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09)
I believe
카라카스에서 마력의 급이 올라가면 색이 변한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통칭 7계위, 하지만 계위가 오른다고 반드시 강하다는 건 아니다.
같은 계위라도 계위 능력을 쓸 줄 아느냐, 마느냐로 많이 갈린다.
가령 마력은 5계위인데도 4계위 능력인 마력질주를 제대로 사용 못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걸 제대로 쓰려면 마력 컨트롤, 일종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나야 전생의 경험이 있으니 계위만 오르면 다 쓸 줄 안다만…….
토구로가 설마 6계위에 오르고, 또 6계위 능력까지 쓸 줄 알다니!
“으으음.”
나는 일단 뒤 달리기로 몸을 뺐다.
서로 마력질주를 사용하는 상황.
토구로는 그냥 정면 돌격이고, 나는 놈을 보는 그대로 뒤로 달려서 몸을 뺀다.
그래도 우리 둘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내가 좀 더 빠르고, 염동력까지 쓰니까.
“…….”
달려들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으면 보통 마음이 급해져서 헛손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토구로는 우직하게 나를 몰아세웠다.
장기전이면 뒤 달리기는 실수하게 되니까.
턱.
실제로 대각선으로 빠지던 내 발뒤꿈치에 바닥 타일이 걸렸다.
100년 전에는 없었는데, 관리를 안 한 모양이다.
아주 짧은 순간의 휘청거림. 얼른 자세를 회복했지만…….
“흐으음!”
그 순간, 토구로를 중심으로 남색 마력의 파도가 원형으로 퍼져 나갔다.
6계위 능력, 마력영역.
마력장의 강화판, 자기를 중심으로 마력을 방사한다.
사람마다 부가 효과가 다른데…….
“……윽.”
내 몸이 마비됐다.
그리고 토구로의 도끼가 내 머리를 향해서 날아온다.
나는 얼른 염동결계를 펼쳐서 막았다.
타아앙!
“…….”
몸의 제어가 돌아온 나는 급히 뒤로 빠졌다.
토구로의 마력영역은 마비다.
놈의 사정권에 들어가면…… 마력이 퍼지면서 적을 마비시키는 거다.
내 지금 정신력으로는 염동결계도 뚫린다.
추가타를 막을 수 있기야 한데…….
“전에 보던 기술이로군. 그게 황제의 각성 능력인가?”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 넌 바로 6계위냐?”
“신의 은총이시다.”
칠죄신은 종복들에게 힘을 내려 줄 수 있었다.
토구로가 6계위 능력까지 쓰는 이상, 정면 승부로는 못 이긴다.
그러면…….
나는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간다.”
휙!
나는 아까 지원사령부를 협박했던 폭렬탄을 던졌다.
토구로는 가소롭다는 미소를 띠었다.
“어리석긴!”
부우웅!
또 토구로를 중심으로 마력이 방사된다.
폭렬탄의 폭발은 마력현상, 마력영역 안에 던지면 그게 역으로 나한테 돌아온다.
이게 진짜 강자들에게는 폭탄이 안 통하는 이유다.
“……응?”
하지만 내가 던진 폭렬탄은 그냥 허공을 날았을 뿐이다.
그야 여긴 황성, 폭탄이 안 터지니까!
토구로가 기막혀하는데, 나는 이미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큭!”
내 검격을 토구로는 얼른 도끼로 막았지만, 나는 바로 놈의 발을 걷어찬 직후였다.
놈은 마력영역을 사용했다.
마력영역은 엑티브 스킬, 후딜레이가 있다.
즉, 한 번 허공에 날리게 하고 바로 요리하면 된다!
“으으음!”
토구로가 휘청거리면서도 태세를 정비하려고 하자…… 나는 확 돌면서 검으로 놈의 가슴팍을 베어 버리고는 손을 놓았다.
비검!
“크윽!”
토구로는 필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날리면서 피했다.
푸우우욱!
놈의 팔이 꿰뚫리긴 했으나 치명상은 아니다.
“흐아압!”
그리고 놈은 상처를 돌보기는커녕, 바로 나를 향해서 덤벼 왔다.
내가 빈손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뒤로 빠지면서 돌아오는 검으로 놈의 가슴팍을 찌르려고 했는데…….
부우우웅!
토구로가 갑자기 뒤를 향해서 크게 돌더니만 도끼를 휘둘렀다.
태애애앵!
나를 향해 돌아오던 비검을 정확하게 쳐 내고, 그 여세를 몰아서 다시 돌아서 내 가슴팍을 쪼개려고 한다.
“큭!”
나는 얼른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또 토구로는 마력영역을 시전했다.
부우웅!
마력이 원형으로 퍼지면서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간 순간, 또 몸에 마비가 걸린다.
태애앵!
나는 얼른 염동결계를 발동해서 도끼를 막아 냈다.
하지만 토구로는 내게 틈을 주지 않겠다고, 계속 도끼를 날리고 밀어붙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간간이 마력영역을 방사해서는 나를 마비시키고 또 쪼개려고 한다.
공격을 막고 피해도, 마력영역은 막을 방법이 없다.
마비되면 어쩔 수 없이 염동결계를 써야 하고.
정신력은 계속 깎여 나간다.
“크악!”
나는 마력질주와 염동력까지 섞어서, 벽을 차고 천장을 달려서 간신히 토구로의 맹공에서 몸을 빼냈다.
데굴데굴 구르면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검을 잡고 일어났다.
“헉, 허어억.”
정신력 낭비가 너무 심하다.
토구로도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매만지면서 씩 웃어 보였다.
“방금 공격은 대단했다. 설마 불발탄일 줄이야.”
“선입견이지.”
토구로는 전에 폭탄을 펑펑 터트리면서 나를 몰아붙였다.
내가 그걸 갚아 주려 한다고 지레짐작하고는 마력영역을 허공에 쓰게 한 다음에 밀어붙였는데.
토구로도 전에 비검이 돌아오는 거에 당한 걸 잊지 않고는 제대로 대응했다.
진짜 강하긴 강하다.
토구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황제, 다시 기회를 주마. 황좌의 검을 뽑아라.”
“아, 진짜로 지금은 못 써.”
“왜지?”
“본래 내가 쓰던 칼은 일곱 개다. 근데 하나가 부러졌고, 그다음에는 여태 침묵 중이다. 휴식하고 힘을 모으는 중이라고 하더군.”
“휴식이라고?”
“대충 그래. 그러니까 난 지금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중이다.”
토구로는 갸웃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러면 다른 사도에 대해서 말해 주마.”
“아직 싸우는 중인데 또 말해 주네?”
“사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12가문 안에 있다는 것만 안다.”
“뭐?”
나는 기겁했다.
12가문이라면 2대 황제 후보들, 인간 아닌가?
그런데 그중에 사도가 있다고?
하지만 토구로는 오크,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의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거짓말한다고는 생각 안 하는데.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냐?”
“아니, 어디의 누군지는 모르지만 12가문 안에 있는 건 확실하다.”
“…….”
하긴, 디에르크도 사지타리 가문의 장남과 결혼했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토구로가 말했다.
“그 사도는 신체지만 인간이다.”
“……확실해?”
“그래.”
디에르크처럼 변신한 것도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고?
문제가 아주 심각해지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러면 네 머리를 쪼갠 다음에 찾아봐야겠군.”
“황제, 너에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거다. 이제…….”
―난이도를 낮춰 줄까?
그 순간 토구로의 목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토구로의 눈동자가 멍해지고…… 놈의 몸에서 차원이 다른 존재감이 뿜어져 나온다.
칠죄신이다!
토구로의 몸을 빌린 놈은 웃었다.
―황제, 열심히 노력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좀 불리하군. 토구로에게 너무 능력을 줬나 봐. 너프해 줘?
“닥쳐, 미친놈아!”
나는 정색하고 받아쳤다.
이놈의 제안에 넘어가는 건 영혼을 바치는 거다.
시적인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칠죄신의 노예가 된다.
나는 칠죄신의 꼬임에 넘어가서, 영혼을 바치고 종복이 된 이들을 지긋지긋하게 봤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던가.
“이미 저편으로 추방당한 놈이 왜 자꾸 기어 올라오는데? 대체 뭘 더 하겠다고?”
―그야 너랑 노는 게 너무 재미있으니까. 너처럼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영혼을 보는 건 너무 즐겁거든. 그래, 나를 이겨서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나?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착각했었지?
칠죄신은 황좌를 돌아보았다.
놈의 등에 칼을 꽂을 기회?
아니, 해볼 테면 해보라는 도발이었다.
―칠성칠요, 나를 벨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칼이 결국 볼품없게도 부러지…….
“으으으음!”
그 순간 토구로의 목에서 육성이 흘러나왔다.
토구로는 고개를 크게 좌우로 흔들더니만 바닥을 크게 굴렀다.
“으으음! 으으음!”
가위에 눌린 사람이 깨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려는 것처럼.
몸부림을 치던 토구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싸우던 중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미안하다, 황제.”
“너, 지금…… 칠죄신을 거부한 거냐?”
그게 가능한 일인가?
토구로의 숨이 가쁘고, 온몸에 땀이 가득한 게 굉장히 지쳐 있었다.
어쩌면 지금 공격하면 수월하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보가 더 중요했다.
칠죄신이 거부당하다니?
그만큼 약해졌단 이야기, 어쩌면 놈을 완전히 끝장내 버리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토구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내 몸에 임한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너와의 승부가 떠올랐다.”
“…….”
“나는 토구로, 너에게 멸망한 오크의 말예다. 이제 이 땅에는 나 말고 오크가 없으니 나는 오크의 왕이며, 그 이름을 대표하는 자다.”
토구로는 투지를 불태우며 도끼를 잡았다.
“제국의 황제여, 너에게 도전한다!”
“…….”
새삼스러운 선언, 스스로 망설임을 떨쳐 내기 위한 말이었다.
토구로가 단숨에 6계위가 되고, 계위 능력까지 쓰는 것도 칠죄신이 내려 준 거다.
좋다고? 영혼의 생사여탈을 저당 잡히고 얻은 능력이다.
칠죄신을 거부했으니 이후에 끔찍한 형벌이 기다리리라.
토구로는 지금 싸움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을 받아 주마. 오크의 왕이여.”
“흐아아압!”
토구로가 필사의 각오로 덤벼들어 왔고.
나는 놈을 향해서 비검을 날렸다.
토구로는 단호하게 도끼를 휘두르면서 검을 쳐 냈다.
극도의 집중력과 마력,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쿠웅!
발을 구른 나는 양 주먹을 꽉 쥐고는 토구로를 노려보았다.
거리는 5m.
“이겼…….”
놈이 마력영역을 발동하려는 순간.
빠아악!
내 주먹이 놈의 턱을 후려쳤다.
마력과 염동력이 담긴 일격.
턱이 흔들린 놈의 몸이 비틀거린다.
자기가 뭘 맞았는지 모르고.
빡! 빠아악!
하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계속 주먹을 쉬지 않고 내질렀다.
파바바바박!
마력과 염동력이 어린 연타에 토구로의 몸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크으윽!”
토구로는 당황하면서 마력으로 방어를 하고, 마력영역을 발동했지만 소용없다.
나는 제자리에 선 그대로.
양 주먹만 텔레포트시키면서 원거리에서 놈을 두들기고 있으니까!
“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기합을 지르면서 쉬지 않고 연타를 퍼부었다.
적이 단단하다면 염동장으로 내부를 파괴하고, 마력으로 방어하면 관수로 뚫어 버린다.
거리를 무시하고, 적을 난타하는 필살기.
염동연격권!
“컥! 커어어억…….”
계속 퍼부어지는 연타에 토구로는 양팔로 안면을 가리고 견뎌 내려고 했다.
내 연타에도 한계가 있으리라는 생각.
하지만 틀렸다.
염동연격권은 육체보다는 정신이 피로한 공격이고…….
나도 놈이 이걸로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타아악!
맹타를 퍼부어서 놈을 물러나게 한 나는 발끝으로 내 칼을 걷어 올리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토구로가 팔을 푼 순간, 나는 이미 칼을 잡고 놈의 가슴팍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크아아아!”
토구로가 반사적으로 도끼를 휘두르면서 마력영역을 전개했다.
하지만 나는 도끼는 염동결계로 막았고…… 마력영역은 그냥 무시했다.
놈의 특성은 신체 마비지, 정지가 아니다.
앞으로 쭉 뻗은 팔, 꽉 쥔 검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추려고 해도 염동력으로 관성을 더한다!
푸아아악!
나는 마비된 상태에서도 놈의 가슴을 베어 버리고는 지나쳤다.
보통 이대로라면 절명이지만…….
끼기기익!
바닥에 발이 닿은 순간, 나는 염동력으로 관성을 무시하고 선회하면서 토구로의 목을 쳐 버렸다.
칠죄신의 사도, 가슴이 뚫리고도 살아남은 놈이다.
팍! 파아악!
이어서 검을 내리그어서 놈을 수직 양단하고는, 또 횡으로 그어 버렸다.
십자 베기.
“헉, 허어어억…….”
공격을 끝내자, 내 턱 끝에서 땀이 뚝, 뚝 떨어진다.
염동연격권은 나한테도 소모가 많은 기술이고, 컨디션에 따라서는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거기다가 염동결계를 이동 중에 유지하면서 공격까지 해 댔으니.
“후우우우…….”
쓰러진 토구로의 시체에서 검은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
“……이걸로 끝이냐?”
―당연히 아니지.
“…….”
젠장. 물어보지 말걸.
토구로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피.
검은피가 꾸물거리면서 뭉치더니만 토구로의 토막 난 육신을 뭉쳐서 모았다.
내가 베어서 끊어 버린 육신을 끈적거리는 피가 이어 붙이는 것이다.
꾸드드득! 꾸드드득!
피와 살덩어리가 엉망으로 섞이면서 거대한 고깃덩어리로 변해 간다.
실로 혐오스러운 모습.
하지만 그 몸에서 검은 마력이 줄기줄기 흘러나오고 있었다.
흑마력.
―토구로는 예상보다 약했군. 그럼 잠깐 놀아 볼까, 황제?
“…….”
칠죄신이 직접 온 건 아니지만 칠죄신이 직접 주무르고 조종하는 변이체.
나는 내심 암담해졌다.
못 이긴다.
오늘 나는 너무 많이 싸웠다.
장기전을 각오하고 초반에는 폭탄을 썼는데, 토구로가 예상보다 강했다.
그리고 이제 지금은 칠죄신이 주물러서 2차전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후우우…….”
그래도 마지막까지…….
그 순간.
피이잉!
바람을 꿰뚫는 소리.
그리고 내 앞에 검이 날아와서 꽂혔다.
너무나 익숙한 검.
“너…….”
방금 전까지 황좌에 꽂혀 있었던 여섯 자루의 검.
그중의 첫 번째 검.
“삐진 거 아니었냐?”
원래도 과묵하던 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안다.
마지막 검이 부러지면서, 나머지 여섯 검의 힘도 약해졌다는 걸.
더는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긴 잠에 빠졌다는 것도.
하지만 지금 나와 함께 싸우려고 하고 있었다.
적은 칠죄신.
우리들이 쓰러트리자고 맹세했던 적이니까.
“그래…….”
와 줬으니 말은 필요 없었다.
―칠성칠요(七星七曜)는 꺼지지 않는 등불, 불굴(不屈)이라.
그 이름 그대로, 다시 나와 함께해 주겠다는 전우에겐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나는 칼자루를 잡고는 토구로, 아니 칠죄신이 괴물로 바꿔 버린 변이체를 노려보았다.
“작년에 왔던 등신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입담은 여전…….
“실력도 여전하지!”
나는 100년을 기다려 준 검을 뽑아 들었다.
월검 탐랑(月劍 貪狼).
신도 물어뜯는 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