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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7화 (17/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7)

아버지와 장인

다음 날 아침.

리브라타 백작의 집무실.

후작 저택으로 출발하기 전에 백작과 단둘이 만났다.

“리젠, 이걸 가지고 가거라.”

“이건…….”

백작이 검을 건넸다.

정갈한 칼집에는 세월의 흔적.

살짝 뽑아 보니 딱히 부가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날이 선 평범한 검.

마력을 부여하면 깨지리라.

백작이 설명했다.

“우리 리브라타가 초대 황제와 함께 전선에 나섰을 때 썼던 검이다.”

“그렇군요…….”

칠죄신과의 전장에 있던 검이라니.

내가 새삼 옛일을 떠올리는데…… 백작이 조용히 말했다.

“그 이후로 우리 리브라타는, 성인이 된 자식이 처음으로 중한 일을 하러 나설 때 이 검을 건네주는 전통이 내려왔다. 내 할아버지는 내 아버지에게 주셨고, 내 아버지는 나에게 건네주셨지. 그리고 나는 이미 로데릭에게 그 검을 건넨 적이 있다.”

“…….”

한번 쓰고 반납하는 전통인가?

내가 가만히 들으니 백작이 말했다.

“알겠느냐? 우리 집안의 전통은 그 검을 받은 자식이 무사히 귀환하는 것이다. 그 검에 피를 묻혀도 되고, 아니어도 된다. 단, 검을 갖고 나간 네가 직접 반납해야 한다.”

“…….”

검을 받은 자식이여, 그저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여라.

부모의 염원이 담긴 전통.

나도 모르게 물었다.

“부르작 저택에 가는 걸 말리지 않으십니까? 위험하다거나, 괜한 분란은 관두라거나. 파혼은 관두라거나. 아니, 그러고 보니 제게 마력약을 주신 다음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잖아요?”

내가 각성을 하긴 했는지, 마력을 쓰긴 쓰는지.

백작은 확인하지 않았다.

백작은 내 허리에 검대를 채워 주면서 말했다.

“리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예?”

“네가 마력이 없다는 데서 좌절하지 않고, 남몰래 실력을 갈고닦았던 걸 안다. 그래서 쭉 지켜보았고 이야기를 들었다.”

내게 검대를 채워 주느라 백작은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표정은 안 보인다.

“오늘의 너는 어제의 너보다 나아졌고, 내일은 더 달라질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그러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

“자식은 부모의 품을 떠날 때가 온다. 그저, 이 검을 채워 주고 네가 무사히 돌아오길 믿고 기다리는 게 내가 할 일이다.”

담백하면서도 다정한 말.

자식의 출발을 배웅하는 아버지였다.

백작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아우라는 푸른색.

이젠 나를 깊이 신뢰한다는 증거였다.

“…….”

흡수할 때가 되었다.

내가 손을 슬쩍 들자 백작이 뿜어내는 정신력이 흘러들어 온다.

보다 충만해진 힘.

염동력이 강화되었다.

이제 잘하면 다음 초능력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음.”

나는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려다가 멈췄다.

차분하게 내게 검을 매 주는 이 사람.

한 번 안아서 안심시켜 드리고 싶단 마음이 불쑥 든다.

“…….”

마음은 그런데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황제 시절, 줄곧 했던 일인데도 왠지 모르게.

그사이 백작은 내게 검을 딱 채워 주고는 물러났다.

“자, 이렇게 보니 제법 멋지구나. 내 자식이지만 곱다, 고와.”

“사내놈이 고와서 뭐합니까?”

“덜 고운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백작이 씩 웃었다.

“도미닉을 납작하게 해 줬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잘했다, 리젠.”

“성원에 보답해서 후작까지 납작하게 만들고 오겠습니다.”

자세히 보니 백작의 눈가가 슬쩍 젖어 있었지만.

모른 척하는 게 도리이리라.

그리고 해가 지는 오후.

저 멀리 거대한 저택이 보이는 언덕 위.

나는 말을 멈추고 말했다.

“여기서 요기나 하자.”

내가 말에서 내리면서 말하자 옆의 가룰도 따라서 내렸다.

이어서 하인켈도 내리고.

마지막으로 로데릭도 내렸다.

나는 말안장의 주머니에서 바구니와 둘둘 말아 놓은 돗자리를 꺼냈다.

나무 그늘 아래에 까니 간단한 휴식처 완성.

내가 바구니를 내려놓고는 앉자 다들 둘러앉았다.

아니, 로데릭만 서 있었다.

“앉으면 죽는 병에 걸렸어요? 아아, 이것이 양반다리라는 것이다. 편하게 쉴 수 있지.”

“왜 도미닉을 먼저 보냈지?”

로데릭이 살피는 건 저택, 부르작 저택이었다.

저 멀리 인영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끌고 온 도미닉을 먼저 보냈는데 도착한 모양이었다.

“도미닉하고 헤어지니까 막 아쉽고 그래요?”

“개소리는 관두…… 아니, 시답잖은 소리는 관둬라.”

“형님이 날 따라온 이유를 말해 주면 나도 말해 주죠.”

“…….”

로데릭과 내 시선이 교차했다.

리브라타의 장남, 로데릭은 막냇동생인 리젠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물론 로데릭 나름대로의 이유야 있지만…….

“부르작 후작에게 돈 받으러 가는 길에 왜 따라온 겁니까? 설마 나한테 돈 좀 나눠 달라고 할 생각은 아닐 테고.”

“일단 부르작 후작에게 엄중하게 경고하기 위해서다.”

“그리고요?”

“또 부르작이 순순히 돈을 내주지 않을 수도 있다.”

로데릭의 시선이 내 허리에 찬 검을 보았다.

그도 이 검을 차고 나선 적이 있었겠지.

로데릭이 나직하게 말했다.

“부르작은 우리 가문을 깔보고 있다. 네 승리는 통쾌하였으나…… 후작은 기사와 병사들을 앞세워서 널 핍박할 수도 있다.”

“야, 형이 나 걱정해서 따라왔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진짤까?”

내가 느닷없이 묻자 가룰은 눈만 끔뻑거렸다.

꿀 먹은 벙어리.

장남과 막내 도련님 중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가룰의 어깨를 누르면서 속삭였다.

“야, 형하고 나하고 누가 더 잘생겼냐?”

“……자,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기사질 끝나냐? 앞으로 기사 생활 편하겠다?”

내가 장난을 치자 로데릭은 인상을 팍 썼다.

“……그리고 네가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서다. 안에서 새던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새겠냐!”

“밖에서도 잔소리하는 건 알겠네요.”

“리젠! 너는 막내라고는 하나 백작님의 아들이다! 네 언동이 곧 리브라타의 평가로 이어진단…….”

나는 로데릭의 말을 무시하고는 바구니를 열었다.

안에 들어 있던 샌드위치를 꺼내서 먼저 한입.

아삭한 야채와 마요네즈, 촉촉한 빵의 하모니.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닭고기를 씹으니 달콤한 소스가 팍 튄다!

“음, 좋다!”

“리젠, 진지하게 좀…….”

“잔소리도 먹으면서 해요. 가룰, 너도 이거.”

나는 가룰과 로데릭에게도 샌드위치를 건넸다.

그리고 좀 떨어져서 앉아 있던 하인켈에게도.

“야, 너도 와서 먹어라.”

“전 후작 쪽 사람인데요. 껴도 괜찮겠습니까?”

“같이 왔는데 안 먹이는 게 더 짜증 나.”

먹는 걸로 사람 괄시하지 마라!

제국군의 총수이자 제국의 황제로서 내 신념이었다.

내가 제국을 세우기 전에는 사람이 굶어 죽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니까.

네 남자가 둘러앉아서 나란히 샌드위치를 먹는다.

“……좋군요.”

“맛있네요.”

가룰과 하인켈의 감탄.

로데릭은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멜리아가 만든 거냐?”

“예, 새벽부터 특별히 준비했다네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멜리아만큼은 걱정시키지 마라.”

“알고 있습니다.”

백작의 아이들을 키운 아멜리아.

장남인 로데릭에게도 각별한 상대이리라.

샌드위치를 먹는 로데릭의 입가가 드물게 누그러져 있었다.

아.

이거 행복하다.

나는 문득 손을 멈췄다.

야외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농담 던지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맛있는 거 먹는다.

고작 이 정도인데…… 너무 행복했다.

물론 황제 시절에는 이보다 더 맛있는 걸 날마다 먹었고, 최고의 재담가를 불러서 공연을 시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가 더 즐거웠다.

나를 생각해서 만든 샌드위치가 맛있었고, 나를 닦달하는 장남의 잔소리가 싫지 않았다.

그리고 허리에 찬 검, 평범한 검이 너무 든든했고.

“……아, 이건가?”

“예?”

“아니, 아니야.”

내가 은퇴하고 싶다, 쉬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

그리고 지금 이러는 게 행복한 이유.

새삼스럽지만 좀 알 것 같았다.

나는 감상을 접고는 이야기를 꺼냈다.

“도미닉을 왜 먼저 보냈냐고요? 후작에게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서요. 먼저 보낸 도미닉이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어 줄 겁니다.”

“정말 그 이유로…….”

“그리고 도미닉이 쳐들어와서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게.”

나는 로데릭의 말을 끊고는 하인켈을 보았다.

“부르작 후작이 꾸민 일이라면, 그에게 추가적인 계획이 있었다면, 지금쯤 계획 변경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추가적인 계획?”

“리브라타를 12가문에서 축출하겠다는 음모라고 합디다.”

“…….”

로데릭이 눈을 부릅떴다.

나는 웃으면서 수통을 내밀었다.

“물도 마셔 가면서 먹어요.”

“……해서 어쩔 작정이냐?”

“모르죠. 애당초 무슨 수로 우리를 12가문에서 열외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래, 초대 황제의 유훈이다. 그걸 어떻게 어기겠다는 건가?”

로데릭은 믿을 수 없단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내가 불쑥 물었다.

“솔직히 물어보겠습니다. 형님이 황제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

이건 가룰도 아는 이야기, 널리 퍼졌다는 의미이리라.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난 세상 돌아가는 거 잘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다. 우리 리브라타가 12가문에서 최약체라고 합니다만.”

말한 나는 가룰과 하인켈에게 시선을 주었다.

알아들은 두 사람이 일어나려고 하자 로데릭이 손을 저어서 막았다.

“다들 아는 이야기니 숨길 것도 없다. 저번 황도행에서 내가 큰 실수를 했다.”

황도행.

12가문이 2대 황제를 뽑기 위해서 매년 개최하는 모임.

작년에도 로데릭은 올라갔을 것이다.

나는 들은 걸 정리했다.

“형님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원래도 황제가 될 가능성이 적었는데 완전히 제로가 됐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리브라타 가문을 쫓아내자는 음모까지 벌어졌다?”

“그래, 모든 게…….”

“형님 잘못 아닐걸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열한 개 가문이 이런 일을 벌일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로서는 경쟁자들이 고꾸라진 것, 새로운 경쟁자를 등판시킬 까닭이 없죠.”

“…….”

로데릭은 놀란 얼굴을 했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들을 끌어내리고 대신 12가문에 참가하고 싶은 누군가가 꾸민 일이라고 봐야 합니다. 범인은 12가문이 아닌 귀족 가문, 원래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놈일 겁니다. 딱히 형님의 실수가 아니라도 언제라도 일 벌였을걸요.”

“……지금 위로해 주는 거냐?”

“전 뒤로 하는 게 좋은데요.”

별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로데릭은 진짜 기막힌 얼굴을 했다.

감동하려다가 똥 씹은 표정?

나는 픽 웃었다.

“팍팍하게 살아서 이런 농담이라도 안 하면 힘들어요.”

“……후우우.”

로데릭은 벌컥 소리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를 진지하게 본다.

“리젠, 나한테 감정이 안 좋은 거 안다. 내가 널 달갑게 보지 않는 것, 혼쭐을 내 주려고 했던 것도 있다. 그걸 풀고 싶다면 나중에 따로 받아 주마.”

“갑자기 얼굴이 간지러워지는데요.”

“……진지하게 들어라.”

로데릭은 간절하게 말했다.

“도미닉을 물리친 솜씨, 아주 훌륭하고 또 통쾌했다. 하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 부르작 후작의 음모가 정말이라면 가볍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그러면 늦습니다.”

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부르작이 뭔 수를 꾸미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확실한 건 그는 우리 가문보다 강대하다는 겁니다. 그에게 재정비할 시간, 여유를 줘서는 안 됩니다. 아들의 패배에 낭패하고 정신없어하는 순간에 번개처럼 들이쳐서 들쑤셔야 합니다.”

“…….”

“안전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적어도 후작이 나한테 돈을 주기 전까지는 안전할 테니까.”

나는 턱짓으로 하인켈을 가리켰다.

하인켈이 공증인으로 있는 이상, 후작은 섣불리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로데릭은 한참 생각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좋아, 알겠다. 네가 그리 멀리 내다보고 온갖 방비를 다 했다니 더는 말 안 하마. 나는 뒤로 물러나서 잠자코 네 하는 바를 지켜보겠다. 하지만…….”

로데릭이 머뭇거렸다.

뭔 말을 하려는데 저리 꾸물거리지?

로데릭은 먼 곳의 풀밭을 보며 말했다.

“……네가 힘에 부치면 나서서 돕겠다.”

“야, 가룰. 나보다 형이 더 잘생겼냐?”

“……리젠!”

아무튼 식사는 끝.

이제 출발이다.

돈 받으러 가자!

후작 저택.

접근하니 아주 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정원으로 통하는 대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우리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창을 고쳐 잡았다.

그러자 하인켈이 나서서 말했다.

“후작을 뵈러 왔습니다. 길을 비키시죠.”

“그…….”

도미닉이 먼저 들어갔다는 것.

완전히 박살이 났다는 것까지 봤을 것이다.

망설이던 경비병들은 결국 옆으로 비켜섰다.

다크엘프 전사와 감히 맞설 용기가 없으니까.

다각, 다각.

나는 하인켈의 옆에서 말을 타면서 야유를 보냈다.

“어딜 가나 프리패스네, 좋겠어.”

“하하,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찾아 주시죠.”

“저리 가. 이 보이스 피싱 아저씨야.”

나와 가룰, 로데릭은 하인켈의 안내를 따라서 정원 길을 전진했다.

곧 저택 본채가 보이기 시작한다.

쓰러져 있는 도미닉.

그리고 하인들이 도미닉을 급히 돌보고 있었다.

근처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뚱뚱한 남자.

그는 하인켈을 보고는 버럭 소리쳤다.

“하, 하인켈! 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지금 돌아오는 거냐!”

“손님을 데리고 왔습니다. 부르작 후작.”

나는 내심 의아했다.

지금 땀을 뻘뻘 흘리는 저 남자가 부르작 후작이라고?

나는 황제로서 많은 인간 군상들을 봐 왔다.

쓰러진 도미닉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후작. 평정심을 잃었다.

그릇이 작다.

“저런 소인배가 음모를 꾸몄다고?”

“소인배도 나쁜 짓을 할 순 있잖습니까?”

내가 무심코 흘린 말에 가룰이 대꾸했다.

“아니, 스케일이 큰 짓은 못 하지.”

부르작 후작은 리브라타를 12가문에서 내치겠다는 음모를 펼칠 그릇이 아니다.

증거는 없지만 나는 반쯤 확신했다.

봐, 대놓고 험담하는데 부르작 후작은 눈만 굴리잖아?

우리 둘이 누군지 몰라서.

하인켈의 동행이니 함부로 대해도 되나 곤혹스러워하다가…….

“……너, 너는 로데릭 리브라타? 병사! 병사들을 불러와라!”

그제야 알아본 부르작 후작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도미닉을 돌보고 구경하던 인파가 갈라지고, 창을 든 병사가 달려온다.

이어서 갑옷을 입은 기사들도 나타났고.

하인켈이 나를 보았다.

자기가 처리하겠다는 의미.

내가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갑자기 인파 속에서 사람이 나섰다.

장신, 눈매가 유달리 매서운 인간 남자였다.

“부르작 후작, 이게 뭔 소란입니까?”

“크, 크로셀 후작!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든 리브라타 놈들이 쳐들어왔소!”

부르작이 호들갑을 떨었어도 나선 남자, 크로셀 후작은 침착하게 우리 네 사람을 살폈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침묵.

그리고 크로셀이 환히 웃었다.

“하하, 여기서 보게 되는군. 리젠.”

“그러게요. 여기서 다 뵙네요?”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직감했다.

이 모든 사태를 꾸민 장본인.

바로 크로셀 후작이었다.

본 적도 없는 약혼녀 아버지가 보스였다니.

사람이 이래서 결혼을 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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