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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7화 (7/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7)

먹는 건 아우 먼저, 멕이는 건 형님 먼저

오후의 리브라타 백작가.

백작이 불쑥 장남 로데릭 리브라타를 불렀다.

로데릭은 내심 켕겨 하면서도 백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설마 리젠을 손봐 주려고 했던 게 걸렸나?’

기사장 우로스에게 은밀하게 명령했는데, 정작 그놈이 허리가 나갔다잖은가?

생각도 못한 결과였다.

남의 이목을 살까 봐 자세히 알아보진 못했지만.

집무실에서 기다리던 백작이 불쑥 말했다.

“로데릭, 두 달 뒤면 원탁회의다. 황도에 올라갈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

“예, 물론입니다.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탁회의.

2대 황제를 선출하고자, 12가문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자리다.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다시피 이번에도 회의가 무산될 공산이 높다. 하지만 다른 가문에 밀려서는 안 된다. 다른 내로라하는 귀족에 비해서 우리 리브라타 가문이 손색이 있는 건 사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도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물론입니다! 우리 가문의 이름을 황도에 확실히 떨치겠습니다.”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야…….”

백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뜻밖의 말, 로데릭이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백작이 말을 돌렸다.

“막내 놈의 이야기를 들었느냐?”

“……아, 몸성히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다행입니다.”

로데릭은 시침을 뚝 뗐다.

백작이 넌지시 말했다.

“애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좀 알아야지. 그간 무던히도 사고를 쳤지만 그래도 네 동생이다.”

“…….”

로데릭은 어색한 미소만 띠었다.

백작이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 황도에 올라갈 때, 리젠을 데려가는 건 어떠냐?”

“예?”

“그 아이가 엘프 문자를 읽을 줄 알더구나. 그 점을 잘 이용하면, 엘프들의 후원을 좀 더 끌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

“아버님, 엘프들이 자존심이 세고 도도한 이들인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거기다가 리젠은 늘 추잡한 사고만 쳤고요. 데리고 갔다가 큰일이라도 벌어질까 두렵습니다.”

“으음, 그건 나도 우려하는 바이다. 그러니까 네가 잘 감시해 보라는 거고.”

“엘프들은 자기들의 문자를 읽을 인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코웃음이나 치고 끝낼 이들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

백작은 물끄러미 로데릭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이 이야기는 미뤄 두자. 나는 황도에 편지를 보낼 테니 너는 너대로 준비를 잘하거라.”

“예, 그럼…….”

“아, 그리고 오늘 저녁부터는 리젠도 식사에 참석한다.”

“예?”

로데릭의 얼굴이 굳어졌다.

물론 리젠도 백작의 아들, 같이 식사하는 게 예법이었다.

하지만 리젠의 망종 짓에 정나미가 떨어진 백작이 식사에 부르지 않은 지 오래였는데?

로데릭은 애써 웃어 보였다.

“……기쁜 소식이군요. 잘됐습니다.”

“그래. 그럼 가 보거라.”

“예.”

로데릭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돌아서 집무실을 나왔다.

복도로 나온 로데릭은 걸음을 멈추고는 이를 꽉 악물었다.

“……리젠.”

자꾸 거슬리게 눈앞에서 얼쩡거린다.

오늘 저녁 식사 자리라?

여차하면 빌미를 잡아서 치워 버리리라.

* * *

리브라타 가문의 저녁 식사 자리.

아버지 엘런 리브라타 백작.

장남 로데릭 리브라타.

그리고 막내인 나, 리젠 리브라타.

“우거지상인 남자 셋만 모여서 먹고 있으니 분위기도 우중충하네요.”

내가 너스레를 떨어도 아버지와 장남은 묵묵부답이었다.

고기를 썰고, 찍어 먹는 데만 집중한다.

완전히 무시당한 나는 식기를 내려놓았다.

“아, 저기 백작님.”

“뭐냐?”

“마력약 좀 주세요. 백작가의 보물 창고에 한두 개쯤은 있겠죠?”

내가 가볍게 말하자 두 남자가 멈칫했다.

로데릭은 기가 막힌 얼굴로 나를 보았다.

“뭐라고? 너 지금 마력약을 또 먹겠다고 했냐?”

“또?”

“네가 먹은 마력약만 벌써 다섯 개인 걸 잊었냐? 그게 돈으로 치면 어마어마한 걸 알 텐데?”

“어, 마력약도 급이 있을 텐데? 내가 얼마나 해 먹었죠?”

“1급 둘! 2급 셋이다!”

로데릭은 불처럼 화내고 있었다.

나는 잠깐 생각해 보곤 말했다.

“어, 마력약을 먹으면…… 이미 마력을 쓸 줄 아는 사람도 강해지죠?”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걸 내가 홀랑 다 털어먹어서 짜증 난다는 겁니까?”

내가 가볍게 묻자 로데릭은 멈칫했다.

하긴, 장남인 로데릭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만도 했다.

1급 마력약은 드래곤들이 만드는 거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막내 놈이 식후 푸딩처럼 먹었으니 아깝겠지.

“아, 뭐, 형님이 드셨어야 할 영약을 내가 죄다 뺏어 먹어서 아니꼬운 건 알겠는데요. 이번에는 진짜 좀 필요하거든요?”

“누가 아니꼽다고 했냐? 먹어도 소용없는 놈이 뭘 더 욕심내는 거냐!”

로데릭은 뜨끔한지 목소리를 키웠다.

“마력약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내가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에게 마력약을 먹여서 더 강하게 성장하게 만들 거다! 그 자식의 자식에게도 먹일 거고! 마력약은 대대손손 재능 있는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가보란 말이다!”

“아니, 뭔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누가 먹어도 내가 먹는 게 나을걸요?”

“뭐라…….”

“설명해 봐라.”

잠자코 듣던 백작이 불쑥 말했다.

흥분해 있던 로데릭도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곤 말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마력약들은 허공에 날아간 게 아닙니다.”

“하지만 넌 지금도 마력이 한 방울도 없을 텐데?”

“그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보통 귀족은 적은 양이라도 마력을 타고납니다. 팔다리 장애로 태어나도 마력은 있죠.”

“…….”

“한데 저만 마력이 0, 심지어 마력약을 먹어도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성을 내던 로데릭도 귀를 기울였다.

나는 뜸을 들이다가 툭 말했다.

“저도 그걸 알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습니다. 엘프들의 책을 읽어 보던 것도 그 이유고요. 그리고 해결책을 발견했습니다.”

“흐으음…….”

물론 엘프들의 책을 보고 알아냈다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엘프 문자를 읽는 걸 보고 놀란 백작에게는 그럴듯한 설명이겠지.

사고뭉치인 줄 알았던 못난 자식이 사실 남다른 면이 있다?

아버지로선 솔깃해지지.

백작은 한동안 생각하다가 로데릭을 보았다.

“네 생각은 어떠냐.”

“예?”

“의견을 말해 봐라.”

로데릭은 멈칫하다가 말을 골랐다.

얼굴에는 절대 내놓기 싫다고 쓰여 있다만…….

“만에 하나 리젠이 마력을 깨친다면 그건 우리 가문을 위해서도 크게 기꺼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리젠은 우리에게 그만한 확신을 줘야 할 겁니다. 이전처럼 아까운 낭비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요.”

“그래, 네 의견은 그러하냐?”

“예, 그렇습니다. 비록 리젠이 내 동생이라고는 하나 마력약을 무턱대고 내주는 일은 더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문의 훗날을 위해서.”

로데릭이 힘주어 말했다.

백작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리젠, 조건이 두 가지 있다.”

“말씀하시죠.”

“첫째, 별관에 머무는 손님을 설득해라.”

“아버지!”

로데릭이 놀랐지만 난 뭔 소리인지 모른다.

내가 멀뚱히 보자 백작이 한숨을 쉬었다.

“잊었느냐? 우리 리브라타 가문은 엘프의 후원을 받는 이들, 엘프가 보낸 친선대사가 별관에 머무르고 있다. 평소에는 별관 밖으로 나오지도 않지만.”

“저보고 설득하라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이번 황도의 원탁회의에서 엘프들이 보다 강하게 지지해 주길 바란다. 그자가 황도에 같이 올라간다면 그 증명이 되겠지.”

그러니까 황도로 가는 길에 그놈을 참석시키면 된다 이거지?

나는 잠깐 두 사람을 살폈다.

로데릭의 낭패한 얼굴, 거기다가 백작의 굳은 표정.

이거 척 봐도 귀찮은 일일 것 같다.

아, 하지만 마력약은 구하기 힘들단 말이지.

이 빈약한 몸을 좀 돌리려면 필요하고.

저울질해 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뭡니까?”

“그건 마력약을 주면서 말하마.”

“…….”

나는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겠습니다.”

저녁 식사 자리가 끝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으로 돌아가는데 사람이 따라붙었다.

성급한 발걸음.

장남 로데릭이었다.

“급한 걸 보니 똥 마려운가 본데, 먼저 가시죠.”

내가 우아하게 옆으로 비켜서자…… 로데릭이 나를 벽에다 밀어붙였다.

쿵!

“대체 무슨 속셈이냐, 리젠!”

“벽쿵은 여자에게나 먹히는데.”

로데릭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뭐가 그리 급해?”

“뭐라고?”

“귀족은 장자상속제야. 큰 사건이 없는 이상, 당신이 다음 리브라타 백작이라고. 이 저택과 영지는 온전히 댁 거야.”

“이 얼간이 놈이…….”

로데릭은 으르렁거리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지금까지 가문에 끼친 피해가 얼마나 되는데 그런 뻔뻔한 소리를…….”

“그래서 그거 벌충하려고 이러고 있잖아. 기사장의 일도 묻어 줬고.”

흠칫.

로데릭은 움찔했다.

나는 보란 듯이 한숨을 쉬어 보였다.

“그냥 넘어가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갚아 준 거 아닌가? 나는 아버지에게 형님의 수작을 일러바칠 수도 있었는데.”

“너 지금 대체…….”

“형제 싸움을 고자질해 봐야 부모님 마음만 찢어질 뿐이지. 그러니까 우리 둘이서 적당히 땡처리합시다.”

“…….”

“효도가 뭔지 몰라? 이게 바로 효도지.”

로데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사장이 작살났다는 소식, 내가 손봐 준 거라고 멋대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물론 자기가 무리하다가 삐끗한 거지만…… 내가 말해 줄 필요는 없지?

나는 씩 웃어 보였다.

“왜 그렇게 조급해하는지 모르겠지만 릴랙스하시고. 서로 좋게 갑시다.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해 줄 테니까.”

“…….”

로데릭은 팔에서 힘을 빼고는 한발 물러났다.

불신, 불안, 경계.

나는 너스레를 떨면서 옷을 털었다.

“아, 셔츠 구겨졌네. 이거 좀 펴 주시지?”

“……네놈이 그 깐깐한 엘프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냐?”

“만약 설득하면 그땐 어쩌시려고?”

내가 도발하자 로데릭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이놈이, 무슨 허튼수작을…….”

“이렇게 합시다. 내가 못 하면 앞으로 찌그러져 살지. 하지만 만약 해낸다면, 당신이 아버지에게 졸라서 마력약을 하나 더 뜯어내서 주는 겁니다.”

“…….”

“콜?”

지금 이 몸을 고칠 계획이 있긴 한데, 마력약은 많을수록 좋았다.

내가 말하자 로데릭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래, 해 봐라. 만약 못 해낸다면 각오해라!”

강해질 각오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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