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48)
낮의 남자, 밤의 여자
미레이가 멍하니 물었다.
“세 번째 서랍이요? 그게 대체 무슨…….”
“자세한 이야기는 기밀입니다. 이건 헌병대장 아르센과 독대해서 직접 말하세요. 만에 하나 새어 나간다면 헌병대장이 당신에게 직접 죄를 물을 겁니다.”
미레이가 모르는 게 당연했다.
서재의 세 번째 서랍, 이건 헌병대장이 후임에게 대대로 전하는 기밀이었다.
100년 사이에 전달 착오가 없었다면 아르센도 의미를 알 것이다.
미레이가 영문을 모르면서도 긴장하자 나는 부드럽게 일렀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아르센 대장에게 직접 이야기만 전하면 됩니다. 내가 황도에 가서 그 서랍을 열겠다고.”
“아,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 테러 사건에 대해서 나한테 증언을 듣고 싶겠죠? 그것도 황도로 가서 하겠다고 전하세요.”
“저기, 그건…….”
“설마 날 구속하려고요?”
뭐, 도주 우려가 있으니 헌병대로서는 날 잡아 두고 싶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래 보여도 귀족 아들, 12가문의 일원입니다? 내가 도망이라도 갈 것 같습니까? 황도에 가서 짐 풀고 철도헌병대 본부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그럼 제가 기다렸다가 모시고 가면 안 될까요?”
“내가 아까 한 말을 전달해야죠. 다른 사람 시키거나 편지로 전달할 사안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미레이 이관을 믿고 맡기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나는 포효까지 섞어 가면서 일렀다.
효과가 있어서 미레이는 반신반의하는 얼굴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일 테니 반이라도 믿어 주는 게 어디냐?
설득을 마친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리했다.
밀당, 화술의 기본이지.
“먼저 가서 전달하고 기다리면 내가 가겠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예. 그리고…….”
미레이는 머뭇거렸다.
뭔가 할 말이 남은 얼굴.
내가 의아하게 보자 미레이가 쩔쩔매며 말했다.
“리, 리젠 님께서는 여자를 상당히 선호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도 괜찮을까요?”
엘프답게 미녀인데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용기를 짜낸 고백, 보통 남자라면 두근거리겠지만…….
이 여자가 나한테 첫눈에 반해서 이러는 건 아닐 테지?
“몸으로 절 유혹하라고 명령이라도 받았습니까?”
“아, 아뇨.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차, 차나 한 잔 하면 어떨까요?”
“…….”
어쨌건 미인계를 쓰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거잖아?
하지만 미레이는 반쯤 울상으로도 내 눈치를 살폈다.
늑대에게 스스로 몸을 던지는 양이 이러할까?
나는 손을 털어 보였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내가 여기저기 말하진 않을 겁니다. 안심하시고 돌아가세요.”
“그게…….”
“어차피 입 가벼운 놈은 뭘 해도 말합니다. 그냥 우리 둘이 즐겁게 차나 마셨다고 보고하세요. 그런 걸로 합시다.”
“…….”
망설이던 미레이는 안도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리젠 님은 좋은 분이시군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게 될 겁니다.”
“예?”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미레이는 재차 머리를 꾸벅 숙여 보였다.
“초면에 대단히 실례가 많았습니다. 치료에 집중하셔야 할 테니 저도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추후에 황도로 오시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예, 잘 돌아가세요.”
“그럼 부디 몸조리 잘하시길.”
미레이는 자기가 가져온 바구니를 흘끗 보고는 물러났다.
문이 닫히자 나는 혀를 찼다.
“아이고, 아르센 이놈아.”
사태 덮으려고 부하에게 미인계를 쓰라고 해?
뭐 아르센이 직접 내린 명령은 아닐 거다.
아랫놈이 쓸데없이 머리 굴린 거겠지.
그래도 아르센이 조직 통제를 못 한단 이야기지.
“이놈, 이번에 만나면 혼 좀 내야겠네…….”
나는 혀를 차고는 앞일을 생각했다.
철도 폭파, 그 테러에 쓰인 건 폭탄.
폭탄은 제국군에서 엄중히 관리한다.
“제국군과 철도헌병대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내가 일부러 그렇게 조장했다.
만에 하나, 제국군이 쿠데타라도 일으킨다면 철도를 이용할 테니까.
즉, 철도를 관리하는 철도헌병대와 제국군의 사이가 나빠야 황제가 안전하다.
물론 제국군은 나에게 피로 충성했지만 천 년 후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테러범 놈들이 상당한 폭탄을 가진 게 확실해. 그러면 제국군도 줄줄 샌다는 건데…….”
나는 미레이가 가져온 과일 바구니로 손을 뻗었다.
사과를 꺼내는데 손가락에 닿는 감촉이 묘하다?
“뭐야?”
바구니를 들여다본 나는 혀를 찼다.
과일 아래에 빳빳한 지폐들이 보였다.
문병용 바구니로 위장한 뇌물이잖아?
바구니가 아주 큰 건 아니라서 액수가 많진 않았다.
한 50만 원 될까?
“아니, 뇌물을 줄 거라면 역사와 전통의 사과박스로 주든가.”
서민이라면 몰라도 난 명색이 귀족 아닌가?
그것도 철도 테러라는 초대형 사건에 휘말린 증인이다.
꼴랑 50만 원이면, 이거 받고 떨어지란 뉘앙스지.
나는 바구니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뇌물과 미인계로 낚으려는 것도 어이없지만, 할 거라면 제대로 하든가. 철도헌병대 수준이 많이 떨어졌네? 진짜 안 되겠다.”
권력 쥐고 싹 엎어 버려야지.
나는 사과를 씹으면서 계획을 정리했다.
“일단 황도로 가서 로데릭 일행과 합류하고…….”
먼저 황도에 도착한 로데릭이 테러 소식을 듣고 오려고 했지만 나는 만류했다.
대신 황도의 정보, 돌아가는 사정을 수집해 두라고.
“정보를 듣고 바로 철도헌병대를 장악한다.”
그리고 철도헌병대를 부려서 제국군을 조사한다.
순서를 정한 나는 기지개를 켰다.
“가서 다 같이 밥이나 먹어야지.”
한 건 해결한 다음에 다들 모여 앉아서 웃고 떠들면서 먹고 마신다.
그게 사람 사는 재미고 행복이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자, 황도로 가자!”
* * *
밤의 밀실.
황실의 사람들이 마주 앉았다.
천년제국의 2황후 호선랑 랑에이.
4황녀 하프엘프 리세라.
그리고 2황자 다크엘프 오르카.
긴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시녀들도 내보냈다.
자리를 주선한 랑에이가 운을 뗐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특히 리세라, 걱정을 많이 했다.”
“감사합니다, 랑에이 어머니.”
“눈은 어떻지? 천족의 치료약을 구해 줄 수 있다.”
리세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밝고 어두운 건 구별이 가요.”
“그래, 필요하면 언제라도 말해라.”
“…….”
오르카는 불편한 얼굴로 차를 마셨다.
속내를 잘 못 감추는 성격이다.
랑에이가 오르카를 돌아보았다.
“오르카, 너도 무사해서 다행이고. 다만 물을 게 있다.”
“딱히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필요한 건 전부 제 어머니에게 보고드렸으니 직접 여쭤보세요.”
“너한테 물어야 하는 이야기다. 그 인간 남자는 대체 뭐지?”
“……리젠 리브라타 말입니까?”
오르카도 다크엘프의 요원이다.
“이미 다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는 제 친구고, 랑에이 어머니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건 상황이 워낙 경황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대신 사과드렸고 끝난 이야기 아니었습니까?”
“예의범절은 아무래도 좋다. 내가 듣기로는 적이 4계위였다던데? 그자가 물리쳤나?”
“저도 모릅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전투로 나를 속일 생각은 말아라.”
랑에이가 엄하게 말했다.
그녀는 수인들을 이끄는 자, 칠죄신과의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여걸이었다.
“전투행위는 족적을 남긴다. 발자국만 봐도 보이는 걸…….”
“제가 거짓말을 한다면 정황증거 말고 물증을 가져오시죠. 물론 그 물증을 인정한다는 건 별개의 일입니다만.”
오르카가 날카롭게 자르자 랑에이는 한숨을 쉬었다.
“……날 못 믿는구나.”
“당연히 못 믿죠. 폭탄 테러를 막는 것까지는 제가 하려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자객이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오르카는 쏘아붙였다.
“저와 부하들은 요원이고 현장에 나선 순간부터 죽음을 등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승객들은 무슨 죄입니까? 누님은요? 우릴 속이고 일을 꾸몄는데 어찌 믿겠습니까?”
“화난 건 알겠지만…… 이건 내가 꾸민 일이 아니다.”
“…….”
사실 랑에이에게 따질 일이 아니다.
이번 판, 아들과 딸을 적들을 꾀려는 미끼로 던진 건 전부 오르카의 어머니인 암살여왕의 계산일 테니까.
랑에이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이리 말했다. 만약 네가 끼지 않았다면 다른 황후들에게 의심을 받았겠지? 자기 친자식이 아닌 이를 적의 손을 빌려서 제거하려고 했다고.”
“……그래서 날 내세웠다는 겁니까? 다른 어머니들의 의심을 피하려고요?”
“사자는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트리는 거 아니냐고 했다. 물론 사자 수인도 그러지는 않는다만…….”
오르카는 기가 막혔다.
어머니, 암살여왕이 이런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그 남자, 리젠 리브라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오르카는 죽었다.
“오르카.”
듣던 리세라가 안타깝게 오르카의 손을 붙잡았다.
랑에이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사과해서 마음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하겠다. 하지만 네게 필요한 건 내 말이 아니라 그녀의 말이겠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 큰 피해 없이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오르카는 감정을 누르고 마무리했다.
랑에이는 순전히 도와주러 온 사람이니까.
고개를 끄덕인 랑에이는 리세라를 돌아보았다.
“리세라, 너는 로열 클래스의 쉘터에 들어가 있었지?”
“예.”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건 녀석이…….”
말하던 랑에이는 말을 고쳤다.
“시릭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만들어 둔 거다. 자기 아내와 자식들이 철도를 이용하다가 불한당의 기습을 받으면 숨을 수 있게. 마족을 불러서 비밀리에 설계했지.”
“…….”
“황후들도 잘 모를 텐데. 네가 어떻게 거길 알았지?”
리세라는 자기 귀를 눌러 보였다.
“바람 빠져나가는 소리가 달라서요.”
“……그래?”
“눈이 안 보이게 되면서 귀가 예민해졌습니다.”
“하지만 같이 들어간 기사, 가룰이라고 했던가? 내가 물어봐도 입을 꾹 다물던데.”
리세라는 우아하게 말했다.
“황후 폐하에 대한 경외심으로 얼어 버린 거겠죠. 그때도 제가 그리 설명드렸는데요.”
“…….”
랑에이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너희 둘 다 감추는 게 있구나.”
“이제 우리도 컸으니까요. 비밀이 있는 게 당연하죠.”
“오르카야 요원이라서 그렇다 치고, 리세라도 나를 잔뜩 경계하는구나. 오히려 그래서 티가 난다.”
“몸이 약해지면서 성격이 좀 변했거든요.”
“……그래, 나를 안 믿어 주는구나.”
랑에이는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녀는 다른 황후의 아이라고 차별하지 않았다.
시릭의 아이는 모두 다 내 아이.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고, 오르카와 리세라도 알아주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딸은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
침묵.
랑에이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탄은 됐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마. 폭발이 일어났던 객실, 바닥의 피가 이상하던데. 오르카, 네가 아는 바가 있더냐?”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직선이 이어지다가 한 바퀴 돈 흔적이던데. 슬라이딩으로 파고든 다음에 회전한 것 같더군.”
랑에이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물었다.
“그리고 나가던 그 남자의 등도 피범벅이었고.”
“……무슨 말씀입니까?”
“그 남자가 아주 이상한 검술을 쓰지 않더냐? 바닥에 눕거나, 갑자기 튕기고 꺾이거나. 물건을 끌어당기거나?”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만.”
랑에이는 오르카를 빤히 보았다.
오르카는 무표정으로 응대했다.
“그래, 됐다. 둘 다 이만 가서 쉬어라. 앞으로는 어쩔 작정이냐?”
“저는 리브라타와 함께 황도로 갈 겁니다.”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좀 생각하려고요.”
리세라, 오르카의 대답에 랑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나도 곧 황도로 갈 테니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말해라.”
“예.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어머니.”
오르카는 먼저 일어나서 리세라를 부축했다.
리세라의 손을 잡고 복도로 나온 오르카가 한숨을 쉬었다.
그럭저럭 잘 넘겼나?
“오르카.”
“예, 누님.”
리세라는 멈춰 서서는 말했다.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리브라타의 도련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로 해 주세요. 당신의 어머니에게도 말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이미 그러고…….”
“이미 그래 주고 있다는 건 압니다. 그래도 거듭, 다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리세라가 머리를 숙여 보이자 오르카는 깜짝 놀랐다.
“누, 누님. 얼른 고개를 드세요. 그렇게 낮추시면 제가 민망합니다. 저는 이미…….”
“만에 하나, 급박한 일이 있다면 그분에게 조언을 구하고 의지하세요.”
“예? 물론 리젠은 대단히 뛰어난 남자이긴 합니다만…….”
등.
피범벅인 등을 보이면서 오크와 맞선 리젠을 보았을 때.
오르카는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울고 싶었다.
창피해서 못할 이야기, 오르카는 얼른 생각을 돌렸다.
“제가 이미 그럴 거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그런데 왜 굳이…….”
“짚이는 게 있습니다. 아니,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오르카가 기다려도 리세라는 다음 말을 하지 않았다.
“이만 가죠. 그분이 기다리실 겁니다. 같이 황도로 가서 다음 일을 살펴야겠습니다.”
“예.”
누님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오르카는 의문을 참으면서 리세라의 손을 잡고 걸었다.
밀실에 랑에이 혼자 남았다.
어둠이 내리고 마력램프가 켜졌다.
어른거리는 불빛에 백호 수인의 자태가 비친다.
전장의 여신처럼 늠름한 미모, 조각처럼 꽉 짜인 몸매는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녀가 전장에서 깃발을 들고 호령만 해도 병사들의 사기가 확 올라가는데…….
지금은 탁자에 엎드려 있었다.
축 늘어진 호랑이 귀와 꼬리, 우울해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우울을 물리치기 위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리젠 리브라타. 헌병대의 말에 따르면 마력이 있다. 그럼 해방군의 자객을 물리친 것도 그라고 봐야겠지.”
여기까진 일반적인 추론.
하지만 랑에이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상해.”
바닥의 기묘한 핏자국.
머릿속으로 움직임을 그려 본 랑에이는 신음을 흘렸다.
보통은 전투 중에 취할 수 없는 동작, 자살행위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싸우던 남자를 알고 있었다.
“아주 특수한 각성 능력. 아니면…….”
초능력자.
랑에이가 알았던 건 둘.
하지만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초능력은 일자전승, 대대로 이어진다고 했었지. 그러면…… 시릭이 남몰래 전인을 남겼단 건가?”
랑에이는 신음을 흘렸다.
이 추측이 사실이면?
리젠 리브라타는 황제의 진전을 잇는 후계자다!
만약 그렇다면…….
“난 못 들었어. 아니, 다른 애들도 몰랐나?”
다른 부인들이 이걸 알았나?
알고도 숨겼나?
머릿속으로 떠올려 봐도 모르겠다.
“가서 물어봐?”
랑에이는 계략과 거리가 멀다.
난관은 힘으로 돌파하는 스타일.
“아니, 보통 실력이 아니고 힘으로 밀어도 한계는 분명해. 거기다가 오르카와 리세라가 감싸니 일이 커져. 애들이 왜 저러지?”
알면 알수록 오리무중이다.
랑에이는 고개를 들었다.
호랑이 귀가 곤두선다.
“리젠 리브라타를 조사한다. 사람을 쓰면 안 돼. 다른 황후들이 눈치챌지도 모르니까. 은밀하게. 내가 직접 뒤를 캐내고 확보한다.”
중얼거리는 랑에이의 숨결이 가빠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목소리가 끓어오른다.
왜 다른 황후들이 알면 안 되지?
그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독차지하고 싶으니까.
“……시릭.”
그는 이제 없지만.
그 흔적만이라도 갖고 싶으니까.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오롯하게 그녀 혼자서만 누리고 싶다.
의자에 앉은 랑에이는 무릎을 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용맹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전장의 여신은.
“……보고 싶어.”
그저 외로웠다.
랑에이는 울렁거리는 마음에 괴로워하면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밤이 깊도록.
사무치는 그리움과.
끝없는 후회에 시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