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고인 황제놀음-55화 (55/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55)

감춰진 눈물

정오.

철도헌병대 본부.

헌병대장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르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썹이 휘날리는 기세로 달려와서는 한쪽 무릎을 꿇어 보인다.

“폐하, 다시 존안을 배알하니 영광이 감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너 자꾸 그러면 나 안 온다?”

“죽여 주시옵소서!”

“그건 니 아내한테 가서나 말해. 소원이었을 거다.”

나는 챙겨 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아르센은 공손하게 양손으로 받고는 부르짖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거 너 주는 거 아니야. 집에 가서 아내나 줘. 요즘 마족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피부 화장품이니까.”

“예? 아, 아니. 어떻게 이런 걸 다…….”

“가져가서 주고, 아내도 한번 안아 주고 그래, 인마.”

아르센은 쇼핑백을 꼭 끌어안았다.

2m 마족 남자가 그렁그렁한 황소 눈망울로 나를 본다.

사실 남자 부하들에게는 아내나 자식들 선물 챙겨 주는 게 잘 먹힌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 애들은?”

“아직 없습니다. 둘 다 일에 치여서…….”

“쉬엄쉬엄해. 그리고 화장품은 하사품이라고 모셔 두지 말고 오늘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아내 줘라.”

아르센이 신음을 흘렸다.

“……정말 우리 폐하가 맞으시군요.”

“아직도 의심하냐? 5분이 아니라 5시간을 굴려 줘?”

“아, 아니. 저는 이제 믿지만 외모가 너무 다르시니까요. 대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랍니다.”

아르센은 내 맞은편에 앉아서 말했다.

“그래도 이제 보니 알겠습니다. 말씀하시는 거나, 하시는 걸 보면 확실히 우리 폐하가 맞으십니다.”

아르센은 테이블 위에 서류를 올려놓았다.

“말씀하신 제이드 케드릭, 루크 케드릭에 대한 자료입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모아 보았지만 저희들은 정보력이 부족해서…….”

“이 정도면 됐어.”

나는 빠르게 내용들을 훑어보았다.

“형인 제이드는 성격이 더러워서 귀족들 사이에서도 친구가 없고, 반대로 루크는 교우 관계가 두루 원만하다?”

“예, 동생이 낫다는 식입니다.”

이어서 아르센이 검을 내 앞에 놓았다.

“제가 예전에 쓰던 검입니다. 좀 낡긴 했어도 5계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됐다. 쉽게는 안 부서지겠지.”

나는 현재 4계위.

저 검으로는 마력검을 써도 박살 나진 않는다.

아르센이 근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하나 맞추시지 그럽니까? 제대로 링크 안 된 검으로 마력검을 쓰시면…….”

“마력 소비가 심하고 위력도 죽지.”

“예. 물론 가격은 제법 나가겠습니다만. 그건 저희 철도헌병대에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력검을 쓰려면 사용자 전용으로 커스터마이징, 전용 검이 필요하다.

그래서 난 환생하고 싸우다가 검이 박살 나기 일쑤였고.

리브라타 백작, 아버지도 해 주려고 하셨는데…….

“물론 가격도 수십억이니 보통 일이 아니지. 또 검을 맞추려고 해도 바로 되는 게 아니고 시간이 오래 걸려.”

주문해 놓고 내가 성장해 버리면 또 처음부터 맞춰야 한다.

물론 보통 그럴 일은 없다.

뛰어난 인재도 계위 하나 올리는 데 연 단위니까.

하지만 이 리젠의 몸은 비상식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금 한두 번 더 싸우면 5계위일 것 같고.

나는 생각난 김에 물었다.

“내가 원래 쓰던 검들은 어디 갔지? 황궁 보물고에 들어가 있냐?”

“아, 황검들은 지금 황좌에 꽂혀 있습니다.”

“아니, 그걸 왜 거기다가 꽂아 놔?”

내가 어이없어하자 아르센이 설명했다.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폐하가 사망…… 아니, 서거하셨을 때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다들 황후들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게 아닌가 했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황제인 내가 죽은 걸 발견했을 때, 내 검들도 황좌에 멋대로 꽂혀 있었다는 거다.

아르센이 덧붙였다.

“그래도 너무 보기 흉흉해서 사람들이 결례를 무릅쓰고 뽑아내려고 했습니다만 다들 실패했습니다. 궁 안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를, 황제 폐하의 한과 마음이 거기에 어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제 폐하가 돌아오시거나, 혹은 2대 황제가 탄생하면 그제야 그 검들이 황좌에서 물러날 거라고 합니다.”

“…….”

“예. 하지만 저도 이제 알았습니다. 폐하의 검들은 황좌에 그 누구도 함부로 앉지 못하게 수호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쓰던 검들은 평범하지 않다.

아르센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폐하, 앞으로 좀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너나 조심하세요. 리젠이라고 부르라니까 꼬박꼬박 폐하라고 불러.”

“예전에 폐하를 모시던 이들이 지금 폐하를 보면 눈치챌 겁니다. 폐하가 돌아오셨다는 걸 말입니다.”

아르센은 정말 진지한 얼굴이었다.

나는 턱을 긁으면서 물었다.

“티 나냐?”

“……엄청 납니다. 제 아내 이름 기억하십니까?”

“티브론이잖아. 자식 낳으면 둘의 이름 합쳐서 아론은 어떠냐고 했고.”

“거 보십시오, 저와 했던 사소한 이야기까지 다 기억하고 계시잖습니까? 보통 사람은 그런 거 기억 못 합니다.”

아니, 황제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아르센은 간곡하게 말했다.

“물론 그런 폐하이기에 저와 철도헌병대는 목숨을 바쳐서 따를 겁니다. 죽으라면 당장 죽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폐하가 이러다가 들킬까 봐 덜컥 겁이 납니다.”

“왜 겁이 나?”

“……철도 테러부터 온갖 위험한 일에 휘말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제국은 흉흉합니다. 누가 역도인지도 모르는 혼란 속인데 폐하가 제일선에서 나서시는 건 몹시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전쟁 중에도 툭하면 이랬다. 병력 필요하니까 애들 백 명 정도만 뽑아 놔라.”

“예?”

“황도에서 일을 좀 벌일 거다.”

아르센이 마른침을 삼켰다.

“폐하, 저희 헌병대가 황도에서 활동하면…….”

“너희들의 활동 범위는 어디까지나 철도 한정,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밖에서 일을 못 벌이지. 황도는 중앙경찰청의 관할이고, 너희들이 나서면 제국군도 나설 수 있고. 다 알고 하는 거다. 사후 정리는 내가 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까?”

“아직은 심증이지만…… 여기저기 얽혀 있다.”

아르센이 말했다.

“차라리 그냥 저희들을 이끌고 제국군을 치시죠. 황도의 제국군만 접수하면 그 뒤 일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 미친놈아. 그거 쿠데타야.”

내가 기막혀하는데 아르센이 정색했다.

“제국의 주인이시던 폐하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시는데 그 무슨 말씀입니까?”

“일을 순리대로 풀어야지. 개소리할래? 말했지? 내가 시릭이라는 걸 사람들은 보통 못 믿는다고. 너도 바로 안 믿었잖아?”

세조 시대에 환생한 이성계가 단종 죽는 거 보고 빡쳐서 봉기한다?

보통은 이성계라고 안 믿지.

그런데 믿어 주면?

문제가 더 커진다.

“내가 진짜 시릭이라고 믿는 쪽과 나를 가짜라고 의심하는 놈들, 양쪽으로 쪼개져서 전쟁이 벌어진다. 그렇게 되면 제국 내전이야.”

“폐하가 지휘해 주시면 일이 그렇게 안 되게…….”

“그렇게 돼. 내가 황제 자리 다시 앉겠다고 내 부하들끼리 서로 죽이라고 명령하라고? 황도의 시민들도 다 휩쓸릴 텐데?”

나는 정색하고 쏘아붙였다.

“거기다가 너 지금, 객관적으로는 그거다? 철도헌병대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제국군을 치자고 나한테 권하는 거야.”

“아, 아닙니다! 저는 절대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게…….”

“알아. 나야 알지만 오해 살 수 있다고.”

아르센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덜덜 떨었다.

나는 혀를 찼다.

“그러니 제국군을 치자니 뭐니 그딴 생각 하지 마라. 네가 만약 그딴 일을 벌이면 내가 널 쳐서 막아야 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탁한다, 아르센. 나 돌아왔는데 그런 짓 하기 싫다.”

“……예. 명심, 명심하겠습니다.”

아르센은 머리를 깊이 숙여 보였다.

이놈, 진짜 위험한 생각 하고 있었네.

원래 내 부하들은 과잉 충성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나는 선을 그었다.

“어차피 너도 바로 못 믿었잖아? 사람은 보통 정보를 눈으로 인식한다. 생김새가 너무 다르니까 내가 시릭이라는 생각은 못 한다. 보고도 못 믿는다고.”

뭐 평생 숨기고 살 것도 아니고.

필요하다 싶으면 밝히고 써먹을 계획이다.

아르센이 굳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폐하께서 또 검을 차고 일선으로 나서신다니 저는 그저 걱정이 됐을 뿐입니다.”

“네 걱정은 고맙고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너는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철도헌병대의 본분을 다하고 내가 요구하는 지원만 해라.”

“……알겠습니다. 폐하, 다만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아르센은 나직하게 말했다.

“이미 황도에는 5황후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2황후 호선랑 랑에이, 그리고 3황후로 추정되는 인물이 황도로 들어왔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

5황후는 지금 제국의 재정을 맡고 있는 천족.

그리고 3황후는 다크엘프의 수장이자 정보를 담당하는 암살여왕이다.

아르센이 말했다.

“황후들은 지금 제국을 나눠서 통치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만약 폐하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권력을 내놓기 싫어서 날 죽이려 할 거라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아르센이 괜히 이리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니었다.

이 황도에 세 명의 황후가 돌아다니고 있다.

“알았다. 조심하마. 이건 잘 쓰마. 아마 무사히는 못 돌려주겠다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르센도 얼른 일어났다.

“온 김에 점심이나 드시고 가시죠.”

“먹고 왔어.”

“온 김에 저녁까지 드시고 가시죠.”

“왜? 아예 퇴근하고 술 먹고 노래방까지 쏜다고 하지? 오늘 밤 제가 책임지고 쏩니다?”

내가 웃어도 아르센은 진지했다.

“저는 폐하의 평생을 책임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집에 가서 마누라나 책임지세요. 간다.”

웰링 저택.

돌아오니 리세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정신없이 일하나 보네.”

“예. 그리고 제가 미리엘 언니를 만나 뵙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는데, 이제 답장이 왔어요.”

나는 받아서 읽어 보았다.

「안녕, 세라야.

내가 워낙 바빠서 당분간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

난 즐겁게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중에 시간 나면 보자.」

“……내용은 저도 이미 알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거짓말이네.”

“거짓말이죠.”

나도 모르게 한 말에 리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엘과 리세라는 서로 사이좋은 자매였다.

“황녀가 공사다망해도 잠깐도 못 만날까? 진짜 바쁘다고 해도 이렇게 짧게 편지를 쓸 리가 없어.”

“……예.”

이 편지는 현실과는 완전히 반대다.

미리엘은 현재 즐겁지 못하고 잔뜩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걸 5황후가 모를 리가 없는데…….

알면서도 손을 못 쓴다는 건, 제이드가 제국해방군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견적 내는 중인가?

나는 추측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리세라를 괜히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아멜리아가 말하던데, 케드릭 후작 가문에서 초청장이 왔다고 하네요. 내일 밤에 파티가 열린다고요.”

굳은 의지가 어린 목소리.

리세라는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여전히 빛이 없는 눈동자로.

“미리엘 언니를 만나 보고 싶어요. 같이 가 주실래요?”

“내가 막 하려던 말이었어.”

자.

딸과 함께 다른 딸을 구하러 가자!

* * *

어두운 방.

인간 남자가 웃는다.

“자, 그러면 미리엘 황녀 전하, 내일도 제 파티에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 주시죠.”

“…….”

하얀 의자에 앉은 소녀는 움찔했다.

길게 기른 고운 백금발.

등에 달린 하얀 날개.

실로 천사가 떠오르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머리를 내려다본 인간 남자, 제이드 케드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파티를 여는 제가 이렇게 몸소 찾아뵙고는 권하지 않습니까?”

“…….”

“거, 아무런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폐하의 옥체에 단 한순간도 손을 대지 않았잖습니까?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좀 더 성숙했다면 제 취향이겠지만…….”

“……황녀 전하에게 무례합니다!”

지켜보던 시종이 분하게 외쳤다.

제이드는 돌아보고는…….

짜악!

서슴없이 뺨을 때렸다.

마력을 담은 일격.

삽시간에 시종의 코피가 터지고 몸이 휘청거린다.

하지만 제이드는 멈추지 않았다.

“겨우 시종 주제에 감히 귀족에게 지껄이는 게냐? 엉! 죽고 싶으냐!”

퍽! 퍽!

이어지는 연타.

나섰던 시종이 코뼈가 부러지고는 기절해도 제이드는 멈추지 않았다.

그냥 때려죽일 기세.

“그만! 그만하세요!”

굳어 있던 소녀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시종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제이드는 웃으면서 돌아보았다.

“아, 그러십니까? 오시겠죠?”

“……가, 갈게요. 갈 테니까 그만하세요.”

“그래요. 그냥 와서 자리만 빛내 주시면 된다니까요? 저 진짜 신사적인 놈입니다.”

피 묻은 주먹을 한 남자가 씩 웃는데 누가 믿을까?

“저는 황녀님에게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습니다. 믿어 주세요.”

“……아, 알았어요. 믿, 믿어요.”

“아! 하지만 제가 이러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거 아시죠? 황녀님은 어디까지나 제가 좀 마음에 들어서 오시는 겁니다? 남녀 간의 밀당이라는 거죠.”

터무니없는 소리다.

하지만 제이드는 흉악하게 웃었다.

“만약 이걸 알리시면 저도…… 제가 아는 걸 다 밝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이 곤란해지시겠죠?”

소녀, 미리엘은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을 꼬옥 쥐고는 시선을 올렸다.

굳은 얼굴로.

“……알았으니까 물러가세요.”

“아! 그리고 이 녀석? 아직 살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또 치료해 주시면 될 거 아닙니까?”

“…….”

털썩.

시종을 내려놓은 제이드는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발소리.

미리엘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시종을 살폈다.

“괜찮으세요?”

“어, 으으으…….”

피범벅이 된 시종은 의식을 잃었다.

미리엘은 내려다보면서 가슴이 아렸다.

자기를 위해서 나서 준 사람인데 지켜 주지 못한다.

아니,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

만약 그랬다가는 휘말리게 될 테니까.

“……미안해요.”

미리엘은 어깨를 떨면서 흐느꼈다.

똑.

흘러나온 눈물이, 턱을 타고는 떨어진다.

그리고 시종의 얼굴로 떨어진다.

“아, 으으으으…….”

안면이 박살 났던 시종의 얼굴이 조금씩 회복된다.

부러졌던 코뼈가 스스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치료약을 마신 것처럼.

“아, 아아아…….”

그녀가 눈물을 흘릴수록 사람이 낫는다.

미리엘은 시종의 얼굴로 계속 눈물을 떨어트렸다.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이게 제이드가 협박하는 비밀.

미리엘이 들킨 비밀.

만약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천족 전체의 문제가 된다.

치료약을 만드는 방법은 비밀 중의 비밀. 알려지면 천족을 사냥하는 일이 벌어질 테니까.

오래전부터 들은 경고였다.

리세라나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일이 커진다.

그러니까 그녀만 참으면 된다.

꾹 참으면, 아무 문제도 없다.

어머니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참고 있으면 곧 해결해 주겠다고.

그동안 또 누구에게 약점이 잡힐지 모르니 함부로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미리엘은 몇 번이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눈물 속에서 애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

이제 세상에 없는 아빠는.

울고 싶으면 얼마든지 울어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다음 날.

케드릭 가문이 주최하는 파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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