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56)
일할 시간이다
밤.
저택 전체를 쓰는 화려한 파티가 열렸다.
주최는 케드릭 후작 가문.
화려한 불빛이 빛나는 연회장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마신다.
숫자는 삼백 명 안팎.
상당수가 무장한 상태다.
원래 제국은 세워지기 전부터, 파티 하다가 급보 듣고 출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파티에서 무장하고, 갑옷을 입은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대다수가 인간들이지만 간혹 이종족들도 섞여 있었다.
다들 얼굴을 덮는 가면을 쓰고 있는 파티다.
나 역시도 가면을 쓰고 파티장 구석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준비 끝났습니다.”
내 옆에 앉은 건 하인켈.
다크엘프의 정보망으로 초대장을 따로 구해서 들어왔다.
나는 파티장을 둘러보고 얻은 정보까지 합쳐서 최종 정리를 내렸다.
“황후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테러범들을 부추기고 있군.”
“예?”
“철도 테러 사건, 암살여왕의 구상은 이래. 폭탄이 터지고 아들이 죽더라도 테러범의 꼬리를 잡는다.”
오르카도 다크엘프의 요원이고, 싸우는 전사다.
그래도 적을 꾀는 미끼로 쓴 건 사실이다.
“미리엘도 마찬가지야. 테러범 앞에 위험하게 던져 놓고 단숨에 낚아 올리는 미끼로 쓰는 거다. 사전에 이러자고 두 황후 사이에 밀약이 오갔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제가 모르는 다크엘프가 파티장에 있긴 합니다.”
하인켈이 목소리를 낮췄다.
요원은 서로 알아본다.
그리고 오르카 쪽이 아닌 다크엘프, 암살여왕의 수하가 이미 여기에 있다.
나는 깍지 낀 손을 내려다보면서 일렀다.
“제국의 지배자들인 황후들은 테러범들과 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과정에 자기 자식을 미끼로 쓰지. 정보도 제대로 안 주고 위험한 곳에 내던져.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폭발적이네.”
“…….”
“그래, 오르카는 철도 테러 사건을 해결한 공을 세우고 제국에 이름을 떨쳤지. 다음은 이제 미리엘 차례라 이거지? 제국의 안위를 위해서 황족이 참고 피를 흘려라?”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인켈, 오르카가 별말 없더냐?”
“예?”
“……자기 어머니가 한 일에 대해서 아무 말 안 하냐?”
“제가 알기로는 드러내신 적이 없습니다.”
“…….”
다른 사람 앞에서 차마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겠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고 사지로 떠민 어머니가 원망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오르카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나한테 거짓말까지 했다.
“애들 마음을 전혀 생각을 안 하네.”
자기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 정치가들은 넘쳐 나지?
하지만 반대로 자식을 위험한 지뢰 제거에 투입하는 지배자는 어떨까.
의무를 다한다고 찬양하나, 아니면 냉혈한이라고 질색하나?
“됐다. 황후들도 다 계산이 있고 계획이 있겠지만 내 알 바 아니지.”
“…….”
하인켈은 묵묵히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르센이 추가 지시 확인했지?”
“예, 대기하고 계십니다.”
“그럼 말한 대로 바깥쪽과는 잘 연계해라. 병력 돌입 타이밍을 재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준비는 끝났다.
나는 반대쪽에 있던 리세라를 향해 다가갔다.
리세라 역시 가면을 써서 얼굴을 가렸지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주목을 받고 있었다.
물론 그 옆에는 다크엘프 여자 요원이 딱 붙어서는 이상한 놈이 안 꼬이게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
나를 알아본 요원은 목례하고는 물러났다.
나는 리세라 옆에 서서 말했다.
“정리 끝났다. 미리엘은 3층 구석방에 있다는군.”
“예. 대신 케드릭의 아들, 루크가 1층 파티장을 지휘하고 있군요.”
내가 새삼 돌아보니 파티장 중앙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루크가 보였다.
상당한 인기인, 이 파티장의 주역이다.
“네가 생각하기에 루크는 어떻지?”
“일견 밝고 총명하고 재치 있지만 목소리에 숨기는 게 있어 보이네요.”
“그래, 일단 가자.”
나는 조심스럽게 리세라의 손을 잡았다.
리세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맞잡으면서 말했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3층.
오르는 동안 경비나 방해는 없었다.
내 안내를 따라 계단을 오른 리세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5황후 전하께서 지금 상황을 놔두시는 건……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 다들 사정이 있겠지.”
5황후는 자기 딸을 미끼로 써도, 이런 식으로 쓰진 않을 거다.
어지간하면 그냥 상대를 도려내고 끝내겠지.
그럴 수 없는 문제란 거다.
또 미리엘이 보낸 편지까지 생각해 보면…….
천족 전체의 문제, 치료약으로 약점이 잡힌 거겠지.
천족의 고유 능력, 치료약 제조법은 극비 사항이다.
그래도 세상에는 호기심이 넘치는 이들이 있지.
그들이 조사한 끝에 알게 되는 제조법?
천족은 마력을 끌어모아서 치료약을 만든다.
보통 여기서 납득하고 물러나지만…… 이건 천족의 눈속임이다.
마력으로 만들기는 한다.
2급 치료약까지만.
1급, 그 위의 특급 치료약의 재료는 바로 미성년 천족의 눈물이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온갖 놈들이 천족의 어린애들을 납치하겠지.
양계장에서 닭을 치는 것처럼, 우리 안에 가두고는 매일같이 울라고 몰아붙이겠지.
애들이 사라지면 그 종족은 멸망한다.
즉, 천족에게 치료약의 비밀은 종족의 존속 문제다.
지금까지 이 비밀이 지켜졌던 건 천족이 강한 종족이고, 엘프 이상으로 폐쇄적이기 때문이었다.
또 비밀 누설을 막기 위해서 다른 종족과 절대 혼인하지 않았고.
유일한 예외가 바로 나다.
내가 천족의 아내를 두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저 비밀을 알아서다.
난 강하니 제거할 수도 없고, 당시 상황도 있어서 차라리 혼인으로 묶자고 결론이 나온 거지.
한데 그 비밀이 새어 나갔다.
그것도 제국을 테러하는 놈들과 협력한 제이드에게?
5황후는 상대의 협박에 따르는 척하면서, 어디까지 정보가 샜는지 파악하고 싹 뿌리 뽑을 작정이겠지.
상대가 12가문 케드릭이라고? 종족의 운명이 달린 문제다.
지금은 견적 내는 중이겠지.
하지만 나는 내 자식들의 일에 견적놀음 할 생각은 없다.
“알겠지만 좀 폭력적으로 일을 풀지도 몰라. 혹시 그러면 미리엘…… 황녀 전하를 부탁한다.”
“겁먹지 않아요. 우릴 도우러 와 주셨으니까.”
리세라는 더 단단하게 내 손을 붙잡아 주었다.
“고맙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3층 복도 끝, 방.
무슨 일인지 호위 서는 기사도 없다.
삐걱.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방.
침대 쪽에서 코 고는 소리.
“…….”
그리고 소파에는, 무릎을 꼭 붙이고 땅바닥만 내려다보는 소녀.
작은 체구, 등의 하얀 날개는 축 늘어져 있었다.
백금발이 얼굴을 가렸지만 긴장하고 겁에 질려 있다는 걸 척 보면 알 수 있었다.
우리 둘이 들어왔는데도 모른다.
드르륵.
그리고 천장 쪽에서 사람 하나가 뛰어내렸다.
오르카 쪽 다크엘프 요원이다.
내가 미리엘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경우에 알리라고 붙여 뒀다.
요원이 내게 와서 보고했다.
“확인했습니다. 미리엘 황녀 전하는 직접적인 위해를 당하시진 않았습니다. 다만…….”
“저 바닥의 핏자국은 뭔데?”
“술에 취한 제이드가 자기 기사가 실수했다고 때리더군요.”
보고한 요원이 옆으로 물러났다.
이 상황에서도 침대의 코골이는 여전했다.
소파의 소녀도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
“미리엘 언니.”
그리고 리세라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리세라도 긴장했는지 손에 땀이 배어 있었다.
“미리엘 언니.”
거듭된 부름에 소파에 앉아 있던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소녀 인형처럼 사랑스러운 외모가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었다.
보는 사람이 가슴 아플 정도로.
“……리세라?”
소녀, 미리엘은 가면을 쓴 리세라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사이좋은 자매니까.
“예, 언니.”
“리세라 맞…….”
반색하며 벌떡 일어난 미리엘은 흠칫거렸다.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침대 쪽을 본다.
“아, 안 돼. 나가자. 나가야 해.”
후다닥 다가온 미리엘은 리세라의 손을 잡았다.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괜찮아요, 미리엘 언니.”
“아, 아냐. 나 좋아서 여기 있는 거야. 나한테는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난 그냥 음료수만 마시면서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돼. 그냥 그래.”
“언니.”
“난 괜찮다니까? 조만간 다 끝난다고 엄마가 말했어.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아무것도 못 본 척하면 돼. 그러니까 나가자. 응? 으응?”
횡설수설.
미리엘은 두서없이 말하면서 리세라의 손을 잡아당겼다.
동생, 리세라도 혹시나 지금 일에 휘말릴까 봐.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치료약 때문이지?”
“…….”
흠칫.
그제야 미리엘은 내가 있다는 걸 알고는 딱 굳어 버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안심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미리엘은 비밀을 들켰다고 얼어 버린 표정이니까.
지금 이 리젠 리브라타는 미리엘에게는 그저 낯선 사람이다.
설사 내가 시릭이라는 걸 당장 밝히더라도…… 더 혼란스러울 테고.
나는 가능한 한 부드럽게 말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널 울게 만들려고 계속 무서운 걸 보여 줬구나.”
“아, 안 울었는데요.”
미리엘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내가 아는 비밀은 사실이 아니라고 허둥지둥.
자기 종족의 비밀을 지키려고.
낯선 남자인 나를 경계한 미리엘은 리세라의 손을 잡아당기려다가 멈칫했다.
나와 리세라가 손을 잡고 있다는 걸 알고.
“그래, 훌륭하다. 잘했다. 하지만…….”
탁. 탁.
나는 미리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고는 몸을 돌렸다.
“애는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그러려고 아빠가 있는 거니까.”
“…….”
미리엘이 멍하니 올려다본다.
나는 몸을 돌려서 침대를 향해서 걸어갔다.
조금 전의 말은 위험했나 싶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서 멈춘 나는 잠든 놈을 내려다보았다.
인간 남자, 제이드 케드릭.
“…….”
나는 놈의 멱살을 잡고는 마력을 일으켰다.
부우우웅!
그러고는 복도 쪽을 향해서 집어 던졌다.
콰아앙!
놈의 몸이 문을 뚫고 사라진다.
나는 박살 난 문으로 향하면서 미리엘을 돌아보았다.
동생의 손을 잡은 내 딸은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
나는 씩 웃어 보였다.
이제 다 끝났다고.
무서운 건 전부 아빠가 쫓아내 주겠다고.
방에 다크엘프 요원을 남겨 둔 나는 복도로 나갔다.
이제부터 할 일은 애들에게 보여 줄 게 아니다.
“컥! 커어억!”
자다가 갑자기 복도에서 뒹굴게 된 제이드가 당황하면서 허둥지둥 일어났다.
몸 여기저기에 각이 잡힌 게, 제법 단련했다.
“뭐야! 너 누구야?”
“넌 뭔 생각으로 사냐?”
퍽!
나는 복도에 놓여 있던 꽃병을 집어 던졌다.
제이드는 반사적으로 양손을 교차해서 막았지만 물을 뒤집어썼다.
그 틈에 나는 놈의 배를 걷어찼다.
뻐어억!
“끄억!”
제이드가 쭈욱 뒤로 밀려난다.
나는 꽃병이 놓여 있던 테이블까지 잡아 들었다.
“넌 대체 뭔 생각이냐고. 황후와 황녀를 협박해? 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자, 잠…….”
휘이이익!
테이블이 날아가면서 제이드의 머리를 강타.
머리가 찢어지면서 피가 튄다.
“잠깐!”
제이드가 전신을 마력으로 방어하고는 외쳤다.
할 말이 있다는 얼굴, 나는 무시하고는 주변 기물을 살폈다.
“기다려! 협상하자!”
“뭐로 맞을지?”
“너도 어디서 알고 왔나 본데? 협상하자니까?”
내가 들은 척을 안 해도 제이드는 계속 말했다.
“저거 보물 창고야! 우리끼리 싸울 필요가 없다고!”
“……뭐?”
“1급 치료약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거 알지? 그런데 쟤가 울면 그게 나온다니까! 돈이 열리는 나무야!”
“…….”
내 얼굴을 본 제이드가 혀를 날름거렸다.
“……뭐야? 그래서 온 거 아냐? 그러면 뭐야? 설마 황후가 보냈어? 내가 분명히 경고했는데?”
“뒷감당은 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굳이 5황후의 성질머리를 논할 것도 없다.
천족은 자기 비밀을 알아 버린 외부인과는 끝장을 봐야 했다.
제이드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겨, 결혼하려고 그랬지.”
“……뭐?”
“황제도 천족이랑 결혼했잖아? 나도 하면 되잖아. 그러면 되는 거 아냐?”
“…….”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그러니까 상대의 비밀을 쥐고 협박해서 결혼으로 마무리하겠다고?
완전히 자기중심주의, 꿈나라에서 사는 놈이다.
지금 제국을 지배하는 황후도 협박으로 휘두를 수 있다고 우쭐한 거지.
그냥 어디까지 죽일지 계산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내가 기막혀하는데…… 제이드는 갑자기 몸을 낮추더니 내게 태클을 걸어왔다.
제 딴에는 반격이라고 시도했는데 너무 뻔하다.
나는 조금 뒤로 뛰면서 공중회전, 발뒤축으로 내리찍었다.
“크어억!”
덤비다가 오히려 뒤통수를 찍힌 제이드가 비틀비틀 물러났다.
보통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데 용케 버티는 걸 보니 아주 맹물은 아니다.
“너 아니군.”
“……뭐, 뭐?”
“넌 진짜 생각 없이 저지르고 보는 놈이다. 고작 너 하나 잡으려고 황후들이 인내심을 발휘할 이유가 없다. 황후들이 낚으려는 건 다른 놈이다.”
나는 테이블 위의 도자기를 잡았다.
제이드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너 같은 얼간이가 천족의 비밀을 어디서 주워들었지? 황후들은 그걸 조사하려고 네 협박에 못 이긴 척했던 거다.”
“설, 설마…….”
“물론 나라고 널 살려 주겠다는 건 아니야. 그냥 너부터 조지고 시작하겠다는 거지.”
“무, 무슨 소리야?”
“뭐? 결혼하겠다고?”
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잘난 놈이 와서 무릎 꿇고 청해도 눈에 안 차는데. 아직 성인도 안 된 내 딸을 어두컴컴한 방 안에 가둬 놓고 끔찍한 걸 억지로 보게 만든 놈이 뭐? 결혼?”
“…….”
“넌 오늘 나한테 죽는다.”
제이드가 멍한 얼굴을 하는 순간, 나는 도자기를 집어 던졌다.
빠캉!
“크악!”
도자기가 박살 나면서 비산한다.
마력방어로 막은 놈의 등이 추락 방지 난간에 걸렸다.
“어? 자, 잠…….”
뻐억!
나는 주저 없이 놈을 걷어찼다.
“으아아아아악!”
제이드가 비명을 지르면서 아래로 추락했다.
물론 마력방어를 쓰고 있으면 3층에서 추락해도 안 죽는다.
나는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까지 거리를 가늠했다.
가능하다.
나는 난간을 밟고 뛰어서 샹들리에 위에 착지했다.
“또 떨어지니까 거기 아래 전부 다 비켜라!”
포효.
파티장 전체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게 외친 나는 샹들리에의 이음새를 노려보았다.
염동력.
투두둑.
단단한 안전 고리가 끊어진다.
나는 샹들리에를 누르는 발을 좌우로 흔들면서 추락 지점을 조절했다.
투두두둑!
끊어지고 추락.
초대형 샹들리에가 떨어진다.
1층 파티장에 추락해서 대자로 뻗어 있는 제이드의 위로.
“으아아악!”
제이드가 비명을 지르면서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쨍그라라랑!
요란한 소리가 울리면서 샹들리에가 제이드를 깔아뭉갰다.
나 역시도 마력으로 방어했지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가볍게 공중제비를 넘은 나는 자리에 착지했다.
“뭐, 뭐야…….”
“사, 사람이 떨어졌어!”
“샹들리에가 사람 위로…….”
“저거 누, 누구야?”
파티 참가자들이 기겁하면서 나를 본다.
달려온 케드릭의 기사들이 마력을 일으켜서 얼른 샹들리에를 치웠다.
“도, 도련님!”
“무사하십니까!”
“헉, 허어억. 저거 대체 뭐하는 놈이야! 너 누구냐! 누군데 다짜고짜 지랄이야!”
부축받아서 일어난 제이드는 고래고래 소리쳤다.
샹들리에에 깔렸지만 마력으로 방어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행이다. 안 죽었네. 너무 쉽게 죽이면 안 되지.”
제이드와 기사들이 나를 적대적으로 노려본다.
그리고 파티장의 모든 사람들, 삼백 명의 손님들이 나를 주목했다.
이들은 각계에서 초대받은 인사, 제국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겠지.
나는 이제까지 싸우면서 가능한 한 내 노출을 삼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휙!
나는 얼굴을 가렸던 가면을 벗어 던졌다.
“아!”
놀란 반응들.
이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많겠지만, 리젠은 생긴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홀리기 충분하다.
모두의 주목 속에서 나는 제이드를 향해서 선언했다.
“나는 리브라타의 막내, 리젠 리브라타다. 케드릭의 장남과 풀 일이 있으니 결투를 신청한다!”
“미, 미친놈! 나는 수락한 적도 없다! 갑자기 결투라니!”
“아, 네 동생인 루크 케드릭이 수락했다.”
“뭐!”
제이드의 경악.
나섰던 케드릭의 기사들도 깜짝 놀랐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일제히 쏠린다.
루크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판을 짜는 황후들의 계산? 테러범들의 흉계?
웃기지 마라.
내가 안 이상 양쪽 다 용서 못 한다.
“나는 지금부터 제이드를 박살 낸다. 호위 기사? 놈의 친구? 이 판에 끼고 싶으면 다 덤벼라.”
나는 기사들이 보호하는 제이드를 향해서 다가갔다.
“싹 밀어 주마.”
아빠로서 일할 시간이다.
오늘로 너희 집안 문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