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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1화 (11/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1)

결코 다시 파혼!

마력약.

인간에게 마력을 부여하는 약이다.

마력약을 앞에 둔 나는 몸속을 다시 점검했다.

“역시…….”

다른 데는 다 허약한데 심장 하나는 기가 막히게 튼튼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신에 피를 돌리는 이 심장은 간혹 탐지하고 있었다.

혹시 이 몸의 어디에 마력이 있는 건 아닌지.

“몸에 마력이 도는 즉시 심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거지. 식탐이 어지간하네.”

보통 인간은 이게 뭔지도 모르고, 알더라도 손댈 엄두도 못 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게 뭔지 안다.

“이게 왜 내 몸에 달려 있는지는 나중에 알아보고.”

나는 마력약을 입속에 털어 넣고는 눈을 감았다.

꿀꺽.

식도를 통해서 마력이 들어간 순간…… 심장이 급격하게 고동쳤다.

피가 도는 속도가 확 올라가면서 몸속에 들어온 마력을 흡수하려고 난리를 친다.

하지만 나는 몸속에 염동력, 초능력을 집중했다.

지금 내 염동력은 책이나 도구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다.

그걸 체내로 돌린다.

몸속에 흐르는 혈류, 마력도 당연히 꽉 붙든다.

쿵! 쿵! 쿵!

식도로 들어간 마력을 내가 꽉 붙들고 놔주지 않자 심장이 더 거칠게 뛰었다.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려고, 계속 출력을 올린다.

“…….”

숨쉬기가 괴롭다.

하지만 여기서 숨을 뱉는 순간 말짱 황이다.

나는 정신을 더욱 집중하고 버텨 냈다.

지금 이건 낚시다.

마력을 달라고, 흡수하려고 게걸스럽게 날뛰던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두근, 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이리 가쁘게 뛰다가는 멎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나는 계속 마력을 붙잡았다.

쿵쿵쿵쿵!

세차게 뛰던 심장이 덜컥 멈췄다.

“…….”

의식을 잃을 것 같은 괴로움.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고 갑자기 심장박동이 돌아왔다.

정상적으로.

푸우우우웃!

심장이 다시 뛰면서 갑자기 전신에 마력이 확 번진다.

이전에 리젠이 먹었던 마력약들.

심장이 잔뜩 꿍쳐 놨던 마력을 토해 낸 것이다.

“……으, 으, 으음.”

이제는 숨을 쉬어도 된다.

하지만 내부에서 강대한 마력이 날뛰니 힘들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괴로움.

하지만 나는 정신을 더욱 집중했다.

여기서 방심하면 몸이 감당하지 못한 마력이 빠져나간다.

혈관을 통해서 흐르는 마력, 이 병든 몸에 단단히 붙들어 매야 했다.

몰아치는 마력의 파도에 빈약하던 혈관이 새롭게 정비된다.

정수리부터 뺨, 목, 어깨, 복부…….

전신에 마력을 돌린다.

발끝까지 타고 내려갔다가 오금을 통해 올라오고 회음을 통과, 단전과 명치에 모이고 다시금 심장으로 돌아간다.

“푸후후…….”

긴 한숨.

온몸의 확장 공사가 1차로 끝났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나는 두 번째 마력약을 몸속에 복용했다.

두근!

새로운 마력의 투입에 정상적으로 돌아갔던 심장이 다시금 뛰었다.

마력을 빨아들이려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온몸의 혈관에 마력이 도도하게 흐르는 상황.

나는 전신의 마력을 컨트롤하는 데 집중했다.

심장이 마력을 잡아먹는 걸 굳이 방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놈이 먹어 치운 만큼 뽑아낸다.

처음보다 흡수력이 약해진 심장은 맥없이 마력을 내주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마력을 먹어 치우려고 날뛸수록 몸에서 마력이 도는 속도가 빨라진다.

크게 개통된 혈관이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후우, 후우우우…….”

두근, 두근…….

난리 쳐 봐야 더는 마력을 흡수할 수 없단 걸 이젠 심장도 안 모양이었다.

심장박동이 천천히 줄어들었다.

바뀌어 버린 몸에 적응하겠다고.

“으음, 으으음…….”

이제 온몸에 마력이 도도하게 흐른다.

나는 눈을 뜨고는 한숨을 토했다.

“아, 이제야 됐네…….”

정신없었다.

심장 박동이 엄청 올라가는 걸 버티고 몸 내부 확장 공사 해야 한다.

거기다가 심장이 먹어 놨던 마력을 다 토해 내는지라 그걸 다루는 것도 정신이 없고.

이중, 삼중의 고통이었다.

“나도 초능력이 없었다면 못 했겠는데…….”

만족스러워하면서 손끝에 마력을 불러내려던 내 머리가 어질해졌다.

“어, 잠…….”

시야가 180도 회전한다.

아, 역시 이 약한 몸으로 너무 무리했군.

나는 기절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옛 기억이 떠오른다.

카라카스에서 환생해서 스승을 만나고 배우다가…… 나는 탄식했다.

이 세계는 너무나 척박하고 황량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신, 칠죄신의 지배 아래서 너나 할 것 없이 괴롭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칠죄신과 맞섰다.

야심이 있었으니까.

좀 더 잘 살아 보겠다고,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내 이상 국가를 건설해 보겠다고.

제국을 건국하고자 사람을 만나고, 적과 싸우는 내 기억 속에…… 갑자기 색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롱테이크로 잡히는 먼 광경.

황금빛 이삭이 너울거리는 벌판에서 뛰어다니는 세 사람.

앞장선 덩치 좋은 남자가 활기차게 웃고, 소녀는 시원하게도 내달린다.

그 둘을 보던 내 시야가 확 뒤집혔다.

멀리 보이는 등.

앞서가는 두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서 젖 먹던 힘까지 쓰지만 무리다.

두 사람은 이미 자연스럽게 마력을 운용하고 있었지만 나는 한 방울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지치고 피곤한 티를 내면 앞의 두 사람이 먼저 가 버릴까 봐.

다시는 놀아 주지 않을 거란 두려움에 애써 뛰고, 뛰다가…….

결국 넘어졌다.

이미 저만치 앞서간 두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웃음소리가 더 멀어질 뿐.

나도 얼른 일어나려고 했지만 발목이 시큰거렸다.

더 뛸 수 없다는 직감.

절망감이 이어진다.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내게 다가오는 발소리.

그게 누군지 돌아보려는데…….

“…….”

눈을 떴다.

딱딱한 목조 천장.

여긴 황궁이 아니라 막내 도련님의 침실이었다.

“후우우…….”

방금 그건 이 몸의 원래 주인, 리젠의 기억인가?

환생을 거듭한 나는 지구와 황제 시릭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억은 영혼에 저장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혼의 기억과 뇌의 기억이 따로 존재한다는 건가?”

혼잣말한 나는 몸을 일으키다가 멈칫했다.

침대 옆, 의자에는 아멜리아가 앉아 있었다.

여느 때처럼 검은 바탕에 하얀 무늬 메이드복을 입은 그녀는 앉은 채로 졸고 있었다.

딱딱한 표정이던 이 늑대 수인이 이리 곤한 얼굴을 보여 주다니.

“…….”

내가 구경하는데 아멜리아가 바로 눈을 떴다.

원래 늑대 수인은 오감이 예민하거든.

“아, 깨웠어?”

“…….”

아멜리아는 나를 빤히 보았다.

녹색의 아우라.

안도하면서도 시선이 나를 탓하고 있었다.

둘러본 나는 지금이 대낮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설마 내가 또 기절했나?”

“5일째입니다.”

“저번에는 열흘이었지? 좋아, 발전하고 있어.”

“…….”

농담을 던져도 아멜리아는 묵묵하게 보고 있었다.

침묵의 끝.

“도련님.”

“어라, 화내는 뉘앙스네? 엄마, 내가 뭐 또 잘못했나요?”

“……대체 얼마나 더 걱정해야 하는 건가요?”

안 통하네.

아멜리아가 한탄하자 나는 당황했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이 몸에 잔류한 감정이다.

원래 리젠은 아멜리아에게 약한 모양이었다.

하긴, 어린 시절부터 업어 키운 누나이자 어머니 같은 사람에게 막 대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나는 과장스럽게 손뼉을 치고는 일렀다.

“자,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모두 다 해결됐어.”

“요즘은 좀 괜찮아지셨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쓰러지셔서 얼마나 놀란 줄 아십니까?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의원도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하고요. 백작님도, 큰도련님도 걱정하셨습니다.”

“그야, 음…….”

황제 시절, 옥체 보존하라는 말은 지겹게 들었다.

천하 만물을 다스리는 황제가 몸이 상했다가는 만백성이 탄식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지금 아멜리아의 말은 다르다.

도련님이 아니라 나 개인의 건강과 안녕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난 강해졌거든. 자, 이거 봐라?”

파악!

나는 손에 마력을 불러일으켰다.

손가락 끝을 맴돌던 붉은 마력이 주황색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노란색으로 변했다.

노란색이라니, 3계위네?

스물에 3계위라면 대단한 성취지?

황제인 시릭도 이 나이 때는 2계위였으니까.

“이제 어디서 맞고 다니진 않겠네. 자기 일터에 와 달라는 러브콜도 쇄도할 테고. 스물에 3계위야!”

“…….”

한데 아멜리아는 내 손의 마력을 보고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어, 마력 한 방울도 없던 도련님이 갑자기 이런 높은 경지를 구사하면 막 놀라고 감탄해 줘야 하지 않아?”

“그게 도련님의 건강보다 소중한가요?”

아멜리아는 딱 잘라 말하고는 대답했다.

“도련님이 약하건 강하건, 상관없습니다. 도련님이 사실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관용과 자연을 사랑하는 미덕을 갖추셨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

나는 마력을 껐다.

아멜리아의 눈가에 살짝 물기가 어린 걸 보니 뭐라 할 수 없었다.

……진짜 철부지 아들놈이 된 기분이었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앞으로 이런 일 없을 거야.”

“못 믿겠어요. 도련님은 늘 그렇게 약속하셔 놓고 계속 어기셨으니까.”

“약속하지. 미안해, 아멜리아. 앞으로는 주의할게. 혹시 만에 하나 쓰러지게 되면 그 전에 연락해 둘게.”

내가 농담을 섞어 가면서 사과하자 아멜리아는 긴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걱정했습니다. 매번 이렇게 놀라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 것 같아요.”

“음, 계속 고생하는데 휴가라도 받아서 쉬지?”

“안 됩니다. 도련님이 또 무슨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니까요.”

아멜리아는 눈가를 훔치고는 말했다.

“일어나셨다고 백작님에게 바로 전갈을 넣겠습니다. 저는 목욕물과 의복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아멜리아가 나가자 나는 웃음을 지었다.

“나쁘지 않네.”

이렇게 마음속 깊이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나 개인을 걱정해 주는 사람.

정말 나쁘지 않다.

백작의 집무실.

백작은 의자에 앉아서 나를 맞아 주었다.

“몸은 좀 어떠냐? 의사가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던데…….”

“괜찮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로 걱정시켜 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나는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아멜리아가 부탁하기도 했고, 또 백작의 얼굴도 정말 수심에 잠겨 있었다.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3일 뒤에 크로셀 후작 영애가 찾아온다는구나.”

“왜 온답니까?”

내가 몰라서 묻자 백작은 어이없어했다.

“그걸 몰라서 묻느냐? 네 약혼녀가 널 보러 오지, 날 보러 오겠느냐?”

“……예?”

나는 식겁했다.

이 얼간이 몸에게 약혼녀가 있었다고?

기막혔지만 이해는 갔다.

카라카스에서 스물이면 애 아빠여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귀족은 결혼으로 집안끼리 결속하고 권세를 불리지.

리젠에게 약혼녀가 있는 게 당연했다.

“네 상태가 좋지 않다고 답장을 보냈는데…… 그쪽은 이미 근처까지 왔으니 들르겠다는구나.”

“아니, 그냥 가던 길 좀 가시지.”

백작은 혀를 차기만 할 뿐이다.

“그쪽도 좋은 생각으로 오는 건 아니다. 부르작 후작 아들까지 같이 온다는 걸 보니 말이다.”

“시키지도 않은 세트 메뉴네요. 반품 처리 안 됩니까?”

“이 녀석아. 약혼과 결혼은 가문의 일이다.”

백작이 한숨을 쉬고는 설명해 주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 자식에게 가르치는 투.

왠지 싫은 기분은 아니라서 난 얌전히 들었다.

“크로셀 후작이 자기 딸과 너를 맺으려던 이유는 우리가 12가문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12가문 중에서도 약세. 후작도 간을 보던 차에 부르작 후작의 아들이 그녀에게 반한 모양이더구나.”

“후작 아들놈이 내 약혼녀랑 떡치고 싶어 한다고요?”

“으음. 말이 그게 뭐냐. 결혼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백작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편지 두 개를 들어 보였다.

“그래서 네 약혼녀의 서신이 당도한 직후에 부르작 후작의 서신이 들어왔다.”

“파혼 안 하면 뜨거운 낮을 보내게 해 주겠다는 협박입니까?”

“대충 그렇다.”

귀족의 세력 구도에서 백작보다 후작이 위다.

하지만 리브라타는 2대 황제에 도전할 수 있는 12가문의 일원.

귀족의 권세만으로 무작정 무시할 순 없다.

누가 우위라고 하기 힘든 상황.

백작도 골치 아픈 얼굴이었다.

“부르작 후작은 바로 우리 옆 동네, 거기다 세력도 강하다. 일이 복잡하게 됐어.”

“간단하게 파혼…….”

내가 이제 와 약혼하겠냐?

반사적으로 말하려던 나는 멈칫했다.

“아니다. 그게 아니죠.”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거냐?”

“파혼하면서 최대한 받아 내겠습니다.”

“뭐라?”

백작이 어이없어했지만 나는 힘차게 말했다.

“헤어지는 대신에 위로금을 뜯어내겠습니다. 아, 전부 제가 챙겨도 되죠? 먹고살기 힘들어서요.”

“…….”

“자기 아들하고 헤어지라고 말할 때면 꼭 돈 봉투 주던데. 나는 좀 많이 받으렵니다.”

백작은 기가 막힌 얼굴이다가 말했다.

“진심이더냐? 크로셀 후작 영애는 아름답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물론! 반드시! 꼭! 맹세코! 파혼하겠습니다!”

이제 와 약혼? 결혼?

그건 황제 시절에 질리도록 해 봤다.

나는 독신! 자유롭게 펑펑 놀면서 막살 거다!

파혼하고 부자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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