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고인 황제놀음 (26)
이거 처리하고 자라
뻑!
나는 즉각 장저로 가장 앞 놈, 패트릭의 턱을 올려쳤다.
상황은 일 대 다수.
그럼 우두머리부터 작살내서 상황을 제압한다.
“컥!”
나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팔고 있던 패트릭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제대로 마력방어를 하지 않았으니까.
염동권으로 위력을 배가했으니 망치로 턱 맞은 고통일 것이다.
“어, 흐.”
패트릭은 비틀거리면서도 대뜸 허리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선제공격을 한 내가 검을 뽑게 기다려 주겠냐?
퍽!
나는 로우킥으로 패트릭의 다리를 후려서 무너트렸다.
“악!”
패트릭은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았다.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도 용케 검을 반쯤 뽑았다만…….
하지만 그 정도야 사전에 읽은 나는 이미 놈의 손목을 낚아챘다.
“뭐…… 놔, 놔!”
무작정 검부터 뽑으려고 했던 패트릭은 뒤늦게 팔로 마력을 돌렸다.
대응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데?
서로 이마가 닿는 초근접전에서 무기는 오히려 거추장스럽지.
뻑!
나는 놈의 안면에 박치기를 날렸다.
이 역시 염동력으로 위력을 배가.
“커으으으!”
우득.
놈의 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2급 전사라고 자랑할 정도니 마력검을 쓸 줄 알겠지.
하지만 격투 게임에서 대뜸 필살기 허공에 지르면 맞아 줄까?
그냥 이렇게 딱 붙어서 가볍게 두들기기만 해도 끊어 버릴 수 있다.
나에게 턱을 맞은 순간, 놈은 즉각 전신에 마력을 둘렀어야 했다.
“모르면 맞아야지.”
패트릭이 비틀거리면서 뒤로 넘어가려고 하자, 나는 놈의 옷깃을 잡아채고는 다시 박치기를 날렸다.
뻐어어억!
두 번, 세 번.
“커, 어, 으…….”
놈이 눈을 뒤집자 나는 양손을 교차해서 옷깃을 잡고는 꽉 조였다.
가볍게 목조르기.
“헉, 허으으윽. 어어어…….”
숨통이 막힌 놈은 버둥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안 죽었고 그냥 기절이다.
나는 놈의 머리를 손으로 잡고 일어났다.
“어, 어어어?”
“뭐, 뭐야?”
“저 인간 뭐야? 저거 뭐야?”
남은 네 놈이 기겁하는 소리.
“이, 이씨!”
“너, 너, 그거 안 놔?”
나는 패트릭을 질질 끌면서 다가갔다.
남은 네 놈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일제히 칼을 뽑았다.
“그거 집어넣어라.”
“이, 인간 새끼가 어디서 함부로 지랄이야!”
머리를 길게 기른 놈이 대뜸 덤비면서 칼을 휘두른다.
나는 순간 마력을 사용하면서 손에 잡고 있던 패트릭을 던져 주었다.
휙!
“어!”
자기 손으로 패트릭을 찌르게 된 놈은 허둥지둥 물러났다.
탁!
뒤이어 달린 나는 바닥을 구르는 패트릭의 가슴을 밟고는 도약했다.
불에 덴 듯이 허둥지둥 물러나던 놈의 휘둥그레진 눈.
뻐어억!
안면에 내 드롭킥이 깔끔하게 들어갔다.
가볍게 착지한 나는 염동력으로 자세를 수정하면서, 방금 놈이 떨어트린 검을 잡아채며 앞으로 굴렀다.
싸아악!
“컥!”
“끄아아아악!”
내가 낮게 달려들면서 휘두른 검에 두 놈이 발목이 베여서는 뒹굴었다.
기습적으로 아킬레스건을 끊는 건 여전히 잘 먹힌다.
“어, 어어어어…… 뭐, 뭐야! 뭐야?”
“…….”
나는 일어나면서 마지막 놈을 바라보았다.
뒷걸음질 치던 놈은 엉거주춤하게 자기 손을 바라보다가 휙 검을 던져 버렸다.
그거 들고 있어 봐야 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직감하고.
“왜 버려? 계속 들고 있어.”
“오, 오지 마.”
“그럼 그 칼로 네 팔 하나 잘라.”
“……뭐?”
“농담으로 들리냐?”
나는 딱 잘라 말하고는 걸어갔다.
나는 내 사람, 피붙이처럼 사랑하는 제국민에겐 관대하다.
자기 자식이 잘못 좀 해도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지.
하지만 적은 다르다.
가혹한 전쟁을 치렀던 나는 일단 시작하면 얼마든지 피를 볼 수 있었다.
“목 대신 팔로 봐주겠다는데 안 하네. 내가 가면 다리도 자른다.”
내가 다가가자 남은 놈은 얼른 칼을 다시 주워 들었다.
“어, 어어어어…….”
내가 정말로 할 거라는 걸, 팔다리를 잘라 버릴 걸 직감한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맨정신으로, 자기 팔을 자를 수 있는 사람이 많겠는가?
마지막 놈은 결국 양손을 싹싹 모아 빌었다.
“……사, 살려 주세요.”
“괜찮아, 괜찮아. 팔 잘라도 안 죽어.”
“……예?”
“야! 괜찮다니까? 쇼크사만 안 하면 돼. 정신 집중하고!”
내가 검을 들고 내리치는 순간, 놈이 비명을 지르더니만…… 기절했다.
직전에 칼을 멈춘 나는 혀를 찼다.
“이걸 못 참네.”
하긴, 내가 다스린 이후로 제국에는 전쟁이 없었으니까.
매일같이 생사를 넘나들었던 나와 평화를 누린 놈들은 마음가짐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이제 상황 정리하자.
“가룰! 와 봐!”
“예.”
부름을 받고는 가룰이 바로 달려왔다.
평소와 달리 엄청나게 긴장한 얼굴, 내 눈을 제대로 못 보고 있었다.
“다친 사람은?”
“그…….”
가룰은 무심코 뒹구는 엘프들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정색했다.
“없습니다. 다들 무사합니다.”
“아니지, 저것들 일단 사람 새끼잖아.”
“…….”
내가 픽 웃자 가룰은 한시름 놓았다.
지금 날 엄청 무서워해서 농담 친 거다.
나는 바로 명령했다.
“저 패트릭이란 놈 빼놓고 다 묶어. 그리고 병사랑 기사 시켜서 감시해. 아, 방 안에 가두고 너희들이 칼 차고 바로 앞에서 감시해.”
“예, 알겠습니다.”
“마력 일으키거나 밧줄 끊으려고 하면 숨통 끊어. 이건 명령이다.”
“…….”
가룰이 머뭇거리자 나는 딱 잘랐다.
“과한 거 아니야. 이놈들 마력 쓸 줄 알고, 틈 보이면 감시하던 놈들이 죽는다. 저놈들 정신 차리면 직접 경고하고, 병사, 기사들에게도 하달해. 기사는 숙련된 놈으로 고르고.”
“예, 알겠습니다.”
“가룰, 너 믿는다. 그러니 나 믿고 잘해라.”
내가 가룰의 어깨를 두드려 주자 복잡하던 가룰의 표정이 풀렸다.
리브라타의 후원자인 엘프를 내가 제압한 복잡한 상황.
하지만 내가 간단하게 정리해 줬다.
나 믿고 따라오라고.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가룰의 정신이 발하는 아우라가 보였다.
녹색의 아우라.
나는 그대로 흡수하면서 소비한 정신력을 보충했다.
가룰에게 처분을 맡긴 나는 서 있는 로데릭과 하인켈에게 다가갔다.
로데릭은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 언뜻 보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밟아 버렸으니까.
“할 거면 단단히 해야 했어요. 괜히 여지 주면 귀찮아집니다.”
“……음, 그래.”
내가 평소처럼 말하자 로데릭도 좀 긴장을 풀었다.
나는 바로 말했다.
“일단 백작님에게 가서 은폐해 주세요. 아멜리아도 같이 가서 저택 사람들 조용히 만들고.”
“뭐? 아버지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해결 방법은 제가 생각이 따로 있습니다. 일단은 백작님이 모르는 상태로, 형이 좀 중간에서 조절해 주세요.”
“……으음.”
로데릭은 백작가의 장남.
권위가 있으니 가능하다.
“알았다. 일단 그렇게 하마.”
아멜리아의 부축을 받으면서 로데릭이 떠났다.
난 남은 하인켈을 돌아보았다.
“넌 엘프들 사정에 대해서 알아봐.”
“예. 엘프들이 아무리 바보라도 이런 쌩양아치 새끼들을 보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하인켈의 얼굴도 혐오감에 일그러져 있었다.
카라카스에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음식 귀한 줄 안다.
내가 제국을 세우기 전에는 굶어 죽는 일도 흔했으니까.
나는 내친김에 물었다.
“2급 전사라지만 너무 허접하던데. 요즘 엘프들 이러냐?”
“마력에 비해서 대응력이 떨어지더군요. 전후 세대 아닐까 합니다.”
“전후 세대?”
“제국을 세우기 위해서 많은 전사들이 죽었습니다. 엘프들도 당연히 1급, 특급 전사들을 많이 잃었죠.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새로 육성한 애들을 말합니다.”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싸웠던 나한테 상대가 안 되는 게 당연했다.
“까불다가 맞아 본 적도 없었다는 거네.”
“이젠 알겠죠.”
하인켈이 화제를 돌렸다.
“엘프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죠?”
“네 개의 부족, 검은 백합, 회색 코스모스, 보라색 모란, 파란 장미로 이루어져 있지. 기본은 만장일치제, 하지만 사람이 만장일치가 되는 게 어려우니까 엘프들의 대외 활동은 늘 지지부진하지.”
“예. 그런데 그 네 부족의 상호 견제가 깨졌습니다.”
“시릭 카라카스의 결혼으로?”
나, 황제의 아내 중 하나는 엘프다.
하인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황후를 배출한 파란 장미가 엘프들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또 초대 황제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역풍이 분 거죠.”
“…….”
“그렇게 엘프의 부족들 사이가 벌어졌고 아직도 이런저런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엘프들이 이 중요한 사건에 얼간이부터 보낸 이유 아닐까 합니다.”
나는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래, 알겠다. 더 자세히 알아봐. 말하면 위험한 정보만 빼 놓고 말하고.”
“……그래도 됩니까?”
“그럼 술 사 온 놈에게 말하고 죽으라고 하리?”
내 말에 하인켈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긴장을 풀었다는 투.
내가 보자 하인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 엘프들을 박살 내는 게 아주 통쾌하긴 했습니다만.”
“너무 과하다고?”
“아뇨, 그건 아닌데……. 음.”
하인켈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농담하고 웃고 떠들다가 그러시니까 좀 적응이 안 돼서요. 다들 그래서 놀랐고요.”
“앞으로도 종종 놀랄 거다. 넣어 둬.”
나는 농담으로 받고는 몸을 돌렸다.
“난 간다. 정보 들어오는 대로 말해라.”
간략한 준비 끝.
나는 기절한 패트릭을 질질 끌면서 이동했다.
별채 앞으로.
적당한 나무 앞.
나는 가져온 밧줄로 패트릭을 묶었다.
“야, 일어나.”
“…….”
“안 일어나?”
나는 손바닥으로 놈의 뺨을 갈겼다.
두 번 반복하자 놈은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헉, 헉!”
“묶여 있는 게 좀 생소하지? 금방 익숙해져.”
“…….”
“밧줄 바로 안 끊네? 잘했어. 그거 끊으면 네 생명줄 끊기는 줄 알아라.”
“애, 애들은? 친구들은?”
“내가 마지막에 볼 때는 살아 있더라. 지금은 모르지만.”
패트릭은 이를 악물고는 노려보았다.
하지만 뿜어져 나오는 건 검은 아우라.
아무리 강한 척을 해 봐야 나한테 꺾였다.
“으으…….”
패트릭도 2급 전사는 됐다니 격차를 알 것이다.
무기를 쥐었는데 맨손 상대에게 압도적으로 발린 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싸워도 나한테 절대 상대가 안 된다는 것도.
“일단 대답해라, 이름.”
“……패트릭.”
“누구의 아들이지?”
엘프들은 혈통을 중시한다.
패트릭은 잠깐 망설였지만 내가 똑바로 보자 견디지 못했다.
“코르카스의 아들.”
“리브라타에 왜 왔지?”
“……사건이 벌어졌다기에 경위를 조사하려고.”
“장로들이 너희만 보내진 않았을 텐데? 조사관은 누구지?”
“…….”
패트릭은 입을 다물었다.
나한테 겁먹었는데도 말하지 않을 정도인가?
“질문을 바꾸지. 넌 선발대지? 조사관보다 한발 앞서서 리브라타에 온 이유가 뭐지?”
“……기선 제압을 하라고 했어.”
“뭐?”
이건 예상외다.
패트릭은 그냥 깝친 게 아니었다.
“리브라타에서 지랄해 두라는 윗선의 은밀한 지시가 있었다? 누구지?”
“…….”
“말해.”
내가 위협하자 패트릭은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검은 아우라가 더 진해진다.
패트릭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1급 전사, 베르크 님의 지시였다.”
모르는 이름이다.
칠죄신과의 싸움에서 명성을 떨친 전사라면 내가 기억할 텐데.
패트릭이 마저 말했다.
“인간들이 찍소리 내지 못할 정도로 눌러 두라고…… 하셨어.”
“그런데 이젠 니가 찍소리 내고 있군. 얼른 찍찍거려야지.”
“…….”
“안 해?”
“찌, 찌익…….”
내 지시에 패트릭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냈다.
나는 상황을 정리했다.
“지시한 베르크라는 놈이 엘프가 파견한 조사관은 아니네? 그리고 조사관이 누군지는 절대 말을 못 하겠다?”
“……난, 난 엘프야.”
패트릭이 미약하게 반항했다.
“날 함부로 죽였다가는…….”
“제국법에 의하면 사람 마력으로 위협하는 놈은 죽여 버려도 정당방위야. 그리고 너, 황제 모욕했지?”
“뭐?”
“시릭 카라카스에 대해서 불경하게 말했잖아? 이미 죽었다고.”
패트릭이야 인간 무시하겠답시고 초대 황제가 별거 아니라고 했겠지.
하지만 천년제국에는 황제모욕죄라는 게 있다.
황제, 나에 대해서 불경한 언사를 일삼는 놈은 그 자리에서 죽여도 죄를 묻지 않겠다는 거다.
제국 초기,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필요하다고 요청한 법이다.
현대 지구라면 말도 안 되겠지만 제국 자체가 미증유의 정치체계, 황제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면서.
일리가 있어서 현재도 적용 중이다.
“그, 그건…….”
“괜찮아, 황제 욕 좀 할 수도 있지. 대신 내가 널 죽일 수도 있지.”
패트릭은 덜덜 떨었다.
극한의 공포로.
“사, 살려 줘.”
“뭐라고?”
“사, 살려 주세요. 제, 제발…….”
질질 짜는 놈이 뿜어내는 검은색 아우라가 더 진해진다.
나는 그대로 패트릭의 머리를 잡고는 정신력을 흡수했다.
“아아아, 사, 살려 주세요. 잘못, 잘못했어요.”
패트릭은 사시나무처럼 경련했다.
완전히 절망한 놈의 정신력이 그대로 들어오면서 내 힘이 된다.
머리의 깊은 곳이 탁 트이는 기분.
두 번째 초능력이 개방되었다.
“아아아아!”
난 그저 정신력만 흡수하는데 놈은 질질 짜면서 몸부림을 쳤다.
마치 내가 심한 고문이라도 하는 양.
내가 손을 떼고 물러나자 안심이라도 했는지.
나무에 노란 액체가 흘러내렸다.
“…….”
오줌을 싼 것이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는데 패트릭은 헐떡거리고 있었다.
죽는 줄 알았다가 확 풀어진 모양이었다.
“엘프라고 나무에 물 주냐?”
“…….”
패트릭은 이젠 대답도 못 했다.
나는 정신력을 점검했다.
한층 충만해진 기분, 내가 예전에 썼던 두 번째 초능력을 되찾았다.
일단 시험해 볼까?
나는 별채를 바라보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벽 너머를 빤히 보는데…….
삐걱.
별관 문이 열렸다.
오후인데도 머리에는 나이트캡, 옷은 잠옷, 발은 슬리퍼를 신고 나온 남자.
엘프 멜리우스였다.
엘프와 리브라타 사이의 가교 역할이기도 하다.
오만상을 찌푸린 놈은 나를 보고 이어서 묶여 있는 패트릭을 보았다.
그러고도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다.
“야, 이제 일어났냐?”
“아직 졸리다.”
“그럼 이거 처리하고 자라.”
자고 있던 놈을 깨워서 일 시켜야지.
니들 동네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