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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73화 (73/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73)

차라리 적과 동침하지

대테러 합동수사본부.

철도헌병대와 중앙경찰, 그리고 제국군이 하나로 모여서 테러범들과 맞선다.

진즉에 만들어졌어야 했지만 그간 단체들의 자존심 싸움, 영역 다툼으로 늦어졌다.

하지만 내가 철도헌병대와 중앙경찰을 제압하자, 제국군도 뜻을 꺾고는 합류했다.

그래도 자질구레한 디테일이 남았다.

본부를 어디다 둘 것이냐, 각자 보내는 인원의 숫자와 급.

하지만 결국 다 처리되었다.

수사본부 회의실.

오늘 세 단체의 간부들이 처음으로 모이는 날이다.

나와 아르센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

“이제야 시작이군요.”

“그래, 아르센, 고생 많았다.”

디테일 문제에서 철도헌병대는 상당히 많이 양보했다.

제국군도 상당히 놀랐는지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철도헌병대 안에서도 너무 많이 양보하는 거 아니냐고 불만이 있었지만, 아르센이 알아서 단속했다.

수사본부가 이리 빠르게 발족한 건 아르센의 공이 컸다.

“아닙니다. 이제 문제는 수사 지휘권을 누가 잡느냐만 남았습니다.”

“그건 양보할 수 없다고 전했지?”

머리는 하나여야 한다.

아르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헌병대와 경찰, 모두 특관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 요즘 거리 곳곳에서 특관님의 소문이 아주 자자합니다. 12가문에서 드디어 걸출한 인물이 나왔다고요.”

“그러냐.”

“……달갑지 않으십니까?”

“글쎄다. 내가 만든 나라가 100년 사이에 여기저기 구멍 뿅뿅 뚫려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참 인생무상이다 싶은데?”

아르센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만큼 폐하의 존재가 컸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머지않아 다들 진실을 깨닫고는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사람 온다.”

내 말에 아르센은 얼른 뒤로 물러나서는 입을 다물었다.

본인도 연기력이 부족한 걸 알아서 그냥 입 다물고 있기를 택한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경찰대원들이었다.

가장 앞에 선 여우 수인 남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수사본부에 지원하고자 온 루온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만.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랑에이의 처리.

중앙경찰들은 내가 사전에 다 알고 비요른을 처단했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비요른이 테러범의 증거물을 빼돌리려고 했다고.

백일하에 드러났다면 조직의 명예가 실추되었을 문제, 해결해 준 나는 중앙경찰에게 은인이었다.

나를 보는 시선에 두려움은 있을지언정 거부감은 없었다.

나는 다가가서는 손을 내밀었다.

“새삼스럽지만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헌병대 특관 리젠입니다. 같이 힘내 봅시다.”

“……감사합니다.”

“저는 기도락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로트입니다. 앞으로 잘…….”

나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하고는 손을 잡고 악수했다.

앞으로도 내 손발이 되어서 옆에서 일하고, 현장에서 목숨을 걸 이들이다.

지난 감정은 잊어버리고 마주하는 게 옳았다.

한바탕 소개가 끝나고 루온이 말했다.

“그런데 제국군에서 사지타리의 장남이 나온다는 게 사실입니까?”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모로 따져 봤을 때 사지타리는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루온의 말.

나는 의자를 끌어와서는 그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나 역시도 마주 앉았고.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내가 진지하게 듣겠다는 태도를 보여 주자 루온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희 중앙경찰은 제국군 내부를 직접 파헤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루크 케드릭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조사했습니다. 루크 케드릭은 사관학교를 중퇴했지만, 당시에 사지타리의 자제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경찰의 정보력도 쓸 만하다.

루온이 계속 말했다.

“사지타리 가문의 자제들은 제국군에 복무하는 게 전통입니다. 100년이 넘게 그래 왔으니 제국군 안팎으로 영향력이 세지요. 사지타리가 마음을 먹었다면 폭탄을 빼돌리기는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아주 유력한 용의자죠. 사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취조실로 데려가야 합니다.”

“물증이 없잖습니까?”

“이런 일에 물증이 쉽게 나오겠습니까? 말할 때까지 심문해야죠.”

루온이 나직하게 말했다.

“또 수상한 점이 있는데, 케드릭 가문이 연일 열었던 파티, 그 자금 말입니다.”

“예. 그게 뭡니까?”

“출처가 수상합니다. 뒤져 봤는데 유령회사들이었습니다. 주소로 가 봐야 빈 건물이었고요.”

“그냥 테러 조직의 자금원 아니겠습니까?”

“……그게 이상하단 말입니다. 테러 조직이 돈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닐 텐데 파티에 돈을 쓰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 소식은 없습니까?”

“전역한 이들을 찾아서 정보를 캐 보려고 했는데…… 다들 하나같이 비협조적입니다. 제국군은 워낙 자부심이 강해서 말입니다.”

제국군은 제국과 동시에 만들어졌고 나와 늘 함께했다.

시기를 따지면 철도헌병대나 경찰들보다 훨씬 앞선다.

황제의 오른팔.

제국군은 자기들이 제국을 세웠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제국군이 오길 기다려야겠군요.”

“예. 그러면…….”

나는 가벼운 일상 잡담을 건네고는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를 경계하고 또 긴장해 있던 경찰들의 분위기가 풀려 간다.

내 언행이 황제치고는 종종 가볍다고 신하들이 숱하게 간언했지만 나는 싹 무시했다.

거추장스러운 게 싫기도 했고…… 이렇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서로 굳은 얼굴로 만났지만 마주 앉아서 편하게 대화하니 15분 만에 웃음소리 나잖아.

달칵.

한창 이야기를 하는데 문이 열렸다.

질서 정연한 발소리들.

들어온 건 열 명, 제국군 군복을 입은 남녀.

가장 앞에 선 남자가 우리를 향해 경례를 했다.

“황제 폐하 만세! 제국군 백검장, 우렌 사지타리입니다!”

“제국군 천부장 칼비나 리브라타입니다.”

“제국군 백부장 다르갈 사지타리라고 합니다.”

앞에 선 세 남녀의 소개.

칼비나야 이미 알고, 나머지 둘이 사지타리 가문의 일원들인가?

나는 웃으면서 우렌을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철도헌병대 특관인 리젠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다니 통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우렁찬 목소리.

다들 움찔하는데 우렌은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니! 황제 폐하를 보기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지금 당장 자결해서 폐하에게 충성을 다하고 싶은 분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아니, 거.”

너, 나 본 적 없잖아.

우렌은 이제 서른은 됨 직한 인간, 나 있을 적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렌은 고개를 또 크게 가로저었다.

“아무튼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국군의 잘못이라고 전부 다 인정하시는 겁니까?”

나는 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속 조직의 잘못을 가능한 한 축소하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제국군 중에서 급이 가장 높은 우렌이 대뜸 전부 자기 잘못이라니?

“……백검장님이 실언을 좀 하셨군요.”

또 다른 사지타리, 다르갈이 나서면서 우렌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우렌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고함을 쳤다.

“실언이라니! 이 무슨 소리냐! 황제 폐하를 보기 부끄럽지도 않으냐! 다르갈!”

“아, 형. 좀.”

형제의 실랑이.

제국군의 자존심 문제도 있으니 사실 다르갈의 태도가 정상이다.

칼비나는 소리 죽여서 웃으면서 내게 눈짓했다.

이거 재미있지 않냐고.

그래, 골 때리네.

“일단 다들 앉아서 의논합시다.”

다들 자리를 찾아서 앉는데…… 상좌가 남았다.

아직 서 있는 건 나와 우렌.

새삼 긴장감이 감돈다.

누가 상좌에 앉느냐, 즉 앞으로 수사본부의 지휘권을 잡느냐의 문제가 갈린다.

제국군은 내 눈치를 살폈다.

양보해야 정상이지만 그게 기껍지는 않으니까.

정작 우렌은 우렁차게도 말했다.

“리젠 특관님! 얼른 상좌에 앉으시죠!”

“험, 험.”

다르갈이 헛기침을 했지만 우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럼 나도 우렌에게 양보 한 번 하는 게 모양새가 좋나?

한데 물러나 있던 아르센이 갑자기 다가왔다.

상좌의 등받이를 잡고는 나를 딱 보았다.

“앉으시죠.”

“…….”

빠져 있던 아르센이 갑자기 나서자 제국군들이 멈칫했다.

아르센은 쓱 제국군을 돌아보고는 일렀다.

“우리 철도헌병대와 제국군이 서로 불편한 사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압니다. 이제 와 서로 친구하자고 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우리들이 힘을 합쳐 맞서야 합니다. 돌아가신 황제 폐하의 얼굴에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생각해서 우리 헌병대는 먼저 손을 내밀고 또 많은 것을 양보했습니다.”

“…….”

“하지만 이 수사 지휘권만큼은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이 아르센을 믿고, 앞으로 리젠 특관의 지시를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으음.”

“저는 오늘은 어디까지나 응원차 들른 것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잘 해 주셨으면 하고, 또 헌병대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입니다.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르센은 제국군을 향해서 공손하게 목례해 보였다.

아르센은 헌병대의 톱이다.

제국군으로 치환해도 상장군, 투스타는 된다.

반면 이 자리의 제국군, 백검장이라고 해 봐야 영관급이고.

서로 다른 조직이라고 해도 체급이 다르다.

제국군은 감히 반발하지 못했다.

나는 상좌에 앉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 거기 백검장님도 좀 앉으시고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편하게 우렌이라고 불러 주셔도 됩니다.”

“……그건 좀 더 친해진 다음에 하죠.”

이놈이 제국군의 폭탄을 빼돌렸다고?

나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사람의 한 길 속은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렌은 너무 꾸밈이 없었다.

그럼 같이 온 다르갈이 연관이 있나?

아니, 이제 얼굴을 봤는데 미리 의심해 봐야 의미가 없다.

가다 보면 다 알게 되리라.

나는 마음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먼저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당면 목적은 제국해방군이라고 자처하는 테러범들을 검거하고, 그들의 계획을 사전에 막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는 서로 민감한 조직의 내부 자료를 교환해야 합니다.”

“백부장 다르갈입니다. 그 건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다르갈 사지타리가 손을 들고 발언했다.

“저희들도 수사에 협조하고 싶습니다만 제국군 내부의 자료는 당연히 대외비입니다. 반출하기 위해서는 이 조직의 정당성이 승인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황후 전하 중 한 분의 재가가 필요합니다.”

“아, 그거야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처리하려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다르갈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내가 받아 줄지, 말지 가늠해 보는 눈빛이다.

본래 랑에이를 쓰려고 했던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군 쪽에서 준비하셨다면 상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오실 겁니다.”

끼이익.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본 내 얼굴이 굳어졌다.

들어오는 세 명의 다크엘프.

그중 가장 앞서는 여자는 단연 눈에 띄었다.

또각, 또각.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긴 은발.

손가락마저도 요염한 다크엘프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나 놀랄 정도의 미모지만 차디찬 눈빛.

다크엘프의 수장, 암살여왕 이셀렌.

“…….”

이렇게 나타날 여자가 아닌데?

적이 많다 보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철저하게 감추는 여자다.

한데 백주 대낮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다니.

대체 왜?

걸어온 암살여왕은 상좌, 내 옆에서 조금 떨어져서는 좌중을 내려다보았다.

“3황후 이셀렌이다. 테러 수사본부를 승인하는 대신에…… 나도 수사에 참가하고 싶다.”

암살여왕의 제안.

다들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황후가 몸소 수사에 참가하겠다니?

그것도 정보를 다루는 다크엘프의 수장, 이보다 훌륭한 원군은 없을 것이다.

다들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한마디로 휘어잡은 암살여왕이 나를 돌아보았다.

“받아 주겠나?”

“…….”

자수정 빛 눈동자에 스쳐 지나가는 독기.

평소에 냉철한 여자라서 감정을 드러내는 게 눈에 띈다.

수사 합류는 핑계겠지.

좋은 마음으로 온 게 절대 아니다.

“……이렇게 나오셨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목적을 위해서 적과의 동침은 숱하게 들어 봤어도 아내와 동침이라니?

차라리 적과 동침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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