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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03화 (102/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03)

함정을 쳐 놨다면

렌시엘이 돌아가고 이틀 뒤.

오후의 호텔 스위트룸.

창가 테이블에 앉은 내게 랑에이가 이야기했다.

극비 사항이니 지금은 둘만이다.

“렌시엘이 편지를 보냈다. 이틀 뒤에 황도에서 큰불이 일어난다고.”

“작렬탄인가?”

사도 디에르크가 제국군에서 빼돌린 폭탄들.

디에르크는 잡았지만 폭탄은 회수하지 못했다.

상당수의 폭탄이 토구로의 손으로 들어갔고.

실제로 토구로는 나와 싸울 때, 폭렬탄을 펑펑 터트리면서 밀어붙였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쿠데타군의 잔당들에게 작렬탄을 건네주고 사고를 치게 한다? 불가능한 건 아닌데…….”

“…….”

랑에이는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는 얼굴이다.

“왜 그래?”

“이상해.”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해.”

직감.

랑에이의 이 감은 정말 예리했다.

전장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종종.

내가 시릭이라는 걸 반사적으로 깨달은 것도 이 직감 때문이다.

무시할 게 아니다.

나는 상황을 정리했다.

“황도 대화재. 테러범들이 노릴 만한 일이기는 해. 황도를 크게 불태워 버리면 그 책임은 나와 제국군, 헌병대, 경찰에게 돌아간다. 정국이 더 혼란스러워질 테고 막기는 어렵고…….”

“…….”

“지하로 숨어든 쿠데타군의 잔당, 추정이 얼마쯤이라고 했지?”

“레릭이 삼백 명가량이라고 했어.”

전투를 벌이기에는 무리다.

하지만 테러를 벌이기에는 충분하다.

랑에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릭, 이건 아니야.”

“응?”

“나는 알아. 이건 아니야.”

랑에이의 직감은 결론만 내지, 자기 스스로도 잘 설명을 못 한다.

랑에이는 갸웃거렸다.

“불가능해. 그럴 리가 없어.”

“쿠데타군도 원래 제국군이다?”

“응, 그래. 내가 말하면 다들 들어줬다.”

거야 집도 때려 부수는 호랑이가 항복하라고 하면 양손이 번쩍 올라가겠지.

거기다 병사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겠다. 지휘관급도 무작정 사형시키지는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쿠데타에 실패해서 지하에 숨어들었다고 해도, 그들의 뿌리는 제국군이다.

제 딴에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일어난 이들이…… 민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휘말리는 대화재를 일으킬까?

“아, 그렇군. 불가능하다.”

“응?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지금 쿠데타군의 숨은 잔당들 중에서 거물급이 있냐? 그러니까 검장급.”

“없다.”

“본래 지원사령부, 카마엘은 쿠데타군을 자기들이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그래서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걸 감안해도…… 서로 연락이 안 될 거야.”

카라카스는 휴대폰 번호만 알면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게 가능한 건 다크엘프 정도고. 또 지금 다크엘프의 정보 통신은 불안정하다.

“만에 하나 다크엘프를 미리 포섭해 뒀다고 해도…… 어떻게 작렬탄을 주고받지? 미리 작렬탄을 넘겨 뒀다? 그럴 리가 없어. 애당초 카마엘은 지원사령부의 최종 승리를 노리고 일을 꾸몄다. 황도를 불태우는 건 급조된 계획이야.”

“…….”

나는 자문자답을 하면서 가능성, 정보를 처리했다.

랑에이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지만 큰 도움이 된다.

랑에이의 직감으로 아니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렌시엘이 우릴 배신했나? 아니, 미리엘이 우리 손에 있으니까 무리야. 더욱이 진짜로 황도 전역에 불을 지르면 미리엘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 그러면…….”

“…….”

“랑에이, 너 전부터 렌시엘에게 정보를 받았지? 어떻게 받았냐?”

“치료약을 받아 올 때 이야기했다. 렌시엘의 시녀가 꽃집의 점원에게 편지를 전해 주는 루트가 있어.”

“그럼 편지 좀 보여 줘.”

랑에이가 나에게 내밀었다.

두 문장이 쓰여 있었다.

황도에 슈퍼 큰불.

초대화재.

“……야, 절대 아니잖아.”

“응?”

“렌시엘이 이런 가벼운 표현을 쓸 리가 없잖아…….”

렌시엘은 황제인 내가 너무 소탈하고 격의 없이 군다고, 보다 무게가 있어야 한다고 틈만 나면 말하던 여자다.

“그 여자가 말을 해도 이런 표현을 쓸 리가 없지. 지금 자기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리는 거야.”

“그래?”

랑에이도 본 순간 위화감을 느꼈지만 이유까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렌시엘은 이게 가짜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했다. 감시가 붙었다. 들켰다.”

“……들켰어?”

“구금됐군. 어쩔 수 없이 이런 편지를 보낼 수밖에 없지만 우리보고 눈치채 달라고 이런 표현을 쓴 거다.”

랑에이의 낯빛이 달라졌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얌전히 있어.”

“시릭.”

“얌전히 있으라니까.”

내가 다시 말하자 랑에이는 시무룩해져서는 자리에 앉았다.

얼른 렌시엘을 구하러 가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한다.

나는 이마를 누르고 생각에 잠겼다.

“렌시엘이 우리와 손을 잡은 게 들킨 거야. 지금 카마엘에게 억류당해 있다. 어쩔 수 없지. 적의 병력은 1만이고.”

“렌시엘이 위험해.”

“카마엘도 함부로 못 죽인다. 황후를 보호한다는 게 지원사령부의 군사적 명분이니까.”

말하는 나도 입속이 탔다.

렌시엘이 내 아내고, 함께 이번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황성으로 돌려보낸 게 잘못된 선택이었나?

아니, 아니다.

나는 절대무적, 상승장군이 아니다.

수없이 패주했고, 실패했지만 결국 승리했다.

“적이 우위에 서도 다시 싸워서 뒤집으면 된다.”

“…….”

“황성은 난공불락, 폭탄도 안 통한다고 알려져 있지.”

제국군의 폭탄은 만능이 아니다.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마력현상, 폭탄이 발동 안 하는 지역을 설정할 수 있었다.

제국군이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 황성에서 최대한 막아야 하니까 당연히 발동이 안 된다.

“사실 황성 전체가 막힌 건 아니지만…….”

방법이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적의 술수에 넘어간 척을 한다. 랑에이, 너는 레릭과 함께 황도 대화재를 경계하면서 잔당 소탕에 박차를 가하도록 해.”

“……렌시엘은?”

“구해 내야지. 그녀가 있어야 정치적인 뒷수습이 수월해진다.”

나는 정리했다.

“이셀렌에게는 지원사령부의 지휘관급 목록을 뽑게 하고. 우리가 대화재에 속아 넘어간 척을 하면, 지원사령부도 진짜 작전을 선보일 거다. 그걸 격파하면 된다.”

랑에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릭, 또 혼자 하려고?”

“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황도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안심하고 또 아이들을 맡길 수 있고.”

“이셀렌은…….”

“이셀렌은 정보 관제를 맡고 또 상황을 조율해야 해. 아르센과 레릭도 마찬가지다.”

다들 역할이 있다.

“지원사령부는 1만 대군이다. 우리가 이기겠지만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니…… 렌시엘은 내가 직접 구해야 한다.”

“…….”

탁.

그 순간 랑에이가 의자에 앉은 그대로 휙 도약하더니만 테이블을 넘었다.

보통 사람이 이러려면 일어서는 과정이 필요한데, 랑에이는 그냥 발끝으로 바닥만 차도 가능했다.

호랑이가 담을 넘듯이,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으로 나를 덮쳐든다.

“으아.”

나는 신음을 흘리면서 얼른 양팔로 랑에이를 받아 들었다.

기우뚱.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의자가 비틀거리면서 넘어가려고 한다.

나는 염동력까지 쓰면서 얼른 자세를 회복했지만, 내 무릎을 누르고 올라탄 랑에이는 빤히 보았다.

“걱정돼.”

“나는 지금 의자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렌시엘은 널 믿어. 하지만 말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야. 계속 힘들어했으니까.”

“지금 우리 의자가 힘들어해요. 좀 내려가면 안 될까?”

“시릭.”

랑에이가 빤히 보며 말했다.

“이셀렌하고 했어?”

“…….”

내 쪽에서는 뭘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 봐야 구차해지지?

그렇다고 정색하고 물리치기에는 랑에이는 진지했다.

“어떻게 알았냐?”

“전에, 입술에서 이셀렌의 향기가 나서.”

“말해 두는데 큰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알아. 만약 그랬다면 더 기뻤을 테지만.”

랑에이는 나직하게 말했다.

“시릭, 그때 일은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이셀렌이나 렌시엘, 다른 애들에게…….”

“그 이야기 하지 마라.”

나는 정색하고 말을 끊었다.

랑에이는 내 스승에게 벌어진 일은 모두 다 자기 잘못이라고, 다른 여자들은 잘못이 없다고 얼버무릴 모양인데 그건 아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그렇게 정리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 일로 지금 상태를 팽개치지도 않을 거고.”

“……응.”

“그리고 무거워요. 좀 내려가세요.”

“싫어.”

너무 당당하게 싫다고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랑에이는 내 목을 양팔로 끌어안고는 물끄러미 보았다.

“이셀렌에게는 해 줬으면서.”

“대범한 큰언니인 척하다가 태세 변환이 갑작스러워서 못 따라가겠네요.”

“해 줄 때까지 계속 이렇게 있을래.”

“그래, 맘대로 해라.”

나는 포기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렌시엘은 당했고, 그 사실을 나에게 알려 왔다.

내가 쓸 수 있는 인재, 가용 병력은 황도를 지키는 데 대부분 투입해야 한다.

그러면 2일 뒤, 대화재가 예고된 날에 내가 황성으로 들어가서 렌시엘을 구출한다?

“…….”

함정인데.

척 봐도 함정이다.

렌시엘이 붙잡혔다는 건, 후궁을 드나드는 비밀 통로의 존재가 발각되었단 것이다.

이런 중대사라면 렌시엘과 다시 접선해서 자세한 논의를 해 보려는 게 보통이고.

최소한 편지로 연락이라도 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방식이면…….”

내가 직접 가겠지.

적은 렌시엘과 내가 접촉하기를 노리고 있다.

내 행동 패턴을 읽고 세운 계획이다.

누가 이랬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아는데 안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면…….”

적의 계책을 역이용하자.

내가 머릿속으로 전개도를 그리는데 랑에이는 내 어깨에 고개를 묻더니 눈을 감고 있었다.

“……야, 일어나. 진짜로 계속 이럴 거야?”

“…….”

진짜 잠들었네?

하긴, 치안을 안정시키겠다고 랑에이를 계속 일선에 보내긴 했지.

랑에이 짬이라면 할 일이 아니지만, 내가 말하는 대로 계속 돌아다녔다.

이 정도 상은 줘야지.

“자, 그러면…….”

나는 내 품에서 곤히 잠든 호랑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염동력으로 지도를 띄워 올렸다.

결전.

적이 함정을 팠다면 그 함정을 역이용해서 친다.

* * *

밤의 황성.

5황후의 후궁.

응접실.

렌시엘은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철로 만들어진 관이 씌어 있었다.

고문 도구.

마력을 일으키려고 하면, 철제 관의 가시가 머리를 파고든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고통 때문에 마력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의 앞에 앉은 남자, 카마엘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차마 날개에는 고문 도구를 채우지 못하겠습니다. 렌시엘.”

“나는 제국의 황후입니다. 어디서 함부로 이름을 부릅니까?”

“제국?”

카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고작 100년짜리 이름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2천 년, 3천 년을 삽니다. 이딴 제국 따위는 지나가는 산들바람만도 못해요.”

“…….”

“황제? 역시 100년도 못 버티고 쓰러진 인간 아닙니까. 애당초 당신이 제국과 황제에게 충절을 지켜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지금 하는 말은 반역입니다.”

“당신이 하는 건 소꿉놀이입니다.”

카마엘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황제는 사라졌고 제국은 무너집니다. 이는 숙명,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천족은 천족 나름대로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 무슨…….”

“당장 자신을 돌아보시죠, 렌시엘. 고귀한 1품계인 당신이 고작 인간 따위에게 날개를 허락해서 더러워졌습니다. 100년은커녕 서로 알고 지낸 게 50년도 안 되는 사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카마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제가 우리 천족의 비밀을 알아 버렸고, 제거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를 천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무려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가 뭡니까? 예상대로 황제는 금방 죽었습니다. 홀로 남은 당신은 제국이란 허상을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다른 천족들은 그저 당신을 불쌍하게 여겼을 따름입니다.”

“…….”

“당신이 황후라는 지위에 눈이 먼 여자였다면 나도 그냥 무시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고결하더군요. 헛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몸부림치고 매달리는 어리석음이 있지만.”

카마엘은 불쑥 손을 뻗어서는 렌시엘의 턱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답고요.”

“…….”

렌시엘은 상대 남자의 눈길에서 욕정을 읽었다.

이 무슨…….

지금 황후인 그녀를 욕심내는 건가?

하지만 천년제국이란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카마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리라.

고작 100년, 천족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한때에 불과하다고.

천년제국은 붕괴하고, 각 종족들은 뿔뿔이 흩어질 거라 믿으니까.

“황제가 사라졌으니 이제 황실도 사라지고 제국도 사라질 차례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자유로워질 겁니다. 렌시엘.”

“치우세요.”

“…….”

카마엘은 무시하고는 턱 아래로,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우아한 곡선을 남자의 손길이 어루만진다.

“치우라고 했…… 큭.”

렌시엘은 마력을 일으키다가 신음을 흘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 피부가 찢어지면서 피가 흘러내린다.

카마엘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손을 떼었다.

“이런, 안 되겠군요. 아직도 망집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황제는 그저 일장춘몽, 지나가던 봄바람이었을 뿐입니다. 이제 꽃이 지는 가을의 끝자락입니다. 우리는 다가올 겨울에 대비해야죠.”

카마엘은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는 제국을 무너트리고 당신을 가질 겁니다. 그리고 우리 천족들이 똘똘 뭉쳐서 다음 시대에서도 살아남을 방도를 모색할 겁니다. 그게 바로 세상의 순리, 하늘의 이치대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카마엘, 대체 언제부터…….”

“당신이 황제에게 갔을 때부터입니다. 그걸 왜 몰랐습니까?”

카마엘은 나직하게 말했다.

“천족은 황제를 따랐지만 그가 정말 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은 자도 있나 보지만 적어도 나와 내 동료들은 아닙니다. 실제로 해냈지만 황제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황제는 사라졌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니 제국은 붕괴합니다.”

“…….”

“당신도 그래서 지원사령부를 만들고, 나에게 힘을 준 것 아닙니까? 제국이 붕괴할 때, 보다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요.”

“아닙니다.”

렌시엘은 이마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카마엘을 노려보았다.

“내가 당신을 임명한 것은 당신이 천족의 안에서 군사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제국에 충성한다고 생각했고요. 이런 발칙한 수작을 부리는 줄 알았다면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았을 겁니다.”

“헛된 고집입니다. 황제가 죽은 순간, 제국은 끝나 버린 겁니다. 당신이 인정하지 않을 따름, 실제로 당신은 제국군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허세만 부리고 있잖습니까?”

“…….”

“이제 나에게 의탁해서, 부탁할 수밖에 없지요. 제국군을 물리쳐 달라고.”

카마엘이 조롱했다.

얼른 자기에게 빌라고.

하지만 렌시엘은 분하여 입술을 깨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카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럼 제국이 무너지는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힘을 가진 게 누구인지도요.”

“…….”

“괜한 수작은 안 부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미 병사들이 다 감시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죽는 건 당신을 모시던 시녀들이 될 겁니다.”

카마엘이 떠나갔다.

혼자 남은 렌시엘은 몸을 떨었다.

……다 끝났다.

그 사람이 죽고, 남긴 것만이라도 붙들려고 했건만.

100년이 흐르는 동안, 제국이 멀쩡한 척을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키워 둔 지원사령부마저 돌아선 순간, 끝났다.

이제 다 끝나 버렸다.

카마엘의 말이 하나는 맞았다.

황제가 죽은 순간, 제국도 죽었다.

“시릭…….”

렌시엘의 어깨가 떨린다.

그 남자가 남긴 제국을 유지하는 게 그녀의 책무. 죄를 갚는 길이라고 믿었는데.

“……미안해요.”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황제가 사라진 날, 다 말라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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