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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40화 (40/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40)

한 지붕 세 가족

사흘 후.

정오.

나는 일행들을 데리고 철도역에 도착했다.

제국 각지에 쭉 뻗어 있는 제국 철도에 탑승하는 곳인데…….

역 입구에 인파가 줄지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줄을 서는 눈치, 나도 일단 줄을 섰다.

“이건 뭐야?”

“철도헌병대의 검문인가 본데요?”

하인켈이 앞쪽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가룰이 알은체를 했다.

“철도헌병대와 싸울 수는 없죠. 리젠 도련님, 그냥 참으셔야 합니다?”

“알아, 인마.”

철도를 관리하는 무력 단체, 철도헌병대의 권력은 막강하다.

귀족이고 뭐고 얌전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그런 권위를 준 게 바로 나고.

“…….”

나는 잠시 뒤쪽을 보았다.

리세라는 아멜리아가 옆에 딱 붙어서 관리하고 있었다.

면사를 쓰고 복장을 달리 했으니 리세라가 황녀라는 걸 다들 몰랐다.

하인켈이 나직하게 물었다.

“일행을 둘로 쪼갠 건 보안 문제입니까?”

로데릭과 멜리우스, 알리시아는 이른 아침에 먼저 철도로 출발했다.

나와 가룰, 하인켈, 리세라와 아멜리아는 이제 준비 중이고.

나는 주변의 귀를 확인하고 일렀다.

“알리시아도 면사를 쓰고 갔으니까 리세라가 어느 쪽인지 혼란스럽겠지. 만에 하나를 대비한 술책이야. 우린 이제 누가 노려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다크엘프들이라면…….”

“정보 전달 속도가 남다르지? 또 철도 안에서 접촉하면 다른 사람들 눈을 잘 피할 수 있고. 이런 조건이 다 있으니 찾아오겠지.”

다른 떨거지들은 걸러 내고 다크엘프하고만 접촉한다.

또 안전 문제도 있으니 파티를 나누는 게 좋았다.

황도에 도착해서 합류하기로 미리 이야기 끝냈다.

“그나저나 줄이 긴데…….”

하인켈이 다시 앞쪽을 살피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짐까지 전부 다 풀고 검사하는 모양입니다.”

“군기가 바짝 잡혔네?”

내가 권한을 준 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빠릿빠릿한가 보네.

하인켈이 멈칫하다가 일렀다.

“철도헌병대와는 싸우시면 안 됩니다.”

“왜 자꾸 그래?”

“아니, 그냥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줄이 줄어들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하인켈이 앞으로 나섰다.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헌병에게 다가간 하인켈이 넉살 좋게 말하는가 싶더니, 슬쩍 돈을 쥐여 주었다.

흘끗 손을 내려다본 헌병이 턱짓했다.

“통과!”

“…….”

뭐야?

내가 의아해하면서 들어가자 하인켈이 옆에서 말했다.

“헌병의 검문은 좀 심해서요. 남자건 여자건 다 벗기고 속옷만 입히고 검사하는데…… 황녀님이나 아멜리아를 곤혹스럽게 만들 수는 없잖습니까?”

“뭐 그래?”

옷 위만 더듬어도 될 걸 굳이 벗긴다고?

내가 돌아보니 우리 다음 사람은 정말 옷을 벗고 있었다.

“과하게 강압적인데 뇌물이 통하다니. 전형적으로 부패하고 썩은 놈들인데?”

“뭐 모든 헌병대원이 썩었다는 건 아닙니다만…… 철도헌병대와는 마찰을 빚지 않는 게 이롭습니다. 이건 예외가 없어요.”

“…….”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철도는 근대화의 주역, 그래서 나는 제국 철도를 만들면서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 철도를 수호하는 헌병대도 독립적인 집단으로 두고, 권위와 권력을 주었고.

그런데 100년 만에 다시 본 헌병대는 영 실망스러웠다.

“일단 탑승 수속부터 하시죠.”

하인켈이 제안했다.

차량에 탑승했다.

출발.

황도까지는 도착하려면 걸리는 시간은 5일이다.

보통 귀족들이라면 노블 클래스에서 편안하게 가겠지만…….

나와 일행들은 노말 클래스, 침대칸 두 개를 빌렸다.

남자용, 여자용.

일단 향후 계획을 의논하려고 여자용에 전원 집합했다.

리세라의 시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항의했다.

“황녀님이 이런 좁고 불편한 곳에 지내셔야 합니까?”

“다들 먹고 자는 곳입니다.”

리세라가 딱 잘라 버렸다.

나는 웃으면서 설명했다.

“나라고 안락하게 가는 게 싫겠어? 나도 사실 며칠 전에 예약했다면 노블 클래스 정도는 받을 수 있었는데.”

자리에 앉은 모두가 나를 주목했다.

내 의도를 알고자.

“일단 일행을 둘로 나누고 로데릭 형님을 먼저 보낸 것도 이유가 있어서야. 지금 우리 리브라타는 제국 각지의 권세가들에게 주목받고 있어. 엘프의 정치적인 약점이 될 리세라 황녀가 밖으로 나왔으니까.”

나는 계속 말했다.

“우리는 지금 황도로 놀러 가는 게 아니야. 크로셀 후작 사건부터 시작해서 연이어 일어난 사건들, 제국 각지의 단체들이 우릴 주목하고 있지. 만약 우리가 며칠 전에 예약했다면, 혹은 황녀의 정체를 드러내고 로열 클래스에 탑승했다면 여기저기서 움직였을 거다. 그렇지, 하인켈?”

“예. 플랫폼에서 환영 퍼레이드라도 벌였을걸요.”

“그런데 우린 갑자기 당일치기 표로 끊고 둘로 나눠서 철도에 탑승했지. 보통 정보 집단이라면 허둥거리겠지만 다크엘프의 정보망은 바로 파악했을 거다. 그렇지, 하인켈?”

“예, 물론입니다.”

“결론, 우리는 여기 앉아서 다크엘프들이 접선해 오기를 기다린다. 머지않을 테니까 다들 짐 풀지 말고 기다려.”

가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짐은 왜 풀면 안 됩니까?”

“다크엘프들 오면 여기보다 좋은 방으로 갈 거거든.”

다들 알아들은 눈치였다.

가룰 빼고.

나는 픽 웃으면서 말을 돌렸다.

“그럼 다들 휴식, 가는 길에 심심하니까 놀자.”

앞으로 5일간의 철도여행.

지구에서야 스마트폰이 있으면 시간 잘 가지만, 여긴 전기도 없다.

카드 게임은 리세라가 못 즐기고.

그러니 미리 준비해 뒀지.

“가룰 경, 실뜨기를 잘하시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리세라의 칭찬에 가룰은 좋아라 웃는다.

분위기가 괜찮다 싶자 나는 슬쩍 복도로 나왔다.

조금 뒤에 하인켈도 나왔다.

“넌 왜 나와?”

“음, 이건 정말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황녀님과 무슨 관계이십니까?”

철도 차량은 소음투성이.

리세라는 청력을 줄인 상태다.

우리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내 시선에 하인켈은 덧붙였다.

“굉장히 자상하게 배려하시면서도 거리를 두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거 시험에 나오냐?”

“구체적인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냥 주군의 심중에 대해서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주군.

하인켈은 나를 섬기면서 호칭을 바꿨다.

하인켈은 다시 말했다.

“최악의 경우에…….”

“우선순위 말이지? 나보다 너를 지키고, 너보다 리세라를 지켜라.”

“알겠습니다.”

가혹한 말, 하지만 하인켈은 바로 받아들였다.

다크엘프가 자기 성을 다른 종족에게 밝힌다는 건 그런 의미다.

나는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2시간이군. 방 안에 들어가 있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말고.”

“알겠습니다.”

하인켈은 알아듣고는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덜커덩거리며 흔들리는 복도 벽에 기댔다.

“…….”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지나간다.

막 탑승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젊은 부부.

손에 책 보따리를 든 어린 학생.

어머니의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가는 어린아이가 나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내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자 부끄러운지 엄마 뒤에 숨고.

“다들 잘 이용하고 있군.”

제국 철도는 제국민의 발이기도 하다.

승객 요금을 낮추느라 힘쓴 보람이 있다.

“…….”

왔다.

다가오는 두 사람, 둘 다 다크엘프 남자였다.

하나는 구면이다.

전에 나에게 낚여서 계약하게 된 과장 군터.

군터는 노골적으로 경계하면서 일렀다.

“이거, 공교롭게도 여기서 뵙게 되는군요.”

“다 알고 찾아왔으면서 뭘.”

“아니, 그야…….”

“우리 리브라타가 원탁회의에 참석하고자 황도로 올라가야 하는 건 당연하다. 보통 철도를 이용하고, 근시일 내에 이동할 거다. 그러면 알라카스 산맥에서 황도로 향하는 철도 플랫폼에 다크엘프들을 미리 배치해 둔다.”

“…….”

“전에 리브라타 저택에 주도권을 넘겨준 과오도 있으니, 그걸 씻으라는 의미로 네가 일단 선봉을 맡게 되었다.”

내가 술술 말하자 군터는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역시 전에는 깜빡 속았지만 보통 분이 아니었군요.”

“넌 어차피 결정권도 없잖아? 그냥 네 상관이나 데려와.”

“어린놈이 건방지군.”

군터와 같이 온 다크엘프가 험악하게 쏘아붙였다.

내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렇게 예의 바르신 그대는 누구?”

“과장 거너라고 한다. 인간. 객기는 적당히 부리고…….”

“4황녀라면 니들 입장에서는 대박, 아니 초대박이겠지. 이런 큰일을 과장 둘이 총지휘할 리가 없잖아. 애당초 너희 둘 다 말을 전달하러 온 심부름꾼이지?”

“말 다 했나?”

“이 정도면 자제하는 거야. 나보고 네 엉덩이 따라오라 할 모양인데, 할 말 있으면 그 새끼더러 직접 오라고 해.”

거너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야, 주먹 풀어. 내가 니들을 어떻게 믿고 자리를 비우냐? 여차하면 리세라 납치할지도 모르잖아? 지금 열차 앞뒤로 다크엘프 요원들 실었지?”

“인간 애새끼가 건방지게!”

거너가 폭발.

하지만 나는 미리 투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놈이 마력을 일으키는 내부 움직임이 보인 순간…….

터엉!

나는 바로 달려들면서 주먹을 쳤다.

염동권!

“크억!”

열차의 흔들림도 무시하고, 내 체중을 배가한 주먹이 거너의 명치를 때렸다.

놈이 비틀거리면서도 마력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내 추격타가 훨씬 빠르다.

뻐어억!

놈의 턱을 올려치고, 이어서 무릎으로 사타구니를 찍어서 마무리!

“꺼어어억…….”

거너가 죽어 가는 소리를 내면서 풀썩 쓰러졌다.

군터가 급히 마력을 발동하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야, 하지 마. 하지 마.”

“뭐?”

“10억 잘 받았다. 앞으로도 계속 받아야 하는데 뭘 싸우려고 해?”

“…….”

“넌 그냥 가서 이야기나 전하면 돼. 거너가 당했고 직접 와 보셔야 할 것 같다고.”

주춤.

망설이던 군터가 몸을 돌려서 달려갔다.

원래 다크엘프들은 동료의 목숨보다도 정보 전달을 우선하니까.

내가 손을 터는데 쓰러진 거너가 앓는 신음을 냈다.

“꺼, 억! 네, 네놈이…….”

“아, 미안. 혹시 터졌냐?”

“후, 후회할 거다아아…….”

거너가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뭐 지금은 전투 불능이다.

마력 발동은 정신 집중을 필요로 하고…… 지금 저렇게 급소를 맞아서 하늘이 노래지면 보통 못 싸운다.

“과연 과장님이야. 거시기가 박살 나도 회사에 충실해!”

“……끄으으윽. 지, 지금이라도…… 투항해라.”

“아니, 뭔데 그래? 뭐 대장이라도 나왔어?”

대장.

암살여왕 바로 아래, 세 명의 전사들이다.

다크엘프들 중에서 최고수들.

하지만 각자 바빠서 이런 긴박한 일에는 투입할 수 없을 텐데?

그러자 거너가 이를 드러냈다.

평소라면 흉악하고 위압적인 미소겠지만 얼굴에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지금은 그냥 애처롭다.

“……오, 오.”

“오르가슴이 온다고?”

“오르카 님이시다! 커어어억…….”

통증을 참고 이름을 뱉은 거너는 숨을 몰아쉬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어떠냐고.

얼른 두려워하고 머리를 조아리라고.

“……어, 젠장. 지휘관이 오르카라고?”

하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기가 막혔다.

오르카.

제국의 2황자.

내 둘째 아들이었다.

이게 이산가족 상봉인가 뭔가, 그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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