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58)
바로 나다
진범 잡기.
루크는 낮은 자세로 대뜸 내 허벅지를 찔러 왔다.
탄력 있는 하체, 상당한 실력이다.
내가 물러나면서 쳐 내자 루크는 따라붙으면서 연달아 찔러 왔다.
“형을 잡았다고 뭐라도 된 줄 아시나 본데!”
차차창!
나는 취한 것처럼, 갈지자로 물러나면서도 싹 다 쳐 내 버렸다.
기세등등하던 루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쪽 발끝으로만 선 내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어이쿠, 무서워라. 얼른 들어와.”
“……너 대체 뭐야?”
“안 들어오면 내가 들어간다?”
나는 가볍게 마력검을 쓰면서 공격해 들어갔다.
루크는 낮게 받아 내려고 했지만 나는 언더스로로 공을 뿌리는 것처럼…… 크게 올려쳤다.
창!
“크악!”
칼로 방어한 루크의 몸이 흔들리면서 뒤로 밀려난다.
경직 회복? 염동력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관성을 제어하는 내가 훨씬 더 빠르다!
푹!
내 검이 루크의 어깨를 관통했다.
솟구치는 피.
루크는 이를 악물고 마력질주로 몸을 빼냈다.
“헉, 허어어억. 헉…….”
“상대가 안 된다니까.”
지금의 내가 전성기에 비해서 약하다지만 가락이 있지.
일단 나를 좀 상대해 보려면 막대한 마력, 폭탄 같은 아이템, 그리고 어디서 검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했다.
애당초 나를 상대로 근접 전투? 하는 게 바보다.
나는 루크를 향해서 검을 겨누었다.
“대체 왜 미리엘을 노렸냐?”
“으음, 으으음…….”
루크는 눈을 희뜩거리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른 귀족, 기사들이 자기를 도와주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나는 미리 내 실력을 선보여서 군중들을 찍어 눌렀다.
거기다 테러 의혹까지 받고 있으니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 세상은 자력구제지.”
루크는 입에다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울려 퍼지는 휘파람.
그러자 무장한 병사들이 파티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언뜻 봐도 서른 명 이상.
쾅! 쾅!
파티장의 문을 걸어 잠근 병사들이 기세등등했다.
“숫자로 밀어 보겠다고?”
“아니, 날 상대할 시간이 없을걸?”
루크가 히죽 웃었다.
푸우욱.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온 파육음.
“아…….”
병사 하나가 칼을 꺼내더니 대뜸 귀부인의 옆구리에 찔러 넣은 것이다.
찔린 여자는 자기가 왜 찔렸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꺄아아악!”
“으아아악!”
이어지는 피바람.
갑자기 병사들이 칼을 뿌린다.
마력을 쓰는 귀족, 기사들도 얼른 칼을 뽑아서 맞받았지만 바로 제압하지는 못했다.
파티장에 순식간에 비명과 피바람이 몰아친다.
살고자, 칼을 피하고자 달아나는 발소리들.
루크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얼른 가셔야지?”
“내가 왜?”
“……뭐?”
내가 눈을 떼면 공격해 보겠다, 혹은 달아나겠다는 심산이 뻔하다.
루크는 자기 계산대로 안 되자 당황했다.
“다, 다 죽일 건데?”
“그래서 따로 알바 구해 뒀다.”
콰아앙!
병사들이 잠갔던 파티장 문이 박살 나는 소리.
“우리들은 철도헌병대다!”
“긴급조치 8조에 의거! 지금 현장을 제압한다!”
몰려들어 온 철도헌병대원들이 병사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하인켈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것이다.
뜻밖의 상황에 루크의 얼굴이 멍해졌다.
“뭐, 뭐야? 철도헌병대? 여긴 황도야! 철도헌병대가 어떻게 개입해!”
“했네.”
“말도 안 돼, 말도…….”
철도헌병대의 무력행사는 철도로 한정된다.
그래서 내가 철도헌병대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도 루크는 신경을 안 썼겠지.
루크는 기가 막힌 얼굴로 나를 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온다고! 황도 안에서 출동하면 경찰, 제국군과 충돌할 텐데! 정신 나간 짓이야!”
“야, 테러범이 남의 정신을 논하냐?”
“…….”
“그리고 쟤들은 원래 내가 하자면 다 해.”
내가 바로 철도헌병대를 만들었고 제국의 법률을 제정한 황제니까.
나는 검을 고쳐 잡았다.
“무기 버려. 그리고 취조실로 가서 네가 아는 걸 전부 다 말해라. 그러면 교수형으로 선처해 주마.”
“으으으으.”
루크는 검에 마력을 끌어모으더니만…….
기절해 있던 제이드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끄아아악!”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전부 너 때문에 망한 거야! 이 멍청한 놈아!”
갑자기 칼침을 맞게 된 제이드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뒹굴었다.
하지만 루크는 검을 연거푸 내리쳤다.
도마 위의 생선을 토막 치듯이.
“헉, 허어어억. 허어어억.”
손과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루크는 기진맥진한 한숨을 쉬었다.
이미 제이드는 숨이 끊어졌다.
자기 형을 참살한 루크는 나를 돌아보면서 허탈하게 말했다.
“……내가 왜 이랬냐고?”
“내가 죽이려고 했는데 새치기하셨네. 나중에 정산한다.”
나는 뒤쪽을 잠깐 확인했다.
헌병대와 기사들이 합심해서 하나하나 제압해 가고 있었다.
상황은 끝나 간다.
루크가 갑자기 떠벌렸다.
“난 무능한 놈이 진짜 싫어! 먼저 태어났다고! 가문을 물려받겠다고 떵떵거리는 놈이 역겨워 죽겠어!”
루크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층계참을 쏘아보았다.
리세라의 손을 잡고 있는 미리엘을 노려본다.
“내가 왜 저 황녀를 노렸냐고? 무능하니까!”
“뭐?”
“무능하잖아! 다른 형제자매들은 다들 활동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어린애고 펑펑 울기나 하지! 집안 믿고 그저 뻗대는 식충이에 불과해! 저런 걸 보면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어!”
쩌렁쩌렁한 목소리.
층계참의 미리엘에게까지 들릴 외침이었다.
“다른 누구를 골라도 상관없었어! 하지만 난 무능한 놈들이 정말로 싫거든! 그래서 괴롭히라고 형을 부추겼지! 하하하하. 형제 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걸 골라내는 건 당연하잖아!”
“그 말대로라면 너부터 골라내야겠네.”
“…….”
웃던 루크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무, 무능하다니. 누가! 내가?”
“애당초 왜 나한테 와서 제안을 했냐? 선자불래라는 말도 모르냐?”
대뜸 찾아와서 차도살인을 제안하는 놈을 바로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놈은 자신만만했다.
내가 원하는 정보, 폭탄의 출처만 던지면 물 거라고 넘겨짚었지.
“계획대로 다들 네 형을 범인이라고 착각하고, 전부 다 잘 끝날 것이다? 그건 네 머릿속의 망상이지. 애당초 너는 보통 사람의 감각을 전혀 모르고 있어.”
“……뭐?”
“보통 사람은 가족을 그리 쉽게 끊지 못해. 능력이 부족하다고? 아직 애니까 당연하지! 애는 건강하게 잘 크기만 해도 충분해! 그리고…….”
포효.
나는 연회장이 울리도록 외쳤다.
“애당초 미리엘은 무능하지 않아! 리세라에게 도움을 청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거짓말까지 하면서 자기 자매를 지키려고 했어! 사람은 자기 가족만 지켜도 충분히 훌륭해!”
“무, 무슨…….”
“그런데 너는 그 가족부터 죽였지. 글러 먹은 놈아.”
루크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너, 너도 나처럼 막내면서 왜…….”
“내가 왜 미친놈에게 공감해 줘야 해? 막내라고 다 같은 줄 아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라? 설마, 지금 제 눈앞의 병신은 케드릭 후작 되고 싶어서 이런 거였어? 그렇게나 능력에 자신 있으면 독립하든가. 설마 집에서 독립하기가 겁나서 테러범이 되셨어?”
“으…….”
“진짜 무능한 새끼는 너구만.”
“으아아아아!”
루크는 마력질주로 달려들면서 검을 찔러 왔다.
속도가 빨라 봐야 타이밍이 읽힌다.
나는 슬쩍 상반신을 틀면서 검을 휘둘렀다.
퍼어어억!
검이 빗겨 나가고, 루크의 양팔이 끊어져서는 허공으로 치솟았다.
“아, 아아아. 아아아아…….”
팔이 날아간 루크는 털썩 주저앉았다.
여차하면 쇼크사인데 죽진 않았다.
그때 헌병대원이 다가왔다.
“특관님, 실내 제압, 완료했습니다! 지금은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놈이 주모자다. 압송해.”
“예!”
헌병대원 둘이 루크를 무릎 꿇리고 지혈을 시작했다.
데려가서 캐낼 게 많으니까 여기서 죽으면 안 되지.
나는 손을 털고는 뒤돌아보았다.
층계참의 미리엘과 리세라. 하인켈과 다크엘프 요원들이 붙어서는 경호하고 있었다.
무사하다.
내가 마음을 놓는데…….
쨍그랑!
유리창 깨지는 소리.
이어서 밧줄을 타고 사람들이 쭉쭉 내려온다.
몸에 딱 붙는 검은 슈트.
다크엘프들이었다.
순식간에 내려온 다크엘프들은 3층, 2층을 선점하고는 또 리세라와 미리엘 주변까지 접근했다.
하인켈과 다른 요원이 검을 들고 있었지만 포위당했다.
“뭐야!”
헌병대원들이 놀랐지만 다크엘프들은 너무 재빨랐다.
그야 이걸로 먹고사는 애들이니까.
각자 자리를 잡자 다크엘프 셋이 1층으로 뛰어내렸다.
내 쪽으로 걸어온 셋이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 다크엘프 특수 요원이 지휘하겠습니다. 다들 침착하게 지시를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뭐, 뭐라고!”
당황하는 헌병대원들, 파티 참가자들도 당황한다.
가장 앞의 다크엘프가 말했다.
“저는 다크엘프에서 상무를 맡고 있는 알베르트라고 합니다. 분투를 치하합니다. 철도헌병대 리젠 특관.”
“분투해서 너희들을 죽여 버리고 싶어지는데?”
지금 이 다크엘프들은 오르카가 부리는 이들이 아니다.
상무라면 부장 위, 대장 아래다.
다크엘프 사이에서 높은 직급, 이런 현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즉, 암살여왕의 명령을 받고 온 것이다.
“그래, 지켜보다가 막타 치시겠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암살여왕이 황도에 온 이유.
5황후가 미리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던 건지.
알베르트가 말했다.
“화내시는 것도 당연하겠죠. 하지만 저희들은 두 황녀 전하의 안전을 위해서 다각도로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미리엘 전하, 리세라 전하를 인도하시고, 또 루크 케드릭을 넘겨주시죠. 심문할 때 헌병대원 한 분은 동석하실 수 있게 배려해 드리겠습니다.”
“와, 내가 다 처리하니까 진짜 날로 먹으려고 하시네?”
알베르트는 엄숙하게 말했다.
“이건 우리들의 여왕님과 5황후 전하가 서로 합의를 보신 일입니다. 사사로운 일이 아니니 제국민으로서 협조해 주시죠.”
“요즘 공무 수행이라는 게 국민이 죽어 가는 걸 구경하는 거였냐?”
루크의 병사들이 사람들을 학살할 때, 이놈들이 들어왔으면 좀 더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양심은 있는지 알베르트는 좀 불편한 기색이었다.
“협조하지 않으신다면 부득이하게…….”
“미레이!”
“예! 이관 미레이!”
내 부름에 미레이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절도 있는 자세,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나는 알베르트를 보면서 미레이에게 물었다.
“아르센은 어디까지 왔냐?”
“예! 이미 정원까지 들어오고 계십니다!”
흠칫!
알베르트와 다른 둘이 깜짝 놀랐다.
아르센은 헌병대의 톱이고 또 마족이다.
헌병대장이 오면 당연히 병력을 데리고 올 테고.
이놈들이 다크엘프들의 특수 요원이라고 해도 정면으로 대적할 수 없다.
“…….”
알베르트가 동요하면서도 나를 보았다.
거짓말 아닐까 의심하는 시선.
나는 웃었다.
“내가 철도헌병대 백 명만 차출했다는 거 듣고는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지? 암살여왕이 직접 보낸 상무와 특수 요원이라면 다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설마…….”
“너희들은 자기 정보망을 너무 맹신해.”
암살여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판에서 일을 허술하게 처리할 수는 없지.
리세라와 미리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철두철미해야 한다.
내가 아르센에게 헌병대원 백 명을 뽑아 놓으라는 지시, 철도헌병대 내부에 퍼졌을 것이다.
즉, 다크엘프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보안이 생명? 철도헌병대 안에서 내가 낙하산이라 아니꼬워하는 애들이 많잖아?
당연히 밖으로 퍼지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 이 파티장에 오기 직전에 아르센에게 은밀하게 명을 내렸다.
하인켈이 연락하는 즉시, 시간차를 두고 2차 병력을 이끌고 오라고.
와아아아!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
“돌격! 우리들은 황제 폐하의 왼팔이다!”
“제국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방해하는 자는 무조건 쳐라!”
“…….”
알베르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크엘프들을 몰살할 수도 있다.
내가 말했다.
“애들, 황녀들 근처에서 병력 싹 빼. 오늘 다 뒤지기 싫으면.”
“…….”
알베르트가 뒤쪽을 향해서 손짓을 했다.
미리엘과 리세라, 하인켈 주변에서 다크엘프들이 물러난다.
1차적으로 정리한 나는 허리를 주물렀다.
“아, 힘들다. 몸 좀 푸니까 허리가 안 좋아. 의자 가져와.”
“예, 특관님. 당장…….”
미레이가 나서려고 하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신 알베르트에게 턱짓했다.
“의자, 네가 직접 가져와.”
지금 이 자리의 아군과 적에게 확실히 보여 주리라.
이 판을 누가 지배하는지.
누가 제일 위인지.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