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59)
언제든지, 얼마든지
상황 정리 시작.
알베르트가 의자를 가져와서 내게 바쳤다.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상처를 치료하는 사람들, 헌병대원, 그리고 난입했다가 역으로 털리게 생긴 다크엘프들.
모두들 나를 주목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아르센은 외곽 경비에 충실하라고 해. 헌병대원은 부상자들을 돌보고. 파티의 참가자들은 얼른 돌아가고 싶어 하겠지만 일단 잡아 둬야 해. 언론 문제가 있으니까.”
“예, 이관 미레이! 분부 받들겠습니다!”
미레이는 경례해 보이고는 물러갔다.
내가 말하는 동안 앞에 서 있던 알베르트가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보였다.
경배.
떨어져서 지켜보던 헌병대원, 인간 귀족들이 술렁거린다.
척 봐도 직급이 높아 보이는 다크엘프가 인간에게 대뜸 경배를 표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닐 테니까.
내게 무릎을 꿇은 알베르트가 말했다.
“부끄러운 입으로 청하건대, 제가 남을 테니 부하들은 보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아르센까지 밖에 있고 포위망이 완성됐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뒤늦게 온 다크엘프들을 싹 없앨 수도 있었다.
실제로 암살여왕에게 경고를 보내 둘까 싶기도 하고.
“다크엘프들 사이에서 상무라면 굉장히 높은 직급인데? 반대로 부하들이 목숨을 버리고 네가 탈출해야 조리에 맞지 않나?”
“부하들 다 죽이고 살아남아서 뭐하겠습니까?”
자기 목을 바칠 테니 부하들은 봐 달라는 요청.
나는 불쑥 물었다.
“너 혹시 참전용사냐?”
“예, 7년 전선부터 폐하를 모셨습니다.”
“……혹시 춘부장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
“게오르그입니다. 근데 그건 왜…….”
아.
어디서 본 얼굴이다 싶었는데.
칠죄신의 추격을 막겠다고 나 대신에 나섰던 남자의 아들 아닌가?
아들, 알베르트도 제국군에 복무하고 있다고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아들 초상화를 보여 준 적도 있고.
“…….”
나는 감회에 휩싸였다.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머리를 숙여야 하는 쪽은 나다.
네 아버지 덕분에 내가 살았다고.
또 참전용사라니.
다 떠나서 전우 아닌가.
“후우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따지고 보면 얘들이 뭔 죄냐?
그냥 위에서 시키니까 한 거지.
“일어나.”
“…….”
“얼른 일어나라니까.”
알베르트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나는 감정을 정리하며 물었다.
“암살여왕은 지금 어디 있지? 아, 구체적인 장소를 묻는 게 아니야. 연락은 가능하지?”
“대답드리기 어렵습니다.”
“돌아가서 전해. 내가 얼굴 좀 보자고 한다고.”
갈수록 정국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정보가 필요하다.
또 황후 중 하나쯤은 내가 부리는 게 나았다.
사적인 감정을 떼어 놓고 보면, 현재 제국의 잠정 통치자인 황후들을 모조리 제외하고 일을 진행하는 게 더 무리수지.
이래저래 따져 보면 암살여왕의 협력을 얻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알베르트가 머뭇거렸다.
“그냥 돌아가도 되는 겁니까?”
“싫어? 열심히 돌아가고 싶어?”
“……정말 관대하신 처사,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비록 성을 알려 드릴 입장은 아니지만 당신을 위해서 한 번은 전력을 다해서 싸우겠습니다.”
알베르트가 숙연하게 말했다.
다크엘프가 성을 밝히는 건 개인으로서 영혼을 바치겠다는 맹세, 바로 그 아랫단계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분연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는 이미 충분해.”
네 아버지가 목숨을 바쳤고, 아들인 너도 나와 함께해 주지 않았더냐.
오히려 내가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는 따뜻하게 말했다.
“조심히 돌아가라.”
“…….”
알베르트는 머리를 깊이 숙여 보였다가 물러났다.
나는 옆의 헌병대원을 돌아보았다.
“중앙경찰에게는 일단 아르센의 이름을 대고 나중에 해명한다고 해. 그리고…….”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서서히 커지는 웃음소리.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사람이 죽고 다친 파티장에서 전혀 안 어울리는 소리.
피를 닦고 상처를 살피던 사람들이 모두들 돌아본다.
웃는 건 헌병대원들에게 제압당한 루크였다.
저 멀리서 무릎을 꿇은 놈이 증오 어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무능해? 무능하다고 했지?”
“…….”
의미 없는 발악?
아니다.
온갖 전쟁을 치렀던 내 경험의 직감.
저놈이 미친 짓을 저지르려고 한다.
나는 얼른 투시력으로 루크의 상태를 살폈다.
양팔도 끊어지고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
이빨, 어금니.
엑스레이로 투시해 보니 어금니 자리에 캡슐이 있었다.
자결용 독단?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죽여!”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외쳤지만 헌병대원들은 바로 실행하지 못했다.
나는 마력질주로 달려가면서 검을 뽑았지만.
으득.
루크가 캡슐을 깨무는 게 더 빠르다!
쾅!
루크의 주변에서 새카만 마력이 치솟아 오르면서 헌병대원들을 날려 버렸다.
이어서 나를 후려치겠다고 파도처럼 달려든다.
나는 얼른 염동결계와 마력을 동원해서 막았다.
푸우우욱!
내 가슴 직전에 멈춘 검은 마력의 가시.
보통 사람은 절대 못 막는다.
“다들 물러나라! 명령이다!”
나는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루크를 향해서 뛰어들었다.
휘요오오옹.
일어난 루크의 몸을 휘감은 새카만 마력.
양팔이 사라진 자리에는 검은 마력이 넘실거린다.
“으하하하하! 힘이다! 힘이 넘쳐! 그래! 이거야!”
웃는 루크의 입과 코에서 연기처럼 검은 마력이 줄줄 흘러나왔다.
정상이 아니다.
나는 멈춰 서서 물었다.
“너 그게 뭔지는 알고 했냐?”
마력은 계위가 올라갈수록 색깔이 변한다.
1계위는 빨강, 2계위는 주황, 3계위는 노랑…….
하지만 검은 마력은 이 7계위의 어디에도 없다.
변질된 마력.
“그거 칠죄신의 마력이야, 이 미친놈아!”
칠죄신의 파편을 접하면 마력이 오염돼서 검게 물든다.
흑마력.
강력하지만 영혼을 짜내기에 무조건 파멸한다.
전쟁 중에 지겹게 본 일이다.
검은 마력에 감싸인 루크가 나를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신의 힘? 더 잘됐군! 좋아! 이걸로 다 죽여 버려야지! 나를 무시한 너부터 시작해서 형도 죽이고! 다 죽여야지! 하하하, 뭐든 다 죽여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
흑마력의 광기에 취했군.
놔두면 황도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 것이다.
“가세하겠습니다!”
돌아가려던 알베르트가 멀리서 외쳤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사람들부터 대피시켜! 일단 그게 우선이다!”
“예!”
날로 먹으려고 들어왔던 다크엘프들이 달려서 사람들의 피신을 유도했다.
다행히도 루크는 나에게만 집중했다.
“죽어라, 리브라타!”
놈이 손바닥을 땅으로 내리치자 검은 마력이 파도가 되면서 덤벼 온다.
콰가가가!
돌바닥을 갈아엎으면서 쇄도하는 물결.
나는 얼른 옆으로 달려서 피했지만 루크가 다시 또 땅을 쳤다.
“하하하하! 하하하! 자신만만하던 놈이 피하기만 하네! 하하하!”
“…….”
나는 인파 쪽으로는 안 가게 동선을 잡고는 피했다.
저 마력파도는 보통 사람이 닿으면 즉사, 자칫하면 민간인 몰살이다.
나도 정면으로 맞으면 위험하고.
“그런데 계속 피하면 재미가 없잖아?”
루크는 눈을 번뜩거리면서…… 빠져나가려는 인파를 향해서 손을 내리쳤다.
아니, 내리치는 시늉을 한다.
날 낚는 거다.
하지만 알면서도 낚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아압!”
나는 검을 뽑고는 마력질주로 루크에게 덤벼들었다.
루크가 돌아보면서 나를 향해서 마력파도를 날려 왔다.
콰가가가아아!
높이 1m가 넘는 마력의 파도가 나를 찢어발기려고 덤벼 온다.
예상한 나는 옆으로 몸을 굴려서 피하면서…… 검을 던졌다.
“무슨…….”
보통 사람은 투검에 마력을 싣지 못한다.
즉, 검을 날려 봐야 마력방어를 못 뚫는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
“억!”
뒤늦게 투검의 마력을 알아차린 루크는 대경실색하면서 몸을 틀었다.
기회!
투우웅!
나는 옆으로 구르던 그대로, 발뒤꿈치로 땅을 차고는 몸을 날렸다.
휘리리릭!
공중을 날아가면서 몸통을 회전시키고, 돌아서면서 자세를 잡는다.
붙어서 끝장을 본다!
피하던 루크는 반사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푸아아악!
검은 마력이 확 나를 덮친다.
하지만 나는 염동결계로 아주 잠깐 그걸 막아 내고는…… 주먹을 루크의 머리에 내리찍었다.
퍼어어억!
루크의 몸이 무너지면서 안면이 바닥에 충돌했다.
어마어마한 충격이라서 놈의 몸이 용수철처럼 투웅 튕겨 오른다.
염동결계로 다 막지 못한 나도 온몸이 피투성이다.
하지만 붙었으니 잡는다!
“으아아아!”
나는 지상에 착지한 바로 염동력으로 자세를 제어하고, 공중으로 튕겨 오른 루크를 향해서 손을 날렸다.
“미, 미친!”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연속 공격에 루크는 기겁하면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 몸부림에 튀어나온 검은 마력이 내 뺨과 목을 할퀴고 옆구리를 찢는다.
푸아아악!
하지만 감수하고 접근한 나는 손가락을 딱 붙여서 놈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염동관수(念動貫手).
염동권이 타격의 위력을 배가시키고.
염동장이 물리방어를 뚫고 내부에서 폭발시킨다면.
관수는 적의 마력방어를 뚫고 육체를 찢는다.
“커어어억!”
루크는 피를 토하면서도 버둥거리면서 발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놈의 가슴에 쑤셔 넣은 손을 꽉 말아 쥐었다.
심장을 박살 낸다!
퍼어어억!
“꺼으으윽.”
심장은 마력의 원천.
칠죄신의 마력도 다를 게 없다.
“허어억, 허어억…….”
끝이다.
나는 손을 뽑으면서 루크를 패대기쳤다.
“컥, 커어억. 커으윽.”
루크가 경련을 일으키면서 나를 보았다.
생물이라면 즉사지만 흑마력으로 변이된 놈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루크가 헐떡거리면서 웃었다.
“어차피…… 어차피 제국은 끝난다. 신이 돌아온다. 돌아온다. 아아, 그분이 오신다! 다들 엎드려라! 경배하라!”
“그러냐? 그럼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죽일 수 있겠네.”
떠벌리던 루크가 멈칫했다.
나를 보는 시선이 변한다.
“너, 지금 무슨…….”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냐?”
나는 놈의 가슴에 발을 올렸다.
“내가 있는 이상 이기는 건 제국이다.”
눈을 깜빡거리던 루크가 뭔가 알아차렸는지 경악했다.
“서, 설…….”
뿌드득!
나는 놈의 가슴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마력으로 간신히 연명하던 놈의 숨이 끊어졌다.
“후우우우…….”
한숨을 돌리니 그제야 통증이 몰려온다.
얼굴이며 목덜미, 가슴까지 피범벅이었다.
“아, 이거 아멜리아가 알면 난리 치겠네.”
나는 손을 내려다보고는 픽 웃었다.
검붉은 피투성이, 하얀 부분이 하나도 없다.
내가 흘린 피, 적의 피로.
“아…….”
“끄, 끝났어?”
아우성을 치면서 빠져나가려던 인파들은 상황이 끝났다는 걸 알고는 멈칫했다.
내가 돌아보자 다들 술렁거리면서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그야 뭐…… 아무리 적이지만 가슴에 손 꽂고 심장 터트리는 인간이 순해 보이진 않겠지?
“뭐 됐어. 주도권만 잡으면 되지.”
나는 느릿하게 의자를 향해서 돌아갔다.
멍한 얼굴이던 헌병대원들이 부리나케 경례를 붙였다.
“정말 대단한 무용이셨습니다.”
“놀, 놀랍군요.”
“특관님이 아니었다면 매우 큰일 났을 겁니다!”
“아부들은 됐고. 상황 끝났다. 애들은?”
헌병대원들이 못 알아들었다.
나는 재차 말했다.
“루크 옆에 있던 애들 둘, 안 죽었으면 얼른 돌봐.”
“예!”
헌병대원들은 얼른 달려가서 동료들을 살폈다.
“숨은 붙어 있습니다!”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루크가 막 폭주한 순간이라서 위력이 줄었던 모양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아, 여기저기 쑤시는 게 진짜 아프다.
그러자 헌병대원들이 내게 담요를 건네주었다.
반짝거리는 눈빛들.
존경과 흠모였다.
내가 루크의 폭주를 홀로 마무리하고, 또 자기 동료들의 안부부터 확인하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지쳤고 피곤하다.
“얼른 상처를 돌보셔야죠. 치료약을 가져오겠습니다!”
“여기저기 아프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다. 사망 직전 민간인에게 먼저 써라. 그게 헌병대 규범이잖아?”
“하, 하지만…….”
“여기들 서 있지 말고 니들도 뛰어가서 사람들 돌봐. 난 좀 쉬련다.”
“이미 다 구조하고 있습니다!”
“아, 거. 미레이만 남고 다 가. 부산스러워.”
“…….”
“아, 안 가? 나 지금 피곤하거든?”
헌병대원은 아쉬운 얼굴로 달려갔다.
나는 피에 젖은 손으로 턱을 괴었다.
원래는 루크를 심문해서 정보를 얻으려고 했는데 흑마력이 나올 줄이야.
갈수록 심각한데…….
그때 리세라의 손을 잡고 오는 미리엘이 보였다.
상황은 끝났으니까.
손을 들어 보이려던 나는 멈칫했다.
때리고 패고, 심장까지 터트린 내 손은 피범벅이었다.
애한테 보여 줄 게 못 된다!
나는 얼른 옆의 미레이의 허리에다가 손을 문질렀다.
“트, 특관님! 간지러워요!”
“아, 등에다 좀 닦자! 가만히 있어!”
“거긴 엉덩이인데요!”
“네가 몸을 배배 꼬니까 사고 났잖아! 어떻게 할 거야! 책임져!”
“……어, 케, 케이크 사 드릴까요?”
딸들이 보기 전에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했지만 늦었다.
미리엘과 리세라가 바로 앞까지 왔다.
나는 등 뒤로 손을 감추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 음. 대충 상황이 끝났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두 황녀님.”
“미리엘 언니는 저를 따라서 웰링 저택으로 가기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3황녀 전하께서 오래오래 머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는 미리엘의 눈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뒷짐을 진 딱딱한 자세기도 하고.
……사실 슬그머니 겁이 났다.
내가 싸우는 게 애가 보기에는 너무 끔찍하고 무섭잖아?
그때 리세라가 말했다.
“언니에게 손을 보여 주시겠어요?”
“……어. 영 아닌데.”
나는 주저하면서도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피범벅이 되어서 보기 끔찍한 손.
하지만 미리엘은 망설이지 않고, 손에 쥔 손수건으로 내 손을 닦아 주었다.
하얀 손수건이 새빨갛게 되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 사이까지 꼼꼼하게.
싫은 내색은 전혀 없이.
“……많이 아팠어요?”
“아니, 멀쩡합니다. 이거 다 나쁜 놈들 피거든요”
내가 웃으면서 말해도 미리엘은 목이 멘 표정이었다.
지금 나는 얼굴과 팔다리 여기저기 출혈이 있으니까.
“좀 까진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니가 어려워하시니까 말씀 편하게 해 주실래요?”
리세라의 말.
보통은 반대 아닌가 싶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엘은 한껏 뭔가를 애써 참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비밀은 지켜 주실래요?”
“그래.”
치료약의 비밀.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리세라에게 들었겠지.
고개를 끄덕인 미리엘이 나를 빤히 본다.
천사처럼 고운 아이의 눈시울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내 품에 폭 안겨 들었다.
뜻밖의 일.
무척 기쁜데 남들이 보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얼른 끌어안아 주고 싶긴 한데 선뜻…….
“아…….”
그 순간, 몸속 깊은 곳부터 따뜻해졌다.
내 가슴께가 조금씩 젖어 든다 싶더니…… 상처가 나아 간다.
잘게 떨리는 어깨.
미리엘은 울고 있었다.
애써 참아 왔던 눈물이 터지면서 내 가슴을 적신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에 있던 둘, 리세라와 미레이는 내게서 등을 돌려서 벽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떨고 있는데.
자칫하면 이 위험한 비밀이 들킬지 모르는데도.
그래도 미리엘은 나를 피투성이로 놔둘 수 없어서 치료해 주려는 것이다.
“아.”
가슴이 벅찬 나는 내 딸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이 아이의 마음씨가 너무 갸륵하고, 또 대견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참으면서.
미리엘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힘들었지?”
“…….”
흐느끼는 소리.
나는 미리엘을 양팔로 끌어안고는 차분하게 일렀다.
“이젠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아. 아아.”
미리엘의 울음소리가 커진다.
나는 내 딸을 더 힘껏 끌어안고는 말했다.
내 가슴에서 터지는 눈물.
“아빠, 아빠…….”
두서없이 나오는 목소리.
내가 시릭이라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본능적으로 나오는 소리.
아이가 가장 처음 배우는 단어.
힘들 때 가장 먼저 부르는 이름.
“이제 괜찮아.”
나는 그저 그 말만을 반복했다.
아이는 부모의 품에서라면 마음 놓고 울어도 되니까.
언제든지.
얼마든지.
나는 미리엘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안아 주었다.
그저 힘껏.
힘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