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너, 그리고 객실에 사람 좀 빼라. 날 24시간 감시할 생각이냐?”

“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잖아요.”

“이러다가 노이로제가 생기는 건 확실해요, 이 여자야.”

황성에서 어딜 가나 시선이 따라붙는다.

보나 마나 렌시엘이 나를 철저히 감시(?)하라고 밀명을 내려 둔 거겠지.

나는 턱을 괴고는 말했다.

“어디 훌쩍 안 간다. 알았냐?”

“……진짜죠?”

“그래. 그러니까…….”

내가 대답하려는데 미리엘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지친 얼굴.

렌시엘은 얼른 일어나서는 미리엘을 반겨 주었다.

“미리엘, 잘 놀았나요?”

“예, 졸려요. 어머니.”

“그럼 같이 좀 쉬러 갈까요?”

렌시엘은 말하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어딜 같이 가.

나는 눈짓으로 거부했지만 미리엘은 나를 빤히 보았다.

“아저씨는 안 자요?”

“……아, 이미 충분히 잤거든.”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미리엘은 기특하게도 머리를 숙여 보였다.

렌시엘은 나에게 눈짓으로 인사한 다음에 가 버렸다.

자기 딸을 아끼는 여자니까.

“후우.”

내가 한숨을 돌리는데 리세라가 다가왔다.

풀장 가장자리를 혼자 걸어서.

내가 깜짝 놀라서 맞아 주려는데…… 리세라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전보다 많이 보이는걸요. 선명하게 초점이 잡히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는요.”

“아니, 그래도 조심해야지. 수영장은 물기도 많고 미끄러운데. 뭐라도 밟으면 큰일 나.”

내가 안절부절못하자 리세라는 쿡쿡 웃었다.

“정말 아버지는 우리들에게는 사람이 달라지시네요.”

“세상 모든 아빠가 다 그래.”

“렌시엘 어머니와는 잘 대화하셨어요?”

“그래.”

내 대답에 리세라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세 분이 알게 되셨네요.”

“그래, 음…….”

리세라가 입에 담고 싶어 하는 말이 뭔지 알겠다.

나는 리세라의 양손을 잡고는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건,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들은 내 자식이다.”

“……감사해요.”

리세라는 멈칫하다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리세라는 황후들 전부가 내 정체를 알게 되면, 다시 한 가족으로 지낼 수 있냐고 묻고 싶은 거겠지.

나와 아내들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니, 또 내 심경을 헤아려서 직접 묻는 걸 삼가는 거다.

정말 잘 자란 딸이다.

리세라는 더는 말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둘째 언니도 곧 황도에 도착하신다고 했어요.”

“둘째가?”

나와 랑에이 사이에서 나온 딸, 차녀다.

랑에이가 아무 말도 없었는데?

내가 의아하게 보자 리세라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좀 말씀드리기 곤란한데…… 당분간 모른 척해 주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제가 설명하면 오해하실 것 같아요.”

리세라가 거듭 부탁하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둘째가 온다니 기쁘다.

얼른 만나고 싶군!

리세라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저랑 같이 언니랑 책이라도 읽으실래요? 언니도 요즘 엘프 문자를 공부하고 있어서요.”

“음, 난 그냥 여기서 더 놀게.”

렌시엘에게 양보해야지.

렌시엘은 그동안 미리엘을 걱정하다가 이제야 재회했다.

당분간 어머니와 딸, 둘이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하고 싶었다.

리세라는 그런 나를 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역시 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에요.”

“마구 놀아서?”

“저한테는 둘러대지 않으셔도 돼요.”

리세라는 웃으면서 고개를 젓고는 돌아섰다.

“그럼 이만 돌아갈게요. 푹 쉬세요.”

“그래.”

리세라도 간다.

나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음, 사실 나도 미리엘의 옆에서 책을 읽어 주고 간지럼을 태우고, 장난치고 싶긴 한데…….

“다 끝나면 할 수 있으려나.”

아내와의 관계는 둘째 치고.

자식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회복해야지.

둘째 딸이 온다니 만나 봐야겠군.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특관님! 이거 보세요!”

“…….”

마지막까지 남은 미레이가 풀 안에서 한쪽 다리를 수직으로 들어 올려 보였다.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내가 어이없어하는데 미레이는 연신 포즈를 취해 보이더니만, 풀 밖으로 올라왔다.

“어때요? 저 잘하죠?”

“그래…….”

얜 진짜 넉살이 좋네.

이젠 미리엘과 리세라와 완전히 친구처럼 놀고 있었다.

뭐 애들에게도 친구가 필요하니 잘된 일이지만.

미레이가 양손을 배 앞에 모으더니 말했다.

“다들 가 버리고 우리 둘뿐이네요…….”

“너도 가라.”

“왜요! 오늘 같은 날에는 종일 놀아야죠! 저 아직 몸이 덜 풀렸다고요!”

말만이 아니라 내 손까지 잡고 투정을 부린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면서 산책 1시간 더 하자는 것 같아.

얜 엘프인데 친화력이 뭐 이러냐.

내가 어이없어하는데 미레이는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후후후. 알고 있어요. 특관님, 제 수영복에 말문이 막히신 거죠?”

“난 기가 막히고 넌 귀가 막혔네.”

“같이 놀아 주시면 계속 봐도 되는데요! 계속 밖에만 계셨잖아요! 어, 혹시 수영 못 하시는 거 아니에요?”

딴에는 도발이라고 하나 본데.

내 손을 계속 흔들면서 보채는 게 웃기기도 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세상에, 미레이가 귀여워 보이다니. 이게 수영장 매직인가?

나는 대충 말했다.

“나랑 놀고 싶으면 수영장에 10분 이상 잠수해 봐라.”

“진짜요? 진짜죠? 야호!”

“그래, 얼른 해 봐.”

10분 이상 하면 전설이다.

미레이는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였다.

“이관 미레이! 지금부터 잠수를 시도합니다! 시간 제대로 재 주세요!”

“그래.”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미레이는 숨을 잔뜩 마시더니 풀장에 뛰어들었다.

이제 나도 낮잠이나 자러 갈까?

내가 기지개를 켜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멜리우스와 가룰, 하인켈과 월레스였다.

“주군, 돌아가십니까?”

“너희들은 다 무슨 일이냐?”

“누가 가장 물에서 빠른지 내기하기로 했소이다.”

월레스가 말했다.

다른 셋은 젊은데 이 인간 남성은 노인이었다.

내 시선에 월레스가 호탕하게 말했다.

“육지에서는 몰라도 물에서는 어린것들에게 지지 않습니다. 돈을 건다면 저에게 거시죠.”

다들 황성에 손님 자격으로 초대받았으니 쓰는 거야 상관없는데.

뭐 딸들도 돌아갔으니 괜한 사고는 없겠지.

음, 이놈들이 내 딸을 훔쳐본다거나, 수영장의 스킨십이나 뭐 그런 거.

“…….”

가능성만 생각해도 울컥하는군.

내가 이를 가는데 멜리우스가 뚱하니 말했다.

“난 남자다만.”

“웃통 깠으니까 다 알아요, 아저씨.”

“너무 진지하게 노려봐서.”

그때 풀 안에 잠수했던 미레이가 번쩍 올라왔다.

“어푸! 어푸! 특관님! 몇 분이에요!”

“1분도 안 됐다.”

“예! 진짜요? 다시 할게요!”

월레스가 미레이를 보더니 씩 웃었다.

“오, 굉장히 예쁜 엘프 아가씨로군요. 좋은 사이십니까? 응원하겠습니다.”

“난 죽음을 택하겠다!”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가룰과 멜리우스, 하인켈은 풀 안으로 들어갔는데 월레스는 남았다.

밀담이다.

“귀족들 사이에서 본부장님에 대한 수상한 시선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떻습니까?”

“뭐 2대 황제가 되고 싶어 하는 야심가라는 설이 지배적인데, 그것 말고도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주변에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많으시잖습니까?”

월레스가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

“황후 전하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

“저는 어디까지나 의견을 전달해 드리는 겁니다. 저는 아직 본부장님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럴 분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좀 이상한 판단인데? 내가 2대 황제가 될 야심을 가졌다면…… 황후가 아니라 황녀들을 노린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나?”

물론 그럴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다섯 딸, 모두 다 내 귀여운 아이들이니까.

오히려 그런 오해가 일어나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월레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귀족들은 황후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황후들은 상당히 밉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문까지 만들어 내서 음해하고 있다?”

“원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거죠. 평소에도 눈에 거슬리는 상대는 뭐든 흠을 잡고 싶어 합니다.”

나는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리젠 리브라타라는 놈이 황후들과 밤마다 추잡한 일을 하면서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그게 귀족들의 생각이라는 겁니까?”

“기분 나쁘시겠지만 지금 힘을 얻고 있습니다. 본부장님을…….”

월레스가 잠깐 눈치를 보았다.

이 화끈한 노인이 주저할 정도라면 어지간히 심한 내용.

내가 시선으로 묻자 월레스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황후들의 귀여운 애첩이라 하더군요.”

“하하하하하…….”

내가 헛웃음을 흘리자 월레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본부장님, 아니 리젠 도련님. 귀족으로서 충고드리겠습니다. 결혼을 하시죠.”

“…….”

내가 뜨악해서 입을 벌리자 월레스가 재차 말했다.

“지금 리젠 도련님 정도라면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자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결혼하면 이런 헛소문쯤은 싸그리 사라질 겁니다. 황후분들에 대한 괜한 오해도 사라질 거고요. 그게 바로 황실과 제국을 위한 길이 아니겠습니까?”

“제 결혼이 제국을 안정시키는 길이라는 겁니까?”

“사실, 도련님의 옛날 일을 들추는 이들도 상당수라서요. 진지하게 권유합니다.”

“…….”

리젠 리브라타는 과거, 임자 있는 여자만 노리다가 두들겨 맞고 다니는 또라이였다.

도덕적인 흠결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이마를 누르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나보고 결혼을 하라?”

“음,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소개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강하게 말했다.

“소문을 잠재우겠다고 결혼한다? 그래 봐야 입 터는 놈들은 계속 털걸요? 무엇보다 내가 그깟 놈들이 무서워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겁니까?”

그냥 그놈들을 지옥 불구덩이에 처넣고 말지!

내가 정색하자 월레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결혼도 해 보면 많은 장점이…….”

“으아아아아!”

“장점이…….”

“아아아악!”

내가 발작하자 월레스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했다.

“어차피 뭘 하건 이빨 깔 놈들은 계속 깝니다. 그냥 그놈들 리스트나 정리해 주세요.”

“예? 보, 본부장님.”

“모레, 귀족원 회의에 참석해서 대가리 깨겠습니다.”

결혼을 또 하느니.

네놈들을 죽여 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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