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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96화 (95/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96)

황도의 잠 못 이루는 밤

쿠데타의 수괴, 브린이 함정에 걸렸다.

나는 검을 뽑으면서 돌격하는 브린을 맞이했다.

채채챙!

빠른 공방.

브린의 칼은 빨랐고, 발은 날랬다.

내가 가볍게 로우킥으로 견제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서 찔러 온다.

투웅!

그리고 내가 브린의 하체를 공격하는 순간, 반탄력이 일어나면서 내 몸이 비틀거렸다.

5계위 능력인 마력장.

기본은 전장에서 존재감 강화, 거기다가 사용자의 무게중심을 강화한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강자들의 싸움에서는 이게 있어야 전투가 성립된다.

마력방어는 타격은 막지만 던지기에는 약하다.

또 압도적인 힘이 몰아치면 몸은 멀쩡해도 뒤로 홱 날아간다.

하지만 마력장은 그런 외부의 충격을 감하고, 중심을 유지해 준다.

브린은 그저 5계위인 게 아니라 성취도 훌륭했다.

“흡!”

내 균형이 흔들리자 브린이 크게 찔러 왔다.

나는 외다리로, 넘어질 듯이 뒤로 몸을 젖히면서 피했다.

파바바밧!

기회를 잡은 브린은 삽시간에 세 번을 찔러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면서 아슬아슬하게 피하다가…… 꽈배기처럼 홱 몸을 한 바퀴 꼬면서 쓰러졌다.

자기 발에 걸려서 넘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회전 베기다!

푸아악!

“크, 으아아아악!”

허공으로 치솟는 팔.

브린이 경악의 비명을 질렀다.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반격당할 줄 몰랐겠지.

평상시라면 그래도 대응했겠지만, 브린은 지금 너무 감정적이었다.

그래도 브린은 노련했다.

순식간에 마력질주로 내달려서는, 날아간 오른팔을 잡아채고 검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항복해라.”

“후우, 후우우우…….”

브린은 불타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오른팔을 옷소매로 꽉 묵고는 지혈했다.

얼굴에 송골송골한 땀.

하지만 나를 노려보는 눈에는 분노와 투지가 가득했다.

나는 재차 말했다.

“브린 백검장, 네가 제국을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항복해야 한다.”

“웃기지 마라. 너는, 네놈만큼은 절대로…….”

“실버를 죽인 건 내가 아니다. 네가 손을 잡은 놈이다.”

“……뭐?”

브린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혀를 찼다.

“내가 괜히 항복을 권유하는 게 아니다. 너는 항복해도 교수형이 한계고. 하지만 진실은 알아야지.”

“무, 무슨…….”

“지원사령부와 손을 잡았지?”

내 지적에 브린이 눈을 크게 떴다.

어디서 새어 나갔는지 알 수 없단 얼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영관급, 아니 검장급들이 뭉쳐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건 너무 무모하다.”

일단 병력부터가 적다.

설사 쿠데타가 성공하더라도 정권 유지 가능성이 적고.

지금 부딪쳐 본 브린은 상당히 노련했다.

이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러면 제국군 안의 장군들이 널 지원하는 걸까? 아니, 말이 안 돼. 지금 너희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진짜 이유는 이종족이 장군 자리를 모조리 독점해서잖아? 그런 쿠데타를 이종족 장군들이 지원해 줄까?”

“…….”

또 믿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제국군의 장군들은 다들 나, 시릭 카라카스와 함께 싸운 전우들이었다.

100년 사이에 변심할 리가 없다.

설사 변심했어도 대장군 레릭이 잘 달래고 통제했을 거다.

정치를 모르는 거지, 그 정도 역량은 차고 넘치는 놈이니까.

“쿠데타를 일으킨 제국군, 그리고 쿠데타를 막으라고 만든 지원사령부 놈들은 처음부터 손을 잡았던 거다. 도둑과 경찰이 서로 처음부터 한패였지.”

“무, 무슨 근거로…….”

“지원사령부의 대응이 너무 빨라.”

쿠데타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바로 황성을 점령했다.

지금 다크엘프 정보 통신이 불안정한 걸 감안하면…… 정말로 말이 안 된다.

실제로 쿠데타군도 알고 깜짝 놀랐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지원사령부는 사전 정보가 있었다는 식으로 둘러대겠지만. 다른 근거도 있다. 사도 토구로다.”

“…….”

“토구로가 네 아들 실버를 죽였다. 그리고 오크는 침묵할지언정 거짓말을 안 해. 네가 실버의 죽음에 대해서 물어보면 결국 자기가 폭탄 까서 죽인 거란 게 드러나겠지.”

설사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도 거짓말은 안 한다.

오크는 그런 종족이다.

내가 짚었다.

“하지만 오크는 바보가 아니야. 실버의 죽음도 예정대로, 너를 급하게 봉기시키는 게 진짜 계획이었다고 생각하면 아귀가 들어맞아.”

“…….”

“사도는 처음부터 지원사령부와 한편을 먹고 너희 부자를 이용했다. 아들을 죽이고 아버지가 폭주하게 만들었지.”

“으으으으으.”

브린은 이를 꽉 악물었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지원사령부는 네가 황도를 장악하고 자기가 황성을 장악하겠다고 제안했을 거다. 그렇게 안팎으로 정리하고 서로 잘해 보자고. 넌 황녀를 억류하면 지원사령부가 뒤통수를 못 칠 거라고 낙관했고.”

“…….”

“하지만 지원사령부가 보낸 천족들이 황녀를 납치하려고 하더군.”

“뭐?”

브린이 깜짝 놀랐다.

나는 계속 말했다.

“내가 너와 실버를 주목한 건, 너희들이 웰링 저택의 구조도를 원한다는 정보를 입수해서다. 그것도 아마 지원사령부가 정보를 살짝 흘렸을 거다.”

“……뭐라고?”

“애당초 웰링 저택은 천혜의 요새 같은 게 아니야. 그냥 적당히 지은 별장, 만에 하나에 대비해 화재나 습격에 대비해서 비밀 통로 한두 개는 마련해 둔 거지. 카라카스는 험한 곳이니까.”

“그건…….”

“저택에서 예전에 일했던 하인, 시녀들을 찾아내서 돈 좀 주면 금방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흔한 정보는 아니지만 국가 기밀은 아니다.

그러니까 지원사령부에서 알아내고 슬쩍 들어온 거고.

“내가 요즘 잘나간다고 소문이 자자하지? 케드릭도 꺾고 사지타리의 문제도 해결한 북부의 망나니. 한데 그놈이 쿠데타의 명분이 될 황녀들을 데리고 있네? 정면 격돌하면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너와 나를 싸움 붙이고, 빼돌리려고 한 거지.”

“…….”

“이건 처음부터 실패할 쿠데타였다. 지원사령부는 너와 쿠데타군을 싹 쓸어버리고 정국을 장악할 속셈이었다.”

진실을 알게 된 브린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네 아들을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살려 놓고 너를 설득할 재료로 쓰려고 했지. 너희 부자를 무기징역을 때리고 채석장으로 보낼지언정, 군중들 앞에서 밧줄에 매달아 죽일지언정…… 이런 식으로 처리할 마음은 절대로 없었다.”

“…….”

“난 아니다. 네가 속은 거다.”

난폭한 말이지.

하지만 그러니까 설득력이 있다.

브린의 눈이 흔들렸다.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나는 다시 말했다.

“브린, 너는 죽겠지만 잘못을 돌릴 기회는 있다! 지금 당장 병력을 물리고 수습해라! 한 명의 부하라도, 단 한 명의 시민이라도 더 살려야 해! 네가 지금 입은 군복에 부끄럽지 않게!”

나와 손을 잡고 지원사령부에게 복수하자?

그런 식으로 꾀어 봐야 브린에게는 안 통한다.

브린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처벌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의 긍지, 제국군이라면 누구나 품었을 자부심을 자극했다.

“…….”

브린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눈매에는 이슬.

“나하고…… 아들이 그저 이용만 당했다고? 아들이 죽은 이유가 그거라고?”

“…….”

“그러면, 그러면 끝까지 싸워야지! 싸워야 해!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순 없어!”

브린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린다.

괴롭게 일그러진 얼굴.

그도 다 알고 있으리라.

브린과 쿠데타군에게 미래는 없다.

설사 이 자리를 무사히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믿었던 지원사령부가 그들을 칠 것이다.

날이 밝으면 레릭이 제국군을 정비하고 올 것이고.

브린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파멸이었다.

“……그래, 알겠다.”

그래서 그는 선택했다.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아버지로서 싸우겠다고.

나는 더는 말하지 않고 검을 잡았다.

“와라, 브린 아리에드.”

“…….”

광장 분수대 앞에서 서로에게 검을 겨눈 우리 둘.

이내 브린이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나에게 마력질주로 달려들었다.

정직한 일격.

나는 가볍게 내달리다가…… 브린과 충돌 직전에 바로 마력질주를 사용했다.

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마력질주 사용은 원래 어려운 거고, 평범하게 달리다가 전환하라면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정면 격돌에선, 속력을 확 바꾸기만 해도 승패가 갈린다.

직구를 치려는 방망이는 급격한 변화구는 헛치니까.

푸아악!

내 검이 브린의 가슴을 쪼개 버리고.

털썩!

멈춰 서자 등 뒤에서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

칼을 그어서 피를 털어 낸 나는 골목을 돌아보았다.

브린이 끌고 나온 기병들은 거의 다 죽거나 달아난 뒤였다.

브린의 마지막에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황제 폐하 만…….”

끊어진 목소리.

나는 걸음을 돌려서 브린의 시체에 다가갔다.

쿠데타를 일으킨 대역죄인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

나는 브린의 눈을 감겨 주었다.

이놈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제국군은 언제나 내 전우였고, 내 오른팔이었고, 내 자식이었다.

아무리 못난 짓을 했어도 마지막에는 품어 줘야 했다.

내가 제국군의 아버지니까.

“시릭.”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셀렌이었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전선에 나오지 말고 사람 보내서 말해. 위험하다.”

“……랑에이가 복귀했어. 이제부터 어쩔 거야?”

나는 브린의 시체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브린의 목을 베고 쿠데타군이 다 보게 해라. 그리고 랑에이를 내세우면 쿠데타군도 세력이 약해질 거다. 항복은 받아 주고.”

“…….”

“해야 해.”

내가 직접 브린의 눈을 감겨 주었지만, 동시에 그 목을 조리돌림 해야 했다.

이게 바로 만백성의 아버지, 황제가 해야 하는 일이다.

이 밤에 피가 덜 흐를 수 있다면, 내 국민과 병사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브린의 시체쯤은 골백번 우려낼 거다.

“……알겠어.”

그리고 이셀렌은 내 이런 속을 알겠지.

예전이었다면 끌어안고 몸을 녹이고, 마음을 풀었겠지만.

나는 고개만 가로저었다.

“염동력만 약간 써서 괜찮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지만 마무리하자.”

날이 밝아 온다.

브린의 사망 소식이 널리 알려지자 쿠데타군은 혼비백산, 우왕좌왕했다.

나는 헌병대 본부에서 임시 작전본부를 만들고 계속 지휘했다.

둘만 있는 헌병대장실.

아르센이 근심스럽게 말했다.

“속속들이 항복하고 있지만 아직도 산발적인 저항이 많습니다.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레릭에게 말해. 믿을 수 있는 직속부대. 아니다. 백호부대 보내. 백호부대와 랑에이를 합류시켜서 정리해라.”

“……그러면 다 죽을 텐데요?”

“해.”

나는 딱 잘랐다.

“항복하면 선처하겠다고 했는데도 버티는 건 그냥 막가자는 거다. 그러면 내가 더 막간다는 걸 보여 줘야지.”

“……폐하, 괜찮으시겠습니까?”

“다들 내 걱정을 왜 이리 해? 사실 졸려 죽겠다만.”

정신력이 다시 고갈되려고 한다.

역시 검은 아우라는 효율이 안 좋다니까.

아르센이 말끝을 흐리자 나는 다시 말했다.

“누가 됐건 미친 짓을 벌이는 건 놔둘 수 없다. 그리고 쿠데타는 제국군이 직접 처리해야 황도의 민심도 차후에 안정이 돼. 일부 불만론자들의 짓이었다고 정리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똑똑.

문이 열리고 헌병대원이 들어왔다.

“급보입니다, 아르센 대장님. 황성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지원사령부라고 합니다.”

“들여보내.”

내 말에 아르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제복을 입은 천족 여성이 들어왔다.

“헌병대장 아르센이십니까? 지원사령부에서 나온 길로엘 이명(二命)입니다.”

독자적인 계급 체제.

내가 시선으로 묻자 아르센이 말했다.

“이명이면 헌병대로 치면 이관, 제국군이라면 백부장에서 천부장 정도는 됩니다.”

“예, 비장군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말해 봐.”

내 말에 길로엘이 낭랑하게 말했다.

“헌병대의 분투에 치하를 보냅니다. 저희 지원사령부는 황성을 보호하고, 정부 수반과 5황후 전하를 무사히 모시고 있습니다. 아직도 제국군이 거리에서 산발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고 하니, 이제 저희 지원사령부가 나서서 깔끔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아, 됐어. 너희 필요 없다.”

“……예?”

길로엘이 멈칫했지만 나는 딱 잘랐다.

“제국군이 저지른 잘못은 제국군이 알아서 처리할 거다. 너희는 빠져.”

“그, 무, 무슨 말씀입니까? 설마 황도 안으로 제국군 병력을 더 투입하겠다는 겁니까? 이미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약탈과 방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희라고 그거 안 한다는 보장은 어디 있는데?”

“…….”

길로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가라.”

“5황후, 천리정후가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상 제국군이 황도 안에서 무력행사를 한다면, 부대를 더 투입한다면 반역으로 간주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요!”

“유언 날조해 놓고 지랄하지 말라고 전해.”

“…….”

이젠 길로엘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어찌 그리 흉악한 이야기를 감히 입에 담을 수 있냐고.

나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너 목 잘라서 돌려보낸다? 못 알아듣냐? 아니면 날개 잘라 줘?”

“……무, 무슨.”

“나는 리젠 리브라타다. 리브라타의 막내.”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가문의 문장(紋章)은 저울이지. 그 저울에 올려놓고 일의 경중을 따진다는군.”

“…….”

“가서 황후와 지원사령부의 장군에게 전해라. 여기 일을 다 정리한 다음에 내가 황성으로 가겠다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이 저지른 죄를 저울에 올려 볼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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