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64)
황도 장악 프로젝트
크로셀 후작의 역모, 제국 철도 테러, 그리고 케드릭 후작 가문의 피바람.
연쇄 테러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진작 컨트롤타워, 합동수사본부를 발족시켜야 했다.
하지만 헌병대와 제국군, 중앙경찰은 주도권을 두고 다툼이나 벌이고 있었다.
외환이 몰아닥치는데 내부 단합이 안 된다.
현재 권력자인 황후들? 일일이 그 속을 알 수 없고, 암살여왕은 국가 붕괴까지 단정하고 있었다.
황제 안 세우고 어떻게든 굴러가던 제국의 문제점이 확 드러났다.
이런데도 다들 책임을 미루고 자기 이득만 챙기려고 한다.
이게 계속되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겠지.
역사가 다 그렇다.
당장 헌병대장 아르센도 나한테 그러자고 했고.
제국군은 황제인 내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으나…… 이제 내가 없다.
지금 권력자인 황후들은 나를 시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테러는 연이어 터지네.
엄청 무능해 보이잖아?
황제를 시해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황후들을 처단하겠다고 칼 뽑겠지.
제국군의 쿠데타는 성공 가능성이 적지만.
나는 제국군을 믿었지만 동시에 훗날의 황제를 위해서, 쿠데타를 막을 장치들을 여러 가지 마련해 뒀으니까.
그 장치 덕에 내가 철도헌병대를 수월하게 접수했지.
하지만 쿠데타는 성공하건 실패하건 정국이 더 크게 흔들린다.
거듭되는 혼란, 통제의 부재, 몰아치는 피바람.
아무리 강대한 제국이라도 멸망한다.
“테러범들, 제국해방군의 큰 그림이 바로 이걸 거다. 혼란을 계속 일으켜서 군부의 봉기를 유도하는 거지.”
나는 하인켈에게 이걸 에둘러서 설명해 주었다.
내가 황제 시릭이라는 걸 빼고는.
멍하니 듣던 하인켈은 새삼 둘러보았다.
혹시 누가 들었나 싶어서.
“알잖아. 사람들은 보통 남 이야기 관심 없어 한다.”
지금 우리는 황도의 대중교통, 트램 안이었다.
황도의 명물, 도로 위를 달리는 전차다.
전기가 아니라 마력현상으로 움직이는데 내가 황제 말년에 만들었다.
안에 북적거리는 인파들.
100년 뒤에도 황도 시민들이 잘 이용하고 있었다.
하인켈은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주군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럼 머지않아 제국군이…….”
“아직 몰라. 그런데 가능성이 있지.”
“……어떻게 막아야 합니까?”
“단계를 밟아야지.”
나는 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일단 문제는 칼 쥔 놈들이다. 기사단, 이종족, 뭐 여러 가지 있지만, 당장 문제가 되는 건 철도헌병대, 중앙경찰과 황도의 제국군이다. 이 세 놈들을 딱 모아서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테러에 대응한다.”
“그거야 다들 생각하지만, 서로 견제하지 않습니까?”
“일단 헌병대는 내 말 듣는다. 그러니 다른 둘은 어르고 달래서…….”
나는 말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두들겨 패서라도 말을 듣게 해야지. 그러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거다. 민심도 안정되고.”
“으음, 말씀은 알겠습니다만.”
하인켈이 말끝을 흐렸다.
흘끔거리는 시선.
맨 뒷좌석에 앉은 랑에이를 보고 있었다.
그저 앉아서, 물끄러미 창밖을 보고 있기만 해도 아름답다.
내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트램을 탄 승객들은 다들 랑에이만 보고 있었다.
저 늠름한 미인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서.
“오늘 점심 맛있었다는 생각이겠지.”
“예?”
“그래서 중앙경찰이랑 랑에이랑 뭔 문제인데?”
내가 불쑥 묻자 하인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종족들은 그냥 수인이라 하지만 그 내부는 상당히 복잡합니다. 강아지 수인, 고양이 수인, 호랑이 수인, 여우 수인…… 또 그 안에서도 분류가 갈리고요.”
“그건 대충 알아.”
가령 아멜리아는 늑대 수인, 그중에서도 은회색 늑대다.
하인켈이 이어서 말했다.
“랑에이 전하께서는 호랑이 수인, 그중에서도 백호입니다. 이게 엄청나게 귀한 혈통입니다.”
“그것도 알아.”
지금 뒷좌석에서 황도를 바라보면서 꼬리를 살랑거리는 랑에이는 수인들 사이에서 진골 중의 진골이다.
하인켈이 나직하게 말했다.
“랑에이 전하께서는 온갖 무용과 배포로써 수인들을 하나로 모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황제 폐하의 아래에서, 수인들을 지휘하시고 싸우셨죠.”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과정에서 랑에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수인들은 내부 관계, 소수 종족들도 있어서 진짜 복잡하다.
하지만 랑에이가 뚝심으로 다 모으고, 설득해서 제국군에 합류시킨 것이다.
“하지만 황제 폐하는 이제 안 계십니다. 랑에이 전하께서는 홀몸이시죠.”
“다 아는 사실을 뭐 그리 뱅뱅 돌려. 핵심을 말해.”
“……음, 그러니까 강한 수인은 자식도 강하다는 통설입니다. 적어도 수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내 시선에 하인켈이 빠르게 말했다.
“그러니까 랑에이 전하께서…… 수인들을 위해서 자식을 많이 봐야 하지 않나, 뭐 그런 여론이 수인 내부에서 있습니다. 칠죄신과의 싸움에서 수인들이 많이 죽었으니 강한 혈통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뭐 그런 거죠.”
“그게 뭔 소리야?”
이성계가 죽으니까 그 부인이 재혼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황실의 권위, 체통,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니까.
하인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천년제국은 120년밖에 안 되었고 수인들의 역사는 수천 년 이상입니다. 수인만이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그렇죠.”
“…….”
내가 인간과 이종족들을 모아서 통합시켰다고는 하나 기간이 짧다.
하인켈이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그리고 수인들은 재혼에 상당히 관대합니다. 아니, 오히려 장려하고 있죠.”
“그래서 랑에이에게 재가하라고 수인들이 말한다?”
“물론 제국의 황후께서 그러시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황제를 숭배하는 수인들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이 심하고요.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주군께서 말씀하신 평지풍파가 더 심해지겠죠.”
“…….”
군부가 쿠데타를 벌이려는 마당에 2황후는 재혼 선언?
이야, 진짜 나라 망하겠네.
하인켈은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랑에이 전하는 단칼에 거절하시고 불같이 화내셨다고 합니다. 평소답지 않게 너무 화를 내셔서 다들 그 뒤로 쉬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경찰이 그놈이다?”
“……예. 현재 중앙경찰의 청장인 비요른, 그가 2황후 전하에게 손을 뻗치려던 놈입니다.”
하인켈은 한숨을 쉬었다.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거 극비 정보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다크엘프들이 입수한 정보.
하인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가 보면 알겠지.”
내가 새삼 랑에이를 보는데…… 딱 눈이 마주쳤다.
흠칫!
랑에이는 후다닥 고개를 돌려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축 처지는 호랑이 귀.
쟨 왜 나만 보면 겁먹은 강아지가 되냐?
그때 승객들이 소곤거리는 게 들려왔다.
“저기 뒷자리 여자 엄청 예쁜데?”
“근데, 백호 수인이면 혹시…….”
아, 역시 외모가 너무 특징 있어서 들키지.
가는 길에 괜히 법석 떨고 싶지는 않다.
나는 혀를 차고는 뒷자리로 향했다.
“야, 가룰.”
“예?”
랑에이의 옆, 태평하게 졸고 있던 가룰이 번쩍 눈을 떴다.
나는 가룰의 어깨를 잡고는 일어나라 손짓했다.
털썩.
그리고 랑에이 옆에 앉았다.
흠칫!
랑에이가 물 만난 고양이처럼 옆으로 엉덩이를 뺐다.
나는 어이없어하면서 챙겨 온 모자를 꺼냈다.
“그거 써.”
“……으응?”
“쓰면 죽는 거 아니니까 그냥 좀 써라. 조용히 가자.”
나는 그냥 랑에이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고는 머리카락을 밀어 넣었다.
랑에이는 자기가 미녀라는 사실,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에 진짜 관심이 없다.
이 여자 머릿속에 있는 건 적과의 싸움, 친구와의 우정, 가족과의 사랑이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살면 오해받고 충돌하게 된다.
하인켈이 염려하는 경찰청장? 랑에이는 기억이나 할까?
눈 돌아가게 예쁘고 무지막지하게 강한데 주변머리가 없다.
보다 못한 내가 종종 챙겨 줬다.
황후가 돼서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
“…….”
환생해서도 챙기게 되네.
나는 상념을 떨쳐 내고는 투덜거렸다.
“아, 이거 머리카락이 너무 긴데. 모자에 다 안 들어가잖아.”
“안 자른다!”
갑자기 랑에이가 정색하고는 이를 드러냈다.
으르렁.
호랑이가 포효하며 성질을 내니 트램 내부가 고요해졌다.
랑에이는 모자를 양손으로 꼭 누르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보통 위축되겠지만 난 이 여자를 안다.
긴장해서 엄청 단순해진 거다.
“아, 누가 자른대? 그냥 가자고.”
호랑이 귀와 얼굴만 가려도 사람들이 덜 보겠지.
내 말에 랑에이는 몸에서 힘을 뺐다.
삐져나온 머리카락, 흑과 백이 섞인 머리카락을 소중하게도 쓰다듬는다.
랑에이는 긴장한 아이가 설명하는 것처럼, 더듬더듬 말했다.
“……머리카락이 예쁘다고 해 줬으니까.”
“황제가?”
나는 말해 놓고는 아차 싶었다.
내 전생이긴 하지만 진짜 무슨 동네 친구처럼 불렀네.
아니, 애당초 내가 랑에이를 대하는 게 너무 스스럼없이 굴고 있었다.
누가 보면 절친한 사이인 줄 알겠어.
랑에이는 이래 보여도 황후인데.
사실 존댓말도 쓰고 그래야 하는데.
“……응.”
하지만 랑에이는 내 말투 같은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얀 손으로, 흑백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얼굴은 부드럽고 온화했다.
너무나 행복한 한때를 떠올리는 것처럼.
누가 이 여자가 최전선에서 군사들을 이끄는 칠죄신과 싸운 용맹한 여걸이라고 생각하겠어.
그냥…….
“아, 거.”
나는 아직도 랑에이를 흘끔거리는 남자를 쏘아보았다.
내가 몸으로 가리면서 노려보자 남자는 머쓱하니 시선을 돌렸다.
조용히 좀 가자.
한데 랑에이가 문득 말했다.
“……시릭이 이걸 만들었지.”
“…….”
지금 타고 있는 트램, 내가 만들었다.
랑에이는 나직하게 말했다.
“신기해서 같이 타 보고 싶었는데, 계속 기다리면 그럴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
얼마 뒤에 내가 죽었다.
랑에이가 무릎 위에 올린 손.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나도 모르게 보다가 눈을 돌렸다.
……아무튼 경찰청장이란 놈, 얼굴이나 좀 보자.
* * *
중앙경찰청.
청장실.
보고를 듣던 강아지 수인 남성이 혀를 찼다.
중앙경찰청장, 비요른이었다.
“헌병대가 뭘 믿고 뻗대는 거지? 우리랑 정말 한판 해 보겠다는 건가?”
“그게…… 리젠 리브라타라는 이름이 떠돌고 있습니다.”
“나도 그건 알아. 이번 사건을 해결했다는 12가문의 일원, 그래서 대체 뭐?”
“생각하시는 거하고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인간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갑자기 어느 날, 혜성처럼 헌병대에 나타나서 특관을 꿰찼습니다. 특관, 황제 폐하께서 너무 권한이 과하다고 폐지하신 직위인데 아르센이 부활시켰죠.”
“그래도 괜찮았나?”
“어심을 거스르는 처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법률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당시 리젠에 대한 헌병대 내부 평가도 고까워하고 무시하는 반응들이 많았습니다만.”
“그런데?”
비요른이 재촉했다.
“케드릭 사건을 해결하면서 상당히 평가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특히 같이 출동한 헌병대원들 사이에서는 특관 자리를 꿰찰 만하다, 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 방에 내부 여론을 뒤집어 버린 거죠.”
“그저 12가문의 일원이 아니다?”
“예. 주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잖습니까? 강한 놈은 어디에나 있지만 조직을 휘어잡는 놈은 드물다는 거.”
비요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보군림은 그저 강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단체를 통솔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비요른 본인이 그 산증인이다.
비요른은 사실 수인들 중에서 강한 편은 아니다.
아니, 강아지 수인으로 한정하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처진다.
경찰에서 비요른보다 강한 이들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제국 경찰의 꽃인 중앙경찰, 그 톱은 비요른이다.
조직 생활을 잘했으니까.
비요른은 신중하게 말했다.
“으음, 그럼 위험한 놈이겠군. 갑자기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한 방으로 여론을 반전시키다니.”
“예, 아르센 헌병대장이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 합니다. 확실히 능력도 있습니다.”
“포섭할 수 없을까? 그 정도 인재가 왜 헌병대에 헌신하지?”
비요른은 턱을 매만졌다.
“헌병대는 요즘 위세가 줄었잖아? 예산도 삭감당하고.”
“이래저래 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잘 나오는 게 없습니다. 여자를 밝힌다는 정도입니다.”
“혹시 모르니까 암살여왕 쪽에 수사 협조 요청을 넣어 봐. 아무튼 리젠 리브라타도 사건 연루자잖아. 그냥 참고인 조사 하겠다고 소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지금 그 수사 자체를 시작 못 하고 있으니까요. 헌병대, 제국군, 그리고 저희 황도 경찰 셋 중 누가 주도권을 잡을지 계속 으르렁거리는 중이잖습니까.”
달칵.
그때 여우 수인 남자가 들어와서는 보고했다.
“급보입니다. 지금 1층에 랑에이 황후 전하께서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청장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으응?”
비요른의 안색이 확 달라졌다.
“자네는 이만 나가 보고, 황후는 정중히 모셔 와.”
“예.”
달칵.
다들 나가고 혼자가 되자 비요른은 얼른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거울을 보고 확인하고.
서랍 속의 향수를 꺼내서 뿌리고.
“……랑에이.”
수인 중 최강.
늠름하게도 싸우는 전장의 여신.
하얗고도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적들을 향해 돌격하는 그녀의 뒤를 얼마나 많은 전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따라 들어갔던가.
비요른도 그중 하나였다.
“아니, 아니지.”
하나였었다.
그는 칠죄신과 싸우는 게 너무 두려운 나머지…… 탈영했다.
당시 제국군은 하루에도 입대 희망자와 사망자 수가 너무 많아서 탈영 사실도 감춰졌다.
“아냐, 두려웠던 게 아니야…….”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가 한눈에 반한 전장의 여신은 절대로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설사 그가 칠죄신을 쓰러트리는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랑에이의 어깨를 끌어안고 머리를 맞대는 남자는 이미 있었으니까.
랑에이를 보고 입대했던 비요른은 그걸 보고 목적의식을 잃었다.
시릭 카라카스, 누구나 존경하는 황제였지만 비요른에게는 그저 연적이었다.
아니, 랑에이는 당시에 비요른의 존재도 몰랐으니까 적조차도 아니었지.
“이제는 달라. 다르다고…….”
황제는 오래전에 죽었다.
랑에이는 홀몸이다.
비요른은 강해졌고 출세했다.
개인 무력은 부족하지만 단체를 휘어잡는 건 힘만이 아니다.
머리를 쓰고, 함정을 파고, 파벌을 만들어서 중앙경찰의 톱이 되었다.
이제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었다.
“후우우우…….”
그녀가 황후라는 사실, 불처럼 화내며 거절했다는 사실은 비요른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상식? 애당초 수인하고 인간하고 결혼한다는 게 비상식적인 일 아닌가!
그리고 또! 강한 수인이라면 응당 자식을 많이 낳아야지!
랑에이는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잘못하고 있다!
수인을 위해서라면 나 같은 우수한 수인과 결혼해서 아이를 더 낳아야지!
남들이 보면 말도 안 되지만 비요른은 어느 순간부터 믿었다.
그때, 전장의 모닥불 앞에서 시릭과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랑에이의 옆모습.
그걸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하리라.
“후우우우.”
피가 끓는다.
비요른은 책상을 탕탕 쳤다.
“그래.”
100년이 넘는 시간이 돌고 돌았지만 이제 성취할 때가 온 거다.
랑에이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하리라.
비요른이 입맛을 다시는데……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2황후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비요른은 반색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오는 건 모자를 쓴 여자.
얼굴은 가려졌지만 유달리 하얀 피부와 머리카락만 봐도 랑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서 오시죠, 2황후 전…….”
“아, 그 모자 언제까지 쓸 거야. 그거 뭐, 쓰고 있으면 점수 올라가는 줄 알아?”
“……금방 돌려준다.”
“아니, 왜 사람하고 말하는데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을 감추는데? 야구팬이야? 차마 경기를 못 보겠어?”
뭐야, 저 새끼.
랑에이와 같이 들어온 인간 남자, 곱상하게 생긴 놈이 정말 스스럼없이 랑에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더 말이 안 되는 건 랑에이도 별 거부감이 없어 보인다는 거다.
친구? 아니, 그 이상이어야 가능한 관계.
비요른이 얼굴을 확 구기는데 말하던 인간 남자, 리젠도 비요른을 돌아보았다.
“저렇게 생기셨어?”
몹시 불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