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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고인 황제놀음-1화 (1/230)

두 번 고인 황제놀음 (1)

황제는 종신직이다

황제는 종신직이다.

“아, 양위하면 되잖아. 양위하면! 내 자식 중에 거, 적당히 골라잡아!”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어전회의장.

머리를 숙인 문무백관, 대소 신료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황좌에 앉은 나는 기가 막혀 대꾸했다.

“야, 내가 뭐 얼마나 더해 줘야 하냐? 칠죄신 추방해 줘, 종족 통합해서 제국 건설해 줘, 문명 수준 올려 줘. 뭘 더 얼마나 해 줘야 하냐?”

“폐하! 제국이 건국된 지 고작 20년이옵니다! 어찌 벌써부터 자리를 떠나시려고 합니까!”

“야, 보통 인간은 100년도 못 살아. 제국 세워지기 전까지 합치면 내가 40년을 일했다? 이제 슬슬 관둬도 되잖아?”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인간도 간혹 있지만 다수가 엘프, 다크엘프, 천족과 마족, 수인.

다들 수백 년, 천 년, 만 년까지 산다는 종족이다.

“나 좀 쉬자. 아저씨는 이제 지쳤어요. 이제 은퇴해서 자식새끼 장가보내고 손자 재롱이나 보면서 살고 싶거든?”

“폐하! 황자님은 이제 갓 걸음마를 떼셨습니다!”

“어찌 저희들을 저버리려고 하십니까?”

“황자, 황녀분들이 장성하시기 전까지는 제국을 통치해 주셔야 합니다!”

엘프 재상이 목청을 울리자 다들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는 기가 막혀서 소리쳤다.

“야! 니들 기준으로 장성하려면 앞으로 200년이잖아! 인간인 난 죽어! 죽는다?”

“폐하! 정정하시면서 어찌 그리 불길한 말씀을…….”

“…….”

미치겠다.

나는 손을 눈가에 얹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 젊을 때는 예쁜 여자랑 야한 일 하는 거 좋았지.

더욱이 인간이 아닌 종족, 이종족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지구에선 여자를 신 포도처럼 보던 내가 그놈의 결혼을 여덟 번이나 할 정도로!

엘프 공주님? 다크엘프 암살여왕? 날개 달린 천사인 천족과 푸른 피부의 마족 미녀? 개꿀!

“개꿀이 아니라 개독이었어. 젊은 날의 치기였어. 이러면 안 됐어. 황후를 죄다 이종족으로 들이면 안 됐어.”

“폐, 폐하!”

“설마 지금 황후마마들을 폐하고자 하시려는 겁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은 했고 이젠 통곡하고 싶어요, 이것들아.”

내가 세운 제국, 천년제국에서 인간의 비율은 약 20%였다.

나머지 80%의 이종족들은 죄다 수백 년, 천 년을 사는 종족이기 때문에 인간인 나와 시간 감각이 너무나 달랐다.

“……그래, 그러니까 니들은 내가 이놈의 제국 통치를 100년, 200년, 앞으로 300년은 더 해 주길 바란다 이거지? 내 뼈가 부서지다 못해 사골 국물이 나올 때까지 우리고 싶다 이거지?”

“…….”

다들 시선을 교환하더니만 얼른 고개들을 끄덕인다.

나는 침통하게 물었다.

“……그렇게 300년 지나서 내 자식새끼가 다 크면 이럴 거지? 걘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까 내가 계속해야 한다고?”

“폐하! 우리 천년제국은 폐하의 영도력 앞에 무궁한 발전을 할 것입니다!”

“부디 천년군림 하소서!”

“천년군림 하소서!”

문무백관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린다.

어전회의장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본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퍽!

머리에 쓰고 있던 황관을 던져 버렸다.

아까부터 내가 천 년 해 먹으라던 엘프 재상 놈의 대가리에 명중!

“폐, 폐하!”

“폐하가 또 발작을!”

“고정하시옵소서, 폐하!”

나는 무시하고는 황좌에 기대 놨던 왕홀도 집어 던졌다.

이번에는 다크엘프 정보국장의 머리에 명중!

“고정하다 못해 고장 났다, 이것들아!”

하는 김에 두르고 있던 망토도 벗어 던지고.

신고 있던 신발도 휙휙 집어 던졌다.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신하들이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움츠렸다.

그 와중에 대장군, 늑대 수인 레릭은 바닥에 구르는 내 신발을 양손으로는 잡아채더니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러더니 넙죽 내민다.

“폐하, 발이 시리실 텐데…….”

“아, 저리 안 가!”

내가 발길질을 하자 레릭은 깨갱 물러나서는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신발을 무슨 보물처럼 가슴팍에 꼭 감싸 안는 게 참…….

“내 신발이 무슨 연애편지야? 뭘 그렇게 꼭꼭 감춰?”

“폐하, 고정하시고…….”

“고정해서 이 정도다. 얼른 안 나가?”

내가 으르렁거리자 다들 입을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아, 다 안 나가? 칼춤 추는 폭군이라도 돼 주랴?”

“폐, 폐하!”

“소신들은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부디 진노를…….”

신하들은 뒷걸음질로 물러나면서도 내가 던진 망토며 황관을 챙겼다.

회의장이 텅 비고 딱 한 사람이 남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관, 나는 인상을 팍 썼다.

“이게 골든벨이냐? 최후의 1인이시게? 얼른 안 나가냐?”

“저는 천명을 받들어서 폐하의 언동을 모두 기록하는…….”

“나 지금부터 여기서 딸 칠 거다. 남아서 내 거시기의 형태와 모양까지 기록하려고? 지엄하신 황제 놈이 황좌에서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기록하고 얼른 꺼져.”

내가 쏘아붙이자 사관은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 그럼 즐거운 시간 되셨으면 합니다, 폐하!”

“땡큐 뻑큐다, 이 새끼야.”

사관까지 물러나자 나는 황좌에 푹 기대서는 한숨을 쉬었다.

“……아, 의자 딱딱해.”

물론 내가 일부러 이리 설계한 거긴 하다.

칠죄신과의 투쟁을 끝내고 겨우 만들어진 인류의 제국, 천년제국을 다스리는 자는 편해서는 안 된다!

“……젊다고 너무 폼 잡았어. 그러면 안 됐어.”

이 세계, 카라카스의 패권을 거머쥔 천년제국의 정점인 황제면 좋을 것 같냐?

매일 맛있는 거 먹고, 예쁜 여자랑 섹스하고, 권력 마음대로 휘두르고 그럴 것 같지?

아무리 즐거운 일도 반복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나는 책임감이 강했다.

지구에서 살다가 죽고, 카라카스에서 환생하고 살면서 책임감이 커졌다.

칠죄신과 싸우면서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방금 나간 문무백관들, 그들은 나를 따라 목숨을 걸고 싸웠고, 제국이라는 초유의 지배체제를 만드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머리에 불 지르라면 진짜 하는 충성심 강한 놈들.

문제는…… 저놈들이 나만 보면서 우는소리 한다.

온갖 종족이 섞인 천년제국, 가치관과 문화가 달라서 온갖 잡음이 많았다.

신하들도 자기 종족에 따라서 와리가리하고.

결국 내가 전권을 틀어쥐고 교통정리를 해 줘야 했다.

20년이 넘게 계속!

“노이로제 걸리겠어…….”

내가 언제까지 이 자리에서 저놈들 뒷정리를 해 줘야 하냐?

한숨, 또 한숨.

“진짜 죽여 버릴 수도 없고…….”

다들 날 따라 목숨 걸고 싸웠고, 또 나한테 충성하잖아.

8남매 아버지가 된 기분이다.

자식 놈들이 예쁘기는 한데…… 틈만 나면 서로 싸워.

타이르고 달래도 내 앞에서만 얌전하게 굴지, 잠깐 딴 데 보고 있으면 또 싸워!

“아니, 나 아버지 맞지.”

마누라, 격식 차린 말로는 각 종족의 황후들.

당연히 자식들도 있다.

이종족은 유년기가 기니 애가 철이 들라면 최소 50년, 아니 100년?

“애들이 클 때까지 이걸 계속하라고?”

아니, 애들이 커도 나한테 이러라고 할 것 같은데?

“까마득하다. 그때 가서 양위한다고 하면 보나 마나 또 통촉하라고 하겠지…….”

황제에 오르는 게 어렵다고?

양위는 더 어렵다.

선조가 광해군에게 양위하겠다는 정치놀음으로 신하들 대가리를 퍽퍽 날리지 않았던가?

저 문무백관 놈들은 내가 진짜로 양위하려는 건지, 아닌지로 OX 퀴즈 놀음하면서 결사반대할 것이다.

당장 양위 대상으로 지목된 자식 놈도 명을 거두어 달라고 할 거고.

애당초 누굴 후계자로 삼을지도 정해야지.

“아,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다.”

수많은 피를 흘려서 일궈 낸 제국, 나는 이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정말 죽어라 일했다.

훗날 내 시호는 야근황제겠지.

하지만 20년 내내 정신없이 일하니…… 지쳤다.

번아웃.

한국인이라면 이제 국민연금이 어른거리는 나이인데.

앞으로 50년, 100년 더 일하라니.

더욱이…… 앞으로 나를 기다리는 건 후계자 다툼이다.

내 아내, 황후들의 자식 중 누가 내 후계자가 될지 눈치 싸움.

여기저기서 슬슬 내 의중을 떠보려는 게 보인다.

황후들 얼굴 본 지도 10년 넘었고.

“후우우.”

털썩.

나는 황좌에서 내려와서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또 이렇게 화 한번 냈으니 내일이면 정리해야지.

저 통촉브라더즈, 망극시스터즈들도 내가 내일이면 풀릴 걸 알고 물러간 거고.

“내가 대체 언제까지…….”

불평하면서도 이해하고 있었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사는 이종족들의 시간관념은 다르다.

내가 제국을 다스린 20년이 그들에게는 2년도 안 되는 기간이리라.

“아, 그냥 대통령으로 바꿀…… 안 되지. 이놈들은 아직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기반도 없잖아. 애당초 나한테만 머리 숙이는 놈들이고.”

각 종족의 대표자, 실력자들은 다들 자존심이 강했다.

내가 꺾고, 어르고 달래서 충성을 받아 낸 것이지.

결국 내가 앞으로 계속 일해 줘야 한다.

“…….”

늘 같은 결론, 나는 허공을 향해 손을 저었다.

찌지지직!

의식을 집중하고 마력을 한계까지 불어 넣는다.

그러고는 초능력, 염동력으로 내가 장악한 공간을 억지로 찢어 버렸다.

쭈우우욱!

공간이 갈라지면서 차원에 틈이 생긴다.

그 틈으로 보이는 그리운 광경.

고층 빌딩, 오가는 차들.

내가 이 카라카스로 환생하기 전에 살았던 세상, 지구다.

“그냥 저쪽으로 도망가 버릴까…….”

시간과 공간은 설사 나라도 함부로 다룰 게 아니다.

그냥 이렇게 틈으로 엿보는 게 고작.

“아.”

멍하니 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차원의 틈에 손대는 건 정말 위험하다는 것도 깜빡하고.

꾸우우욱.

저편으로 손이 넘어간 순간, 가슴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왔다.

“어. 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통증이라니?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 무력의 정점에 오르고 너무 오랜만이라서 믿어지지 않았다.

“어, 으…….”

심장이 멈췄다.

가슴을 퍽, 퍽 두드려 봐도 반응이 없다.

“……뭐, 어.”

마력도 응답이 없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숨을 쉬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괴로워하던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황제는 종신직.

죽으면 그만둘 수 있다.

“…….”

지구에서 죽고, 이 카라카스에 환생해서 황제까지 오른 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라는 걸 안다.

그냥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지!

황제 되고서 제대로 놀고먹지도 못했는데 덜컥 죽다니!

억울해서라도 살아야겠다!

하지만 내가 안간힘을 써도 호흡이 안 돌아온다.

멀어지는 의식.

아무래도 진짜 위험하다.

“어, 으…….”

내가 이렇게 죽으면 남은 놈들이 망칠 것 같은데…….

걱정도 잠시.

눈이 감긴다.

쉴 수 있다는 해방감.

그리고 눈 뜨면 일 안 할 거라는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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