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94)
피가 적게 흐르는 길
초능력은 타인의 정신력을 흡수해서 계속 강해진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할 순 없다.
자칫하다가는 미쳐 버리니까.
오르카나 미리엘, 하인켈이야 이미 나를 믿고, 마음을 열었으니 안전하다.
그래도 양이 부족하다.
상황이 급하니 서둘러서 보충해야지.
급할 때만 쓰는, 효율 나쁜 방식이 있다.
다수의 적, 그들의 좌절과 절망을 흡수하는 것.
나도 그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만 버틸 수 있다.
난 절망과 좌절에 오염되진 않으니까.
내 말에 수풀, 나무 뒤에 엄폐한 쿠데타군들의 동요가 느껴진다.
나는 재차 말했다.
“너희들도 지금 뭐가 뭔지 모르면서 일단 웰링 저택을 점령하려고 하겠지. 위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오르카, 혹은 이셀렌이 반역을 꾀했으니 얼른 웰링 저택을 점령하고 황자와 황녀들을 안전하게 모셔야 한다고. 그래서 등 떠밀려서 왔을 거다.”
어떤 전쟁이건, 제일선에서 싸우는 건 병사들이다.
그런데 이 병사들까지 투철한 쿠데타 정신으로 무장할까?
불가능하다.
애당초 인간들이 주동한 쿠데타인데 이들은 다크엘프들이고.
상관의 명령에 그냥 따르는 중이다.
“닥쳐라, 이놈! 반역을 저지른 무리들이 잔말이 많구나!”
그때 수풀에서 다크엘프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내가 계속 말하면 아군이 동요할지 모르니 끊으려는 것이다.
멜리우스가 내게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살로 저격? 어차피 놈도 그 정도는 고려할 거다.
여차하면 마력방어로 화살을 튕겨 낼 자신이 있겠지.
전장에서 그런 데몬스트레이션을 한 번 보이면, 아군의 사기가 오르니까.
내가 말했다.
“그쪽의 계급과 이름을 대라.”
“나는 백부장 막스다! 너는 대체 누군데 요사한 혓바닥으로 제국군을 희롱하려고 드는 거냐! 너희들이 역심을 품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우리들의 통제에 따르면 그만이다!”
“역심? 그러니까 그게 뭔데?”
내가 들어주는 척을 하자 막스가 버럭 소리쳤다.
“암살여왕과 다른 황후들은 황제 폐하를 시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 기회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100년 전의 일에 증거가 대체 어디 있다고?”
“그…….”
막스가 멈칫했다.
나, 시릭 카라카스는 황후들에게 죽은 것도 아니고 또 100년 전의 일이다.
물증이 존재할 리가.
더듬거리던 막스는 버럭 소리쳤다.
“이미 백검장님께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셨다! 곧 밝혀질 것이다!”
“그럼 대장군 레릭은? 그런 증거를 쥐었다면 일단 레릭에게 바로 보고 올리는 게 정상 아니냐?”
“그…….”
“니들이 대장군 성격을 모르진 않을 텐데? 만약 황제가 정말로 시해당한 증거가 있다면 레릭이 가장 먼저 황성으로 쳐들어갔어.”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런데 대장군은 어디서 뭐 하고 있냐?”
“곧 오실 것이다!”
“넌 가실 것이고.”
내가 괜히 떠든 게 아니다.
지휘관을 나오라고 한 거지.
나는 홱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칼을 날렸다.
비검.
“흥!”
쐐애애액!
내 검이 날아가자 막스는 자신만만하게 마력방어를 발동했다.
호기롭게 튕겨 내서 아군의 사기를 독려하려고 한 거지만…….
내가 날리는 검은 완전히 다르다.
“뭐…….”
막스는 뒤늦게 내 검에 마력이 일렁거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피하려고 했지만 늦었다.
푸우우우욱!
검이 막스의 가슴을 관통하고 빠져나갔다.
“커어어억.”
막스가 피를 토하면서 휘청거리는데, 날던 검이 180도 선회했다.
뎅겅!
그리고 내 쪽으로 돌아오면서 목까지 날려 버렸다.
“뭐…….”
“저, 저게 뭐야!”
여기저기 산개하고 있던 제국군 사이에서 비명이 흘러나온다.
“분명히 마력으로 막았는데?”
“내가 알기로 저건 황제 폐하만 할 수 있는…….”
“그냥 부장이 못 막은 게 아니라? 집중 깨진 거 아니야?”
온갖 아우성들.
착!
나는 돌아온 검을 여유롭게 붙잡았지만 사실 연기였다.
검을 날린 순간, 의식이 뚝 끊어질 뻔했다.
하지만 지금, 수풀 안에서 검은 아우라가 약간씩 흘러나오는 게 보인다.
지휘관이 맥없이, 일격에 죽으니 동요하고 불안한 상상을 하면서 흘리는 것이다.
나는 얼른 손을 뻗어서 흡수하면서 말했다.
“잘 들어라! 제국군은 많이 죽기도 죽었지만 그래도 영광스러운 군대였다! 왜? 확실한 대의를 품고 싸우다가 죽었으니까! 한데 야밤중에 갑자기 쳐들어와서 황자와 황녀를 확보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건 대체 뭐하는 대의냐?”
“그, 그건…… 암살여왕의 음모를 캐내고자…….”
백부장이 당했으니 자동적으로 지휘권은 이양.
나무 뒤에 숨은 십부장이 더듬거리면서 대꾸했다.
나는 재차 말했다.
“그럼 이 옆의 천족 둘은 뭘까? 이것들은 왜 황자와 황녀를 납치하려고 했을까? 너희들과 우리를 싸움 붙이고 어부지리를 노리는 것 같던데?”
“네 말에 증거는…….”
“오르카, 해라.”
내 신호에 오르카는 옆의 다크엘프에게 눈짓을 보냈다.
묶여 있던 천족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알아서.
“…….”
뻑!
다크엘프 요원이 천족의 등을 가볍게 쳤다.
밤하늘을 찢는 비명.
“으아아아아악!”
천족은 그 자리에 쓰러져서는 몸부림을 쳤다.
어찌나 격렬한지…… 팔다리가 꽁꽁 묶여 있는데 몸부림만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등과 날개가 연결된 부분, 날갯죽지를 찢어발기는 고문 도구를 발동시킨 것이다.
천족의 날갯죽지에는 신경이 몰려 있어서 절대 못 버틴다.
천족이 몸부림칠 때마다,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고 하얀 깃털이 튀어 오른다.
실로 끔찍한 몸부림.
아군도, 적도 말을 잃었다.
하지만 내 딸에게 위해를 가하려던 놈에게 이건 너무 약하지.
“날개는 두 개인데 왜 한 번 치고 끝이냐?”
“하, 하지 마! 제, 제발!”
몸부림치던 놈이 번쩍 고개를 들고는 자비를 구한다.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다크엘프 요원이 눈치를 보자 나는 재촉했다.
“얼른 해.”
철컹!
밤하늘을 찢는 비명 소리.
고통을 이기지 못한 놈의 몸에서 검은 아우라가 흘러나온다.
날갯죽지가 피범벅, 살려면 스스로 날개를 잘라야 한다는 걸 알고 절망했다.
천족에게 날개는 대단히 소중한 긍지이자 보물이다.
천족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형벌은 사형이 아니라 날개를 자르고 가두는 것이니까.
나는 검은 아우라를 남김없이 흡수했다.
“컥, 커어어억…….”
몸부림을 치면서 피를 튀기고 깃털을 흘리던 천족의 경련이 멈췄다.
피를 너무 흘려서 기절했다.
“다음은 너지?”
“힉, 히이이익…….”
남은 천족은 동료가 당한 걸 보고 덜덜 떨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날개가 찢기는 고통은 피하고 싶을 테니까.
나는 다시 물었다.
“자, 네 소속이 어디냐? 그것만 말해 봐. 어차피 날이 새면 다 밝혀진다.”
“…….”
“어차피 천족은 자살도 못 하잖아? 얼른 말해.”
그래도 남은 놈이 입을 다물자 나는 오르카를 돌아보았다.
“오르카.”
“지, 지원사령부!”
결국 천족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외쳤다.
“지, 지원사령부에서 나왔습니다!”
“…….”
그 이름이 왜 나와?
내가 말년에 만들려다가 말았던 군사 단체인데?
하지만 쿠데타군은 크게 동요했다.
“거, 거짓말…….”
“지원사령부가 벌써 출동했다고?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오르카를 돌아보고는 낮게 물었다.
“지원사령부가 내가 아는 그게 맞냐? 제국군이 쿠데타를 벌이지 않나 감시하는 단체?”
“그래.”
“언제 만들어졌는데?”
“황제 폐하가 서거하신 지 얼마 안 돼서. 유언이셨다.”
“…….”
난 지원사령부를 만들려다가 관뒀고,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조작이다.
그때 십부장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전원 돌격! 이렇게 된 이상 황자와 황녀를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
“아, 저거…….”
아군의 동요를 막겠다고 죽음으로 몰아넣네?
그저 명령을 따르는 병사들까지 죽이고 싶진 않은데.
하지만 전투는 시작됐다.
쿠데타군 오십 명이 수풀에서 일제히 일어나더니 저택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핑! 핑!
미리 준비하고 있던 멜리우스, 그리고 다크엘프 사수들이 활을 쐈다.
일부는 마력방어로 막았지만, 몇몇은 제대로 막지 못하고 박혔다.
애당초 우리는 대형 마력램프, 광원을 등지고 있다.
군사학까지도 갈 것 없이, 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싸우면 불리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군의 숫자가 적다.
“후우우…….”
나는 검을 잡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투 도중에 의식을 잃을까 봐 염려했는데, 보충은 했다.
어차피 싸우게 된 거, 실력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 준다.
“으아아!”
“…….”
제국군 둘이 쌍으로 덤벼 오자 나는 첫 번째 놈은 고개를 살짝 숙여 피하고 그어 버리고.
여력을 몰아서 바로 회전하면서 다음 놈까지 베어 버렸다.
순식간에 두 놈을 베어 버린 나는 또 몸을 돌리면서 세 번째 머리를 쫙 쪼개 버렸다.
“뭐…….”
3초도 안 돼서 세 놈이 줄줄이 사망하자 아군과 적이 술렁거렸다.
내가 보통 초능력, 염동력으로 싸우면 너무 상상 밖이라서 다들 입을 벌리고 넋이 나간다.
하지만 지금처럼 담백한 검술, 손과 발놀림만으로 상대해 주면 적들은 보다 쉽게 이해한다.
병사 백 명이 덤벼도 나 하나에게 안 된다는 걸.
“넌 내가 잡는다!”
이 사달을 일으킨 십부장이 함성을 지르면서 내 머리를 내리쳤다.
기세는 대단하나 정직하다.
나는 슬쩍 돌아 피하면서 가볍게 놈의 옆구리를 치고는 빠져나갔다.
“커어억…….”
전장에서는 굳이 치명상을 노릴 필요 없다.
거동 못 할 상처, 옆구리나 허벅지만 푹 찔러 줘도 시간이 알아서 상대를 죽인다.
풀썩!
십부장까지 일합을 못 버티자 쿠데타군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나는 쓰러진 십부장의 목을 검으로 눌렀다.
“다들 검을 버려라.”
“…….”
“마지막으로 말한다! 다들 검을 버려라!”
포효.
쿠데타군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검을 던졌다.
그러자 오르카를 따르는 다크엘프들이 얼른 검들을 수거했다.
제국군은 일반 병사도 전용 검을 받는다.
지금처럼 검을 몰수하기만 해도 전투력이 대폭 낮아진다.
“군인은 명령을 따른다? 그러니 내가 승자로서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가야 할 곳을 알려 주겠다.”
“…….”
“지금 당장 대장군 레릭에게 돌아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라. 민가에 해 끼치지 마라. 그것만 염두에 두고 돌아가라.”
나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는 리젠 리브라타다. 12가문의 일원으로서 약조하니 대장군 레릭의 휘하로 복귀하는 병사들은 전부 참작하겠다.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병사들에게 말해라.”
“…….”
주춤.
눈치를 보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물러났다.
그래도 등을 돌려서 달아나면 화살이 날아올까 봐 겁먹은 눈치.
나는 오르카와 다크엘프 요원들에게 호령했다.
“다들 물러나라. 좋아서 싸우는 이들이 아니다.”
“…….”
요원들이 물러나면서 검을 집어넣었다.
병사들은 살았다는 얼굴로 얼른 몸을 돌려서 달려갔다.
“고, 고맙습니다!”
어떤 병사는 나에게 감사 인사까지 했다.
멀어지는 발소리들.
오르카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냥 돌려보내도 되나?”
“검을 몰수했으니 전투 능력이 크게 낮아졌다. 오늘 밤에는 뭘 못 할 거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다른 병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퍼트려 줄 수도 있고.”
“너무 낙관적인 것 같은데…….”
“애당초 쿠데타는 위아래가 합심해서 벌일 수 있는 게 아니지. 대가리만 골라서 날려 버리면 병사들은 자연스럽게 항복할 거다.”
말한 나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십부장을 내려다보았다.
“병사들은 돌려보냈지만 십부장, 네놈은 다르다. 네놈의 멍청한 지휘 덕분에 엄한 병사들이 죽었다.”
“그르륵.”
십부장은 뭐라 말하려고 하지만 피거품만 일어났다.
나는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네놈과 백부장은 반역자로 기록될 것이고, 시체는 저잣거리에 내걸릴 것이다. 물론 국립묘지는 꿈도 꾸지 마라.”
“…….”
십부장의 몸에서 검은 아우라가 흘러나온다.
나는 그것마저도 흡수하고는 몸을 돌렸다.
“으, 으으으…….”
지원사령부에서 나온 천족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왜 황녀를 납치하려고 한 거지?”
“이, 이유는 모릅니다. 그냥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두 황녀님을 정중하게 모셔 오라고 말입니다.”
“비밀 통로는 어찌 알았냐?”
“그, 그것도 그냥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럼 더는 볼일 없군. 해라.”
날개 찢는 고문.
지금은 좌절과 절망의 정신력이 필요하다.
천족이 입을 떡 벌리고 도리질을 쳤다.
“살, 살려 주십…….”
“늦었다.”
비명 소리가 끝났다.
검은 아우라를 흠뻑 흡수한 나는 의자에 앉아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주변 다크엘프들의 얼굴들은 굳어 있었다.
남은 천족을 굳이 고문할 필요가 있었나 싶을 테니까.
고고한 천족이 몸부림치고, 거품을 물고 경련하는 모습은 훈련받은 요원들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나는 모른 척하고 오르카에게 말했다.
“오르카, 사주경계 철저하게 하고 이셀렌이 돌아올 때를 기다려라. 하인켈은 부상자 돌보고. 멜리우스, 황녀 곁에 있어라.”
“알겠습니다.”
다들 내 명령을 받들어서 흩어졌다.
오르카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다크엘프 세 사람과 내 곁을 지켰다.
나는 오르카의 옆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너는 괜찮냐? 다친 데는 없고?”
“좀 베인 거 말고는 끄떡없어.”
오르카가 헌걸차게 말하자 나는 녀석의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피와 흙먼지가 달라붙어서 더러워진 손.
오늘 밤에 고생 많이 했다.
“……뭐, 뭔데.”
오르카는 질겁하면서 손을 빼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품을 뒤졌지만…… 손수건 따위는 안 나오지?
“손 내 봐라.”
“뭐, 뭐 하려고?”
오르카는 당황하면서도 순순하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옷소매로 오르카의 손바닥을 닦아 주었다.
“아!”
찢어져서 피가 굳어 버린 손바닥을 건드리자 오르카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약 바르고 쉬어라.”
“이 정도는 끄떡없어.”
말하는 오르카가 내 눈치를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낌새.
나는 다른 다크엘프들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너희들도 정리하고, 좀 쉬고 있어라. 애들 많이 썼다.”
“감사합니다.”
다크엘프들은 목례하고는 물러났다.
이제 둘만 남았다.
그래도 오르카가 머뭇거리자 내가 선수를 쳤다.
“내가 너무 심했다고?”
“……아니, 그건 아니지만.”
“나도 어지간하면 안 이런다.”
적을 절망, 좌절시켜서 얻는 이 검은 아우라는 흡수 효율이 별로다.
거기다 방금 전 다크엘프들처럼, 수하들도 나를 꺼리게 된다.
나는 황제이자 제국군의 총수였다.
총지휘관이 지나치게 잔혹무도하다는 이미지를 심으면 큰 그림이 흐트러진다.
지금이야 펑크 난 정신력을 급히 때우려고 한 거고.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평소의 30%밖에 안 되고.
화제를 돌리자.
나는 오르카에게 물었다.
“지원사령부의 수장이 누구지?”
“비장군 카마엘, 천족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은 걸로 안다.”
“비장군?”
“5황후 전하가 신설한 직책이다. 지원사령부는 제국군과는 체계가 달라.”
나는 말년에 지원사령부를 만들려고 하다가, 너무 과하다 싶어서 폐기했다.
그런데 5황후가 내 유언을 빙자해서 만들었단 거다.
오르카가 말했다.
“5황후 전하께서 미리엘 누나를 보호하려고 보내신 것 같은데…… 오해하실 것 같군.”
“그건 아니다.”
“뭐?”
“이놈들은 천리정후의 명령을 받고 온 게 아니야.”
오르카가 눈을 깜빡거렸다.
“어떻게 아는데?”
“남자만 보냈잖아. 만약 5황후가 미리엘을 데려오려고 한 거라면 절대로 남자들만 보내지 않는다.”
오르카도 생각하다가 좀 납득한 얼굴이었다.
최근 미리엘은 정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잘 모르는 남자 둘만 보내서 데려온다?
케드릭 때의 그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는데?
5황후라면 본인이 직접 오려고 할 것이고, 정 안 되면 여자를 골라서 미리엘을 안심시키려고 할 것이다.
오르카는 의아하게 말했다.
“그러면 지원사령부 장군의 독단이라고?”
“그건…….”
“여왕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다크엘프의 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어버리다 보면 알게 되겠지.”
쿠데타는 막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졌다면?
다 쓸어버리고 내가 황도를 지배하고, 앞으로의 정국을 장악한다.
그게 바로 피가 가장 적게 흐르는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