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105)
테러는 너희들만 하냐?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빈대가 아니라 쥐새끼가 1만 마리라면?
집 태우는 것도 고려해 봐야지.
거기다가 나는 황제다.
99칸 기와집이라도 박살 내고 다시 지을 능력쯤이야 얼마든지 있다.
“와, 잘 탄다?”
“……아아아아아.”
렌시엘이 눈을 부릅뜨고는 덜덜 떨었다.
내가 7황후의 후궁을 폭파시키고 활활 불태웠으니까.
“무, 무, 무슨…….”
“용공주에게 나중에 쌔끈한 걸 하나 더 지어 준다고 해.”
“……당신이 부쉈잖습니까!”
“괜찮아, 책임은 네가 지겠지.”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렌시엘은 너무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먼저 선수를 쳤다.
“왜? 후궁 하나 폭탄으로 날려 버려서 민심이 동요할까 봐? 그래서 제국이 어지러워질까 봐?”
“…….”
사실 렌시엘의 생각은 당연한 거다.
폭탄은 제국군만이 사용하는 거다.
그런데 그 폭탄으로 후궁을 날려 버렸다?
제국군이 황성을 공격했단 이야기, 민심의 동요가 극심해진다.
“괜찮아. 네가 뒷수습하겠지.”
“이,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하란 건가요…….”
렌시엘의 손목이 풀렸다.
알베르트는 나에게 눈짓을 하더니 복도로 나갔다.
적들이 몰려올지도 모르니 살피겠다고, 또 두 사람만 이야기하라고.
“아, 아아…….”
비틀거리면서 일어난 렌시엘은 내 옆에 서서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활활 타오르는 후궁을.
“제국의 미래가 저렇게 활활 불탄다고 걱정해?”
“다, 당신…….”
렌시엘은 분노와 체념과 걱정이 어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늘 우아하던 천족이 진짜 울먹거리고 있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방금 전까지 붙잡혀 있던 황후는 해방의 기쁨이 아니라 나랏일만 걱정하고 있었다.
“자, 여기 3급 치료약, 머리에 쓴 것 때문에 의미 없겠네. 다 끝나고 마셔라.”
“이, 이걸 대체 어떻게 수습하라고…….”
“이셀렌하고 랑에이랑 열심히 해 봐.”
“은폐하라는 겁니까? 불가능합니다. 결국…….”
“제국군하고 헌병대, 중앙경찰도 도와줄 거다. 뭐가 더 필요한데?”
나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그거로도 못 하겠다 싶으면 다른 황후들 불러 모으고. 그럼 되잖아? 왜 너 혼자 다 하려고 하냐?”
“……제, 제 말을 들을 리가 없잖습니까. 제국군이 제 말을 들을 리가 없어요!”
“내가 듣게 해 줄 테니까. 걱정 마라.”
나는 손을 뻗어서 렌시엘의 눈가를 훔쳐 주었다.
막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100년 동안 많이 고생했네. 애들 다 제멋대로 튀어 나가는데 너 혼자서 애 많이 썼다.”
“무, 무슨…….”
렌시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필사적으로.
“당신은 시릭이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알았어, 믿지 마라.”
“……너, 너무.”
렌시엘이 분한 얼굴로 자기 옷자락을 꼭 잡았다.
“너무해요! 왜 그렇게 말하는 거죠! 좀 더 믿어 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하는 거 보니 이미 알고 있네.”
“…….”
내가 정말 칠죄신의 주구라면, 이런 생고생을 할 리가 없다.
아니, 미리엘을 만나 본 순간 렌시엘도 가슴 깊은 곳에서 느꼈으리라.
딸아이가 제대로 봤다는 걸.
내가 바로 시릭이라고.
불타는 후궁 근처로 병력들이 몰려든다.
“상황 파악 못 하고 두리번거리는 거 봐라. 지원사령부도 기강이 엉망인데?”
나는 품에 손을 넣으면서 물었다.
“카마엘은 지금 어디에 있지? 중앙성인가?”
“예, 아마도 그럴 겁니다. 다만 친위대가…….”
“친위대는 외적만 막지. 그리고 이 경우에, 외적이 누군지 판가름하는 건 바로 너고.”
나는 폭탄을 또 꺼냈다.
렌시엘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죠? 설마 또 아니죠?”
“응, 맞아.”
휙! 휙!
나는 모여서 주변을 둘러보는 적들을 향해서 폭렬탄을 던졌다.
활활 불타는 후궁에 불나방처럼 모여들어서 잘 보인다.
퍼어엉!
“끄아아악!”
후궁 주변에 몰려 있던 적들이 폭발에 휩싸여서 비명을 지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의 숫자가 너무 많다.
“5황후의 후궁! 거기로 가라! 얼른 가 봐!”
날아온 방향으로 파악한 건지, 아니면 일단 명령인지.
나는 렌시엘의 손을 잡고는 몸을 돌렸다.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되지. 자, 다음으로 가자.”
“……어디로요?”
“제국군 들어오기 전까지 시간을 끌어야지.”
“제국군이 쳐들어온다고요!”
“응, 네가 책임져라?”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렌시엘은 입만 뻐끔거렸다.
하지만 내 손을 놓지는 않았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알베르트가 얼른 말했다.
“곧 병력이 몰려올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셀렌에게 연락했지? 한 바퀴 빙 돌자.”
“예?”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 줄게.”
나는 5황후의 후궁, 지하실로 향했다.
내게 끌려온 렌시엘이 말했다.
“여긴 막혀 있…….”
꾸우우욱.
내가 지하실의 가장 왼쪽, 맨 아래 칸 벽돌을 빼자.
우르르릉!
기관장치 소리, 벽이 옆으로 밀리면서 통로가 열렸다.
“…….”
렌시엘이 멍한 얼굴을 했다.
자기가 살던 곳이지만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라서.
나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그럼 계속 돌자.”
황성의 후궁.
아홉 개의 건물은 큰 원을 그리면서 마주 보는 구조였다.
황후와 7황후의 후궁 건물은 바깥하고 이어져 있고.
나머지 후궁 건물들도 비밀 통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 대체 왜 이런 게!”
4황후의 후궁으로 넘어온 렌시엘은 어이없어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라면 비밀 기지지. 알베르트는 내 마음 알지?”
“예, 매우 신기하군요. 기관장치야 저도 어느 정도는 알지만 이토록 정교한 건 처음 봅니다.”
“……아니, 우리들이 사는 건물에 왜 이런 걸 만들어 뒀냐는 겁니다!”
렌시엘은 어이가 없어서 따져 물었다.
자기 발밑에 이런 게 있다고는 생각도 못 한 얼굴.
하지만 나는 귀에다가 손을 대고는 의뭉스럽게 말했다.
“으응? 그걸 왜 나한테 따지는데? 리젠 리브라타는 아무것도 모르거드으으은~~.”
“다, 당신이 시…….”
렌시엘은 무심코 내가 시릭이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옆에 알베르트가 있고, 또 내가 시릭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입장이니까.
나는 귀에다가 댄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말했다.
“그냥 이런 게 있다는 모종의 정보를 입수했을 뿐이거든?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따지는데에에에에~~?”
“…….”
부들부들.
렌시엘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덜덜 떨었다.
원래 이성적인 여자라서 이렇게 유치하게 놀리면 꼼짝을 못 한다.
한 대 때리고 싶단 마음과 그게 너무 기품이 없으니 안 된다는 이성의 충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지.
“만든 남자에게 가서 따져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번지수를 잘못 찾아?”
“……으으으으으으.”
렌시엘은 분해서 어쩔 줄 몰라 발까지 동동 굴렀다.
나는 웃으면서 또 폭탄을 꺼내 들었다.
렌시엘이 깜짝 놀라서는 내 팔을 붙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죠? 또 할 거 아니죠?”
“할 건데? 5후궁에 적들이 몰려 있으니 날려 버려야지.”
“하, 하지 마세요. 안 됩니다.”
렌시엘은 이젠 애걸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제발, 저기에는 나와 시릭의 추억이 있어요. 제발…….”
이젠 민심의 수습, 국정의 운영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
5후궁에서 나와 지냈던 시절의 기억이 있으니, 태우지 말라고.
“추억이야 앞으로 계속 쌓으면 되는 거지.”
“너, 너무해요.”
렌시엘은 진짜로 울려고 했다.
인질이 된 것도 서럽고 분한데 구하러 온 놈이 펑펑 저지르니 못 버티는 모양이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안 할게. 그만 울어.”
“……저, 정말입니까?”
“건물만 안 날리면 되잖아.”
“……예?”
펑!
퍼어어엉!
내가 날린 폭탄에 5황후의 후궁을 뒤지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휩쓸렸다.
“아, 아아아. 저, 정원이…… 시, 시릭하고 함께 걸었던 정원 길이…….”
렌시엘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지만 나는 가볍게 말했다.
“괜찮아, 하늘에 있는 시릭하고 면담해 봤는데 용서해 준대.”
“…….”
제국에서 제일 우아한 미녀라는 칭송이 자자한 렌시엘이 내 목을 졸라 버리고 싶은 얼굴을 했다.
나를 시릭이라고 차마 인정할 순 없는데, 동시에 내가 시릭이 맞다는 걸 느끼고.
정작 나는 그걸 갖고 놀리기나 하고 있으니까.
“자, 다음으로 가자.”
그렇게 나는…… 후궁들을 돌면서 계속 폭탄을 뿌렸다.
적, 지원사령부의 병력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언제, 어느 쪽에서 폭탄이 날아올지 모르니까.
“그냥 모든 건물을 감시해라!”
“이 잡듯이 다 뒤져!”
서너 번을 반복하자 밤하늘에 고래고래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통로를 통해서 후궁의 영관, 그러니까 황제가 쉬는 건물로 돌아온 나는 한숨을 돌렸다.
“자, 이제 슬슬 적들도 우리 패턴을 알아차렸군. 게릴라도 끝이다.”
“……어떻게 할 거죠? 이제 어디로건 나가면 들킬 겁니다.”
렌시엘이 걱정했다.
알베르트가 나에게 기대의 시선을 보냈다.
“혹시 모든 후궁을 일시에 폭파시키는 장치도 있습니까?”
“……아니죠?”
렌시엘이 나를 보며 눈망울을 글썽거렸다.
나는 아쉽게 말했다.
“자폭장치는 로망 중의 로망인데 그거까진 무리더라고. 가능은 한데, 안정성을 담보할 순 없다더라.”
“이런……. 아쉽군요.”
“그렇지? 비밀 기지는 역시 자폭해야 하는데.”
“물론입니다. 저도 예산만 넉넉하면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 안가를 붕괴시켜 본 적이 있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나와 알베르트는 소년의 마음으로 주고받았다.
안도하던 렌시엘이 찰싹, 내 어깨를 때렸다.
“대체 무슨 소리예요! 우리들의 발밑에 그런 흉악한 장치를 만들어 둘 생각을 했단 말인가요?”
“아, 자폭장치는 어쩔 수 없잖아.”
“애당초 이런 비밀 통로는 왜 만들어 둔 건데요!”
“으으응? 그걸 왜 나한테 따지냐니까? 저기 하늘 위에 계신 시릭 카라카스 폐하에게 따지셔야지.”
“으으으으으으으으. 지, 진짜.”
렌시엘은 분통이 터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뭐 이 정도면 됐지.
민심 수습이니, 정치니,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과 자책에 넋이 나간 렌시엘보다.
내 품행에 잔소리를 늘어놓고, 똑바로 살아야 한다고 사사건건 을러대다가 나한테 반격당해서 울먹거리는 렌시엘이 훨씬 낫다.
100년 만에 평소대로 돌아왔다.
나는 알베르트에게 물었다.
“제국군, 황성 앞으로 왔지?”
“예, 돌격대는 지금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럼 충돌하라고 해. 황성을 함락시킬 필요는 없고. 그냥 싸움이나 하라고 해.”
“자, 잠깐만요.”
렌시엘은 이제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녀는 내 팔을 붙잡고는 덜덜 떨었다.
“……제국군과 지원사령부가 전투를 벌인다고요? 저, 절대로 수습 못 해요.”
“네가 해야지.”
“……못, 못 한다니까요. 제발.”
“명분은 있다. 후궁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 지원사령부는 연락이 되지 않고 5황후 천리정후의 생사는 불명. 이는 황성을 지키는 지원사령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걸로 간주한다.”
“그러면…….”
“아, 물론 황성은 난공불락이다. 제국군이 강해도, 병력의 차이가 있어도 함락 못 시킬걸. 그러니까 시선 끌기 접전을 벌이라고 했지, 진짜로 목숨 걸고 싸우라는 건 아니야.”
나는 설명했다.
“이제 우리 셋은 중앙성으로 들어간다.”
“……그리고요?”
“카마엘의 목을 친다. 그리고 지원사령부를 항복시킨다.”
“항복 안 하면요?”
렌시엘이 걱정하자 나는 가볍게 말했다.
“네가 있잖아.”
“……예?”
“텅 빈 황성을 100년 동안 홀로 지킨 천리정후 전하의 앞길을 감히 누가 막겠어? 막는 놈이 반역자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제국군, 군부를 장악 못 한다고 전전긍긍했지? 그래서 지원사령부 같은 걸 만들었고.”
“…….”
“하지만 네가 100년 동안 버틴 건 헛된 게 아니다. 당당하게 가자, 렌시엘.”
제국의 정권, 정통성은 우리에게 있다.
이제 그걸 세상에 알려 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