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65)
답은 캐삭빵이다
경찰청장실.
나는 일어나 있는 강아지 수인, 청장 비요른을 삐뚜름하게 노려보았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 매우 불쾌하네.
랑에이가 들어오는 순간, 전신을 오르내리는 시선이 몹시 끈적거린다.
척 봐도 욕정 하고 있었다.
“도련님, 경찰청장이잖아요.”
가룰이 눈치 없이 말했다.
“알아. 그런데 경찰청장은 황후를 저렇게 노골적으로 봐도 되나?”
“……음, 그렇기는 합니다만.”
둔한 가룰도 알 정도로 비요른은 노골적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랑에이는 모자챙을 고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와 비요른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자 하인켈이 나섰다.
“실례하겠습니다. 중앙경찰청의 비요른 청장님 되시죠? 우리들은 2황후 전하를 모시고 온 일행입니다. 저는 하인켈, 이쪽의 인간 남자분은 리젠 리브라타 님, 그리고 호위 기사인 가룰입니다.”
“리젠 리브라타라고 했습니까?”
비요른이 나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케드릭을 끝장낸 헌병대, 그 지휘관이 나라는 것쯤이야 알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그만 좀 보고 앉지?”
“…….”
비요른은 일단 눈을 깔고는 앉았다.
그 와중에도 랑에이의 다리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게…… 참 어이가 없군.
물론 랑에이가 미녀기는 하다.
오는 길에도 사람들이 감탄하고 흘끔거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비요른의 시선은 집착적인 욕망이 어려 있었다.
옷 아래를 상상하고, 그 이상을 원하는 시선.
“야, 가려.”
나는 재킷을 벗어서는 랑에이의 몸을 덮어 버렸다.
랑에이는 별말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 하인켈과 가룰이 눈치를 보았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명색이 황후인데 진짜 술자리 친구처럼 대하고 있었다.
“…….”
비요른이 나를 보는 시선에 적의가 팽팽하게 감돌았다.
황후에 대한 무례를 따지는 게 아니라 나를 훼방꾼으로 여기는 시선.
나는 턱을 긁으면서 웃었다.
“우리, 정치 이야기하러 왔는데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네? 채널 돌려야 하나?”
“지금 반말하시는 겁니까?”
“그럼 존대할까? 나는 헌병대 특관이고 너는 중앙경찰청장인데?”
원래 소속 조직이 다르면 우열이 애매하다.
헌병대장 아르센은 전국의 헌병대원을 통솔하는 톱이다.
반면 황도를 담당하는 중앙경찰, 경찰의 중심이기는 하지만 결국 지역단체다.
즉, 전국구인 아르센이 비요른보다 더 위다.
하지만 헌병대 특관인 나는?
비요른보다 위는 아니지만 확실히 아래냐면 애매하지.
“……용건을 말씀하시죠.”
비요른도 그냥 넘어갔다.
나는 빠르게 말했다.
“간단해. 지금 케드릭의 사건 해결을 놓고 중앙경찰들이 불만이 많다지? 또 케드릭의 집 안을 압수수색하고 증거품을 확보했다며?”
“법적인 절차는 마쳤습니다.”
“다 내놓으라는 소리는 안 할게. 하지만 지금 사태는 아주 심각해. 테러범들이 연이어서 사건을 터트렸고, 또 12가문의 안에까지 손을 뻗쳤다. 중구난방이야.”
비요른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습니까?”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헌병대, 경찰, 제국군의 합동수사본부를 만든다. 셋이 파이 갈라 먹기는 그만하고 힘을 합치자고.”
단체 셋이 주도권 다툼만 하니 정작 테러 수사가 진행이 안 된다.
그러니 공동 수사로 전환하자는 거다.
다들 조금씩 양보하면…….
“그래서 저희 중앙경찰에 어떤 이득이 있습니까?”
“…….”
이놈 보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지금 축구 하냐? 득실점 따지게?”
“제국군도 아니니까 안 합니다.”
참고로 축구는 카라카스에서 인기 스포츠다.
원래도 있었는데 내가 룰 좀 개량해서 대중화되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테러범들이 날뛰는데 이득이 없다면 중앙경찰은 수사에 협조를 안 하시겠다?”
“확대해석 마시죠. 저는 지금 이 제안이 너무 선을 넘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상황이 그만큼 급하다.”
듣던 랑에이가 입을 열었다.
비요른의 눈썹이 위아래로 꿈틀거린다.
랑에이가 대화에 참가했다는 사실에 반가워하고, 내 편을 들었다는 게 불쾌해서.
랑에이는 계속 말했다.
“분명히 철도헌병대의 무력 행위는 절차를 어긴 것이었다. 하지만 절차를 우선시했더라면 때에 맞춰서 루크 케드릭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더 큰 피해가 났을 거다.”
“그렇다면 더욱 헌병대를 믿을 수 없습니다. 이리 큰일을 하는데, 왜 미리 우리 중앙경찰에게 협조를 구하지 않은 겁니까?”
“협조 요청했으면 니들이 듣기는 하고?”
나는 비아냥거렸다.
내가 황제 하던 시절에도 단체들끼리 서로 견제했다.
다들 내 말은 잘 듣는데, 종족적인 원한이나 감정이 얽힌 것도 있고.
원래 활동 영역이 겹치는 단체들은 서로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다.
비요른은 딱 잘랐다.
“아전인수입니다. 요청했으면 우리가 듣지 않았을 테니 요청하지 않았다? 그게 말입니까?”
“음메에~.”
“…….”
내가 소 울음소리를 내자 가룰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인켈도 어깨를 떨고.
랑에이도 얼른 입가를 가렸다.
정론으로 나왔던 비요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특히 내 농담에 랑에이가 웃는다는 게 너무 분한 눈치였다.
확 휘어잡은 나는 빠르게 말했다.
“뭐 좋아. 중앙경찰이 화내는 것도 아주 일리가 없는 건 아니야. 그러면 아르센 헌병대장이 정식으로 중앙경찰에 사과하고, 또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사전에 알리기로 약속하지. 이러면 되겠지?”
헌병대로서 어마어마하게 양보한 거다.
자기들 수장이 머리를 숙이겠다니.
그것도 실제로 사건을 해결한 건 헌병대인데?
헌병대의 위아래 할 것 없이 죄다 빡치겠지.
아르센도 조직의 위신이 있기에 절대 안 고를 선택지다.
하지만…… 내가 하라면 한다!
그리고 비요른 역시 경찰 안에서 자기 입지가 더 올라가겠지.
받을 거다.
“…….”
한데 비요른은 반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가로젓는다.
“부족합니다. 아르센 헌병대장이 사임해야죠.”
“미쳤냐? 그냥 판 깨자는 소리잖아?”
나는 정색했다.
아르센의 사임 이야기가 안팎에서 나오기는 했다.
철도 테러를 당했으니 총책임자인 아르센이 옷을 벗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사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진작 그리됐다.
아르센이 사임하지 않고 시간이 흘렀던 건, 그만큼 제국 내부가 분열되었단 증거고.
그것도 내가 케드릭의 문제를 해결해 버리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루크 케드릭 제압, 월권이지만 헌병대는 아주 큰 공을 세웠다.
나도 전폭 지원해 주는 아르센이 자리를 지켜야 편하고.
“지금 말은 헌병대원들이 납득할 선을 넘었지. 실제로 케드릭 파티장에서 부상당한 대원들이 다수인데?”
“그거야 알아서 하실 일이고요.”
“아, 그러니까 협조할 마음이 전혀 없으시다?”
내 목소리가 험해졌다.
원래 사람은 자기 소속, 조직에 충성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비요른은 그걸 넘어서 조직 이기주의다.
“왜? 아예 황도 근방의 철도역들은 중앙경찰이 관리하고 수사권까지 갖겠다고 하지?”
“그 정도면 만족할 만하겠군요.”
비요른은 씩 웃었다.
이놈은 텄다.
이 정도 양보했는데도 안 받으면 그냥 싸우자는 거지.
나는 비요른을 노려보면서 하인켈에게 물었다.
“중앙경찰청장의 인사권은 누가 갖고 있더라?”
“2황후 전하십니다.”
“아, 저를 해임하시겠다고요? 하지만 그러려면 중앙경찰 수뇌부 회의에서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으셔야 합니다.”
자신감.
비요른은 자기 조직, 중앙경찰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단 자신감이 있었다.
찾아보면 약점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그러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 그게 중앙경찰의 입장이다?”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비요른이 랑에이를 훑어보았다.
내 재킷을 덮어서 몸의 대부분을 가렸는데도 끈적거리게 바라보는 시선.
뭔 투시력이라도 쓰나?
“단지 뭐?”
“랑에이 전하와 단둘이서만 이야기하게 해 주시죠.”
“아, 교미하게 해 달라고?”
내가 대뜸 말하자 비요른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음습한 욕망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서 회 쳤으니까.
“누가 강아지 수인 아니라고 의심했냐? 그래, 너 진짜 견찰이시네.”
“뭐, 뭐? 무슨 모함을 하는 거냐!”
“제정신이냐? 나라의 중대사를 네 아랫도리와 결부시켜?”
비요른이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어이도 없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난 이놈 임명한 적 없다.
어쩌다가 이딴 놈이 황도를 수호하는 중앙경찰의 톱이 됐지?
“네 욕망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아니, 됐다. 그냥 말을 말자…….”
황제가 죽었다고 그 황후를 탐내는 건 진짜 언어도단이다.
권위의 문제다.
내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충성심을 불태우는 이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당장 아르센만 해도 내가 시키면 진짜 뭐든 다 한다.
그런데 내가 죽었다고 그 부인을 넘본다고?
나를 모욕한다고, 온갖 놈들이 칼을 뽑겠지.
“그놈들이 처리하게 둘 순 없지. 누가 알면 쪽팔려서 원.”
“뭐, 뭐?”
“집안 망신이라 내가 알아서 해야겠다고.”
나는 한숨을 쉬고는 비요른을 노려보았다.
“그냥 짧고 굵게 가자. 나랑 한판 뜨자.”
“……뭐라고?”
“네가 지면 너는 해고다. 그리고 내가 지면 아르센 헌병대장이 관둔다, 콜?”
내 제안에 다들 멍해졌다.
비요른이 더 기가 막힌 얼굴이었다.
“무, 무슨 미친 소리야? 그런 걸 수락할 리가 없지!”
“쫄리냐? 아르센은 좋다고 했는데?”
“…….”
내가 말하면 영광이라면서 바로 하지.
비요른은 입술을 꽉 깨물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진짜라니까? 애당초 너도 방금 아르센의 퇴임 운운했잖아? 그럼 너도 네 목을 걸어야지. 안 그래?”
비요른은 버럭 소리쳤다.
“거절한다. 조직의 수장이 직접 결투해서 사퇴를 정하다니! 조직을 우습게 보는군!”
“헌병대는 자존심을 걸었는데 중앙경찰은 못 거시겠다? 꼬우면 듀얼인데 안 한다? 겁먹으셨네?”
나는 하인켈을 돌아보았다.
“야, 하인켈. 다크엘프들이 소문 좀 내 줘야겠다. 중앙경찰은 결투 하나도 못 하는 겁쟁이란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애당초 천년제국은 신과 칼로 싸워서 자유를 쟁취하고 건국한 나라다. 무를 중시하니 별로 안 이상한데?”
나라를 세운 나부터가 전장 생활이 길었다.
귀족들의 결투 문화가 괜히 있는 것도 아니지.
비요른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겨우 손에 넣은 자리가 소중하다, 위험한 다리를 건너고 싶지 않다는 보신주의다.
“이놈은 텄다. 다들 그만 일어나자.”
나는 제안했고 놈은 거절했다.
이 사실을 풀어서 중앙경찰을 흔들어 버려야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랑에이가 말했다.
“……겁쟁이로군.”
비요른의 얼굴이 딱 굳어졌다.
놈도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좋아, 결투한다!”
“…….”
나는 잠깐 랑에이를 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오래 끌 거 없다. 오늘 저녁 먹고 한판 뜨자. 아르센하고 헌병대원들 올 테니까, 그쪽에서도 참관인 불러와라.”
무능한 놈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면 옷 벗겨야지.
안 벗겠다고?
패서 벗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