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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95화 (94/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95)

오해다, 널 죽이려는 건 정말이지만

암살여왕 이셀렌의 귀환.

따라오는 호위들의 몸 여기저기에 피가 묻은 게 상당히 격전을 치른 모양이었다.

3m 앞에 멈춰 선 이셀렌.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주변에 보는 눈들이 있으니 억누른다.

저택 테라스, 의자에 앉은 나는 가볍게 말했다.

“수고했다, 이셀렌.”

아, 황후에게 반말하면 안 되지?

하지만 지금 피곤하기도 하고…… 이제 주변에서도 은근히 인지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이셀렌보다 위라는 걸.

이셀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가지를 확인했는데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격전지는 세 군데, 중앙경찰본부와 병원, 그리고 황성 부근이야. 그 외에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병원? 거기는 왜지?”

“우렌 사지타리와 다르갈 사지타리가 입원해 있다. 두 사람을 안 좋게 보는 제국군 파벌이 이번 기회에 한을 풀려는 모양이던데.”

“대장군 레릭은 뭐 하지?”

“내부 수습 중이고, 부대들이 출동 못 하게 억누르는 중으로 안다. 하지만 완전히 틀어막지는 못해. 중앙경찰이 잡아간 자기들 대장을 구하겠다고 부대들이 돌출한다더군.”

“그래, 그러면…….”

나는 머릿속으로 전개도를 그려 보았다.

“쿠데타를 시작한 아리에드 공작, 브린 아리에드는 어디에 있지?”

“중앙경찰본부를 공격 중이다.”

“그래? 그럼 그놈의 목을 쳐 버린다.”

“……위험한데?”

이셀렌의 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건 안다. 하지만 그놈을 빨리 죽일수록 수습이 수월해진다.”

“……제국군을 덜 죽이려고 무리하는 게 아니라?”

“그것도 당연하고. 유혈 사태는 막으면 좋지만, 일어난다면 피해가 적을수록 사후 수습이 쉽잖아.”

이셀렌은 이마를 누르고는 손짓했다.

오르카를 비롯한 다른 다크엘프들이 모조리 물러났다.

밤의 저택, 테라스에는 우리 두 사람과 고요한 달빛뿐이다.

“시릭.”

“누가 들을까 봐 무섭다.”

“……몸은 좀 어때?”

“별로야. 평소의 30%도 안 나온다.”

나는 가감 없이 말했다.

내 작전을 보조할 이셀렌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애당초 이셀렌도 내가 정신력이 다해서 쓰러진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으니.

이셀렌은 곤혹스럽게 말했다.

“작전은 어떻게 하려고? 쿠데타군은 지금 확인된 것만으로도 4천이 넘어.”

“브린은 아직 실버 아리에드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브린의 아들, 실버 아리에드.

본래 나는 실버를 사로잡아서 유치장에 구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토구로가 폭탄으로 날려 버리는 바람에 시신도 온전하게 못 남겼다.

“설사 확인했어도 반신반의할 거다. 그걸 이용해서 놈을 돌출시킨다.”

“실버 아리에드가 살아 있다는 소문을 흘려서 꾀어내라고?”

“잔인하지? 내가 생각해도 그래.”

내 말에 이셀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당연히 해야지. 아군과 시민들을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하지만 그렇게 해도 브린은 수백의 병사들과 이동할 텐데?”

“마음을 급하게 만들면 소수의 경기병만 데리고 움직일 거다. 한창 싸우는 혼란 속에서 급하게 부대를 차출해 봐야 백 명 안팎이야. 내가 기습해서 브린의 목만 치고 빠지면 된다. 우리가 옛날에 자주 했던 짓이잖아?”

“…….”

“앞으로 1시간 안에 친다. 좁은 지형을 골라서 유도하자.”

이셀렌은 망설이다 말했다.

“랑에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

“아마 지원사령부 놈들에게 막혔을 거다.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지원사령부라면 황성을 수호하고 있다고 하던데? 천리정후가 급하게 불러들인…….”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원사령부는 일단 생각하지 마. 그리고 쿠데타는 내가 직접 정리해야 해. 레릭에게 내가 일어났다고 연락하고 아르센에겐 헌병대를 움직이라고 해. 중앙경찰본부를 공략하는 쿠데타군을 계속 치고 빠져서 병력을 꾀어내라고 전해라.”

헌병대가 계속 깔짝거리면 쿠데타군도 대응하려고 진형이 변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여긴 시가지.

많은 병력이 밀집하기에는 불편하다.

“그 직후에 실버 아리에드의 생존설을 퍼트린다.”

“브린이 직접 가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병력을 추가 투입할 게 분명하다. 그러면 그 병력을 섬멸해서 꾀어내면 돼.”

그리고 아마 브린은 갈 거다.

정보대로, 아들을 아낀다면 본인이 직접 확인하려고 하겠지.

“브린의 위치와 주변 병력을 계속 확인하다가 움직이면 내가 들어간다. 궁수들 준비해 두고. 적들에게 계속 정보를 과부하 시키고 있지?”

“……응.”

제국군은, 각 부대 소속의 다크엘프들이 정보 전달을 해서 빠르게 움직인다.

물론 그 정보들은 이셀렌에게 올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역으로 이셀렌이 온갖 정보들을 그들에게 몰아준다면?

참과 거짓을 섞어서 마구 밀어 넣으면 부대 정보를 담당하던 다크엘프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단시간 내에 막대한 데이터 처리로 과부하를 일으키는 거지.

“그럼 됐다. 웰링 저택도 일단 그렇게 정보 처리해 두고…….”

“시릭.”

이셀렌이 목을 가다듬고는 불렀다.

“그래도 당신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어. 지금 제 컨디션도 아니잖아?”

“말했잖아? 나는 약해졌고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이제 5계위의 중후반, 머지않아 6계위에 다다를 것이다.

나는 추가로 이유를 댔다.

“브린도 함정에 빠졌다는 걸 알면 달아나려고 하겠지. 하지만 내가 상대면 무조건 덤벼든다. 자식의 원수라고 생각할 테니까.”

이셀렌이 불쑥 말했다.

“이유는 그게 전부야?”

“…….”

나는 이셀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우가 애탄 시선으로 묻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그것만이 아니지. 제국군은 내 오른팔이자 전우이며 자식이다. 그런 애들이 황도에서 피를 부르고 있으니 좀 많이 엿 같아. 그래도 처리한다면 내 손으로 끝내야 하고.”

“…….”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실버를 사로잡았다면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도.

물론 사도 토구로가 대기하고, 여차하면 폭탄을 뿌려 댈 걸 사전에 알 수는 없지.

아니, 지금 돌아가는 판을 보고 유추하건대…… 설사 실버를 살렸어도 쿠데타는 무조건 일어났을 거다.

이셀렌이 안타까운 얼굴을 하자 나는 가볍게 말했다.

“자책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할 거 없다. 애당초 나는 백전백승의 무패장군 따위가 아니잖아? 지기도 정말 많이 졌지.”

칠죄신과 싸우면서 끔찍한 패배도 넌더리 나게 겪었다.

그때마다 살아남아서, 다시 병력을 모으고 재기하고 전우의 복수를 했다.

나는 아무리 좌절하고 절망해도 다시 일어선다.

이셀렌이 나직하게 말했다.

“……미안해. 나는 위로하는 말재주가 없어서.”

“아래로 말하는 재주는 훌륭…….”

무심코 받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내에게 할 드립이 아니었다.

아니, 서로 사랑하던 시절이었다면 내가 놀리고, 어깨를 때리고 웃어넘겼겠지만.

이제 우리는 사적으로는 어색한 관계다.

나는 짐짓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말래도. 제국군이 썩었다면 어차피 한번 솎아 낼…….”

얼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

무릎으로 내 허벅지를 눌러서 붙든 은발의 다크엘프가 눈을 꼭 감고, 키스한다.

의자 팔걸이를 양손으로 잡고 몸을 기울이면서.

오랜만이었고, 맞붙은 여자의 몸은 유달리 뜨거웠다.

내 손이 반사적으로 여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자, 이셀렌의 몸이 기뻐하는 게 느껴진다.

“하아아…….”

숨결이 오가고, 서서히 입술이 떨어진다.

나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보라색 눈동자.

떨어진 입술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인다.

나 역시도 가족끼리 이러는 게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로 얼버무릴지, 정색할지, 모른 척할지 생각이 교차했고.

하지만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하나였다.

“쿠데타의 수괴를 처단한다.”

“…….”

이셀렌의 눈동자에 아주 짧은 낙담.

하지만 곧, 모두가 두려워하는 차가운 암살여왕으로 돌아왔다.

“바로 준비할게.”

* * *

중앙경찰본부 앞.

쿠데타의 주동자, 브린 아리에드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쳐라! 계속 공격해!”

“저, 저기. 백검장님! 적들의 저항이 너무 거셉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냐! 우린 제국군이다! 경찰들의 저항 따위가 뭐가 무섭다고!”

“하, 하지만…….”

중앙경찰은 경찰들의 꽃.

경찰 중에서도 전투력이 높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제국군의 장비와 훈련 수준이 훨씬 높지만…… 경찰본부도 만약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외침에 대비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거기다 지금 목적은 섬멸이 아니다.

지하 유치장에 갇힌 인질, 제국군 장교들을 해방하는 거다.

좁은 길목에 뭉쳐서 방어하는 경찰들을 상대로 하는 백병전.

거기다가…….

“백검장님! 서쪽 3가 도로에서 헌병대가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아군이 밀리는 중입니다!”

“뭐라고? 아까는 물러갔다면서?”

“증원을 데리고 온 것 같습니다! 삼령이 직접 진두지휘한다고 합니다!”

“루크레의 부대는? 그놈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그게…… 지금 경찰본부 공략이 우선이라고…….”

거기다가 쿠데타군은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았다.

일단 브린의 선동에 미리 쿠데타를 준비하던 검장급들이 어느 정도 호응하긴 했다.

하지만 실버 아리에드를 비롯한 청년 장교들, 부장급들이 죽거나 현재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자기들 지휘관을 구하겠다고 오긴 해도, 상당수가 브린의 지휘를 거부하거나 무시하고 있었다.

백검장인 브린이 계급이 높으니 따르지 않냐고?

계급에 충실할 거라면 쿠데타에 편승하지도 않았지.

쿠데타군은 모였지만 제대로 뭉치지 못한, 산만한 상태였다.

“으으으……. 칸드레! 자네가 직접 가서 헌병대를 견제하게!”

“제가 말입니까? 그러면 누가 백검장님을 보좌합니까?”

“나는 여기서 경찰본부를 공략하고 있겠네! 저기만 함락시키면 그만이야!”

브린이 재촉하자 부관은 마지못해서 몸을 돌렸다.

브린은 초조하게 경찰본부를 바라보았다.

경찰본부를 함락시키고 갇혀 있는 부장급들만 꺼내면, 우왕좌왕하던 쿠데타군도 정연해질 것이다.

그러면 여세를 몰아서 황궁으로 진격하면 모든 게 끝난다.

모든 게…….

“실버…….”

브린은 아들의 이름을 되뇌었다.

생사 불명이다.

누구는 죽었다고 하고, 누구는 살아서 유치장에 갇혀 있다고 한다.

그래,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경찰본부를 함락시켜야 한다.

그게 바로 쿠데타를 성공시키는 길이고, 아들을 구하는 길이다!

브린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병사들을 독려했다.

“브린 백검장님! 급보입니다! 아드님의 생존이 확인되었습니다!”

“뭐?”

브린이 얼른 돌아보자 다크엘프 병사가 급히 말했다.

“중앙경찰들이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서 아드님만 따로 수감해 놨다고 합니다! 부장 사이에서도 우두머리니까요!”

“어디냐? 실버는 어디에 있지?”

“중앙경찰 북부지부 유치장에 계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거기에 계실지는…….”

“알았다! 그러면…….”

브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앙경찰본부 공략이 한창, 거기다가 헌병대가 들이치고 내빼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 병력을 빼낼 수는 없다.

‘만약 이 정보가 가짜라면?’

브린은 부지불식간에 판단했다.

사실 실버는 지금 눈앞의 본부에 갇혀 있는데, 시간을 끌려고 한다면?

‘쿠데타의 성공은 시간에 달려 있다. 경찰본부 공격을 늦춰서는 안 돼…….’

결단한 브린이 말했다.

“기병! 기병돌격대 콜린! 나를 따라라!”

“예! 백검장님이 직접 다녀오시겠다고요? 그럼 여기 지휘는…….”

“칸드레를 다시 불러들여서 맡겨! 나는 금방 북부만 확인하고 돌아올 테니까!”

브린은 외치고는 기병 50기만 데리고 새벽의 황도 거리를 쏜살같이 달렸다.

최단거리, 좁은 골목길.

많은 병력은 필요 없다.

브린도 5계위, 자기 무력에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경찰본부라면 몰라도 지부쯤은, 병력과 함께라면 바로 때려 부술 자신이 있었다.

“기다려라, 실버!”

브린이 외치면서 광장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부우우웅!

몸이 앞으로 훌쩍 날았다.

“…….”

부유감.

브린이 눈을 깜빡거리는데 말이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이히히히힝!

날아가는 브린의 시야에 보인 건, 넘어지고 있는 그의 애마였다.

브린은 나가떨어지면서도 급히 마력방어를 시전해서 충격을 줄였다.

“으아악!”

“크윽!”

뒤따라오던 기병들도 하나같이 말이 넘어지는 바람에 다들 넘어지고 구르고 있었다.

몇몇은 마력방어를 했지만 실패한 이는 다리가 부러졌다.

“이게 무슨…….”

브린이 살펴보니, 골목에서 광장으로 빠지는 통로에 줄이 걸려 있었다.

말 다리에 걸리기 딱 좋은 위치, 가늘고 검은 줄이라서 달리는 중에는 볼 수가 없었다.

“함…….”

브린이 함정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파바바바박!

골목의 옥상 쪽에서 화살비가 쏟아졌다.

“으아악!”

“크으윽!”

갑자기 쏟아진 화살에 기병들은 얼른 방패를 들고, 마력으로 방어했다.

하지만 말은 못 막는다.

화살비에 얻어맞은 군마가 구슬프게 울고, 쓰러졌다.

기병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브린에게 외쳤다.

“백검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브린이 얼른 검을 잡았다.

“다들 기다려라! 내가 지붕의 적을…….”

“아니, 충분히 기다렸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브린이 홱 돌아보자, 광장의 하얀 분수대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

검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 선이 가늘어서 아름다운 청년이지만…… 브린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강자.

그것도 압도적인 강자.

부하들을 돌볼 상황이 아니다.

브린이 이를 악물고는 물었다.

“……누구냐?”

“날 몹시 보고 싶어 했을 텐데. 쿠데타군의 수괴, 브린 아리에드.”

청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 아들을 죽인 건 내가 아니지만 안 믿겠지? 그래도 지금 당장 항복하면 교수형으로 경감해 주고, 뒤의 부하들도 참작해 줄 텐데, 생각 있냐?”

“뭐?”

브린이 당황하는데 청년이 말했다.

“없다고? 알았다. 이러는 동안 피해가 커지니까 얼른 서로 결판내자.”

“그러니까 넌 대체 누구…….”

“대테러 수사본부장, 리젠 리브라타.”

“…….”

아는 이름이었다.

브린이 발작적으로 마력을 일으키면서 노려보았다.

“실버의 원수!”

“아니라니까. 오해다.”

리젠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널 죽이려는 건 정말이지만.”

“으아아아!”

브린이 피를 토하는 외침과 함께 달려들었다.

리젠은 혀를 찼다.

“반란군이 목소리 하나는 정의의 영웅이시네.”

황제가 직접 반역 수괴의 머리를 자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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