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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76화 (75/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76)

여왕과 춤을

사도 디에르크가 앞에 있다.

하지만 나는 비무장 상태다.

불법 카지노에 무기 갖고 들어올 수 없으니까.

테오도라, 아니 디에르크는 다리를 꼬고는 나를 보았다.

―또 만났는데도 모르는 척하시네요. 이거 섭섭해서 어쩌나?

“…….”

나는 테오도라의 부하들, 그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다들 무표정했다.

익숙한 것처럼.

이 테오도라가 디에르크의 본체일 리가 없다.

비요른 때처럼 원거리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 일단 탐색이나 해 볼까?

나도 다리를 꼬고는 양손으로 미레이와 이셀렌의 허리를 안았다.

대놓고 여유롭게.

디에르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자를 좋아하시나 보군요?

“남자를 좋아해도 너는 싫겠다. 왜 칠죄신을 섬기지?”

―신에 의해 태어난 생명이 왜 신에게 복종하냐고 묻나요? 당신들은 아버지를 따르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칼 던져 주면서 동생하고 서로 죽이라는 아버지를 따르겠냐?”

물론 나도 디에르크를 정말로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대꾸하면서 발끝으로 이셀렌의 발뒤꿈치를 툭 쳤다.

내가 시작하면 따르라는 신호다.

디에르크가 빙긋 웃었다.

―그렇게 찌르고 죽인 다음에 한 차원 높은 생명체로 회생(回生)시켜 주시잖아요? 이게 다 아버지의 깊은 뜻이 담긴 시련이랍니다.

“그래서? 지금 회원 가입을 하면 다이아몬드 회원으로 만들어 주시나?”

―그럼요. 리젠 리브라타. 당신은 자기 심장이 얼마나 각별한지 알고는 계시나요? 그 육체에 신의 은혜를 받는다면…….

“아니잖아. 너, 내 몸을 노리지?”

내가 뚝 끊었다.

애당초 디에르크는 비요른 사건 때도 내 몸을 차지하려고 했었다.

리젠의 성장률은 사기니까.

3계위로 출발하더니 몇 번 싸우고는 벌써 5계위, 유사 이래 가장 빠른 성장이리라.

디에르크는 입가를 만지작거렸다.

―아, 다 알았다니 소용이 없군요. 예, 저는 당신의 몸을 원합니다.

“…….”

덩치 푸짐한 아저씨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날 원한다고 하신다.

……영업할 거라면 다음부터는 비주얼에 좀 신경 쓰라고 하고 싶다.

미레이가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는 나와 디에르크를 번갈아 보잖아.

디에르크는 손바닥으로 뺨을 가리고는 부드럽게도 말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방금 보셨다시피…….

“본래 인격을 남겨 두고도 잠식할 수 있다. 혈액을 통해서 감염되며 본체를 죽이지 않는 한 의미 없다.”

갑자기 이셀렌이 입을 열었다.

디에르크가 돌아보는데 이셀렌이 계속 말했다.

“감염 대상은 오로지 인간뿐, 그리고 낮에는 활동 능력이 저하된다. 본체를 죽이면 모두 다 끝난다. 하지만 개체들 사이에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본체를 죽이는 게 쉽지 않다.”

―흐으으음? 보통 다크엘프가 아니라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설마?

디에르크가 간사하게 말했다.

이셀렌이 냉담하게 받아쳤다.

“사도, 뱀파이어 디에르크. 추방당한 칠죄신이 만든 실험작.”

―하하하, 무슨 소리. 실험작이라니. 잘 모르고…….

“실험작이지. 정말로 성공했다면 전쟁 시기에 투입했을 테니까. 투입했다면 제국군도 아수라장이 됐겠지.”

이셀렌은 싸늘하게 말했다.

“굳이 인간만으로 한정한 이유는 뻔해. 종족을 갈라치기 하기 위해서, 또 황제 역시 인간이었으니 불신을 심기 위해서다. 하지만 성공하기 전에 제국이 승리했고 너는 어둠에 스며들었다.”

―…….

“넌 제국이 서로를 믿게 만들 수 없게 만드는 원흉이다.”

―……역시 암살여왕이셨군요. 이거 참 놀랍네요. 그 농염한 육체가 탐이 나요. 당신 같은 여자도 침대에 오르면 한 마리 귀여운 암고양이겠지. 응? 그렇게 도도한 척하고 있어 봐야 황제에게 깔리면 아주 달콤하게 허덕거리…….

퍽!

테오도라의 육체가 앞뒤로 흔들렸다.

내가 지른 주먹에 안면을 얻어맞은 것이다.

이셀렌이 좀 놀란 얼굴이었지만 나도 때려 놓고 놀랐다.

그냥 손이 나가더라고.

뿌드드득.

디에르크는 부러진 코뼈를 돌려서 맞췄다.

신음 소리 하나 안 내는 게 역시 디에르크에게 직접 타격은 안 가는 모양이었다.

이셀렌이 냉정하게 말했다.

“이 조종도 완벽하지는 않아. 거리 제한이 있다. 너는 지금 황도에 있지.”

―정답! 하지만 황도의 4천만 시민들 중 어디에 있을까요?

“어디로 오고 싶은지는 알 수 있지. 감염을 시키려면 네 피를 먹이거나 네가 직접 물어야 한다. 즉…….”

이셀렌이 나를 흘끗 바라보았다.

“리젠 리브라타의 육체가 탐이 난다면 직접 올 거다. 실제로 왔군.”

―함정에 빠트렸다고 생각하시나요? 유감이네요. 여길 피바다로 만들어 봐야 나는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은데…….

“네가 어째서 실험체인지 모르고 있군.”

―…….

“곧 알게 될 거다.”

이셀렌은 차게 말하고는 술을 입에 가져갔다.

칠죄신의 충복도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는 여왕.

“아, 그거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군.”

“……뭐?”

이셀렌은 이해를 못 했지만 나는 고개만 저었다.

말하는 걸 보니 디에르크를 오래 추적해 왔다.

이셀렌도 정말로 제국을 선뜻 버리려던 건 아니리라.

나는 앞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자, 서로 이야기는 다 끝났으니 한판 떠 볼까?”

―당신도 저 여자에게 동조하는 건가요?

“아니, 그냥 제정신이라서 네가 싫은 건데? 너 같은 이상한 기생충에게 몸을 내줄 사람이 있겠어?”

―기…….

그 순간 나는 앞에 놓여 있던 포크를 던져 버렸다.

염동력을 담아서.

푸우욱!

기습, 디에르크의 눈깔에 포크가 정통으로 박혔다.

잠시 멈칫한다.

역시나다.

조종하는 육체, 고통은 무시해도 경직까지는 컨트롤 못 한다!

나는 발끝으로 상을 올려쳤다.

퍼어억!

색색의 카드가 천장까지 치솟고, 뒤집힌 상이 테오도라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그러자 테이블 주변에 있던 테오도라의 부하들이 일제히 눈을 뒤집었다.

역시 죄다 디에르크에게 감염된 것이다!

“각자 알아서 싸워!”

“예!”

미레이는 몸을 굴러 빠져나가면서 양손에 포크를 쥐고 휘둘렀다.

농담 같아 보이는 광경. 하지만 포크 끝에 불꽃이 확 맺힌다!

엘프의 정령마술이었다.

미레이는 방금 전까지 케이크를 찍어 먹던 포크로 적을 가르고 베어 버렸다.

적의 목줄과 눈만 노리고 공격하는 게 아주 효과적이다.

저래 보여도 시골 마피아 출신, 벽과 소파를 등지면서 싸우는데 실력이 제법이었다.

벌떡!

그사이, 테이블을 옆으로 던져 버린 테오도라가 나를 향해서 뛰어들었다.

양손에 감긴 마력.

하지만 나는 대뜸 걷어차서는 다시 소파에 처박아 버렸다.

어렵지 않다.

지금 서른 명의 인간들이 모두 다 디에르크의 수하라고?

보통 인간은 양손잡이가 드물다. 나도 하다 보니 된 거고.

그런데 서른 명을, 원거리에서 전혀 딜레이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조종하는 게 가능할까?

그게 가능하면 실험체가 아니겠지!

나는 테오도라의 복부를 발로 누르면서, 소파를 타고 넘어오는 놈을 주먹으로 쳐서 날려 버렸다.

뻐어억!

“컥!”

한 놈이 나자빠졌는데, 두 놈이 다시 연달아서 소파를 타 넘는다.

피를 본 들개처럼.

팍.

그 순간 이셀렌이 우아하게도 올려쳤다.

힐의 앞쪽에서 튀어나온 칼날이 한 놈의 목을 쑤시고는 빠져나왔다.

남은 하나는 내가 손바닥으로 잡고는 테오도라의 안면을 향해서 찍어 버렸다.

뻐어억!

서로 안면 키스를 한 놈들이 덜덜 떨었다.

“으아아악!”

피가 튀자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고는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반대로 적들은 썰물처럼 나와 이셀렌을 향해서 마구잡이로 덤벼든다.

뿌직!

테오도라의 복부를 짓이겨 버린 나는 이셀렌과 등을 맞댔다.

이셀렌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나이프를 건네주었다.

푹!

나는 받은 나이프로 정면으로 덤벼 오는 종업원의 턱 아래를 쑤시고는 빼냈다.

난전에서 서로 등을 붙이고 싸우는 건 효과적이지만 유지가 어렵다.

서로 동선이 겹치면 꼬이고, 또 지나치게 움직이면 파트너가 노출된다.

푹! 찌이익!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해냈다.

적이 덤벼서 내가 옆으로 피하면, 이셀렌이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보지도 않고 찔러 버린다.

나는 선회하면서 이셀렌의 측면을 노리던 딜러의 목을 쳐 버리고.

그리고 다시 자석처럼 착 등을 맞댄 다음.

빈틈이라고 착각하고 덤벼 온 적의 안면을 날려 버린다.

귀로 서로의 호흡을 감지하고, 맞붙은 파트너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즉시 보강한다.

전투의 춤을 추듯이.

“아하하하.”

적의 목을 끊고 피를 뿌리는 중에 자연스럽게 터지는 웃음소리.

이셀렌의 웃음, 나도 웃고 있었다.

이렇게 싸우고 있다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즐겁다.

스물 남짓 쓰러트리자 디에르크가 주춤했다.

고통도 무시하는 놈들이 많은데도 우린 상처 하나 안 입었으니까.

이셀렌이 조롱했다.

“역시 다중 조종은 제대로 안 되는군. 중계기의 기능도 떨어지나? 만들다 만 실험체다워.”

―……뭐라고?

좀 떨어진 자리에 서 있던 딜러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순간, 나는 바닥을 차고는 놈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이셀렌이 괜히 비웃었을 리가 없다.

도발, 적의 진의를 끌어내기 위한 거다.

이 경우에는 디에르크의 본체.

테오도라와 부하들을 자유롭게 조종하기 위한 중계기!

―큭!

미녀 딜러가 테이블의 카드들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급히 휘둘렀다.

장난 같아 보이지만 녹색 마력이 일렁거린다.

“이런 게 되시네?”

나는 감탄하면서도 피하고 손을 내질렀다.

염동장.

―컥!

딜러가 물러나면서 피를 토하면서 비틀거린다.

나는 발끝으로 상대의 목뼈를 후려쳤다.

뿌각.

섬뜩한 소리가 들리면서 딜러의 몸이 축 늘어졌다.

풀썩! 풀썩!

그러자 남아 있던 테오도라의 수하들이 실 끊어진 연처럼 푹푹 고꾸라졌다.

피와 시체, 쓰러진 사람들로 엉망진창이 된 실내.

손님들은 이미 싹 밖으로 빠져나갔지만 의미 없다.

주변은 경찰들이 포위했으니까.

“히잉. 이거 오늘 산 건데…….”

미레이는 자기 옷에 피가 묻었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셀렌을 돌아보았다.

팔짱을 낀 그녀는 도도하게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투 후라 살짝 가빠진 호흡.

“…….”

“…….”

오가는 시선.

이셀렌은 나를 보며 낯설어하고 있었다.

그리운 기억을 떠올려 버리고는 아연해진 표정.

하지만 이셀렌은 얼른 표정을 감추고는 말했다.

“또 큰 공을 세웠군. 축하한다, 본부장.”

“감사합니다. 제가 이름을 떨칠수록 여왕님께서는 저를 죽이기 어려워지실 것 같지만요.”

“내가 왜 너를 제거하지?”

이셀렌은 요염하게도 흘겨보았다.

“네가 제국의 소란을 잠재우고 있으니 오히려 응원해 줘야 하는 입장이다만? 실제로 테러 수사본부에 합류해서 정통성을 승인하고 이런 정보도 주지 않았나? 또 랑에이가 너를 비호하는 마당에 건드려 봐야 분란만 일어나지.”

“그러게요. 나도 그것이 알고 싶어요. 그렇게 잘 아시면서 왜 나를 죽이려는지.”

“…….”

나는 피바다가 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본래라면 날 여기 혼자 보내고 간 보시려고 했겠지. 내가 죽으면 좋고, 아니면 디에르크의 정보를 얻고. 디에르크가 어디에서 조종하는지, 그 후보를 좁힐 생각이었겠지.”

디에르크의 능력, 언뜻 무시무시하지만 약점도 분명했다.

다수는 원활하게 조종할 수 없고, 원래 육체 이상의 힘을 발휘 못 한다.

그러니 내 육체, 잠재력이 대단한 리젠을 원하는 거겠지.

이셀렌이 차게 웃었다.

“원하던 것 아니었나? 또 네 요청대로 나도 함께했다만.”

“아, 그…….”

팍!

말하는 순간, 쓰러져 있던 인간 남자 하나가 이셀렌의 등을 덮쳐 들어왔다.

나는 왼손으로 이셀렌의 허리를 감고 끌어당기면서, 오른손을 내질렀다.

퍼억!

머리가 박살 난 남자가 풀썩, 무릎을 꿇고는 쓰러졌다.

“다 끝난 척하고 하나가 기회를 엿보고 있었네. 너무 고전적인 수법이잖아?”

“…….”

나는 허리를 안은 이셀렌을 살폈다.

그녀는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표정, 가늘게 떨리는 몸.

나는 그녀를 끌어안은 채로 일렀다.

“우리가 여기서 이랬으니, 후보는 확실하게 좁히셨겠지?”

“……디에르크의 본체는 사지타리 가문에 있다.”

이셀렌은 멍하니 대답했다.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멍한 얼굴.

나는 잠깐 짚고는 말했다.

“그래, 사지타리 공작 가문 안에 디에르크가 있고, 그가 폭탄을 빼돌린 범인이다. 그걸 조사해서 확인하고자 수사본부에 합류한 거였군.”

“…….”

이셀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게 정답이었다.

지금이라면 내가 뭘 말해도 순순히 믿고 받아들일 것 같다.

내가 시릭이라는 걸 밝혀도.

하지만 밖이 소란스럽다.

“모두 구금해라!”

“돌입! 돌입!”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경찰들이 거의 상황을 제압하는 모양이었다.

머지않아 여기까지 들어올 것이다.

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

“자, 그럼 이렇게 할까? 우리가 같이 사지타리 가문으로 간다. 가면 디에르크가 나올 테고, 그때 마무리한다.”

“……사지타리 가문 안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 그들도 명색이 12가문이고 또 제국의 공신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그러려고 본부장 한 거니까.”

나는 피가 묻은 손으로 그녀와 깍지를 꼈다.

이셀렌의 손 역시도 피투성이.

서로 피 묻은 손을 겹치면서 나는 가볍게 일렀다.

“들어가서 디에르크의 목을 먼저 따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합시다. 이기는 사람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내가 이기면 우리 진득하게 이야기나 좀 합시다.”

애당초 이건 성립할 수 없는 내기다.

지금 호흡을 딱딱 맞춰서 싸웠다고는 하나, 정말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거기서 완전히 결판을 내자는 제안이다.

이셀렌도 그걸 아는 투로 물었다.

“……만약 내가 이긴다면?”

“그럴 일은 없어, 라그리즈.”

뾰족한 귀 끝에 나직하게 속삭이자 이셀렌이 간지러워서 몸을 틀었다.

옛날처럼 달아오르는 뺨.

반사적으로 풀리는 입매, 녹아드는 눈동자…….

“…….”

그 순간 이셀렌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격렬한 자기혐오.

바로 앞에서 본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 여자는 지금 나, 리젠을 미워하는 게 아니다.

내 부름에 흔들리는 자기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정염(情炎)을 용서 못 하는 것이다.

알아차린 내가 놀라는데 이셀렌은 외려 깍지 낀 손을 꽉 눌렀다.

딱 밀착하게.

여왕이 결연하게 대답했다.

“좋다, 받아 주마.”

부부가 일심동체면.

미끼 역할도 같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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