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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51화 (51/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51)

니 아래로 다 집합

헌병대장 아르센.

나를 따라 칠죄신과의 전쟁에 참가해서 공을 세운 마족 남자다.

내가 황제 노릇 할 때는 헌병대 남부지부장이었고.

100년 뒤인 지금은 대장 노릇 하고 있었다.

출세했네.

한데 갑자기 아르센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황제 폐하를 참칭하다니! 용서 못 한다!”

“……아, 그래. 믿으면 이상하지. 내가 달라이 라마도 아니고.”

역적모의하는 수양대군에게 양반 하나가 찾아와서는 자기가 이성계라고 한다?

믿는 게 더 이상하지.

하지만 아르센은 호통을 치되, 검을 뽑거나 밖의 경비를 부르지는 않았다.

내 손 위, 허공에 떠서 빙글빙글 도는 계급장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수작질을 부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황제의 환생인지.

“100년 뒤에 찾아온 껄렁한 놈이 황제라니 누가 믿어. 그러니까 증거 보여 줄게.”

“…….”

일어난 나는 아까 책상에 던져뒀던 종이봉투의 내용물을 꺼냈다.

열쇠와 오브 반쪽.

황도의 은행 대여금고에 잠들어 있던 물건이다.

내가 예전에 숨겨 둔 건데 100년 동안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고, 찾았더라도 용도를 모를 것이다.

“어디 보자.”

나는 몸을 돌려서 벽면의 서가로 향했다.

맨 아래 칸의 책들을 싹 빼고는 구석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을 누른다.

드르륵.

그러자 붙박이로만 보이던 서가가 옆으로 밀렸다.

이중벽.

그리고 위에서부터 세 번째 서랍.

“자, 잠깐. 그걸 어떻게!”

뒤에서 아르센이 놀란 비명을 질렀다.

“이놈아, 내가 이렇게 만들라고 명령하고 나중에 다 확인했다. 선임 대장에게 못 들었냐?”

“듣긴 들었지만……. 아니, 네가 폐하일 리가 없잖냐! 우리 폐하는 너처럼 생기지 않았단 말이다!”

“넌 100년 내내 못생겨서 좋겠다.”

나는 받아치면서 서랍을 열었다.

달칵.

안에 들어 있는 건 오브 반쪽이었다.

내가 가져온 오브 반쪽을 합치자…… 찰칵 소리와 함께 완벽하게 맞물린다.

나는 돌아서서는 아르센에게 완성된 오브를 보여 주었다.

“자, 이거 봤냐?”

“그,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분명히 헌병대 대장은 그 오브를 완성한 사람에게 절대복종하라는 이야기를 듣긴 들었다만…….”

아르센은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서가만 해도 헌병대장만 아는 극비인데, 내가 술술 풀어내니 놀랍겠지.

하지만 본편은 지금부터다.

나는 오브의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허공에 입체 영상을 띄운다.

홀로그램.

마력현상이 빚어내는 일이다.

“아, 아아아아…….”

아르센이 영상의 사람을 보고는 몸을 덜덜 떨었다.

바로 전생의 나, 시릭이니까.

<나는 천년제국의 초대 황제, 시릭 카라카스다.

그리고 지금 이 오브의 소유자가 바로 카라카스 황실의 정통 후계자다!

이에 불복하는 자는 곧 반역자! 만약 오브를 파괴하거나 주인을 해치려는 자가 있다면 그자가 곧 천년제국의 역적! 제국민은 결코 용서치 말지어다!>

떨쳐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영상이 쓱 사라졌다.

“폐, 폐하! 폐하아아!”

아르센은 영상을 향해 안타깝게 손을 뻗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야, 뭘 그렇게 허둥거려. 마력현상이잖아.”

마력현상.

일반적인 물리현상을 뛰어넘은 초현실적인 일을 벌이는 것이다.

마력램프나 냉장고, 폭탄 같은 게 이 마력현상을 이용한 도구였다.

그리고 이 마력 도구를 만드는 게 마족의 고유 능력이고.

방금 홀로그램 영상도 내가 마족들에게 극비리에 만들게 했다.

아르센은 눈을 깜빡거리고는 나를 보았다.

“……서, 설마. 정, 정말로 화, 화, 황제 폐, 폐하십니까?”

“이래도 안 믿어지면 옛날 추억 이야기라도 할까?”

나는 지난 시절을 새삼 회상했다.

“헌병대 출범하고 5년 뒤, 공석이 생긴 남부지부장에 누가 임명될지는 꽤 뜨거운 화제였지. 공훈만 따지면 네가 맡아야 마땅하겠지만 이미 마족 우르켄이 북부를 맡고 있었어. 양쪽 다 마족이 맡는 건 모양새가 안 좋다고 다크엘프 쿠아나가 되리라는 게 대세였고 너도 그냥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나는 픽 웃었다.

“종족 이전에 다 같은 사람, 다 같은 제국민! 그래서 나는 반대하는 놈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널 골랐지.”

아, 옛날이야기 하니까 즐거워진다.

저때는 한창 신나게 일할 때였으니까.

아르센이 멍하니 보는 가운데 나는 술회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부장 임명 당일. 너는 대기실에서 엄청나게 긴장한 상태였지. 내가 너를 편애한다고, 혹은 마족을 지나치게 밀어주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가 돌았으니까. 밤을 꼴딱 새운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왔지?”

“……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내가 대기실 문 두드리고 들어가니 신발 잡고 훌쩍거리고 있더만. 덩치 커다란 마족 놈이 신발 잡고 질질 짜는 게 진짜 뭔가 싶었다.”

“아, 아니…….”

“알아, 인마. 그냥 주변 시선에 혼란스럽고, 이런저런 뒷말 도는 게 정신없고 5분 뒤면 임명식인데 연단에 짝짝이 신고 나가야 했으니까. 그대로 가면 네 별명은 앞으로 천 년 넘게 짝짝이 신발이 됐겠지.”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나를 따라서 전장에서 피로 칠갑한 놈이 신발 하나 잘못 신었다고 평생 조롱감이 되게 놔둘까?”

“아…….”

“난 얼른 끝내고 귀족원 가야 한다는 엘프 재상을 던져 버리고 연단에 올랐지.”

예정에도 없던 즉흥 연설로 아르센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

“내가 농담 신나게 하고 내려오니까 황제의 체통이 손상된다고 뭐라 하더라. 하지만 내 체통 좀 상해서 너 살렸으면 된 거 아니냐?”

이 시절 일을 떠올리니 즐겁네.

“그래, 덩치는 커다래 가지고 맞는 신발 구하기도 어려웠지. 결국 집까지 다녀왔던가?”

“……아닙니다. 관사에서 대충 구했습니다.”

아르센도 무심코 웃고 있었다.

객관적으로는 당시에 내가 한 일은 별거 아니다.

신발 갈아 신을 시간을 벌어 준 거니까.

하지만 승진하는 장본인에게는 굉장히 뜻 깊은 날, 또 황제인 내가 이런 세심한 배려를 해 줬다는 사실에 아르센은 엄청나게 감격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나와 아르센만이 알고 있었다.

“……폐, 폐하.”

“오냐.”

“폐, 폐하가 맞으시군요!”

아르센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울먹거리는 눈매.

“폐하!”

아르센이 양팔을 벌리고 달려들자 나는 얼른 옆으로 피하면서 손을 뻗었다.

무작정 덤벼들다가 벽에 부딪치게 생긴 아르센의 옷자락을 잡아서 멈추는 데 성공.

“니가 소냐? 감정 표현이 몸통 박치기게? 하긴 뿔도 나 있고 꼬리도 있고 덩치도 산만 하네.”

“……폐하! 폐하시군요! 그 밉살맞으면서도 애정이 듬뿍 넘치는 말버릇은 우리 폐하 말고는 없으시죠!”

아르센이 다시금 나를 끌어안으려고 하자 나는 놈의 머리를 잡고 밀어냈다.

“아, 징그러워, 붙지 마. 소리 낮춰. 밖에 들려.”

“괜찮습니다! 방음은 완벽합니다! 아니, 근데, 일단…… 일단 좀 끌어안게 해 주시죠. 지금 꿈인지 뭔지 전혀 분간이 안 갑니다! 모두 다 흐릿하게 보입니다!”

“거야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으니까.”

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던져 주었다.

혹시 몰라서 가져왔는데 진짜 펑펑 우네.

다 큰 마족 아저씨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나를 보는데, 참…….

“아, 진정해. 좀 이야기나 하자.”

나는 아르센을 밀치고는 책상에 앉았다.

아르센은 눈물을 닦고는 쭈뼛거리면서 다가왔다.

일단 내가 시릭이라는 걸 믿어 주기는 하는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폐하는 돌아가신 게 아니었습니까?”

“죽었다가 환생했다. 아, 환생이 뭔지는 알지?”

“종교의 그거 말입니까?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거?”

“그래. 그래서 100년의 시간을 넘어서 뿅 하고 환생했다.”

아르센은 반신반의했다.

그야 카라카스에서 환생 개념은 좀 낯서니까.

내가 제국을 세우기 전에는 칠죄신이 지배했던 세상, 죽으면 신의 노예가 된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물론 환생론을 펼치는 종교도 있긴 했다만…….

아르센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졌다.

“자, 상황 파악 다 했지? 감동도 다 했지?”

나는 손뼉을 짝 쳐서는 분위기를 전환했다.

“대가리 박아.”

“……예?”

“못 들었냐?”

내가 눈살을 찌푸리자 아르센은 엉거주춤하면서 머리를 땅바닥에 박았다.

나는 내려다보면서 혀를 찼다.

“대장 되더니 머리가 많이 무거워졌다? 박으라는데 3초나 걸리네? 나중에는 박기 싫다고 하겠다?”

“……아, 아닙니다!”

“일어나.”

아르센이 다시 일어나는데…….

“박아.”

척.

아르센은 멈칫하고는 바로 박았다.

이후 서른 번 반복.

“헉, 허어억…….”

아르센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냥 계속 머리를 박는 것도 힘들지만 이건 이거대로 힘들다.

108배 하면 온몸이 저리지.

아르센이 땀을 뻘뻘 흘리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힘드냐?”

“……아, 아닙니다! 후끈합니다!”

“왜? 수작질이냐고 의심하지? 100년 만에 갑자기 나타난 인간 놈이 지가 시릭이라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해야지?”

“아닙니다! 이렇게 사람 굴리는 분은 우리 폐하밖에 없습니다!”

“눈앞의 제가 황제가 확실합니까?”

“눈앞에 계신 분은 우리 폐하가 확실합니다!”

우렁찬 대답.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헌병대 대장까지 됐는데 이놈은 여전하네.

나는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웃옷 줘 봐.”

“예!”

아르센은 급하게 재킷을 벗더니 이어서 바지까지 벗으려고 했다.

나는 기겁하고는 쏘아붙였다.

“아, 그냥 하란 것만 해. 왜 꼭 하나씩 더 해?”

“……죄,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 워낙 정신이 없습니다.”

아르센은 황망해했다.

나는 웃으면서 품을 뒤적거렸다.

“출세했다고 어깨 힘 꽉 줬는데, 100년 전에 죽은 황제가 얼차려 주면 다들 그래.”

“……아닙니다. 이게 꿈이 아니었으면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르센이 새삼 울먹거렸다.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저는 그 비극적인 날 이후,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 돌아와서 좆같은 꼴만 보고 있는데?”

“……예?”

“너 애들 관리 안 하지?”

아르센이 딱 굳었다.

나는 손을 계속 놀리면서 말했다.

“헌병대 애들이 뇌물을 받더라? 거기다가 승객에게 온갖 모욕적인 소리를 해 대고? 귀족인 나한테 이러는데 일반 승객은 대체 어떻게 대하냐? 뭐? 그리고 헌병대에게 밉보이면 철도를 못 써?”

“아, 아니, 그게…….”

아르센은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대가리를 박았다.

나는 계속 손을 놀리면서 말했다.

“누가 마음대로 머리 박으래. 원위치.”

“죄송합니다, 폐하! 차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원위치 해라.”

“…….”

아르센은 무시하고는 계속 머리를 박았다.

“아, 거! 원위치 하라니까.”

“죄송합니다! 차마 존안을 뵙고 말씀을 드릴 용기가 없습니다! 그냥 이대로 보고드리게 윤허해 주십시오!”

“내가 불편하니까 얼른 원위치 해.”

“…….”

잠잠.

나는 혀를 찼다.

“나 그냥 집에 간다?”

후다다닥!

아르센은 재빨리 차렷 자세로 돌아왔다.

나는 손을 계속 움직이면서 말했다.

“그래서 뭔데? 변명해 봐라. 뭐, 승객 삥 뜯어서 니들끼리 코인질이라도 하냐?”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게…… 저기, 애들을 무작정 나무라실 일은 아닙니다. 물론 잘했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만…….”

“변명해 보라니까. 뭔데 그래?”

“……돈이 없습니다.”

“뭔 소리야? 헌병대 예산은 내가 특별히 넉넉하게…….”

말하던 나는 멈칫했다.

아르센은 자기 잘못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지금 예산 감축당했다는 소리냐?”

“예. 철도헌병대의 권한을 축소하고, 규모도 줄였습니다. 지금 철도헌병대는 12만 명입니다.”

“노선은 더 늘었을 거 아냐? 근데 숫자는 줄었네?”

“예…….”

나는 잠깐 생각하고는 말했다.

“정치 싸움이냐? 거기에 밀려서 헌병대 예산이 깎였다고?”

“…….”

아르센은 고갯짓만으로 대답했다.

나는 머리를 누르고 한숨을 쉬었다.

“아, 그래. 용서가 된다는 건 아니지만 너희만 엉망인 건 아니었군. 재정부는 누가 관리하지?”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그 간악한 천족 년이죠!”

아르센이 피를 토하듯이 외쳤다.

나는 어이없어하면서 일렀다.

“야, 감정 있는 건 알겠는데 조심해라? 일단은 내 부인이다?”

“어찌 폐하는 그리 관대하십니까? 어찌 그 간악한 년들을 아직도 포용하시려는 겁니까?”

“…….”

뭐야?

물론 나는 내 부인들과 갈라섰고, 얼굴 안 본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다.

리세라나 오르카도 모를 텐데?

아르센이 버럭 소리쳤다.

“그 간악한 것들이 모의해서 폐하를 시해하였잖습니까!”

“뭐?”

“황후라는 거죽을 뒤집어쓴 못된 년들이 폐하의 가슴에 칼을 박은 걸 사람들이 다 압니다! 자! 이제 이렇게 돌아오셨으니 그 못된 것들을 싹 다…….”

“야, 뭔 소리야? 나 그렇게 안 죽었어.”

내 말에 아르센이 딱 굳었다.

“……예?”

“내가 설마 황후들에게 죽겠냐?”

“…….”

아르센의 멍한 얼굴.

하지만 정황을 맞춰 본 나는 심각해졌다.

“가만있어 봐. 혹시 세간에 그런 소문이 떠돌고 있냐? 황후들이 작당모의해서 나를 죽이고 제국을 쪼개서 지배하려고 한다고?”

“……예, 다들 그렇게 의심합니다만. 아니었습니까?”

“아니야.”

내가 정정하자 아르센은 머리를 꾸벅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5황후 전하께서 헌병대의 예산을 단계적으로 삭감해 오셨습니다.”

“간악한 것에서 전하로 점핑 이벤트네.”

나는 혀를 찼다.

천족과 마족도 서로 사이가 나쁘다.

거기다가 나를 죽였다는 오해까지 했으니 아르센에게는 진짜 눈에 불이 들어올 수밖에.

“정말 여기저기 손볼 곳투성이네. 일단 폭탄 테러라는 건 알지?”

“예!”

“그러면 1차적으로 제국군을 의심해야겠지?”

“……그렇습니다. 다만 어디부터 일을 풀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차입니다.”

“내가 그걸 해결하려고 한다. 협조해라.”

아르센은 바로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왜 굳이 그러십니까? 그냥 제국군에게 아까 그 영상을 보여 주시면 되잖습니까?”

“아, 이거 1회용이야.”

나는 이빨로 실을 끊고는 말했다.

아르센이 당황했다.

“……예!”

“당연하잖아. 원래 이건 내 후계자의 비상품이었어. 이걸 몇 번이고 쓸 수 있으면 일이 더 복잡해지지.”

쿠데타나 비상시국에, 헌병대로 피신한 황제가 권위를 획득할 수 있게 만들어 둔 것이다.

이게 역도 손에 들어가게 되면 일이 더 복잡해지니 1회로 한정해 뒀다.

물론 충전 방법이야 있지만…… 지금은 안 되고.

아르센이 더듬거렸다.

“……아, 아니. 그러면 좀 더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보여 주셨어야죠.”

“그러면 일이 더 복잡해져. 무엇보다 테러범들이 돌아다니니까. 그놈들을 싹 정리하려면 내 정체는 숨기는 게 낫다.”

그냥 테러범도 아니고 칠죄신의 종복들과 연관이 있다니.

심상치가 않다.

“후작이라는 놈이 재산을 제공하고 제국군에서 흘러나온 폭탄을 철도 승무원이 테러에 사용했다? 이거 그냥 온 나라에 다 퍼졌다는 거다. 제국해방군이라는 놈들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해.”

“그게, 저기…….”

아르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만약 제가 폐하를 믿지 않았다면 대체 어쩌시려고 이랬습니까?”

“믿게 할 자신이 있었지. 짝짝이 신발아.”

“그래도, 그래도 만에 하나가 있잖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에 외투를 내밀었다.

아르센은 묻다 말고는 반사적으로 받아 들었다.

“어…….”

“오랜만에 해 보니까 잘 안 되네. 미안하다. 좀 어설프다.”

염동력으로 뜯어냈던 계급장을 실로 꿰서 다시 달아 줬다.

이러려고 오늘 바느질 세트를 들고 다녔고.

계급장을 내려다보던 아르센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이래도 못 믿겠냐?”

권위만으로 사람을 끌어당길 수 없다.

가끔은 이런 작은 배려, 손길에 감격하고 목숨을 바친다.

재킷을 꼭 끌어안은 아르센이 새삼 눈물을 글썽거렸다.

“……정말 폐하가 맞으시군요. 그때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계셔 줬군요.”

“덩치는 산만 한 마족 아저씨가 인상적이라서.”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 아르센. 이제 제국군을 후벼 파려고 한다. 헌병대 지원해라.”

“……물론입니다.”

아르센은 울음을 삼키고는 경배를 올렸다.

“우리 철도헌병대는 돌아오신 황제 폐하께 절대충성을 맹세합니다!”

“정말?”

“물론입니다!”

나는 손뼉을 쳤다.

“그게 정말인지 지금부터 굴려 보자. 헌병대 수뇌부, 수도에 있는 놈들 전원 1시간 내로 집합시켜.”

“예?”

“온 김에 정리 한번 싹 하자.”

일하려면 정리해 놔야지.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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