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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6화 (16/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6)

돈 벌려면 집 밖에 나가야지

다크엘프들은 제국 곳곳에 자기 요원들을 보내 둔다.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싹수 있는 인재를 미리 포섭하려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다크엘프들에게 유리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암약하는 다크엘프들.

그 어둠의 요정들을 다스리는 암살여왕.

그녀가 내 셋째 아내였다.

갑자기 나온 그 이름.

“으아.”

신음이 새어 나오고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아내가 애들 데리고 친정 다녀온다는 주말, 신나서 맥주 따고 게임 시작하는데 현관 벨 소리 들은 남편이 이런 기분일까?

“아, 그, 그래…….”

생각해 보니 당연했다.

황제 시릭 카라카스가 죽고 100년, 황후들은 각자 영토를 나눠서 일시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제 아내분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계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니지. 이건 아니지…….”

나는 리젠으로 환생하고 아직 한 달도 안 됐다.

놀기는커녕 이제 몸이나 만드는 중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내가 환생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채면?

내 환생 계획, 유유자적하게 여가나 즐기겠다는 계획이 와장창 박살 난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예?”

영문을 모르는 하인켈.

“…….”

콱 죽여 버릴까?

살인멸구하면 다크엘프들이 모를 거 아냐?

순간 극단적인 생각까지 품었지만 이내 접었다.

하인켈을 없애면 오히려 더 주목받는다.

그럼 이놈을 살려 둔 채로 입을 막아야지.

나는 동요를 누르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리브라타는 이미 엘프의 후원을 받고 있다.”

“엘프가 제대로 지원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냥 담당 하나만 보내 두고 생색내는 정도죠. 저희 다크엘프는 자본금과 정보를 비롯해서 온갖 후원을…….”

“그런 제안이라면 백작님에게 먼저 말해.”

나는 선을 딱 그었다.

“엘프와 다크엘프는 서로 앙숙이잖아? 그런데 리브라타의 막내인 내가 멋대로 다크엘프의 후원을 받으면? 분란 일기 십상이지.”

“물론 드러내 놓고 후원하겠다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하인켈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는 리젠 리브라타라는 개인에게 투자하고 싶은 겁니다.”

“안 받아. 그리고 네가 나에 대해서 윗선에 보고한다면 나도 이런 제안이 있었다는 걸 백작에게 알리겠다.”

엘프들이 이미 선점한 리브라타에게 다크엘프가 은밀한 제안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일이 커진다.

그래서 하인켈도 이리 비밀스럽게 제안하는 거고.

하인켈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섣부른 제안을 한 제 입장이 매우 곤란해지겠군요.”

“그래, 섣부른 제안이지.”

돈과 정보의 제공.

일견 달달해 보이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딨냐?

난 다크엘프를 잘 안다.

공증을 선 계약을 반드시 성사시킨다는 종족의 신뢰성, 하지만 그건 표면이다.

뒤에서는 첩자들을 부리면서 정보 수집, 정치 공작, 암살까지 불사하는 이들이다.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다크엘프들이 리브라타 집안에 심은 스파이로서 정보 제공, 그리고 온갖 요구를 받게 되리라.

내가 선을 긋자 하인켈은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야심을 감춘 잠룡이시지만 지금은 사정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래. 그럼…… 돈 받으러 가야지? 내일 부르작 후작에게 가서 도미닉을 던져 주고 3천만 원을 받아 낸다. 그럼 우리 사이도 끝이지?”

“물론 공증인으로서 계약이 원활하게 마무리되게 돕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도련님과는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데요?”

“아저씨랑 비밀 친구 안 해요.”

내가 질색하자 하인켈이 파안대소했다.

“하하, 그러면 다크엘프 미녀를 소개해 드릴까요?”

“너 그러다 죽어…….”

암살여왕이 알았다가는 직접 하인켈을 처단하리라.

나는 진심으로 충고했는데 하인켈은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웃던 하인켈이 머리를 숙여 보였다.

“오늘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잠룡의 놀라운 재기와 거침없는 행보는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아니라도 언젠가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겠습니다.”

워낙 정중해서 답할 말이 없다.

하인켈은 고개를 들고는 씩 웃었다.

“번잡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내일 돈 받아 내는 데 집중하죠. 부르작 후작의 주머니를 터는 건 보통 일이 아닐 테니까요. 욕심은 많은데 소심한 인간이라서요.”

“그래. 가 봐라.”

“예, 내일 뵙죠.”

하인켈이 나가자 나는 한숨을 돌렸다.

“다크엘프의 요원이라…….”

2대 황제를 뽑는 12가문의 레이스.

이종족들은 그 가문들을 각각 공식 지원하고 있다.

물론 그건 표면이고.

방금 하인켈의 제안처럼, 드러나지 않게 지원을 받는 경우도 흔하리라.

“리브라타를 조사하던 건 우연 같지만…….”

다크엘프의 암살여왕.

차가우면서도 격정적이던 여자.

나와 함께 칠죄신과 싸우면서 피를 흘린 동료, 자기 종족을 교활하다고 말하면서도 천년제국엔 그런 그늘이 필요하다고 나를 설득했고.

차갑지만 둘만 있을 때는…….

“음, 보고 싶으면서도 보고 싶지 않네.”

사실 원칙적으로, 법적으로 따지면 꿀릴 거 없다.

시릭 카라카스가 사망한 순간, 모든 혼인 관계는 끝났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자고?

그래서 갈라놨잖아!

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어!

“근데 이 소리 하면 수습이 안 될 것 같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쪽은 당분간 생각하지 말자.

난 이 몸으로 환생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잖아?

그냥 여유롭게 쉬고 싶다고.

애들 데리고 친정에 간 아내가 내일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거실에서 맥주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고!

“후우우…….”

나는 머리를 비우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초능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

침대에 앉아 있는 내 엉덩이가 살짝 떠올랐다.

염동력으로 내 몸을 띄운 것이다.

“좋아, 음…….”

염동력은 각각 단계가 있다.

물건을 움직이는 게 첫 번째.

내 몸의 각 부위에 힘을 더하는 게 두 번째.

그리고 이렇게 몸을 띄우는 게 세 번째다.

순간 무중력상태에 돌입하는 것.

침대 위에 살짝 떠오른 몸.

내 얼굴과 목에 핏줄이 두드러지고는 호흡이 가빠진다.

“음, 으음…….”

난이도는 높고 쓸모는 없어 보이지만 내가 쓰면 다르다.

전투 중에 자유자재로 자세 제어, 관성 제어가 가능해진다.

염동권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려면 필수다.

털썩!

결국 10초를 버티지 못하고 내 몸이 내려앉았다.

진땀을 흘린 나는 한숨을 돌렸다.

“아, 이거 아직 멀었나?”

뭐 무중력 유지는 강한 정신력과 제어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좀 멀었다.

“후우우우…….”

나는 지친 숨을 몰아쉬면서 정신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체력은 꾸준히 단련한다 치고, 초능력도 간간이 흡수해서 늘린다고 쳐도, 문제는 마력이네.”

나는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빨강에서 주황, 노란색으로 변해 가는 마력.

3계위, 나이치고는 엄청난 성취다.

이게 알려지면 천재 소리 듣기에 충분하리라.

“문제는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이고…… 또 마력을 성장시키려면 싸워야 한다는 거지.”

마력을 강화하는 방법은 실전을 겪고 살아남는 것이다.

마력약을 마셔도 강해지지만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결국 좀 싸워 놓긴 해야겠네. 그래야 나중에 귀찮은 일이 없지.”

카라카스는 험한 세상이다.

서로 가치관이 다른 종족들, 여차하면 칼부림이 난다.

오늘만 하더라도 내가 약했다면, 환생 직후에 단련해 두지 않았다면 곤란했으리라.

“황제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시 안 당하게, 인간은 물론 다른 종족도 함부로 못 덤빌 정도로 실력을 회복하고. 또 그러면서 돈도 벌고. 문제는 돈 버는 방법인데…… 마침 건수가 있네.”

도미닉을 던져 주고 3천만 원 받는 건 하인켈을 시켜서 받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직접 갈 생각이었다.

“이 상황에서 아직 해명 안 된 부분이 있기도 하고…….”

리브라타를 12가문에서 내쫓겠다는 놈들이 있다고?

부르작 후작 쪽에 단서가 있겠지.

“그런 음모라면 당연히 군자금이 필요하겠지. 그거 전부 내가 챙기면 당분간 돈은 신경 안 써도 되겠지.”

돈은 뒤가 구린 놈에게 뺏는 게 확실하지.

뒤탈도 없고, 액수는 크고.

“한탕 해서 편하게 살자!”

* * *

저녁.

부르작 후작 저택.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초조하게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 저택의 주인, 부르작 후작이었다.

“슬슬 소식이 들려왔어야 하는데. 이거 참…….”

“거 부르작 후작, 자꾸 오가니 정신이 없군. 자리에 좀 앉으시오.”

떡 벌어진 어깨의 남자가 일렀다.

부르작을 가볍게 대하는 어투, 그 역시 후작이기에 가능했다.

크로셀 후작.

리젠의 약혼녀가 속한 가문의 가주였다.

부르작은 불안하게 크로셀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걱정도 안 됩니까?”

“아들이 제법 검을 쓴다고 하지 않았소? 또 다크엘프 호위가 따라갔고. 상대인 리젠은 마력 한 방울도 없다는 팔푼이 아니오? 뭘 그리 걱정하는지 모르겠소만.”

“……엘프들의 심기를 건들 수도 있잖습니까. 리브라타야 별거 아니지만 그 가문에 엘프가 머무르고 있습니다!”

인간 귀족들은 평민들 앞에서 신처럼 굴지만 이종족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나마 수인이야 좀 편했지만 엘프나 천족 같은 이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가급적 우호적인 관계를 맺도록 노력했다.

그들이 인정해야 2대 황제로 등극할 수 있기도 하고, 또 그들의 전사들은 인간 기사보다 훨씬 더 강력하니까.

“애당초 이 알라카스 산맥은 엘프들이 지배하는 땅 아닙니…….”

부르작의 말에 크로셀이 노려보았다.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제국 귀족이라는 자가 엘프들의 지배를 인정한다는 거요?”

“하, 하지만 사실 아닙니까? 2대 황제가 나오기 전까지라지만 엘프들이 통치하는 건 사실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부르작도 물러나지 않고 맞섰다.

두 후작의 시선 교환.

크로셀이 먼저 사과했다.

“미안하오, 내가 이 부근의 사정도 모르면서 너무 함부로 말했나 보오.”

“……아닙니다. 나야말로 괜한 소리를 했습니다.”

어색해진 분위기, 부르작은 말을 돌렸다.

“하인켈의 실력은 의심할 바가 없지만 그도 엘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텐데. 그냥 우리 가문의 기사를 호위로 붙일 걸 그랬습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썼다, 뭐 그런 불안이오?”

“예. 오히려 괜한 환란을 부를까 봐 걱정이 됩니다.”

“후후, 환란이 일면 우리야 좋지. 당신도 야심을 가졌다면 소극적으로 굴지 마시오.”

크로셀 후작은 씩 웃었다.

“당신이 원하는 바야 뻔하잖소. 벼락출세한 리브라타를 없애 버리고 당신이 12가문의 일원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거 하나지. 애당초 12가문이 대체 뭐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들 중에서만 2대 황제가 나와야 한단 말이오?”

“무, 무슨 위험한 소리입니까? 그건 초대 황제 시릭의 유언이잖습니까. 누가 들으면 대체 어쩌려고…….”

“흥, 들으라 하시오. 나나 당신이 대체 뭐가 부족하오? 우리가 돈이 없소, 힘이 없소? 그런데 그놈의 12가문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언제나 2류 취급이었지!”

파사삭!

크로셀 후작의 손에 들려 있던 술잔이 박살 났다.

“이렇게 살 수는 없소. 이렇게는 살 수는 없단 말이오!”

“…….”

부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년제국의 북방, 알라카스 산맥 근처에서 부르작 후작은 남부러울 게 없었다.

비록 엘프들이 통치한다지만 그들은 인간들의 일에 잘 개입하지 않았다.

주변의 다른 중소 귀족들도 그의 비위를 맞추기 바빴고.

한데 리브라타, 그놈들은 12가문의 하나라는 이유만으로도 빈번하게 뻗대었다.

정면충돌하면 힘으로 눌러 버릴 자신이 있지만 리브라타의 뒤에는 엘프가 있다.

그래서 아니꼬운 마음을 참고 살다가…… 크로셀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크로셀, 당신은 리브라타와의 약혼을 깬 다음에는 어쩔 작정입니까?”

“이미 준비는 다 해 놨소.”

부르작은 더는 묻지 않았다.

말이 같은 후작이지 사실은 급이 다르다.

부르작은 북쪽의 변방에 웅크리고 있는 데 비해 크로셀은 중앙의 귀족들과 줄을 대고 있었다.

또 정치력과 머리가 비상하고.

그러니 부르작은 내심 크로셀 후작에게 한 수 접어주고 있었다.

부르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만약 리브라타가 12가문에서 빠지게 되면 그 빈자리는…….”

“그건 이미 이야기했잖소? 당신네들이 들어가고 우리 가문과 혼인으로 맺어지면 그만이라고.”

“…….”

“왜, 새삼 내가 의심스럽소? 하지만 나와 당신이 다퉜다가는 다른 가문 좋은 일만 시켜 주기 십상이지. 그리고 내가 엘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는 건 알 텐데?”

크로셀은 감정적으로 말했다.

“난 엘프가 싫소. 그들에게 엿 먹여 줄 수 있다면 12가문의 자리 정도야 양보하지.”

“으음, 알겠습니다.”

부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로셀이 흡족하게 웃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이시오? 그럼 리브라타의 몰락을 위해서 축배나 듭시다.”

예로부터 사위 앞길을 막는 건 장인인 법.

보통 사위가 불리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리젠 리브라타.

전생에 결혼을 여덟 번 했다는 남자.

여덟 명의 장인을 상대한 남자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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