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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2화 (12/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2)

즐겁게 구경할 건데?

아침의 체육관.

개인 훈련의 땀도 식었다.

이제 대련, 진검 겨루기다.

상대는 내 호위, 가룰이었다.

가룰은 긴장해서는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도련님, 말씀드렸지만 진검이니까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거, 간이 콩알만 하네. 나 찌른다고 원망 안 하니까 얼른 하자.”

“합!”

가룰이 검을 찔러 오자 나는 가볍게 걷어 내고는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체중, 육체 스펙에서 내가 밀린다.

가룰이 어깨로 밀고 들어오자…… 나는 몸을 확 숙이면서 놈의 안다리를 걸어서는 넘겨 버렸다.

“으아아악!”

가룰이 허둥거리면서도 바닥을 구르고는 벌떡 일어났다.

입은 허둥거려도 몸은 반응하는 게, 기사단에서 알아주는 놈다웠다.

하지만 그 직전에 나는 검을 휙 던지고는 달려들었다.

내 투척에 가룰이 얼른 머리를 수그리는 직후, 사커킥이 명중했다.

“컥!”

가룰이 검을 놓치고 뒹굴었다.

그사이 나는 검을 주워 들고는 말했다.

“야, 괜찮냐?”

“아, 괘, 괜찮습니다.”

“코피 나는데? 지혈이나 해라.”

가룰의 잘생긴 코에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건을 던져 준 나는 가룰의 피가 멎기를 기다렸다.

가룰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도련님, 방금 너무 무모하시지 않았습니까? 만약 제가 엎드린 채로 검을 휘두르면 다리를 당하셨을 겁니다.”

“야, 나는 직선이고 너는 곡선이야. 누가 더 빠르냐?”

가룰은 휘둘렀고 나는 앞으로 걷어찼다.

어느 쪽이 먼저 명중할지는 뻔하다.

가룰은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그럼 제가 푹 찔렀으면요?”

“그럼 그냥 살짝 뛰어 피하고는 네 머리를 밟아 버렸지.”

나는 픽 웃으면서 말했다.

“애당초 자세가 무너지면 우선권은 상대에게 가는 거야. 뭘 인정 못 하고 끙끙거려.”

“아니, 그게…….”

“마력 없이 싸우니까 네가 불리한 것 같아? 그럼 지금부터 마력 쓸까?”

내가 손에 마력을 모으자 가룰이 깜짝 놀랐다.

“아, 아니! 도련님! 마력 아닙니까?”

“야, 흥분하지 마. 코피가 쓰나미잖아.”

가룰이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코피가 투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가룰은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마력을 깨치셨군요. 정말로 다행입니다. 이제 도련님을 무시하는 놈들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닌데? 무시하라고 할 건데?”

“예?”

“내가 마력 쓴다는 건 비밀이라고. 소문내지 마라?”

가룰이 의아해하자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조용히, 얌전히 살고 싶어서 그런다. 너도 그렇게 알고 소문내지 마.”

“하지만 도련님.”

“내가 마력을 쓰는 걸 보여 주면 다들 날 인정할 거라고. 뭘 이제 와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때가 되면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 거다. 넌 입 다물고 있어.”

“음, 알겠습니다…….”

뭐 내가 마력을 깨달았다는 건 반드시 감춰야 하는 비밀은 아니다.

하지만 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내 심장.

마력을 한도 끝도 없이 흡수하기만 했던 이 심장.

황제였던 내가 알기로는 이런 사례는 딱 하나였다.

그게 왜 하필 리젠의 몸에 있는지, 우연인지 뭔지 알아보고 싶었다.

알려지면 시끄러울 수도 있으니 가능한 한 조용하게.

“코피 멎었냐? 멈추면 말해.”

“죄송합니다. 잘 안 되네요.”

가룰은 끙끙거리다가 툭 말했다.

“뭣 좀 물어봐도 됩니까?”

“물어봐.”

“크로셀 후작 영애가 곧 도착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옆 동네인 부르작의 아들놈과 말입니다.”

가룰은 분하게 말했다.

“그녀는 도련님의 약혼녀 아닙니까? 한데 딴 귀족 남자와 동행이라니. 세상에 이런 무례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근처니까 에스코트해 주나 보지.”

“아닙니다! 영애가 부르작 후작 저택에 잠시 머무는 동안 별 수작을 다 부렸다고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게 여기까지 소문이 다 나네.”

가룰이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도련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겠습니다. 부디 저를 믿고 맡겨 주시죠.”

“그래, 코피 하나는 믿음직스럽게 흐른다.”

“……이건 곧 멈춥니다. 아무튼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귀족들의 결투 말이냐? 후작 도련님이 기사를 내세우면 내 대리로 네가 싸운다고?”

귀족의 호위를 맡은 기사들은 주인의 명예를 대리하기도 했다.

귀족들이 직접 결투하기도 하지만, 자기 호위 기사끼리의 결투로 마무리 짓는 경우도 많았다.

가룰이 힘차게 말했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나 파혼할 건데?”

코를 막은 가룰이 입을 벌리고는 나를 보았다.

기막힌 얼굴.

“야, 흥분하면 더 쏟아진다. 진정해.”

“도, 도련님. 설마 가문을 위해서 참고 희생하시는 겁니까?”

가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파혼비 받으려고.”

“……예? 예?”

“남들은 결혼하면 혼수를 받잖아? 난 파혼하면서 받아 보려고.”

가룰이 내 설명에 멍하니 말했다.

“……크로셀 후작 영애는 알아주는 미녀라던데요. 또 결혼하면 도련님의 인생은 날개를 활짝 펼치실 거고요.”

“무덤 속에서 날개 펼쳐서 뭐 어쩌자고?”

결혼은…… 남자의 무덤이다.

이건 진리다.

여덟 번이나 결혼한 내가 말하는 거니 확실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들고 결혼은 황제도 엿같이 만든다!

덜컥.

그때 체육관의 문이 열리더니 사람이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

내 형, 로데릭 리브라타였다.

“…….”

나를 흘끗 본 로데릭은 가타부타 않고는 옷부터 갈아입었다.

드러나는 근육.

“……음.”

상당히 단련되어 있었다.

10점 만점에 7점.

코피가 멎은 가룰도 내 눈치를 살폈다.

“자리를 피해 드릴까요?”

“무서우니까 옆에서 지켜 줘.”

“…….”

내가 들으라고 말해도 로데릭은 무시했다.

하지만 로데릭의 눈치를 보면 내가 체육관에 있다는 걸 알고 찾아온 것이다.

따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건 이유가 있는 거고.

바벨을 시작한 로데릭이 불쑥 말했다.

“오후에 크로셀 후작 영애가 부르작 후작 아들과 함께 온다는군.”

“다들 알더군요.”

그리고 나, 리브라타 백작 가문이 어떻게 대응할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겠지.

부르작의 무례한 파혼 요구에 굴할 것인가, 맞설 것인가?

로데릭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네가 원한다면 힘을 실어 주겠다.”

“어? 저 경계하고 거리 두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이건 밖의 일이니까.”

로데릭은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나는 웃으면서 짚었다.

“그러니까 동생이 마음에 안 들어도, 옆 동네 후작 놈이 지랄하는 건 못 봐 주겠다. 같은 가문의 일원으로서 지지해 줄 수 있다, 이겁니까?”

“부르작 후작 가문은 오래전부터 시비를 걸어왔다.”

로데릭은 바벨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자기들을 제치고 우리 리브라타가 12가문으로 뽑혔다는 걸 인정할 수 없다고.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그럼 크로셀 후작 놈은 대체 뭔 생각이랍니까? 형님이 황제라도 된다면 그땐 나가리인데?”

“…….”

로데릭이 나를 쏘아보았다.

화난 시선.

나는 턱을 긁으면서 웃었다.

“몰라서 물어본 말에 그리 노려봐요?”

“……뭘 어떻게 하건 네 자유다. 내 지원이 필요하면 말해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우리 리브라타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진 마라.”

“이미 깜장색이지만요. 이만 나가 보죠.”

나는 가룰의 팔을 툭 치고는 체육관을 나왔다.

가룰이 눈치를 보자 내가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냐?”

“예? 코피는 멈췄는데요.”

“니 코는 알아서 간수하시고…….”

나는 혀를 차고 짚었다.

“형님이 황제가 될 수도 있다니까, 갑자기 험하게 노려보잖아. 감정이 격하던데.”

“그야 로데릭 도련님이 황제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까요. 크로셀 후작도 그리 생각하고는 갈아타려는 거 아닐까요?”

“아, 그런가?”

따지고 보면 내 약혼이 깨질 위험에 처한 건, 로데릭이 황제가 될 가능성이 없어서다.

로데릭이 황제가 될 가능성이 컸다면?

크로셀 후작은 황제의 동생이 될 나와 딸을 결혼시키려고 안달 나겠지.

그래서 로데릭은 책임을 느끼는 모양이다.

자기 힘이 부족해서 벌어진 사태라고.

“아니, 난 오히려 고마운데.”

“장남이시니까요. 책임, 부담을 느끼실 겁니다.”

“리브라타 가문은 약체, 형이 황제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라…….”

결국 난 리브라타의 막내 도련님, 남들도 그리 보고 대한다.

그 리브라타가 등신 취급을 당하면 나까지 싸잡아 그런 취급당하기 마련이다.

“매번 두들겨 패서 시정하는 것도 귀찮고…….”

“예?”

“아니, 그냥 마음에 좀 안 드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걸었다.

“하는 김에 가문의 명예 좀 올려 볼까 싶어서.”

오후가 되었다.

내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자 아멜리아가 찾아왔다.

“도련님, 슬슬 시간입니다. 후작 영애의 마중을 준비하시죠.”

“그래.”

옷이야 미리 입어 뒀고.

내가 선선히 책을 덮고 일어나자 아멜리아는 이상하게 보았다.

노란색 아우라.

“뭘 그리 경계해?”

“……도련님이 너무 얌전하게 구셔서요. 이전처럼 또 마을로 달아나실 줄 알고 잔뜩 경계했습니다만.”

“내가 그랬던가?”

몰라서 물은 거지만 아멜리아는 내가 의뭉을 떤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후작 영애가 찾아오실 때마다 온갖 핑계와 변명을 대면서 자리를 피하고 달아나셨죠. 그리고 부도덕한 짓을 하셨고요.”

“우와, 용케도 파혼을 안 당했네?”

약혼녀가 찾아올 때마다 딴 여자 품으로 달아났단 소리 아닌가?

아멜리아는 안도한 얼굴로 내 셔츠 자락을 고쳐 주었다.

“도련님이 마음을 잡고 달라지셔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부디 후작 영애를 정중하게 대해 주세요. 그러면 그분도 이전까지의 일은 잊고 도련님께 잘 대해 주실 겁니다.”

“똥 달고 오는 금붕어가 예쁘게 보이겠어?”

나는 아멜리아의 안내를 따라서 저택 현관으로 나왔다.

방문객을 맞는 예의.

집안의 대표로서 맞아 주는 것이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마차 한 대.

새하얀 여섯 마리 백마가 이끄는 마차는 화려했다.

내가 지켜보고 있는데 옆의 아멜리아가 곤혹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크로셀 후작가의 마차가 아닙니다.”

“그럼 어딘데?”

늑대 수인은 시력도 좋다.

아멜리아는 저어하면서 말했다.

“검은 방패 문양, 부르작 후작 가문의 마차입니다.”

“나 엿 먹이려고 달려오시네?”

약혼녀가 도착한다는 전갈을 듣고 마중 나오니 오는 건 다른 마차.

그것도 약혼녀에게 치근덕거리는 가문에서?

의도야 뻔하다.

“법도가 있으니 같은 마차를 타고 올 리는 없지. 전령이라면 마차로 올 리가 없고. 후작이 직접 행차할 사안도 아니고. 그럼 내 약혼녀에게 껄떡댄다는 놈이 직접 왔군.”

전쟁 선포하러 온 거지.

내 분석에 아멜리아는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도련님의 말씀이 맞군요. 백작님에게 보고할까요?”

“아니,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그사이 마차가 가까워졌다.

다른 하인들도 문양을 알아보고는 수군거렸다.

마차가 저택 앞에 멈췄다.

하인들이 계단을 내려가서 문을 열어 주려고 하자 내가 입을 열었다.

“모두 대기해.”

“예?”

다들 머뭇거렸다.

귀빈이 오면 집주인의 하인들이 마차 문을 열어 주는 게 귀족들의 문화니까.

나는 마차에 묶여 있는 말들을 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초능력, 염동력의 발휘.

지금 수준으로도 고통은 줄 수 있다.

“이히이이이잉!”

멈춰 있던 말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투레질을 했다.

“워! 워워워!”

마부가 당황하면서 말들을 달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여섯 마리의 말에게 시간차로 계속 다리를 톡톡 건드렸다.

따갑게.

벌에 쏘이면 부처님도 못 참지.

이히히힝!

여섯 마리 말들이 거칠게 날뛴다.

마차가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처럼 격렬하게 요동친다.

“으아아악!”

그러자 마차 문이 벌컥 열리더니 금발의 남자가 뛰쳐나왔다.

허겁지겁 나온 놈은 제대로 서지 못하고 바닥을 볼품없이 뒹굴었다.

새하얀 튜닉이 단숨에 흙투성이가 된다.

“크으으윽!”

흙바닥을 엉망으로 뒹군 놈, 인간 남자가 벌떡 고개를 쳐들었다.

제법 반반한 얼굴이지만 지금은 먼지투성이다.

도미닉 부르작.

옆 동네 귀족집의 아들이자 내 약혼녀에게 손 뻗쳤다는 놈이 분하게 외쳤다.

내 주변의 하인들을 향해서.

“이놈들! 거기서 구경만 하고 있을 거냐!”

“응. 다들 즐겁게 구경만 할 거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 재미있는 구경을 누가 포기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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