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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01화 (100/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01)

치고받고 이기는 건 나고

지원사령부의 지휘관, 카마엘의 갑작스러운 방문.

나는 잠깐 생각하고는 말했다.

“보자고 해. 하지만 나도 간다.”

“……제, 제정신입니까?”

렌시엘이 놀라거나 말거나.

나는 다른 두 여자를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안 돼.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까.”

두 사람은 황후, 이셀렌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하지만 나, 리젠 리브라타는 갑자기 뛰어오른 신인이다.

카라카스에는 사진, 휴대폰이 없다.

즉, 이름은 알려졌어도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나는 지금 여장까지 한 상황, 더욱 못 알아볼 것이다.

가발을 다시 쓴 나는 이셀렌에게 일렀다.

“랑에이랑 같이 여기에 있어. 그리고 렌시엘, 너는 카마엘을 보겠다고 하고 날 데려가.”

“내가 당신 정체를 밝히면…….”

“인질이 되거나 죽는다고? 넌 못 할 텐데?”

“…….”

내가 이 자리에서 죽으면?

미리엘이 위태로워진다.

나를 인질로 삼아서 미리엘과 교환한다?

당장 두 황후가 막을 것이다.

아니, 렌시엘은 애당초 자기 딸을 저울에 올릴 수 없는 여자다.

그때 이셀렌이 나를 끌고는 서재 구석으로 데려갔다.

눈짓.

그리고 내미는 검.

“허벅지 안쪽에 차는 거야. 전용 검은 아니지만 비싼 돈을 들인 범용검이라서…… 한 번은 버틸 거야.”

“그래.”

만약의 사태에 요긴하게 쓰라는 의미였다.

시녀가 칼을 차고 나설 순 없으니까.

이셀렌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할 거야?”

“아니, 보기만 할 거다. 내가 여기서 카마엘을 죽여 버려도 지원사령부가 모조리 항복하는 건 기대하기 어려워. 가능하면 적게 죽는 게 향후 수습에 좋지.”

사실, 카마엘을 기습으로 죽여도 나도 못 버틴다.

여긴 1만의 적병들이 도사리고 있는 적진 한복판이다.

“……알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렌시엘이 한참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녀들을 입단속 시키고, 또 카마엘에게는 당신이 제 말벗이라고 둘러대겠습니다. 하지만 당신 역시도 카마엘에게 해를 입힐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당신을 감싸 줄 수도 없고, 또 황성 안에 피가 엄청나게 흐를 것이니까.”

“얼굴만 볼 거야.”

“…….”

렌시엘은 나를 의심스럽게 보았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렌시엘은 침실의 문을 열고는 시녀를 맞이했다.

시녀는 나를 보고는 멈칫했지만, 렌시엘은 빠르게 말했다.

“이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는 함구하세요. 그리고 카마엘에게 내가 보겠다고 하세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1층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럼 좀 준비하고 내려가죠.”

렌시엘은 그리 말하고는 문을 닫았다.

그러자 나는 벽에 걸려 있던 외투를 염동력으로 가져와서는 렌시엘의 위에 걸쳐 주었다.

천족은 등에 날개가 달려서, 옷을 입고 벗는 데 꽤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한다.

염동력이라면 불필요한 동작이 줄어들지.

렌시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

“시릭은 아니지만 이렇게 입혀 드리는 서비스는 해 드리지. 색? 베이지색을 좋아하잖아? 아니면 오늘은 딥하게 가 볼까?”

“…….”

렌시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얼굴, 그야 머리로는 내가 시릭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방금처럼 옷을 걸쳐 주는 건, 내가 렌시엘에게 자주 해 줬던 일이다.

그녀도 좋아했고.

“…….”

렌시엘이 잠자코 문을 열고 나가자 수행하는 시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나를 보고는 잠시 멈칫했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황후인 렌시엘이 용인했다는 것, 감히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알아서 판단한 것이다.

렌시엘이 내부 단속을 빈틈없이 했다는 증거였다.

1층.

응접실.

지원사령부의 제복을 입은 천족 남자 셋이 있었다.

유일하게 앉아 있는 남자, 갈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바로 카마엘이리라.

“밤늦게 죄송합니다. 황후 전하.”

“급한 변고라도 생긴 겁니까?”

“주변을 물려 주시죠.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렌시엘이 손을 젓자 다른 시녀들은 죄다 물러났다.

카마엘 쪽의 천족도 물러났고.

유일하게 남은 건 나였다.

카마엘이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렌시엘이 말했다.

“저 사람은 좀 특별합니다. 신경 쓰지 말고 말하세요.”

“……아, 그렇습니까?”

카마엘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실은 지금 제국군을 무너트릴 묘안이 생겼습니다.”

“묘안이라뇨?”

“서부의 제국군과 지금 중앙군 사이에 마찰이 있다고 합니다. 황후 전하가 밀지를 내리시면 그들도 호응하지 않겠습니까?”

“서부군을 황도로 부르라 이건가요?”

어이없는 소리다.

렌시엘도 기막혀서 반론했다.

“지금 무슨 소리입니까? 서부군이 제 말을 따르겠습니까? 또 그들이 황도로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제 말을 들을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지 않습니까?”

“예,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4황후 전하가 이끄신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뭐라고요?”

듣던 나는 상당히 놀랐다.

이러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내 네 번째 아내, 4황후는 제국군에서 영향력이 컸다.

랑에이가 최전선에서 병사들을 이끄는 돌격대장이라면, 4황후는 전선을 지휘하는 장군이니까.

레릭이 중앙대장군이 된 것도, 4황후가 제국군에서 물러나고 자리가 공석이 되어서고.

렌시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확실합니까? 4황후는 최근 종적을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서부군에 가 있다고요?”

“예, 확실합니다. 5황후 전하가 안쪽에서 황도를 지키시고 4황후 전하가 올라오시면 지금의 사태는 크게 나아질 것입니다.”

“철도는 어쩔 생각입니까?”

갑자기 내가 대화에 끼어들자 카마엘은 멈칫했다.

일개 시녀로 보지 않는 시선.

렌시엘이 내 편을 들어 주었다.

“그저 시녀로 보이지만 제게 지혜를 빌려주는 사람입니다. 무례하더라도 너그럽게 봐 주시지요.”

“……철도헌병대가 협조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여차하면 무력으로 점령하면 될 테니까.”

“…….”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다.

서부의 제국군 전부가 움직여서, 지방의 철도헌병대를 섬멸하고 직접 철도를 운용해서 올라오면 된다.

렌시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군요.”

“폐하, 송구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황도의 제국군이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저희들은 지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부의 제국군이 움직여 준다면…….”

“그럼 좀 다르게 말해야겠군요. 나는 4황후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아니, 그 어느 황후와도 사이가 좋다고 할 순 없겠지요. 예, 저 역시도 그들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피장파장입니다.”

렌시엘이 날카롭게 말했다.

“당신의 말이 전부 다 맞다고 한들, 중앙군을 몰아낸 서부군이 내 말을 따를 거라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황후 전하,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럼 반대로 묻겠습니다. 당신은 내 명령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황성에 들어왔습니다. 그건 어찌 된 일입니까?”

렌시엘은 뒤에 선 내게만 보이게 날개를 살짝 펄럭거렸다.

예전에 나눴던 신호.

나에게 보여 주려고 지금 이 대화를 한다는 의미다.

렌시엘은 단호하게 말했다.

“다들 모르고 있지만 당신은 내 허락도 받지 않고 황성에 병사를 들였습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내 계획이었던 것처럼 포장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황후 전하, 신의 충절을 의심하십니까?”

“그 사람이 죽은 이후로, 이제 나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렌시엘은 날카롭게 말했다.

“같은 업을 짊어져야 할 황후들마저도 다들 자리를 비워 버렸죠. 2황후와 3황후는 지금 제국군과 손을 잡고 나를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이게 황후들의 권력 다툼으로 세간이 받아들이지 않게, 내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 알고는 있습니까? 나는 지금 전면 항복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하, 무슨…….”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젠 4황후를 서부에서 불러들인다고요? 그래서 대체 뭐가 달라지는 겁니까? 앞문의 호랑이를 쫓겠다고 뒷문의 용을 불러 봐야 다 불타 버릴 따름입니다.”

차디찬 말.

렌시엘은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는 쏘아붙였다.

“자, 비장군 카마엘. 당신이 병사를 이끌고 황성에 입궁했다는 건 이 상황을 알면서도 황실에 대한 충성을 바치겠다는 각오가 있는 거겠죠? 그러면 내게 어떤 방책을 내놓을 겁니까? 다른 황후들을 더 끌어들이라는 것 말고, 저 막강한 제국군을 물리칠 좀 더 건설적인 계책은 없습니까?”

“……전하.”

카마엘은 한참 뒤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신을 믿지 못하시다니 억울합니다. 저는 그저 제국군이 요즘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기에 재빠르게 움직였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3황녀, 미리엘 전하를 구출하고자 했지만 수포로 돌아가서 일이 이렇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면 혼란스러운 정국을 진정시킬 만한 마땅한 방안은 없다는 겁니까?”

“그것이…….”

카마엘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내일 다시 찾아뵙고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비장군, 이만 물러가세요. 배웅하지는 않겠습니다.”

렌시엘은 딱 잘라 말했다.

우아하면서도 고고한 자태.

카마엘은 고개를 숙인 채로 렌시엘의 발목, 그리고 옷에 가려진 허벅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앉아 있는 렌시엘이야 모르겠지만 서 있는 내 입장에서는 훤히 보였다.

벌떡.

“그럼 가 보겠습니다.”

카마엘이 걸어 나간다.

멀어지는 발소리.

우리 둘만이 남게 되었다.

렌시엘이 차갑게 말했다.

“자, 이제…….”

“야, 편하게 있어도 돼. 잘했다.”

나는 렌시엘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멈칫했던 렌시엘은 정색하고는 나를 뿌리쳤다.

“감히 어디서 함부로 손을 댑니까! 다시 이런 무례를 저지른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용서치 않겠습니다!”

“아, 거, 칭찬해 줘도 뭐래.”

렌시엘은 영리했다.

내가 그녀가 지원사령부와 편을 먹고 친위 쿠데타를 계획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자, 그게 절대 아니라는 걸 입증한 것이다.

아까 대화, 지원사령부가 황성을 점령한 것부터가 독단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나는 렌시엘에게 말했다.

“이걸로 카마엘이 칠죄신의 사도와 손을 잡았다는 게 명백해졌군.”

“예? 어째서죠?”

렌시엘은 화내던 중에도 호기심을 보였다.

원래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다.

“생각해 보고 내일 다시 찾아온다잖아? 돌아가서 사도와 작전을 짜 보겠다는 거지.”

“넘겨짚기 아닙니까?”

“저놈이 지원사령부 톱이잖아. 이제 와서 누구와 의논을 해? 부하, 참모들이 진즉에 이런저런 계획을 다 내놓았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애당초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지금 상황을 뒤집을 수 없어. 그렇지?”

렌시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제국군 앞에서 그녀와 지원사령부는 명백하게 열세다.

“그럼 아주 비상식적인 방법, 칠죄신의 사도나 쓸 만한 지혜를 빌리려는 거지.”

“……그럼 내일이 되어 봐야 알겠군요. 그나저나 4황후가 서부군에 합류했다는 게 정말일까요?”

“글쎄다. 너를 낚아서 내전을 일으키려던 건지, 아니면 진짜인지 모르겠군.”

“내전은 절대 막아야…….”

무심코 말하던 렌시엘이 놀란 얼굴로 자기 입을 가렸다.

방금 우리들의 대화가 너무 자연스럽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시릭 카라카스와 대화하던 것처럼.

“좋아, 얻을 건 다 얻었다. 그럼 정리하자.”

렌시엘은 적어도 지원사령부, 카마엘과 협력 관계는 아니다.

그리고 카마엘은 칠죄신의 사도와 손을 잡았다.

둘 다 확인했으니 이제 카마엘을 잡기만 하면 된다.

“내가 카마엘을 제거하면, 남은 지원사령부를 네가 장악할 수 있겠냐?”

“……자신은 없습니다. 저는 군부에서 인기 있는 여자가 아니라서요.”

“그러니까 군비 감축을 왜 해 가지고. 너, 헌병대만이 아니라 제국군도 병력 줄이고 축소했더라? 그러니 널 싫어하는 게 당연하지.”

“당신이 뭘 안…….”

렌시엘은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니, 이래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시릭이 아니에요. 나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네가 인정하건 말건 나는 시릭이자 리젠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죠. 그저 과대망상…….”

“랑에이와 이셀렌은 나를 이미 시릭이라고 인정했는데? 2 대 1인데?”

렌시엘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나는 염동력으로, 내 양 뺨을 잡아당기고는 혀를 날름거렸다.

아주 유치한 조롱.

하지만 렌시엘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제국 제일의 우아한 미녀, 기품 있는 아가씨라고 칭송받는 그녀지만 이런 원색적인 희롱에는 매우 취약했다.

“그럼 카마엘을 날려 버리고 후속 조치도 취해야겠군. 기왕이면 사도 토구로도 잡아야겠고.”

“말해 두지만 나는 당신을 아직 완전히 믿는 건…….”

“내일 카마엘의 작전을 듣고 나한테 와서 전부 다 말해. 카운터 치게.”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겁니까?”

“내 말대로 하면 만나게 해 줄게.”

답 안 나오는 실랑이는 사양이다.

서로 합을 맞추려면 최소한의 신뢰가 필요하고.

나는 가볍게 정리했다.

“미리엘, 보고 싶다며.”

“…….”

렌시엘은 딱 굳어 버렸다.

아이 접견권을 앞에 둔 엄마에겐 다른 선택권이 있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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