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고인 황제놀음-43화 (43/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43)

싹 다

크로셀 후작이 속해 있던 반란 단체, 제국해방군.

“철도를 폭파한다고? 돌았나?”

“나도 그 마음에 동감한다. 하지만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보면 앞으로 1주일 안에, 이 북부 노선에서 터질 확률이 90% 이상이다.”

“근거는?”

“이미 물증은 어느 정도 확보했고 심증도 있다. 만약 크로셀 후작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북부에 큰 혼란이 일어났을 테고 결국 각지의 병사들이 움직였겠지? 그들은 당연히 철도로 이동할 텐데…… 그 철도가 폭파된다면?”

“수습이 안 되지.”

오르카의 말은 아귀가 맞다.

천년제국은 넓고, 인구수는 4억을 넘는다.

사람이 말로 달리고, 식량을 마차로 나르는 시대.

하지만 내가 철도를 만들면서 인적자원을 비롯해서 온갖 것들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보다 강력한 중압집권화가 이루어졌고.

즉, 천년제국의 핵심은 제국 철도였다.

“제국해방군이라는 놈들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아주 큰 혼란이 빚어질 겁니다.”

내가 한 말에 리세라가 말했다.

“철도는 제국민들에게는 황제 폐하께서 직접 만든 풍요의 상징입니다. 만에 하나 정말로 파괴된다면 이는 제국 전체의 동요로 이어집니다.”

“그래. 그래서 철도헌병대를…….”

난 철도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365일 철도만을 지키고 수호하는 독립 군단을 만들었다.

철도헌병대.

황제인 내 명만 따르는 독립 무력부대.

“이런 일이라면 철도헌병대에 협조 요청 해야지. 반응은?”

“일단 이야기는 넣어 봤다만…… 코웃음 치더군. 당연해. 그들은 내 아버지, 황제 폐하의 명령만을 따랐으니까.”

오르카가 난색을 표했다.

나는 철도헌병대를 명령체계에서 독립시켜 놨는데…… 내 사후에는 명령권자가 사라진 셈이었다.

“그래도 이런 테러 방지에 협조 안 하는 건 꼴통인데?”

“실제로 꼴통들이야. 황자인 내가 철도헌병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고 오해하더군.”

오르카가 쓴웃음을 흘렸다.

이미 몇 번이고 요청했는데 싹 무시당한 뉘앙스였다.

하인켈이 불쑥 끼어들었다.

“부장님의 말씀은 다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보다 압축할 수 없을까요?”

“……우리가 저쪽의 꼬리를 밟은 것도 있어서 아마 3~4일 안에 움직일 거다. 아니, 보다 분명하게 말하지. 놈들은 바로 이 차량을 노릴 거다.”

오르카의 말에 다들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물었다.

“미끼냐?”

“그래. 테러범들은 제국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려고 하고 있어. 한데 나와 누님이 타고 있는 차량이라면 당연히 1순위로 노리지. 기존 계획을 변경해서라도.”

오르카는 단언했다.

말이 맞긴 한데 어딘가 빠진 것 같은데…….

“야, 리세라는…….”

“걱정하지 마라. 누님은 반드시 지킨다.”

오르카는 단호하게 말하고는 리세라를 돌아보았다.

“누님은 다음 역에서 내리시죠. 누님의 대역은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동생이 자리를 지키는데 나 혼자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저 또한 아버지의 딸이니까요.”

“누님, 그래도…….”

“이런 환란을 앞에 두고 달아난다면 세상이 우리 황실을 존중하지 않을 겁니다. 위험할수록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라, 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던가요?”

“……그렇군요.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님.”

오르카는 리세라의 손등에 자기 손을 얹었다.

서로 손을 꼭 잡고 다짐하는 남매.

황자와 황녀가 제일선에서 테러리스트와 맞서겠다?

객관적으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극치였다.

“와아…….”

가룰만이 아니라 다들 감탄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암담했다.

이 녀석들 아버지니 걱정되지.

“야, 너희 둘이 함부로 나설…….”

“리브라타의 인간, 네가 누님을 보호한 일에 감사한다. 따로 사례할 것이다. 하지만 네가 더는 끼어들 이유가 없다. 너야말로 다음 역에서 내려라.”

오르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 아버지이신 황제 폐하는 사악한 신에 맞서서 누구보다도 용맹하게 싸우셨던 분이다. 그리고 그 피를 이은 나 역시도 제국을 위협하는 사특한 무리들에게 결코 등을 돌릴 수 없다.”

“…….”

“황실의 피는 아까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만백성의 눈물을 멈출 수 있다면 심장이라도 뽑아서 줘야 한다. 아버님의 말씀, 나는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다.”

“아, 거.”

그냥 젊은 시절에 폼 잡았던 거야!

내가 입을 떡 벌렸지만 오르카는 진지하게 말했다.

“아버님은 이제 아니 계신다. 그러니 내가 앞장서서 맞서겠다.”

“…….”

더는 설득할 수가 없었다.

정론이니까.

다음 날 정오.

나 혼자인 남자 침실.

침실 중앙, 나는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물구나무를 섰다.

단순한 완력만이 아니라 균형 감각과 근지구력이 필요한 묘기다.

“으으음.”

리젠의 몸은 유연하고 균형 감각이 좋지만 지구력이 부족해서 자세가 깨지려고 한다.

그러자 나는 그때마다 염동력을 찔끔찔끔 사용해서 보완했다.

육체와 정신력의 동시 단련이다.

“후우우.”

한참 땀을 흘린 나는 이제 바로 앉아서 마력을 점검했다.

녹색의 마력이 몸을 훑고 타고 내려가서는 발에 선명하게 맺힌다.

4계위를 돌파해야 익힐 수 있는 재주였다.

마력은 계위가 올라갈 때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난다.

그리고 이제 나는 4계위의 능력을 쓸 수 있었다.

보통 계위가 오른다고 바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몸의 요령과 정신의 깨달음을 필요로 하는데…… 나는 시릭일 때 다 해 봤던 일이라서 계위만 오르면 바로 된다.

“자, 그러면…….”

몸과 정신력, 마력의 점검은 이 정도로 하고.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애가 잘 크긴 했는데…….”

스스로 미끼가 되어서 테러리스트를 잡겠다는 오르카.

내 아들이지만 솔직히 멋졌다.

하지만 걱정이 된다.

오르카는 이래저래 경험이 부족했다.

아니, 설사 경험이 많아도 아버지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내가 옆에서 적당히 거든다고 치고. 애당초 이놈의 철도 깐다고 죽어라 고생했는데 놔둘 순 없지.”

일단 오르카를 구슬려서 제국해방군에 대한 정보를 더 얻어 볼까?

내가 일어나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명색이 로열 클래스인데 뭔 소란이래?

내가 나가 보니 차량 출입구 쪽에 일단의 무리들이 뒷짐을 지고 있었다.

몸을 꽉 조인 회색 정복.

열 명, 철도헌병대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오르카가 서 있었다.

척 봐도 분위기가 험악하다.

“무슨 일이야?”

하인켈이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했다.

“철도헌병대가 탑승했습니다. 로열 클래스를 수색해야겠다면서요.”

“영장은?”

“음, 없습니다. 그런데 철도헌병대는 언제라도 철도 승객을 조사하고 심지어 구속할 수 있을걸요?”

“…….”

내가 그렇게 설정했지?

테러를 막기 위해서 그런 거였는데.

나는 하인켈에게 말했다.

“가룰하고 같이 여자 방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리세라와 아멜리아를 보호하라는 명령, 하인켈은 알아듣고는 물러났다.

한편, 오르카와 대치한 헌병이 적대적으로 쏘아붙였다.

“그래서 수색에 협조할 수 없다는 겁니까, 황자 오르카?”

“애당초 납득할 만한 근거를 줘야 하지 않겠나?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무작정 수색하겠다니, 이 무슨 경우 없는 짓인가!”

“야, 뭘 진지하게 받아 주고 있냐?”

다가간 나는 오르카의 양어깨를 눌러서 말을 막았다.

갑자기 내가 끼어들자 오르카와 대치하던 인간 남자가 노려보았다.

“네놈은 뭐냐! 두들겨 맞기 싫으면 꺼져 있어라.”

“얼씨구? 난 일단은 귀족인데 막 나오시네?”

“귀족?”

“리브라타의 막내아들이다. 황자님의 배려 덕분에 로열 클래스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지.”

“리브라타?”

“그래, 콜레트 일사.”

상대의 가슴 명찰에 쓰여 있었다.

철도헌병대는 삼사, 이사, 일사 순으로 급이 높다.

일사(一士)라면 현장에서 베테랑 소리를 들을 만하다.

콜레트는 거침없이 말했다.

“12가문의 찌꺼기 주제에 어디서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우리는 철도헌병대다.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면 역적으로 간주, 응징하겠다.”

“…….”

이놈들이 미쳤나?

나는 어이가 없어서 주변의 다크엘프들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다크엘프들도 빡친 얼굴이면서…… 반발하지 않는다.

반대로 철도헌병대원들은 실실 쪼개고 있었다.

“내가 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이 새끼들 원래 성질머리가 이러냐?”

100년 전에는 안 이랬는데?

뇌물 받고 검문 통과시켜 주는 걸 보면서 느꼈지만…… 진짜 그냥 양아치잖아?

오르카는 어깨를 떨쳐서 나를 밀어냈다.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물러나서 누님 쪽에 가 있어라. 만약의 경우에 부탁한다.”

“아니, 잠깐. 이거 어이가 없네.”

제국 철도를 만들고, 제국헌병대를 만든 나로서는 묵과할 수 없다.

나는 콜레트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아니, 진짜 막 나오시는데, 이거 뒷수습은 어떻게 하려고? 인간 귀족하고 다크엘프 황자에게 시비 건 다음에 수습은?”

“정신머리 없는 놈이로군. 그래서 뭐 어쩔 거냐? 우리는 철도헌병대다. 철도에서는 우리가 곧 법! 그런데 네까짓 놈들이 항의한다고?”

“…….”

아, 이놈들이 그냥 막 가네?

하지만 오르카가 이만 악무는 걸 보니 철도헌병대의 위세가 진짜 하늘을 찌르는 모양이었다.

“아니, 이건 아니지. 시릭 카라카스가 너희들에게 막대한 권한을 준 건 제국 철도가 그만큼 중요하니까 잘 수호하라는 의미였다. 초면에 대뜸 생지랄을 하란 게 절대 아니었는데?”

내가 상식적인 소리를 하는데 군터가 다가와서는 말렸다.

“그만하시죠. 철도헌병대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왜? 황족모욕죄가 없다지만 진짜 선을 넘고 있잖아? 저놈들 뒷감당은?”

“……나중에 우리 다크엘프들이 정식으로 항의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겁니다. 저 콜레트 일사는 일단 1개월 감봉 정도로 끝내고…… 오히려 출세 가도를 달리겠죠.”

“뭐?”

“철도헌병대는 독불장군입니다. 자기 외의 다른 세력에게 시비를 걸면 오히려 내부에서는 칭찬을 받죠. 헌병대의 기상을 드높였다고요.”

“…….”

외부 세력에게 강한 제스처를 보여서 내부 평가를 올린다?

배타적인 집단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가 기막혀하는데 군터가 계속 설명했다.

“누구나 유사시에 철도를 써야 합니다. 제국은 철도 없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헌병대와 척을 지면 철도를 이용할 때마다 시비가 걸린다?”

“아예 이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불온 승객이라고 낙인찍어 버릴 수 있으니까요.”

횡포다.

철도헌병대는 철도에 대해서만큼은 전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니 황자인 오르카에게도 멋대로 구는 것이다.

다크엘프들이 항의한다고?

여차하면 헌병대는 다크엘프들의 철도 이용을 막아 버릴 것이다.

지금 시대에서 철도를 못 쓰면 말 타고 다녀야 하는데 너무 불편하다.

결국…… 오르카도 모욕을 참을 수밖에.

“완전히 미쳐 버렸네.”

내가 만든 헌병대는 그냥 깡패 새끼들이 되어 있었다.

“이놈들 그냥 무작정 시비 걸러 온 것 같은데? 꼬우면 한 대 쳐 보라는 식으로.”

“아니, 아니야. 우리는 어떤 엉뚱한 다크엘프의 망상에 시간을 내주고 있는 거라고? 뭐? 누가 제국 철도를 폭파해?”

내 말에 콜레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웃었다.

그리고 오르카에게 고개를 들이밀고는 으르렁거린다.

훨씬 더 적나라하게.

“네가 다크엘프고 황자라고 해서 뭐 특별한 줄 알아? 감히 우리 헌병대에 이래라저래라 굴어? 괜한 가짜 정보로 사람 귀찮게 검문이나 시키고 말야.”

콜레트는 혀를 내밀어 보이면서 조롱했다.

메롱, 나이 먹고 유치한 도발이지만 그래서 더 빡친다.

그래도 오르카는 꾹 참았다.

안 참으면 다크엘프 전체의 손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콜레트는 자기 뺨을 툭툭 찔러 보였다.

“어, 화났나 보네? 쳐 봐? 쳐 보라…….”

그 순간 나는 발에 마력을 감고는 앞으로 뛰어들었다.

4계위의 재주.

마력질주.

이동속도를 3배 빠르게 하는 이 능력은 하수들은 보고도 반응을 못 한다.

콜레트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접근한 나는 놈의 복부를 손바닥으로 쳤다.

뻐어억!

염동장(念動掌).

몸 내부에 염동력을 터트리는 수법이다.

“꾸에에엑!”

콜레트는 먹었던 걸 게워 내면서 비틀거렸다.

하지만 나는 토할 틈도 주지 않고 놈의 머리를 벽에다 처박았다.

쾅!

콜레트의 안면을 벽에다 짓누른 나는 유쾌하게 외쳤다.

“자, 기차 출발합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썩어 버렸다고?

싹 다 갈아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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