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고인 황제놀음-52화 (52/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52)

영광과 분노

철도헌병대.

중앙본부 회의실.

헌병대장 아르센을 필두로 삼령(三令) 이상의 헌병대원들이 모두 모였다.

서른 명.

각지의 지부장을 제외하면 이들이 바로 철도헌병대의 핵심이다.

근데 100년이 지났는데도 절반이 아는 얼굴이네.

장수하는 이종족들에게 100년 근속 정도야 흔한 일이니까.

“……흠.”

“으으음.”

하지만 놈들은 하나같이 날 불쾌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야 나는 상좌, 헌병대장 아르센의 옆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으니까.

원래 조직, 더욱이 군사 조직은 배타성을 띠기 마련이다.

하물며 테러까지 당해서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외부인이라면 더욱.

아르센이 말했다.

“갑작스럽게 소집해서 미안하군. 이번 사태에 대해서 긴급한 일이…….”

“그 전에 잠깐 확인할 게 있습니다. 대체 저 인간은 누구입니까?”

삼령인 인간 남자 하나가 손을 들고는 발언했다.

그는 나를 노골적으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 헌병대 수뇌부 회의에서 왜 저런 외부인을 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알고 싶으면 자기소개부터 하시죠?”

“……아, 저자는 삼령 드와이트라고 합니다. 근속은 40년쯤 했습니다.”

아르센이 끼어들어서 내게 공손하게 말했다.

그러자 다들 황당한 얼굴을 했다.

자기들의 톱이 처음 보는 인간에게 설설 기는 셈 아닌가?

……뭐 사실 아르센에게 큰 연기력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헌병대를 내 턱짓으로 부릴 수 있는 게 중요하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난 리젠 리브라타입니다. 이미 이 회의에서 몇 번 나온 이름이지? 철도 테러를 해결한 게 오르카가 아니라 사실 나라는 것도 이미 파악하고 있을 테죠.”

드와이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귀하가 리브라타 백작가의 막내라고? 그래,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하지만 그게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와그작.

괴상한 소리.

아르센이 책상을 쥔 손에 너무 힘을 주어서 금이 간 것이다.

마족은 기본 육체 성능이 뛰어나서 벌어진 불상사였다.

아르센은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로 드와이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촉즉발.

다들 상황을 이해 못 하면서도 전전긍긍하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 거. 진정 좀 해.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자꾸 이러면 나 그냥 집에 간다?”

“……죄, 죄송합니다.”

아르센은 급히 몸에 힘을 빼고는 한숨을 쉬었다.

다들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전쟁 영웅이자 헌병대의 톱이 새파란 애송이에게 이리 굽실거리니 이상할 만하지.

하지만 누구도 내가 시릭 카라카스라고는 상상 못 할 것이다.

투스타가 민간인에게 굽실거리면 당연히 황당하지. 하지만 그 사람이 이성계의 환생이라고는 생각 안 하잖아?

드와이트는 헛기침을 하고는 발언했다.

“……뭔가 서로 사정이 있는 것 같군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 오늘부터 내가 철도헌병대 특관에 준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관은 예전에 까먹었을 텐데 지금부터 설명…….”

“특관? 네놈이 미쳤…….”

“아가리 닥치지 못하겠냐!”

아르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찬물을 끼얹은 정적.

내가 눈을 흘기자 아르센은 멈칫하고는 얼른 준비한 대사를 외웠다.

“이, 이분은 우리 철도헌병대를 지금의 난관에서 건져 주실 분이다! 그래서 내가 각별히 예를 다해서 초빙했다!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

드와이트는 입을 다물고는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불만이 가득한 얼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르센에게 물었다.

“이제 내가 말해도 돼?”

“물론입니다!”

“그럼 앉아, 좀. 너 서 있으면 보는 사람이 다 불안해.”

아르센이 얌전히 자리에 앉자 다들 얼빠진 얼굴이었다.

나는 그 틈에 치고 나갔다.

“나는 이 시간부로 민간 협력자로서 철도헌병대의 특관에 준하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특관은 삼령 이하의 헌병대원을 내 판단하에 해임할 수 있고, 이관 이하의 헌병대원을 전투행위에 참여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날 해임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헌병대장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행동은 사후 보고로 처리합니다.”

“……아르센 대장님도 많이 생각하셨을 건 압니다만, 이건 너무 큰 권한 아닙니까? 특관은 황제 폐하께서 너무 과하다고 폐하셨잖습니까.”

말석에 앉아 있던 이령, 고양이 수인이 손을 들고 발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한 권한이라는 건 인정합니다만. 그만큼 지금 상황이 급박합니다. 100년이 넘게 안전했던 철도가 뚫렸습니다. 제국민들의 불안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말씀하시는 바는 알겠지만…….”

“아르센 대장이 굳이 나를 초빙해서 이런 강력한 권한을 주는 건 그만큼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내 설명을 들어 보시죠.”

다들 멍하니 내게 집중했다.

나는 아르센에게 반말을 하면서도 그 부하들에게는 존대했다.

위아래가 꼬인 것 같지만 일부러 그런 거다.

예의 바르게 대해 주는 내가 사실 아르센보다 더 위, 새로운 톱이라는 걸 각인시키려는 거다.

나는 운을 떼었다.

“일단 지금 문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승무원이 테러에 협력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승무원들도 이런 경향이 있는지, 현황 파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철도청의 모든 직원의 과거와 인적 사항을 검토해야 합니다. 이거 했습니까?”

“아니, 철도청 직원은…….”

“총 17만 1,936명입니다. 전부 하세요. 싹. 다신 이런 일 안 일어나려면 내부 점검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나는 딱 잘라서 밀어붙였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 철도에서 터진 폭탄입니다. 이미 조사하셨겠지만 폭렬탄입니다. 제국군에서만 취급하죠. 제국군 쪽과 접촉해 보았습니까?”

“일단 1차적으로 제가 군 수뇌부와 접촉해 봤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일은 없다고 잡아떼더군요. 재야의 마족 기술자가 만들었을 거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물론 제국군도 맹탕은 아닐 겁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둘러대고 아마 내부에서 부랴부랴 수색하고 있을 겁니다.”

나는 일부러 우리라는 표현을 슬쩍 썼다.

나 역시도 헌병대의 일원이라는 식으로.

“내가 그 틈새를 파고들어서 제국군의 치부를 움켜잡겠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이 테러 사건에는 제국군의 관리 책임도 있다는 걸 입증하겠습니다.”

“그게 쉽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사실…… 폭탄 테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까.”

다들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좌중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크로셀 후작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들었을 겁니다. 그때도 폭탄이 사용되었습니다. 작렬탄이었고요.”

“그럴 수가…….”

“그게 사실이라면 제국군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다들 일제히 흥분했다.

크로셀 후작이 작렬탄을 사용했다는 건 극히 일부의 사람만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도 제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만…… 폭탄의 잔해를 내민다고 해도 제국군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야 당연하다.

철도헌병대와 제국군은 견원지간이다.

옆집 웬수가 와서는 너희 집 아들이 우리 집에 불냈다고 하면 바로 해결되겠냐?

물증도 인정하지 않고 빽빽 소리칠 것이다.

“시시비비를 따져 봐야 진흙탕 싸움이 될 거고, 시간을 끌면 우리 헌병대에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그러니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잡겠습니다.”

“그래 주기만 한다면야…….”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도 어떻게 수습할 수 있겠죠.”

좌중의 얼굴이 좀 풀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철도헌병대의 영광을 되찾아야 합니다.”

“예?”

“헌병의 수가 너무 적고, 철도청 직원의 숫자도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재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인원 감축, 재정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대지만 결국 우리를 홀대하기로 했다는 건 확실하잖습니까?”

다들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이럴 때는 외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게 사람들의 마음에 콱 박히니까.

“우리가 누구입니까? 황제 폐하가 직접 임명하신 철도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뭡니까? 일선의 헌병대원들은 기강 없는 깡패가 되었고, 승무원은 테러범이 되었습니다. 조직이 흐트러진 것,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돈입니다. 철도에 쓸 돈은 더는 없다고 재정부에서 돈을 안 주기 때문입니다.”

끄덕.

다들 맺힌 게 많은 얼굴이었다.

나는 조용하게 선언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나는 헌병대가 다시 영광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대원들이 당당하고 긍지 넘치는 대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니…… 재정부에서 예산을 제대로 받아 내겠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누가 철도가 가능하다고 했습니까?”

나는 조용히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는 황제 폐하가 헌병대를 만들었을 때부터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르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따라 철도를 건설한 이종족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철도라는 개념은 생소했고, 그걸 이해한 다음에도 다들 믿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런 걸 제국 전체에 깐다고? 산도 파고, 땅굴도 파고, 숲도 밀어 버린다고? 그게 가능하겠어?”

“…….”

다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정적 속에서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걸 누가했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이 했고,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삽을 들고 묵묵히 땅을 골랐고, 때로는 짐승들을 물리쳤고,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을 설득했습니다. 모두들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여러분들이 해냈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제 후임들에게 뭘 물려줄 겁니까? 승객들에게 뇌물이나 받는 헌병대원, 테러 하나도 못 막는 헌병대라는 오명을 남겨 줄 겁니까?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분하고 억울하지도 않습니까?”

다들 멍하니 나를 보았다.

나는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원래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옹졸한 집단이 아니라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철도헌병대라고, 폐하의 왼팔이라고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의실에 내 목소리만 울린다.

한참의 침묵.

짝.

누군가 박수를 쳤다.

하나둘씩 이어지는 박수.

내 말이 그들의 가슴에 자리 잡은 심지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자 드와이트는 벌떡 일어났다.

“……아, 아니!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우리에게 뭘 요구하는 겁니까?”

“그야 먼저 다크엘프에게 사과해야지.”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드와이트가 얼굴을 구겼다.

“뭐? 지금 다크엘프에게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 가자고?”

“넌 대체 뭐하는 새끼냐? 간부라는 게 지금 설명 듣고 그딴 소리냐?”

내가 정색하자 내 말에 부풀었던 모두가 흠칫했다.

마음을 사로잡는 건 끝났으니 이제 권위를 세울 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너도, 다크엘프도 제국민이다. 다크엘프 쪽에서 먼저 정보를 알려 오고 협력을 요청했다. 그걸 무시하다가 일을 크게 만든 것도 바로 우리다. 그리고 테러를 막고자 다크엘프들이 뛰어다닌 덕에 승객들은 무사했고 대신 다크엘프 요원들이 사망했다.”

“그건 그놈들이 멋대로…….”

“옷 벗어.”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너 같은 놈은 헌병대에 있을 자격이 없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

“뭐? 뭐!”

“나는 특관이니 삼령인 너를 해고할 수 있다. 넌 오늘부로 잘렸다.”

“미, 미친 소리를!”

드와이트가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본다.

거침없이 놈에게 다가간 나는 드와이트의 가슴팍에서 계급장을 힘으로 뜯어냈다.

쭈아아악!

그리고 떼어 낸 계급장을 나는 놈의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이 새끼가!”

드와이트가 격분하고 주먹을 날렸지만 나는 몸을 틀어 피하면서 발을 걸었다.

반사적으로 마력을 담았지만 안 맞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눈앞에서 계급장이 찢기면 눈 돌아가는 법.

가벼운 페이크에 드와이트는 발이 걸려서 비틀거렸다.

나는 그 틈에 놈의 옆구리를 마력을 담아 가볍게 쳤다.

염동권으로 강화해서.

퍼어어억!

나한테 맞고 날아간 드와이트가 벽에 부딪쳐서는 꿈틀거렸다.

“끄어어억…….”

불신의 얼굴.

간부나 되는 자기가 이렇게 맥없이 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일어나도 내 상대는 못 되리라는 직감의 판단.

드와이트가 떨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자 나는 관심을 껐다.

“아르센, 저놈 후임은 알아서 정해라. 그리고 다크엘프에게 감사와 사죄를 전달할 인사도 알아서 뽑고.”

“예!”

아르센은 즉답했다.

다들 얼이 빠진 가운데 나는 돌아보고는 말했다.

“향후 방침은 모두 설명했으니 다들 새겨 두고 있어라. 이걸로 오늘 회의는 마친다.”

자리가 파했다.

나는 회의실에 남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내 옆에 앉은 아르센이 말했다.

“그냥 제가 직접 정리하는 게 낫지 않았습니까? 괜히 폐하의 적만…….”

“누가 들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 그냥 리젠이라고 불러.”

“제가 어찌 존함을 감히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아르센이 정색했다.

나는 혀를 찼다.

“그럼 리젠 님이라고 부르든가.”

“예. 아무튼 앞으로 일하시는 데 불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드와이트가 비록 떽떽거리는 놈이기는 했지만 그냥 제가 잘라 버리는 게…….”

“내가 말을 그럴듯하게 잘하긴 했지? 다들 감동한 얼굴이었으니까.”

“저 울었는데요.”

나는 픽 웃었다.

원래 황제는 싸움도 잘하고 정치도 잘하고 말도 잘해야 해.

“하지만 다들 감동해 봐야 결국 순간의 감정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외부인이라는 사실, 낙하산이라는 사실을 상기할걸?”

“낙하산이라니…….”

“객관적으로 그렇잖아? 사정 모르고 보면 네가 그냥 나한테 확 꽂혀서 퍼 준 거야.”

내가 프레젠테이션을 잘해 봐야 결국 한계가 있다.

철도헌병대는 나의 군림, 지배를 바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정리했다.

“드와이트를 잘라 버리면 나한테 반대하는 놈들이 뭉치겠지? 노골적으로 반감을 사는 게 오히려 일하기 더 편해. 한곳에 뭉쳐 있는 먼지만 싹 쓸어버리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다 말씀하시죠.”

“일단 사방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요구할 거다. 그럼 괜히 숨기지 마. 오히려 그게 더 의심을 산다. 그냥 내가 유능해서 맡겨 봤다는 정도로만 말해. 단, 내가 시릭이라는 것만큼은 절대 말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너 안 쓰는 검 있냐?”

“예?”

“칼이 좀 필요해서. 너 안 쓰는 거 있으면 하나 줘라. 5계위면 된다.”

전투할 때마다 매번 무기가 박살 날지 말지 계산해야 했으니까.

5계위를 버티는 검이라면 제작 당시에 50억이 넘게 지불했겠지만…… 어차피 지금 아르센도 그냥 집에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쓰면 적어도 칼 박살 날 일은 없겠지.

아르센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나 있습니다.”

“다음에 올 때 그거 내놔라. 좀 써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상호 연락은 미레이 이관을 통해서 할 테니까 나한테 붙이고.”

“알겠습니다! 폐하께 누가 되지 않게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아르센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아, 거.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이상한 바람 넣지 마라? 나 잘 모셔야 한다거나, 무조건 내 기분 맞추라고 하면 안 된다?”

“……안 됩니까?”

진짜 할 생각이었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일단락은 됐고. 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련다.”

따라 일어난 아르센이 말했다.

“아, 결혼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폐…… 리젠 님이 참석하신다면 당연히 큰 선물이 필요하겠죠? 돈이라면 제가 좀 보태 드리겠습니다.”

“뭔 소리야? 누가 결혼하는데?”

내가 돌아보자 아르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아닙니까? 결혼한다고 들었는데 제가 잘못 들었나 봅니다.”

“누구 이야기냐?”

“폐하의 셋째 따님, 그러니까 3황녀께서 결혼하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야, 미리엘은 천족이잖아. 아직 미성년…….”

말하던 내 얼굴이 험악해졌다.

카라카스는 종족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고 천족은 성장하는 데 오래 걸린다.

그리고 나는 자식들의 서열을 태어난 순으로 정리했고.

4황녀 리세라는 엘프 기준으로는 성인이지만, 3황녀 미리엘은 아직 애였다.

“……잠깐, 그러니까 아직 미성년자인 내 딸을 꾀는 미친 새끼가 있다고?”

“전 그렇게 들었는데…….”

“누구냐?”

내 시선에 아르센이 흠칫했다.

“저, 저는 듣기만 했습니다.”

“어디의 누구냐고.”

눈에 한 번 흙이 들어갔었어도 이건 못 참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