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90)
내가 없으면
상대는 오크 토구로.
나와 같은 5계위.
마력질주로 뒤로 달리기까지 하고, 마력장도 쓸 줄 안다.
거기다 품속에는 폭렬탄을 잔뜩 품고 있다.
나를 잡기 위해서 잔뜩 준비한 강자다.
“간다.”
“와라.”
오가는 말.
토구로는 마력질주로 달려들면서 도끼를 빠르게도 휘둘렀다.
일렁거리는 푸른 마력, 마력검!
막아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 몸이 날아갈 것이다.
피하면? 바로 추격해 올 거고.
마력장을 발동하면 밀려나진 않겠지만…….
“흡!”
나는 뒤로 달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파바바밧!
차차창!
비스듬히 뒤로 달리는 나를 노리는 도끼날과 내가 휘두르는 검이 서로 부딪친다.
나 역시도 마력질주로 뒤로 달리기쯤은 해낸다!
타아악!
그리고 나는 갈지자로 뛰면서 시선을 뺏고는…… 아주 낮은 자세로 토구로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토구로는 거구에도 운동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하지만 나는 염동력으로 관성과 중력마저도 무시하고 멋대로 튄다!
“음!”
내가 발목을 노리자, 토구로는 한발 늦게 뒤로 뛰어서 피했다.
그래도 발목을 베여서 피가 튀었다.
하지만 토구로는 뒤로 피하면서 또 폭렬탄을 뿌렸다.
“이런…….”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다.
나는 급하게 염동력으로 폭렬탄을 잡아채서는 옆으로 날려 보냈다.
한데 뒤로 뛰어서 피하던 토구로가 도끼를 길게 잡더니만 내 머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이놈, 일부러 발목을 주고 시간차 공격을 한 거다!
나는 얼른 검을 세워서 막았지만…… 몸이 쭉 밀려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염동력으로 폭렬탄을 날려 버린 쪽으로.
염동결계!
콰아아앙!
폭발에 휘말린 내 몸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염동결계를 거듭 쓰다 보니 약해져서 슬슬 방어가 뚫린다.
등과 배가 여기저기 찢어지고 아프다.
“흡!”
하지만 쉴 시간은 없다.
토구로는 펄쩍 뛰면서 내 머리를 찍으려고 들었다.
나는 얼른 옆으로 굴러 피했지만…… 그때 또 토구로가 폭렬탄을 던졌다.
“아, 거…….”
같은 수법에 당할 수 없으니 나는 재차 뒤로 뛰어서 피했다.
하지만 토구로는 그러거나 말거나 나를 또 추격해 온다.
이놈, 진짜 강하다.
폭렬탄을 마구 낭비한 덕이라지만 , 내가 초능력과 염동결계를 쓴다는 걸 알고 대처하면서 밀어붙이고 있었다.
자기는 폭렬탄에 휘말려도 다치지 않는다는 걸 계산해서 내 행동반경을 제약하고, 깎아 내고 있다.
일단 숨이라도 돌리려고 나는 벽을 달리면서 피했다.
하지만 토구로 역시, 지면에서 나를 쫓아 달리면서 또 폭렬탄을 뿌려 댄다.
퍼버버버벙!
“큭!”
염동결계가 깨지기 시작한다.
내가 풀쩍 뛰어서 피하자 토구로는 또 도끼를 길게 잡고는 나를 날려 버렸다.
날아가다가 몸을 뒤집어서 벽을 밟고 착지한 나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후우우…….”
인정한다.
내가 환생하고 만나 본 놈들 중에서 제일 강하다.
단순히 마력이 높은 것만이 아니다.
도구를 쓰고,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나를 깨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
솔직히 누구라도 이런 전법에는 대책이 없다.
애당초 폭렬탄은 군대 용품이지, 일대일 대결에 쓰라고 만든 게 아니니까.
폭렬탄을 열 개, 스무 개씩 펑펑 뿌려 대는 놈은 보통 못 잡지.
6계위, 7계위라면 모르지만…….
“항복해라.”
“……내가 안 할 놈이라는 거 알지 않냐?”
“너는 졌다. 항복해라.”
토구로가 재차 권유한다.
나는 일단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하면서 방법을 생각했다.
염동력과 다른 초능력을 써야 하는 걸 생각하면, 염동결계는 이제 한 번이 끝이다.
텔레포트로 기습? 토구로 정도면 쳐 내거나 막고 인파이팅을 걸어올 거다.
그럼 이제까지 안 쓴 수법을 쓰는 수밖에.
본래 제대로 된 검이 있어야 하고, 또 마력 낭비가 심하지만…….
내가 결단하는데 토구로가 말했다.
“신의 재림에 대해서 말하겠다.”
“너 죽어 가면서 유언으로 남겨도 되는데?”
말은 이러면서도 난 귀를 열었다.
적이 정보를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방법은 신체(神體)다.”
“원래 칠죄신은 몸을 여러 번 갈아탔잖아?”
“신이 임하시기에 마땅한 몸을 마련한다. 그러면 오신다.”
“…….”
나는 잠깐 생각하고는 말했다.
“디에르크가 숨어서 여러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던 것도 그래서냐? 적합한 몸을 찾기 위해서?”
디에르크가 유독 내 몸을 탐했는데.
나는 그놈이 내 몸을 쓰려고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라면?
토구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모른다. 하지만 맞는 소리 같군.”
“그래서. 뭔데? 내가 항복하면 내 몸에다가 칠죄신을 불러오겠다고?”
“영광된 일이다. 그리고 네가 싫다고 해도 패자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말은 너한테 돌려주지.”
나는 검을 꽉 잡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다리에는 마력.
그리고 정신력을 끌어모은다.
토구로는 한 손을 품에 넣고, 다른 손으로는 전투도끼를 들었다.
“아쉽다. 너와 좀 더 알고 싸우고 싶었는데.”
결판!
나는 앞으로 달리면서 검을 날렸다.
이제까지 나는 투검(投劍), 검에 마력을 감고 던지는 걸로 끝났다.
옛날의 경지를 회복하지 못해서, 적당히 때운 거다.
하지만 내가 본래 하던 건 비검(飛劍).
검에 마력과 정신력을 감고는 빛살처럼 던진다!
휘리리릭!
“음!”
토구로는 몸을 돌리면서 피해 냈다.
마력질주로 덤벼 오던 중에도 정말 대단한 반사 신경.
하지만 나는 양손에 마력을 담고는 놈을 향해서 접근한 뒤였다.
그러자 토구로는 바로 자기 머리 위로 폭렬탄을 던지면서…… 도끼를 휘둘렀다.
폭발이 무서우면 몸을 피하라는 경고.
“합!”
하지만 나는 염동권으로 토구로의 가슴팍을 때리고 쳤다.
예상 밖의 공격에 토구로가 신음과 피를 토하면서 물러난다.
그리고 도끼가 날아오고, 폭탄이 내 머리 위에서 터졌다.
퍼어엉! 푸우욱!
나는 염동결계로 양쪽 다 막았지만 폭발에 또 몸이 뒤로 날아갔다.
“후우, 후우우…….”
차아악!
그리고 날아 돌아온 검을 붙잡는다.
칼날이 피투성이다.
저편.
토구로는 가슴팍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 서 있었다.
내가 날린 비검이 돌아오면서 왼쪽 가슴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심장 관통, 보통 생물이라면 즉사다.
“…….”
하지만 토구로는 대수롭지 않게 자기 가슴을 쓱쓱 문질렀다.
그러자 시멘트로 벽을 때우는 것처럼, 순식간에 복원되었다.
아니, 심장이 파괴되었을 텐데도 움직인다고?
―……이 정도로는 안 되지. 심장은 이미 내가 먹어 버렸거든.
토구로의 입에서 갑자기 음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등에 소름이 돋는다.
“너, 설마…….”
―아직도 애쓰고 있었나, 황제?
“……칠죄신!”
내가 검을 꽉 잡는데 토구로가 갑자기 허공에 도끼를 부웅 휘둘렀다.
“이번에는 내가 졌다.”
다시 중후한 목소리.
토구로로 돌아왔다.
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방금 칠죄신이냐?”
아주 짧은, 5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지만.
토구로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나도, 너도 상태가 별로 좋지 않군. 다음에 다시 싸우자.”
“웃기는 소리 말고. 목 내놔라.”
아주 잠깐이지만 칠죄신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놓칠 수 없다.
타다다닥!
하지만 토구로는 폭발로 뻥 뚫려 버린 벽을 향해서 달려갔다.
“안 놓친다!”
놈이 휙 뛰어내리자 나도 마력질주로 얼른 뒤쫓았다.
이런 놈들은 꼭 뒤쪽으로 폭탄을 뿌리지?
나는 한껏 경계하면서 뛰어내렸는데…… 토구로는 폭탄을 뿌렸다.
나를 향해서 두 개.
그리고 지상에서 올려다보면서 사람들의 머리 위로 세 개.
나를 따르는 경찰들과 민간인의 머리로 폭렬탄이 떨어진다.
“이놈이!”
나는 기겁하고는 얼른 염동력으로 끌어 올렸다.
각자 궤적이 다르게 떨어지는 폭렬탄 다섯 개를 전부 다 잡아채는 건 나로서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딴 게 황도에 터지게 놔둘 순 없다!
나는 정신력을 잔뜩 끌어모아서는 얼른 폭탄을 상승시켰다.
콰카카카카앙!
그리고…… 내 근방에서 폭렬탄 다섯 개가 단번에 터져 나갔다.
후폭풍에 휩쓸린 내 몸이 빙글빙글 날아간다.
정말 최후의 염동결계까지 써서 막았지만 피가 울컥 올라온다.
추락하는 중에 염동력으로 제어해 보려고 해도 정신력이 하나도 없다.
그럼 마력방어밖에 없다.
차차차차착!
지면에 등부터 떨어진 내 몸이 구르다가 튕겨 오른다.
“본부장님!”
튕겨 나서 데굴데굴 구르는 나를 잡는 팔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내 눈에 보이는 건 경찰복이었다.
달려와서 나를 받아 든 중앙경찰들이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그중에서 루온의 얼굴이 보인다.
“보, 본부장님!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아. 부상이 좀 있긴 한데…….”
계속 폭탄에 얻어맞아서 여기저기 잔부상이 있었다.
화상이 꽤 있고.
내 발로 일어서려는데 몸이 무너졌다.
루온과 다른 경찰들이 급히 부축했다.
“본부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의사!”
“아니, 안 죽어. 안 죽는데…….”
진짜 큰일 났다.
정신력이 바닥이다.
나는 초능력을 쓰는 정신력이 다 떨어지면 강제로 잠들면서 쉬게 된다.
큰 전투 직후에 종종 이러는데…… 진짜 답이 없다.
감기려는 눈을 애써 붙든 내가 급히 외쳤다.
“오크! 나와 함께 떨어진 오크를 잡아!”
“아, 오크인지는 모르겠지만 애들 몇이 따라붙었습니다!”
“아니, 조심히 쫓아. 아니…….”
폭탄을 펑펑 터트리는 놈에게 일반 경찰은 상대가 안 된다.
졸음이 쏟아져서 머리가 안 돌아간다.
“쫓지 마! 희생만 나온다. 어차피 놈이 갈 데라고는 뻔해. 아리에드 가문하고 손을 잡고 움직이는 놈이니까.”
“예? 그러면 아리에드 가문의 가주를 긴급체포 할까요?”
“아니, 잠깐. 그러면…….”
문득 모골이 송연해졌다.
토구로는 나를 노리고 기다렸다.
왜?
내가 번번이 제국해방군의 테러를 막았으니까.
쿠데타까지 막을 게 분명하니까.
그런데 내가 없으면?
내부에서 조각난 제국은 속수무책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했다.
나는 이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정신력을 회복할 때까지는 못 일어난다.
그동안은?
“……쿠데타는 이제 일어난다. 늦어도 내일 새벽. 앞으로 5시간 안에!”
나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쓰러지면 안 된다.
아르센이나 레릭, 랑에이와 이셀렌이 일사불란하게 합심해서 대처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그래도…… 쿠데타를 일으키는 놈들은 보통이 아니다.
아, 하지만 시야가 아득해진다.
내가 쓰러지는 건 기정사실, 그럼 차선책을 짜내야 한다.
“루온, 네가 책임지고 랑에이에게 전해라.”
“예! 뭐라고 전할까요?”
“황궁으로 가라고 해. 5황후! 천리정후에게 반드시 1급 치료약을 받아 오라고 해. 그걸 먹이면 나는 깨어난다고!”
정신력이 바닥나서 쓰러지면 자는 동안 회복된다.
거기에 1급 치료약까지 먹이면 의식을 차릴 것이다.
해 본 적이 없지만 아마도.
모든 수단을 다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루온은 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그도 내 활약을 꾸준히 보았고, 중앙경찰의 짬이 있다.
쿠데타를 막으려면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 최대한 감춰라. 최대한 감추고 웰링 저택으로 보내 놔. 시간 벌이는 될 거다.”
“예! 나머지 지시는…….”
“나머지는…….”
아, 의식이 흐릿해진다.
이제 더는 안 된다.
“……이셀렌에게 총지휘를 맡긴다고 전해.”
한계다.
1초라도 더 버텨 보려던 나는 결국 눈을 감아 버렸다.
쿠데타가 벌어진다는 걸 알지만…… 내 정신이 한계에 달했다.
자야 한다.
부디 다른 녀석들이 조금이라도 버텨 주길.
나를 깨워 줄 거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