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고인 황제놀음-45화 (45/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45)

그럼 보여 줘야지

폭탄이 터졌다.

내 사람들이 있고, 제국민들이 타고 있는 곳인데.

“이 미친놈들이…….”

나는 정색하고 승무원들에게 쏘아붙였다.

“기관사의 안전부터 확보해라. 아니, 멈추지 마!”

나는 승무원들에게 소리치고는 곧장 뒤돌아서 뛰쳐나갔다.

그 순간 달려오는 하인켈과 마주쳤다.

“하인켈! 기관사 보호해! 혹시 누가 노릴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탁! 휙!

하인켈과 엇갈린 나는 차량 외벽을 차고는 지붕으로 올랐다.

몰아치는 칼바람.

지붕이 심하게 덜컹거렸지만 나는 염동력으로 자세를 제어하고 균형을 잡았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

“최후미 객실인가?”

일단 나는 그쪽으로 달려가면서 자문자답했다.

“폭탄을 객실에서 터트렸다. 뭘 노리고?”

해방군의 목적은 제국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객실에 폭탄이 터졌다면 초대형 사건이다.

“하지만 그래도 플랫폼에서 터트리는 게 훨씬 더 나았어. 질주 중이라면 보는 눈이 적으니까. 탈선이나 전복을 노렸다고 치기에는 연계가 부족해. 혹은 적들도 계획이 꼬였거나…….”

휙!

나는 폭발로 뻥 뚫린 구멍을 통해서 객실로 뛰어내렸다.

피비린내.

내가 내려온 천장은 물론이고 차량 꼬리까지 날아간 폭발이었다.

“헉! 크으윽.”

승객은 안 보인다.

대신 여기저기 쓰러져서 신음하는 다크엘프들.

개중에는 은발, 오르카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목과 어깨, 가슴이 피범벅인 게 중상이다.

하지만 오르카는 나를 보고는 절박하게 외쳤다.

“뒤!”

“…….”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면서 허리의 검을 집어 던졌다.

일반 사람이라면 머리가 있다 싶은 지점으로.

“크악!”

팅!

비명, 그리고 튕겨 나는 소리.

적의 마력방어를 뚫지 못한 것이다.

지금 내 마력을 견딜 수 없는 검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후우우우…….”

하지만 상대는 굉장히 놀란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승무원복을 입은 남자.

본 얼굴이다.

카트를 밀고 다니던 차량 판매원, 나한테 복숭아를 던져 줬던 놈이었다.

“괜히 공짜로 준 게 아니었네?”

그때 카트 안에 폭탄을 숨겨 둔 거겠지.

나한테 공짜로 던져 준 건, 폭탄이 들킬까 봐 다가오는 걸 막은 거고.

놈이 들고 있는 손바닥 절반만 한 원형체.

폭렬탄이었다.

카라카스의 폭탄은 화약에다가 지향성의 마력을 담아 압축하는 것이다.

물리현상을 초월한 마력현상.

고급 폭탄은 손에 쥐고 터트려도, 적만 죽지 사용자는 멀쩡한 타입도 있었다.

폭렬탄, 공식 명칭 폭발형 마력화탄 역시 그렇다.

저 승무원은 이미 자기를 사용자로 등록했을 것이다.

저놈이 자기 팬티 속에서 폭탄을 터트려도 나와 오르카만 폭발에 휘말린다.

폭렬탄을 알아본 내가 움직이지 않자, 승무원은 감탄사를 흘렸다.

“이게 뭔지 아는군? 얼간이 다크엘프들과는 다른데.”

“보통 몰라야지. 그건 제국군 안에서만 쓰는 물건이고, 안 쓴 지 120년은 넘었으니까.”

칠죄신과의 전쟁에서 쓰인 물건이니, 오르카나 젊은 다크엘프들이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대화하면서 적의 틈을 살폈다.

염동력으로 몰래 공격하면 안 되냐고?

사람은 누구나 초능력, 염동력에 내성이 있다.

가령 내가 전에 말 다리를 염동력으로 공격해서 날뛰게 하는 건 가능했지만, 영혼과 지성을 가진 인류에게는 그런 간접 접촉이 불가능하거나 급감한다.

그러니 염동권, 염동장으로 직접 타격에 곁들여서 쓰는 거고.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이걸 터트린다.”

“알아들었는데…… 대체 이 짓을 왜 하냐?”

승무원의 마력은 주황색, 2계위다.

나는 일단 물었다.

“40대로 보이는 인간이 2계위면 그럭저럭이지. 철도 승무원도 직업으로서는 괜찮을 텐데? 왜 미래 없는 테러질을 하는데?”

“그런 너는 인간이면서 어째서 다크엘프 편을 들지?”

“객실에서 폭탄을 깐 놈이 이제 와서 종족을 따져?”

오르카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몰라도, 이 객실에는 승객들이 없었다.

하지만 다크엘프들이 당했다.

또 다크엘프들이 막지 못했다면 인간 승객들이 다수 죽었을 것이다.

승무원은 타는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인간은 이종족에게 지배당하고 있으니까! 그들을 몰아내고 진정한 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희생과 각오가 필요하다!”

“…….”

“나는 어둠을 몰아내는 횃불이다. 그분이 오실 때를 위해서 타오르는 불꽃이 되리라!”

보통 불특정 다수를 휩쓸리게 하는 테러는 쉽게 못 저지른다.

제정신이라면 비행기를 몰고 빌딩에 처박겠나?

즉, 테러범의 기반은 광기 어린 신념이다.

괜히 국가가 테러범과 협상을 안 하는 게 아니다.

나도 사실 설득하려고 한 게 아니라 틈을 노려 보려고 한 거고.

“…….”

나는 곁눈질로 객실의 지형, 살아남은 사람들을 살폈다.

열 명 남짓한 다크엘프 다수는 사망, 혹은 의식불명이다.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오르카 하나.

상태가 좋진 않았다.

“…….”

하지만 오르카의 눈빛은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전의.

이대로라면 우리 둘 다 죽는다.

힘을 합치자는 게 시선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표정이 너무 정직했다!

“수작 부리는군.”

테러범은 왼손을 카트 속에 넣더니만 폭렬탄을 꺼냈다.

휙!

그러고는 나를 노려보는 채로 두 번째 폭탄을 등 뒤로 던져 버렸다.

오른손에 든 폭탄을 믿고 벌이는 일,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초능력자다!

“오르카!”

나는 날아가는 폭렬탄을 얼른 염동력으로 잡아채서는 끌어당겼다.

찰나의 순간, 의미를 알아들은 오르카가 피범벅인 몸으로 테러범에게 달려들었다.

폭렬탄은 일단 발동시키면 터지는 데 5초가 걸린다.

4초.

나는 염동력으로 두 번째 폭탄을 끌어당기면서 한발 늦게 테러범에게 달려들었다.

3초.

오르카가 검을 뿌려서 테러범의 가슴을 베어 버렸다.

하지만 테러범은 피를 토하면서도 첫 번째 폭탄을 자기 발치로 뿌려 버렸다.

아무튼 터지기만 하면 우리 둘 다 잡을 수 있단 계산.

폭렬탄이 지근거리에서 터지면 마력방어고 뭐고 종잇장처럼 찢어진다!

2초.

나는 회수한 두 번째 폭렬탄을 손으로 잡고는…… 테러범의 입속에 쑤셔 넣어 버렸다.

치명상에도 웃던 테러범은 경악했지만 이미 목을 타고 넘어간 뒤다.

하나는 처리했지만 하나 더 남았다.

1초!

아, 남은 건 끌어당길 시간이 없고, 하더라도 처리할 겨를이 없다.

그렇다면…….

콰아앙!

그리고 터졌다.

귀를 먹먹하게 울리는 굉음.

등이 아프다.

폭렬탄은 군대 물품, 수백 명의 적들이 방진을 짠 걸 무너트리려고 만든 물건이다.

위력은 사람 백 명은 걸레로 만들 수준이다.

나는 염동력으로 끌어오지 않고 밀어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으음.”

염동결계도 한계가 있다.

아니, 나 혼자만 보호했다면 모르지.

하지만 나는 폭발 직전, 몸을 돌려서 오르카를 감싸면서 염동결계를 발동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 아이를 화마(火魔)에서 구하는데 어찌 계산할 수 있을까?

“아, 그래도 안 죽었네.”

등이 어마어마하게 괴롭지만 괜찮다.

얼굴이 피범벅인 오르카가 놀라서 눈만 깜빡거렸다.

새파랗게 질려 버린 얼굴.

“피, 피가…….”

“아, 괜찮아. 아…….”

아빠는 이걸로 안 죽어.

나는 웃으려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등에 아예 감각이 없는 게…… 진짜 박살 난 모양이다.

“넌 괜찮냐? 안 죽어?”

“나, 나는 괜찮아! 너야말로…….”

뭐 오르카도 너덜너덜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나는 품에서 치료약을 꺼내서 마셨다.

리세라에게 받았던 2급 치료약이다.

“으으음…….”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좋은 일이다.

신경계는 살았단 이야기니까.

오르카는 멍하니 물었다.

“……방금 뭘 어쩐 거지?”

“기합과 근성으로 버틴 거지. 불발탄이었나 봐.”

나는 그렇게 둘러대고는 돌아보았다.

참상이었다.

몸 안에서 폭렬탄이 터진 테러범은 무릎 아래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객실은…… 완전히 박살이 나서 우리 뒤로 철로가 훤히 보였다.

“젠장.”

승객의 희생은 막았지만 사상자가 나왔다.

테러는 성공했다.

아니, 사실 막는 건 불가능했다.

미국에서도 툭하면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잖아?

작정하고 저지르는 테러를 다 막을 수는 없다.

“내, 내가. 막지 못했어. 내가…….”

오르카는 멍하니 그런 소리를 했다.

자책하는 얼굴, 덜덜 떨리는 눈동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부하들이 죽은 건 네 탓이 아니다.”

“뭐?”

“이게 위로라면 웃기지만…… 폭렬탄이 세 개나 있었다. 제대로 썼다면 열차를 전복시키고 승객들을 몰살해 버릴 수도 있었다.”

이게 위로라면 너무 잔인하다.

칠백 명 죽을 걸 열 명 죽었으니 선방이라고 하나?

그리 말한다면 정말 냉혈한이다.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라. 오르카, 너는 황제의 아들이고 제국의 아들이다. 네가 자책으로 무너진다면 누가 제국을 수호하겠느냐?”

하지만 나는 냉혈한이 되리라.

내 아들의 마음에서 어둠을 걷어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오늘의 일을 가볍게 잊으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절망하고 좌절해서 굴복하지 마라. 적들은 너를 굴복시키고자, 네 투지를 꺾고자 이런 일을 벌인 것인데 그놈들의 장단에 놀아날 거냐?”

“…….”

오르카는 멍하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파 죽겠지만 씩 웃어 보였다.

“야, 네가 테러범을 처단해서 내가 살았다. 날 살린 놈이 징징거리면 뭐 어째야 해?”

오르카가 테러범에게 치명상을 입혔기에 하나를 놈의 몸속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둘 다 터졌으면 나도 위험했지.

내가 웃자 오르카는 머뭇거리다가 웃어 보였다.

마음의 짐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시름을 놓았다는 듯이.

나는 몸에 힘을 빼고는 웃었다.

완전히 막는 데 실패하긴 했어도 그래도 이만하기를…….

발소리.

“…….”

뭐지?

돌아본 나는 멈칫했다.

검은 후드를 눌러쓴 상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한참 달리는 열차를 따라잡는 속도.

발을 휘감은 녹색 마력.

4계위, 마력질주였다.

쿠우웅!

열차를 따라잡은 상대는 몸을 날려서는 착지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깨달았다.

이놈은 적이다.

“……그래, 그랬군. 네가 마무리하려는 놈인가?”

“…….”

테러범이 성공한다면 빼내기 위해서?

아니, 실패할 걸 대비해서?

“아니지. 만에 하나 오르카가 살아남으면 숨통을 끊으려고 하는 거였군.”

뒤에서 오르카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나는 후드를 눌러쓴 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만에 하나 열차 테러를 막더라도 오르카와 다크엘프들은 여력을 소모하겠지. 그때 네가 달려들어서 오르카의 숨통을 끊는다. 폭발만이라면 몰라도 2황자의 죽음, 그건 절대 감출 수 없어.”

“…….”

“열차 테러의 정보를 흘려서 다크엘프들을 끌어낸다. 리세라가 되었건 오르카가 되었건……. 아니, 오르카가 나서도록 유도했나?”

천년제국은 100년이나 황제가 없었는데도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었다.

내 아내였던 황후들, 그리고 그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인간 중에서 2대 황제가 나오고, 그들과 내 핏줄이 혼인하리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데 황제의 핏줄이 살해당한다?

“……그래, 그게 제국해방군의 목적이었냐.”

제국 철도를 박살 내고, 내 자식을 죽인다.

일거양득이라는 거지.

나는 호흡을 고르면서 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

“……도망가. 저놈이 노리는 건 나야.”

“그냥 내가 검, 하면 검 던져 줘. 넌 그러면 된다.”

아.

숨을 쉴 때마다 등이 쪼개지는 통증이 올라오면서…… 후드득 피가 떨어졌다.

찢어진 등을 타고 흐른 피가 바지를 타고 발목까지 적신다.

상태가 안 좋다.

하지만 물러날 수 없다.

상대가 누가 됐건.

“검!”

“…….”

오르카는 자기 검을 내 손에 건네주었다.

칼을 바로잡은 나는 적을 노려보았다.

“오르카, 뒤로 물러나 있어라.”

“……뭐?”

“나는 안 진다. 걱정하지 말고 물러나 있어.”

이놈은 고수다.

4계위의 마력을 능란하게 사용해서만이 아니다.

크로셀이나 웨인? 그놈들은 마력 이전에 전후 세대다.

전장의 치열함을 모르는 얼뜨기들.

하지만 지금 이놈은 완전히 다르다.

칠죄신과의 전쟁터, 그 황량한 냄새가 풍겨 오고 있었다.

120년 전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강자!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대량의 정신력을 소모하고 출혈이 심했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아들이.

다 큰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어린 아들이.

등 뒤에서 나를 보고 있다.

“덤벼.”

그럼 아버지가 멋진 모습을 보여 줘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