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68)
냉혹한 캐삭빵의 세계
한 방 먹은 비요른이 바로 칼을 꺼내 들었다.
푸른 기운, 5계위의 마력검이다.
“이놈이!”
비요른이 로프 위의 나를 찌르려고 덤벼든다.
각 잡힌 자세, 돌격 기세가 날카롭긴 하다만…….
피하면 그만이지.
나는 앉은 그대로 발을 흔들어서 로프를 퉁겼다.
투우웅!
그 반동력을 이용해서 도약, 바로 측면의 로프로 훌쩍 뛰었다.
보통 사람은 흉내도 못 낼 묘기지만 내 발바닥은 로프에 착착 달라붙었다.
“뭐…….”
비요른은 멈칫하고는 어이없어했다.
나는 앉은 채로 손뼉을 짝, 짝 쳤다.
어린애를 자기 쪽으로 부르는 어른처럼.
“이, 이놈이. 그렇게 계속 도망가기만 할 생각인가 본데…….”
비요른은 일단 마력검을 껐다.
마력 낭비라고 여겨서겠지만 잘못 판단하셨다.
나는 또 로프 반동을 일으키고는 바로 드롭킥을 날렸다.
“음!”
내가 대뜸 역습하리라 예상 못 한 비요른이 당황했다.
수인의 반사 신경으로 몸을 홱 틀면서 피했지만….
뻐어억!
내 드롭킥이 놈의 가슴에 명중했다.
비요른은 분명히 아슬아슬하게 피했는데 내 발이 자석처럼 따라붙은 것이다.
보통 사람은 일단 도약하면 궤도 수정이 불가능하지?
하지만 염동력을 쓰면 가능하다.
계속 정신력을 수련하고 흡수해 온 나는 이제 염동력을 펑펑 쓸 수 있었다.
“크억!”
밀려난 비요른의 몸이 로프에 부딪친다.
착지한 내가 곧장 자세를 제어하면서 놈에게 달려들자…….
투우웅!
놈도 로프의 반동까지 이용해서는 내게 덤벼 왔다.
“프로레슬링 하냐?”
나는 바닥에 확 누워 구르면서 놈의 발목을 낚아채려고 했다.
“뭐야!”
비요른은 기막혀하면서 내 손을 걷어찼다.
역시 수인, 반사 신경도 제법이다.
하지만 애당초 페이크를 섞은 나는 몸과 손을 확 뒤로 빼 버렸다.
그라운드 기술은 보통 붙어서 거는 거지, 나처럼 드러누워서 발목을 잡으려는 놈은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겪게 되면? 물러나거나 본능적으로 걷어차려고 한다.
비요른은 달려오던 중이니까 걷어찰 게 뻔하고.
놈의 발끝이 허공을 갈랐고 나는 한 타이밍 늦게 발목을 감고는 쓰러트렸다.
쿠다아앙!
그리고 그 즉시 공처럼 튀어 오르면서 공중회전, 발뒤축으로 놈의 뱃가죽을 찍었다.
뻐억!
“커어억!”
비요른은 반사적으로 마력방어를 했지만 염동권으로 고통이 들어갔다.
“우, 우와…….”
“뭐, 뭐야, 저거!”
“저게 어떻게…….”
외야가 경악한다.
다들 대련, 전투 경험이 있으니 지금 전개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알 거다.
나와 비요른 사이에는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있다는 것도.
“으으윽!”
비요른은 누운 채로 검을 휘둘러서는 나를 위협했다.
나는 가볍게 뒤로 굴러 피하면서 일어났다.
“헉, 허어억.”
경악한 비요른이 숨을 몰아쉬었다.
세상이 넓어도 나처럼 싸우는 놈은 처음일 테니까.
“뭐야? 대체 뭐야?”
“니 퇴사 신고서 작성하는 소리지.”
“으으음!”
비요른도 가락은 있는 놈이다.
일어난 놈은 양손으로 검을 잡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내 몸놀림이 화려하더라도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집념이 보인다.
“판단은 나쁘지 않아. 나쁘진 않은데…….”
싸워 보면 적의 수준이 보인다.
비요른이 5계위라지만 전투 경험이 많지 않다.
“너, 참전세대 아니냐? 근데 왜 이리 미숙하지? 나처럼 훨훨 나는 놈에게 칼로 뭘 어쩌겠다고?”
“…….”
“마력질주는 쓸 줄 아냐? 들어와 봐.”
나는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는 비요른에게 향했다.
완전히 도발.
관중들이 숨을 죽인 순간, 비요른은 내 목을 노리고 찌르기를 날렸다.
“시선 처리도 못 하냐?”
사람 몸이 빨라 봐야 칼끝이 더 빠르긴 하지.
그러나 4계위의 능력, 마력질주는 순간적으로 엄청난 가속력을 준다.
나는 마치 다이빙하듯이, 비요른의 하체를 향해서 몸을 날리면서 마력질주를 사용했다.
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사용.
마력 사용에 이골이 나야 가능한 재주!
뻐어어억!
“……크, 크아아악!”
완벽하게 파고든 나는 마력을 담아서 비요른의 사타구니를 후려쳤다.
로블로.
이게 스포츠였다면 반칙패겠지만 급소 가격 금지 룰 같은 건 없었잖아?
마력검에 마력을 쏟은 비요른은 그냥 무방비 상태로 얻어맞았다.
카앙!
검을 떨어트린 비요른이 양다리를 붙이고는 뒤로 비틀비틀 물러난다.
“차기 좋게 자리 잡네?”
“자아암까안…….”
뻐어어억!
나는 비요른의 사타구니를 발끝으로 올려쳤다.
염동권의 응용, 놈의 몸뚱이가 부웅 떠오를 정도의 위력이었다.
“커으으윽…….”
간신히 마력방어를 둘렀지만 비요른은 비틀거리면서 제대로 서 있지 못했다.
나한테 제대로 한 대 맞았는데 거기다가 염동권을 때렸으니까.
얼얼하고 집중이 하나도 안 되겠지.
“항, 항…….”
“항복하겠다고?”
“어, 어…….”
비요른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제자리를 폴짝폴짝 뛰었다.
“그거 맞고 용케도 집중을 하셨네. 자, 얼마나 더 버티나 보자.”
“어, 으…….”
나는 다가가면서 바로 앞차기로 걷어찼다.
사타구니에만 신경이 잔뜩 쏠렸던 비요른은 정통으로 복부를 얻어맞고는 물러났다.
이어서 나는 바로 몸을 날리면서 저공 니킥을 날렸다.
비요른은 반사적으로 복부를 가렸지만…….
뻐어억!
이번에 내 무릎이 노린 건 다시 사타구니였다.
“억, 어어억. 커어억…….”
비요른은 비틀비틀하면서 물러났다.
새파래진 안색.
급소 가격은 장난이 아니다.
비요른이 수인이라서 어떻게 서 있는 거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5계위 능력도 못 쓰는군…….”
“어, 으. 항, 항…….”
“누가 받아 준데?”
나는 대뜸 따귀를 날렸다.
하반신에만 신경을 쓰던 비요른이 뺨을 얻어맞았다.
짝! 짝!
“크악!”
내가 3연타로 빠르게 뺨을 치자 비요른은 이를 악물더니 주먹을 날렸다.
이 와중에 펀치가 공중을 가르는 소리가 예리하다니.
인간이라면 진즉 녹아웃인데 수인이다 보니 회복력, 체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나는 위빙으로 가볍게 피하면서 복부에 연타를 날렸다.
퍼버벅!
마력이 담긴 연타가 가죽을 두들기자 비요른이 비명을 지르면서 물러났다.
거리가 딱 좋자 나는 뒤돌려 차기로 또 놈의 사타구니를 쳐 버렸다.
“꺼후우욱!”
비요른의 몸이 부웅 떠올라서는 로프에 처박힌다.
“…….”
나도 보통 이 시점에서 멈추겠지만 가슴이 끓어오른다.
이놈이 랑에이를 보던 시선은 대단히 불쾌했다.
사타구니를 작살내 주고 싶을 정도로.
“……으아아.”
“그, 그만. 중지시켜!”
관중석 여기저기서 비명이 튀어나온다.
이제 누가 봐도 원사이드 게임, 이대로라면 비요른은 폐인이다.
하지만 심판을 맡은 알베르트는 냉정했다.
“비요른은 항복을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안 하셨지.”
“어, 으으으.”
로프에 기댄 비요른이 공포로 무작정 도리질을 쳤다.
사타구니를 연타로 맞으면 항우장사라도 겁나게 된다.
나는 마력도 없이 그냥 놈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퍼버버벅!
로프에 갇힌 놈은 움찔움찔하면서 팔로 막고는 몸을 웅크린다.
이제는 반격할 힘도 없다.
뻑!
어차피 반칙도 없는 게임, 나는 놈의 발등을 발로 콱 찍었다.
“아!”
고통에 놈의 입이 벌어진 순간, 이빨에 명중.
부러지면서 피가 튀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다시 주먹을 날렸다.
“커, 으. 으으으…….”
비요른이 잘게 경련하면서 가드가 열렸다.
나는 놈의 어깨를 잡아 고정하고는 사타구니를 무릎으로 찍어 버렸다.
연거푸.
퍽! 퍽! 퍼어억!
“꺼어억! 꺼우훅!”
숨넘어가는 비명 소리.
다섯 방, 여섯 방을 때려 박자…… 느낌이 왔다.
박살 났다고.
“커, 커. 커…….”
비요른은 눈을 뒤집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제야 나는 놈을 놔주고 물러났다.
툭, 툭.
손을 털면서 보니 놈의 사타구니가 점차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뚝, 뚝.
링 바닥에 피가 떨어진다.
저런 민감한 부위를 완전히 재생하려면 1급 치료약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천족의 귀중품, 어지간하면 안 내놓는다.
즉, 비요른은 이제 고자다.
비요른이 기절하고 내가 물러나자 그제야 알베르트가 외쳤다.
“시합 종료!”
고요한 장내.
내가 돌아보는 순간 다들 급히 시선을 피했다.
집요하게 공격해서 고자로 만들었으니 모골이 송연하겠지.
나도 해 놓고 좀 도를 넘었나 싶었지만.
“드, 들것!”
“치료약! 치료약 먹여!”
“어딜 올라와?”
경찰대원들이 링에 오르려고 하자 나는 눈을 부라렸다.
움찔.
호들갑을 떨던 이들이 딱 멈췄다.
나는 잘라 말했다.
“오늘부로 비요른은 중앙경찰청장에서 물러났다. 동의하냐?”
“그, 그게…….”
“다들 보는 앞이었다. 약속을 어기겠다고?”
이번 일에서 나는 일부러 계약서를 안 썼다.
앞으로 중앙경찰 또한 내가 부려야 했다.
이참에, 내가 새로운 지배자라고 확실히 새겨 둬야 한다.
서로 눈치를 보던 경찰들.
가장 급이 높아 보이는 여우 수인이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아, 알겠습니다. 오늘부로 비요른 청장은 퇴임합니다.”
“좋아, 일단 대행 체제로 가고 후임은 빠른 시일 안에 발표한다.”
나는 축 늘어진 비요른을 향해서 턱짓했다.
데려가라고.
“조심조심히 옮겨야 한다!”
“먼저 눕혀, 눕히라고!”
부산을 떠는 이들.
지켜보던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랑에이.
다른 관중들과 떨어진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모자도 벗었다.
그저 멍하니, 넋을 읽고.
과거를 추억하고 있었다.
나처럼 싸우는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랑에이.”
“…….”
비요른을 처리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아내들과 나 사이는 제대로 정리가 안 되었다는 걸.
돌아왔으니 정리해야 한다.
내가 시릭이라는 걸 밝혀야 앞으로…….
데구르르르.
“…….”
귀에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링에 쓰러진 비요른의 품에서 흘러나온 유리병이 구르는 소리였다.
별생각 없이 돌아보던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왜 계속 굴러오지?
링이 경사진 것도 아닌데 계속 나를 향해서 다가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염동력을 써서 유리병을 멈췄다.
과민 반응?
관성을 농락하면서 싸우는 나니까 알 수 있다.
저건 이상하다.
하지만 유리병은 멈추지 않았다.
염동력을 무시한다고!
그럼 깨트릴까?
하지만 유리병 안에 든 찰랑거리는 붉은 액체, 마력약으로 보이는 게, 위험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음.”
나는 염동결계를 펼쳤다.
평소에는 내 주변에만 두르지만 이번에는 좀 더 넓게 퍼지게.
호들갑이다 싶었지만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딱!
내가 염동결계까지 펼치니까 그제야 유리병이 멈췄다.
그런데…….
“……안 밀려?”
나는 밀어내려는데 유리병은 제자리에서 고정되어 있었다.
결계에도 밀리지 않겠다고 버티는 거다.
우뚝.
결계에도 버티던 유리병이 갑자기 홱 똑바로 섰다.
안의 붉은 액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모두 링에서 내려가라!”
“예!”
“당장 안 내려가!”
비요른을 살피던 경찰들이 내 말에 당황하는데…….
파아악!
그 순간, 유리병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좋아, 해 보겠다고?
내가 결계를 더 강화하려는데…… 유리병이 홱 수평으로 날아갔다.
다른 쪽으로.
나를 노리고 접근하던 게 쉽지 않자 다음을 찾은 것이다.
다른 먹잇감을 찾아서.
넋을 잃고 나를 보는 랑에이를 향해서.
“랑에이!”
나는 그 순간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손을 뻗었다.
저딴 게 내 아내에게 덤비게 놔둘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