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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38화 (38/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38)

다 내놔라

오후.

리브라타 저택의 응접실.

다크엘프 남자와 인간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도련님께서는 곧 나오실 겁니다.”

메이드, 아멜리아는 그리 말하고는 물러났다.

덩그러니 남은 두 남자.

서로를 자연스럽게 탐색한다.

‘리브라타 저택에 다크엘프라니? 여긴 엘프의 지원을 받지 않던가? 또 일반 요원으론 보이지 않는데…….’

‘인간이고, 옷 입은 거나 앉은 걸 보니 귀족이군. 그럼 크로셀 문제로 귀족원에서 나왔나 본데. 이쪽 정보는 하인켈이 알고 있을 텐데 그놈이 보고를 딱 끊어 버렸으니…….’

인간 남자가 먼저 말했다.

“난 웰링 백작이라고 합니다. 귀하의 성함은 어찌 되십니까?”

“다크엘프 군터입니다.”

“아, 직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군터는 잠시 생각하곤 대답했다.

“자세한 직무까지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과장입니다.”

“오, 다크엘프들은 현장 요원을 3급부터 특급까지 분류하고 그 위에 과장을 둔다지요? 그러니까 보통 분이 아니시군요.”

“…….”

굳이 입 밖으로 말하는 건 내 반응을 살피려는 심사렷다?

군터는 속으로 견제하면서 받아쳤다.

“하하, 부끄럽습니다. 과장쯤이야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그냥 달아 주는 겁니다. 웰링 백작님이야말로 귀족원에서 요즘 이름을 떨치신다고 들었는데 이 한적한 북부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 공사다망해서 말입니다.”

“아, 크로셀 후작의 문제 말이로군요. 난리였죠.”

군터는 너스레를 떨었다.

네가 여기에 온 이유는 다 알고 있고, 난 보다 내밀한 것까지 알고 있다. 그러니 함부로 파고들지 말라는 견제구.

알아들은 웰링은 아니꼬워하면서도 웃었다.

“허허허. 그것참, 복잡한 일이 있었죠. 한데 저는 다크엘프께서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더 놀랍습니다. 여긴 엘프의 영지고, 또 리브라타는 엘프의 지원을 받는 곳 아닙니까?”

“제국은 황제 폐하의 영토, 제국민이라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습니다. 엘프의 영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터는 정색하고 원론을 펼쳤다.

황후들의 통치는 어디까지나 임시로 맡아 두는 것, 그러니 지금 자기가 여기에 있는 건 별로 이상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일진일퇴의 공방.

문득 군터가 헛기침을 했다.

“웰링 백작님. 모처럼 만났는데 우리 이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음, 군터 님. 저도 방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요.”

상대에게 정보를 뽑아 먹자.

웰링과 군터는 속을 감춘 정보전을 시작했다.

리젠의 예상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 * *

둘 다 왔다는 소식 듣고 40분 뒤.

슬슬 정보전도 끝났을 시간이다.

“안녕하십니까.”

나, 리젠이 응접실로 들어가자 오가던 대화가 뚝 그쳤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둘을 살폈다.

인간이 귀족원이 보낸 웰링이고 다크엘프가 과장 군터다.

나는 하품을 하면서 설명했다.

“아, 백작님도 형도 바쁘셔서 제가 나왔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혹시 리브라타의 막내, 리젠 도련님입니까?”

“아시네. 제가 좀 유명한가 봐요?”

군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철부지가 왜 나왔는지 알 수 없단 반응.

즉, 하인켈은 처음 약속대로 나에 대해서는 윗선에 일절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짜식, 한 말은 딱 지키네.

내가 의자에 아예 드러눕자 웰링 백작이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보았다.

“지금 40분을 기다리게 만든 것도 모자라서 막내가 상대하겠다는 겁니까? 나는 백작이고, 또 귀족원의 사자요!”

정말 철없는 애를 보는 시선이…… 오우, 갓 짜낸 우유처럼 신선하군.

요즘 주변에서 다들 나를 준재 취급 해서 잊었는데.

원래 리젠 취급이 이랬지?

군터가 빠르게 말했다.

“리젠 리브라타, 임자 있는 여자들만 유혹하고 다닌다는 풍류남아. 마력은 없다. 이상, 맞습니까?”

“그거 알면 다 안 겁니다. 제가 리브라타 대표니까 용건 말씀하세요.”

군터가 굳이 말한 이유는 웰링에게 정보를 주려는 거다.

웰링도 자세를 고쳤다.

“……으음, 크로셀 후작 가문의 일이오. 리브라타 백작은 귀족원에 출두해서 전후 사실을 상세하게 고하고 판결을 받아야 하오.”

“무슨 판결 말입니까?”

내가 능청을 떨자 웰링이 호통을 쳤다.

“리브라타가 12가문이라고는 하나 크로셀도 엄연히 제국의 후작이오! 상쟁이 벌어졌다면 해명을 해야 하지 않겠소!”

“그거 전후 사정을 군터 씨가 말 안 해 줬습니까?”

“…….”

홱!

웰링은 깜짝 놀란 얼굴로 군터를 돌아보았다.

탐색전에서, 군터는 잘 빠져나갔던 모양이다.

“군터 님, 아는 게 있으면 말해 주겠소? 다크엘프의 정보망에 아는 게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귀족원의 사절이고, 이걸 감춘다는 건 다크엘프들이 귀족원에게 정보를 감춘다는 것으로 간주해도 되겠소?”

“으으음.”

웰링이 다그치자 군터는 신음만 흘렸다.

아, 팝콘 씹고 싶어지는 광경이네.

나는 대신 챙겨 온 비스킷을 씹었다.

아멜리아가 만든 간식, 고소하고 짭짤해서 심심할 때 딱이다.

군터는 한참 생각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크로셀 후작은 제국에 대한 역모를 도모하였소.”

“역모!”

웰링 백작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크엘프의 정보니 믿을 수밖에.

“……증거? 증거는 있습니까?”

“그건 나중에 차분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일단 그렇고…….”

군터는 그렇게 웰링을 정리하고는 나를 보았다.

“나는 다른 게 아니라 이 저택에 머무르는 다크엘프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인켈이라는 녀석인데…….”

“람베르트는 엘프들하고 싸우다가 엉덩이를 깨물려서 회복 중인데요.”

“…….”

군터의 얼굴이 다채롭게 변했다.

내가 하인켈의 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엘프와 다크엘프의 싸움이 벌어졌다는 걸 굳이 웰링 백작이 듣는 데서 했다는 것.

“…….”

과연 웰링 백작은 입을 쩍 벌리고는 정신없이 듣고 있었다.

완전히 달라진 얼굴.

내 입을 무슨 보물 창고처럼 반짝거리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나는 능청스럽게 과자만 씹었다.

아, 이거 재밌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척 과자만 먹어도 앞에 있는 놈이 탈탈 털려!

이게 애들 굴리는 재미지!

“으으으음.”

군터는 진땀을 흘렸다.

내가 더 말하기만 기다리던 웰링은 포기하고 군터를 다그쳤다.

“……군터 님, 방금 들은 말이 사실이오? 리브라타 백작 가문에서 엘프와 다크엘프의 충돌이 있었다는 겁니까?”

“저도 잘 모릅니다! 모르니까 확인하러 왔습니다!”

군터는 갑자기 언성을 높여서 확 말을 끊어 버렸다.

화난 척해서 대화를 끊는 수법.

그거 니들 여왕님이 다 알려 주셨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는 능청을 떨었다.

“아이고, 그렇게 소리치면 저택 사람들 다 무서워해요. 가뜩이나 저번 엘프와 다크엘프의 전투 때문에 불안해 죽겠는데.”

“……안 되겠군요. 백작을 직접 봐야겠습니다.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죠.”

군터는 날 철부지라 여기고 일어나려고 했다.

다 잡은 물고기가 도망가려고?

“아, 그냥 가게요? 다크엘프에게 지원 좀 받아 볼까 했는데.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 뒤처리를 해야 해서.”

미끼를 또 던져야지.

군터가 멈칫하자 나는 웰링 백작을 돌아보았다.

“뭐 다크엘프가 안 도와준다니 귀족원하고 이야기를 해 봐야겠네요.”

“……뭡니까? 어서 말씀해 보시죠.”

웰링 백작은 몸이 달아서 재촉했다.

대박의 조짐을 느끼고.

군터는 멈칫하고는 나를 보았다.

“잠깐만요.”

그도 정보 요원, 리세라가 리브라타 저택까지 왔다는 보고까지는 들었을 것이다.

이제 머리가 돌겠지.

엘프들은 정리된 것 같은데 4황녀는 어디 갔을까?

우리 다크엘프가 확보할 수 있지 않나?

군터가 급히 손짓했다.

“잠시만. 잠시만요. 리젠 리브라타? 잠시만.”

“그게 여기에 4ㅎ…….”

“으아아아아악!”

갑자기 군터가 고함을 쳤다.

웰링 백작은 귀를 틀어막았고 나는 속으로 폭소했다.

갑자기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얼굴이 벌게진 군터가 나를 노려보았다.

4황녀, 리세라가 지금 리브라타에 머무르고 있다는 건 군터가 가능하다면 감추고 싶어 한 정보이리라.

한데 내가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려고 했잖은가?

철부지 망나니가 완전히 산통 다 깨고 있네.

딱 그리 생각하는 게 보인다.

“아이고, 귀 아프게 뭡니까?”

물론 나는 그걸 정정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시침 뚝 떼고 이놈들을 갖고 노는 게 재밌어!

군터는 숫제 엎드려 사정하는 투로 애걸했다.

“……리, 리브라타가 필요한 지원이 뭡니까? 일단 그 전에 단둘이서 이야기 좀 하지 않겠습니까?”

“어허, 너무 속 보이지 않습니까, 군터 님?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도 좀 알아야겠습니다. 다크엘프는 너무 정보를 숨기고 있어요. 다 같이 제국을 위해서 힘쓰는 동지들 아닙니까?”

웰링 백작이 함박웃음을 짓자 나도 마주 웃었다.

이제 니 차례야.

“곧 원탁회의도 있고 하니 슬슬 황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묵을 곳이 변변찮네요. 우리 리브라타는 좀 가난해서요.”

“예? 갑자기 무슨…….”

“같은 백작이라도 중앙에서 노시는 웰링 백작님은 황도 안에 따로 거처가 있으시겠죠? 그거, 사용 안 하시면 우리가 거기서 좀 지냈으면 하는데요.”

“……어험, 험.”

웰링이 헛기침을 하자 나는 군터를 돌아보았다.

“그래요, 둘만 이야기합시다.”

“그렇습니까!”

군터는 활짝 웃었고 웰링은 급하게 외쳤다.

“어허! 아닙니다! 예! 별장! 있습니다! 마음껏 쓰시죠!”

“마차도 좀 필요하고 지내려면 하인들도 필요한데요, 지원해 주실 겁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웰링은 그냥 다 퍼 준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리 작성해 둔 계약서를 꺼냈다.

반년간 무상 임대 해 주겠다는 계약서다.

귀족원의 사절로 누가 오건 황도 안에 저택 정도는 있을 테니 만들어 뒀다.

“자, 그럼 여기 사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 음…….”

귀족은 명예를 중시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계약서로 작성해 두는 게 확실하지.

웰링 백작이 떨떠름하게 서명하자 나는 군터에게 내밀었다.

“거기 공증인에 서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무슨…… 나보고 공증을 서란 말입니까?”

군터는 정색했다.

다크엘프는 일단 공증을 서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계약이 반드시 완수되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의미로는 연대보증, 잘못했다가는 목 날아간다.

그러니 어지간해서는 공증을 서지 않으려고 한다.

하인켈이야 처음에 내가 낚았고, 이후로는 나를 믿고 한 거고.

그러자 나는 짐짓 계약서를 뒤로 물렸다.

“안 쓰시면 어쩔 수 없군요. 사실 제가 다크엘프들에게 리브라타 저택 경비를 부탁드리려고 했는데요.”

“갑자기 무슨…….”

군터는 말하다가 흠칫했다.

조마조마한 얼굴.

내 입에서 무슨 폭탄이 터질지 몰라서 겁먹었다.

“그야 여기에 4…….”

“공증 쓰겠습니다!”

군터는 팔을 쭉 뻗어서는 내 계약서를 가로챘다.

부리나케 공증에 서명까지 하는 모습.

“…….”

난 웃음을 참느라 괴로울 지경이었다.

아, 슬슬 내가 장난치고 있다는 거 안 들키려나?

하지만 이 두 놈은 그냥 날 폭탄으로 여기고 상호 견제에만 열심이었다.

나는 계약서를 갈무리하고 말했다.

“아, 그럼 말씀드렸던 다크엘프들이 저택 경비…….”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시죠! 됐습니까?”

군터가 앞뒤 가리지 않고 외쳤다.

나는 미리 작성해 둔 계약서를 꺼냈다.

싹 계약으로 묶어 둬야지.

“자, 그럼 이거 저택 경비 계약서입니다. 이것도 사인 좀 해 주시죠.”

“……앞으로 20년 이상, 1급 요원 다섯 이상을 배치하라고요?”

“무립니까? 아버지가 하란 대로 한 건데요.”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군터는 이를 악물고는 서명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4황녀=엘프의 약점, 귀족원에 숨기고 독점해야 한다는 생각만 핑핑 돌고 있을 거다.

내가 두 장의 계약서를 챙기자 군터는 후련한 미소를, 웰링은 아쉬운 얼굴을 했다.

군터가 조바심이 난 얼굴이자 나는 다시 계약서를 꺼냈다.

“……아니, 뭔 계약서가 이리 줄줄이 나옵니까?”

“아, 제가 작성한 거 아닙니다. 제가 뭐 엘프어를 알겠습니까, 다크엘프어를 알겠습니까?”

나는 능청을 떨면서 군터에게 계약서를 밀어 주었다.

웰링이 흘끔 어깨너머로 보는데, 엘프어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내가 말해 줬다.

“그건 엘프의 전사들이 리브라타에 입힌 물질적, 정신적 피해로 30억을 배상한다는 계약서입니다.”

“근데 이걸 왜 나한테…….”

“다크엘프라면 사고 싶을 것 같아서요.”

“…….”

군터는 순간 갈등했다.

엘프와 다크엘프는 앙숙이다.

엘프 엿 먹이는 일이라면 다크엘프들은 빚을 내서라도 동참한다.

그리고 나로서는 이 계약서가 당장 쓸모가 없었다.

서로 척 지고 피 뿌렸는데 엘프들이 순순히 돈을 내놓겠는가?

나한테는 부실채권이지.

그냥 다크엘프에게 팔아넘기고 둘이서 지지고 볶으라고 하는 게 훨씬 편하다.

“제가 과장이지만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좀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러면 웰링 백작님, 귀족원에…….”

“아니, 아니. 안 산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액수가 너무 많아서요. 위쪽에 보고를 올려 보고…….”

“요원 계좌가 따로 있을 텐데요?”

내가 가만히 이르자 군터가 허를 찔린 얼굴을 했다.

다크엘프 요원들은 비상시를 대비한 활동 자금이 따로 있다.

그리고 과장쯤 되면 그 액수가 커진다.

물론 이건 기밀, 다른 종족들은 모른다.

하지만 암살여왕이 침대에서, 달콤한 목소리로 다 알려 주었다.

“…….”

군터야 이를 빠득 가는 게 하인켈이 죄다 알려 줬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군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15억, 아니 10억이라면 저희가 인수…….”

“45억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다크엘프라면 아주 탐낼 만한 계약서니까요. 여기 서명한 웨인은 이미 죽었지만 계약서 문구에는 엘프가 지불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즉, 지불 책임은 엘프 전체에게 있는 거죠.”

“으음.”

웨인이야 상황이 어지러우니 제대로 고민도 안 하고 서명했지만.

황제 하려면 이런 계약과 법률에도 지식이 있어야지.

“물론 엘프들은 순순하게 지불 책임을 인정하진 않겠죠. 하지만 대법원까지 끌고 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엘프들을 망신 줄 수 있고요. 그걸 위해서라면 45억에 인수할 가치가 있잖습니까?”

“…….”

군터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35억에 인수하겠습니다.”

“40억, 단 3개월마다 10억씩 분할 지불로 받겠습니다.”

“……좋습니다.”

군터는 좀 생각하다가 수락했다.

하지만 나한테 당한 거다.

사실 이 계약서가 인정받아도 30억 받고 끝이다.

다크엘프들에게 플러스알파의 가치가 있다지만 그게 10억 이상인가?

그래서 나는 40억을 염두에 두고 45억을 불렀다.

정가보다 1.5배는 심리적인 장벽, 엄청 비싸다고 생각해서 안 사게 된다.

하지만 1.2~1.3배 정도라면…… 거부감이 줄어든다.

놀이공원에서 콜라가 좀 비싸도 그냥 먹는 것처럼.

결정타는 할부, 사람 판단력을 흐리지.

“자, 그럼 여기.”

나는 미리 작성해 둔 계약서에서 세부 숫자를 기입하고 내밀었다.

서명한 군터는 인수한 계약서를 다시 살펴보고는 멈칫했다.

“이거 공증인이…….”

“예, 하인켈입니다.”

“…….”

사실 군터는 지금 하인켈을 죽일지, 말지 결정하려고 온 것이다.

한데 방금 40억을 주고 인수한 계약서의 공증인이 하인켈.

즉, 당분간은 하인켈을 처리할 수 없다.

군터는 그제야 실수를 깨닫고는 떡하니 입을 벌렸다.

“어, 음…….”

물론 그도 요원이니 평소라면 이런 실수를 안 할 거다.

하지만 내가 4황녀를 거론하면서 혼을 쏙 빼 놓았다.

거기다가 엘프들을 엿 먹일 수 있다는 당근까지 제시했고.

“이거…….”

군터는 귀신에 홀린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날 확 다르게 보는 시선.

나는 모른 척 화제를 돌렸다.

“아, 과자를 다 먹어 버렸네. 아멜리아!”

“리젠 도련님, 2시간 뒤면 저녁 식사인데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오늘 저녁에는 리세라 황녀님도 참여하신다고요.”

들어온 아멜리아가 하는 말.

전부 내가 사전에 시킨 대로다.

“그래? 그럼 참을게.”

“그리고 다음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그래? 그럼 곧 갈게.”

아멜리아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나가 버렸다.

웰링이 눈을 부릅떴다.

“리, 리세라 황녀? 에, 엘프의 4황녀가 여기에 왜?”

군터는 허탈하게 입을 쩍 벌리고 있고.

그가 다 내주면서까지 독점하려던 정보를 내가 개봉했으니까.

나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 길 오셨으니 제대로 대접해 드리고 싶지만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좀 정신이 없네요.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죠.”

“자, 잠깐! 리브라타!”

“거, 군터 님. 4황녀가 여기에 있다니 뭔 소리입니까?”

두 남자가 서로 다투는 걸 뒤로한 나는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아, 그냥 앉아서 웃음만 참고 있었는데도 알아서 일해 주네.

“자, 그럼 오늘의 소득이…….”

활동 자금 40억 확보.

황도에서 머물 곳도 마련했다.

내가 리브라타를 떠나도 저택이 안전하게 경비 계약도 맺었고.

부하가 된 하인켈의 안전도 확보했고.

1차적으로 받아 낼 건 다 받아 냈다.

군터도 당장 웰링을 떼어 내느라 정신이 없을 테고.

“아, 정보는 덜 들어왔네. 하지만 저놈들도 바보는 아닐 테니까. 며칠 뒤면 나한테 당했다는 걸 깨닫겠지.”

다크엘프는 계급이 올라갈수록 아는 게 많아진다.

과장을 털었으니까 부장이 나오겠지.

그때 쥐어짜면 된다.

“그러니 오늘은 이제 놀자.”

한탕 대차게 했다?

모두 모여서 축하 파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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