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돌파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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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일루젼은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초월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융합 에너지를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한 존재였다.
유저들을 게임에 더욱 몰입시키고 그들을 계속해서 자극함으로써 가상현실과 현실의 구분을 점점 없앤다.
그렇게 되면 현실 속에서의 유저들이 가진 영혼과 가상현실 속에서 가진 영혼이 점점 하나로 합쳐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무형의 에너지는 곧 융합 에너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쌓이면 굳이 어둠의 화로 같은 도구를 이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융합이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의도가 레아의 간섭으로 일그러졌다.
레아는 라이프 스톤(소울 스톤)이라는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만들어내 유저들이 가진 현실의 영혼을 철저히 가상의 영혼과 분리시켰다.
그 결과 지금처럼 유저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이 테르코나까지 습격하게 된 것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이미 어둠의 숲에 들어선 것 자체로 소멸되었을 나약한 존재들.
하지만 레아가 교묘하게 풀어버린 힘의 한계선 때문에 유저들은 필요 이상의 힘을 과도하게 얻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칼슈타인은 그게 짜증 났다.
그는 가뜩이나 신경 쓰이는 게 많았는데 정말 꼬여도 확실히 꼬여만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 직접 나가서 막든지…… 무조건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해.”
이런 일을 처리하라고 이세리노를 남겨둔 것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세리노의 마력도 쪽쪽 뽑아내 어둠의 화로에 처넣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모든 걸 자신이 직접 해야 했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칼슈타인의 불편한 심기를 칼같이 눈치채는 이세리노였기에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곤…… 불을 향해 뛰어드는 나방 같은 존재들인 유저들에게 이 억울한 감정을 폭발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아주 갈기갈기 잘게 찢어 죽여주마.’
칼슈타인만 아니라면 세상에 어떤 존재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추앙받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이세리노였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는 게 상당히 억울했고, 그 억울함을 풀 곳을 드디어 찾았다.
에이션트 실버 드래곤 이세리노.
당연히 그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린 드래곤 베나인?
베나인 같은 드래곤은 열 마리가 힘을 합쳐도 이세리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강했다.
물론 그래 봤자 칼슈타인과 비교하면 별거 아닐지 몰랐지만 어쨌든 절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절정으로 치닫는 테르코나에서의 전투.
그 전투는 이세리노의 개입으로 더욱 치열하게 변할 예정이었다.
크어어엉!
모든 몬스터를 굴복시킨다는 드래곤 피어(Fear).
특히 에이션트 드래곤인 이세리노의 드래곤 피어는 영혼마저 얼려 버릴 것 같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보통의 사람들에게나 통용되는 얘기였다.
프로젝트 S.
그들은 또 달라졌다.
원래부터 특별했던 그들이었지만 어둠의 숲과 거울의 미궁을 돌파하며 한 번 성장하고, 현실 세계에 다녀와 진실을 깨닫고 또 한 번 성장했다.
두 번의 성장은 그들의 육체가 아닌 영혼에서 일어났다.
영혼의 성장.
단순히 능력치가 올랐다거나 공격력, 방어력이 오른 것이 아니었다.
정신력.
모든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이것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예전보다 더 특별해졌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그 대단하다는 에이션트 드래곤의 드래곤 피어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잠깐 움찔(?)한 정도가 전부였다.
이런 프로젝트 S의 반응이 너무 의외였던 것일까?
애써 드래곤의 모습으로 임팩트있게 등장했던 이세리노는 살짝 무안함마저 느꼈다.
[……제법이군.]
괜히 힘을 써서 드래곤 피어를 내지르는 바람에 프로젝트 S와 한창 싸우고 있던 가디언들만 쓰러져 버렸다.
정신적으로는 무척이나 취약한 가디언들이었기 때문에 그의 드래곤 피어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그는 애꿎은 아군을 전부 쓰러뜨린 결과만 만든 것이었다.
쿠쿠쿵!
어쨌든 첫 등장은 다소 민망했지만…… 일단 거대한 이세리노의 육체가 바닥에 착륙하자 땅이 울릴 정도로 큰 충격이 느껴졌다.
프로젝트 S의 유저들은 대부분 드래곤을 직접 본 경험이 있었다.
그린 드래곤 베나인.
한때 드래곤 사냥의 열풍을 만들었던 그 베나인 덕분에 대부분의 유저가 드래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세리노는 그들이 알고 있는 드래곤보다 훨씬 컸다.
대략 베나인의 네 배 정도는 큰 느낌이었다.
[어리석은 녀석들…… 이곳이 어디라고 기어들어 왔느냐. 너희에게 진정한 절망이 뭔지 알려주마.]
몸 전체가 은색 빛깔로 번쩍이는 이세리노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프로젝트 S의 유저들을 쓸어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칼슈타인을 도와 수많은 차원을 융합시켜 보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악하는 많은 존재를 경험했다.
하지만 결국 모두 그저 발악일 뿐이었다.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을 위협하지 못했다.
그만큼 드래곤 일족에게 내려진 신의 축복은 강력했다. 그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세월을 살아가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을 소유했다.
차원의 융합을 책임지는 일족이 된 이후…… 지금까지 아무 차질 없이 그 일을 해왔다.
한 번의 실패도 없었고, 심지어 위기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이세리노는 지금 자신의 발 앞에 있는 이 벌레 같은 인간들 역시 가볍게 짓밟아주면 모든 일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모두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냥…… 죽어라!]
쿠쿠쿵!
이세리노는 정말로 모두를 가볍게 밟아서 죽이려는 것 같았다. 처절하게 하나하나 모두 짓이겨 버리면 조금 속이 시원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쾅!
[일단 한 마…… 응?!]
분명 한 마리를 가볍게 밟아서 죽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절대 가볍게 짓이겨진 느낌이 아니었다.
다크오크.
그가 타고 있던 자이언트인 돌격전차가 드래곤의 앞발을 양손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쩌저저저적!
강력한 힘에 사정없이 갈라지는 바닥.
하지만 그 와중에도 돌격전차는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이…… 족발…… 치우라고!!”
그그그긍!
“으아아아아!”
쾅!
드래곤의 앞발을 쳐내는 돌격전차.
순간 이세리노는 기우뚱 휘청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쿵쿵쿵!
[……이, 이게…….]
생각지도 못한 반격. 이세리노는 순간 당황했다.
“절망? 웃기고 있네. 누가 절망을 느낄지는 싸워봐야 아는 거지.”
다크오크는 드래곤, 그것도 무려 에이션트 드래곤을 앞에 두고도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이런 건방진 놈!!]
화르르륵!
갑자기 타오르는 불길. 그 불길은 순식간에 프로젝트 S를 덮쳤다.
용언 마법의 위대함…… 5써클 마법인 파이어필드 정도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저 단 한 번 거센 불길이 솟아올랐을 뿐 그 누구도 불길에 휩싸이지 않았다.
너무나 손쉽게 불길을 막아내거나 소멸시킨 프로젝트 S의 유저들…… 그들에게 이 정도 마법은 거의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다냐?”
마치 가소롭다는 것 같은 다크오크의 음성.
이세리노는 그런 다크오크의 반응에 점점 분노가 쌓여갔다.
휘이이잉!
이번엔 강력한 꼬리 공격이었다.
이세리노의 거대한 은색 꼬리가 땅바닥을 휩쓸었다.
이 정도의 파괴력이라면 분명 벌레들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이세리노.
하.지.만. 이번에도 그건 그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꽈과광!
꼬리는 정확히 프로젝트 S의 유저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러나 단지 휘둘러진 게 전부였다.
채 다 휘둘러지지 못하고 중간에 멈춘 이세리노의 꼬리…… 그것은 돌격전차와 다른 자이언트 몇 대에 의해 허공에서 멈춰 버렸다.
드드드드!
강력한 힘이 들어간 공격인 건 맞았지만 자이언트들이 힘을 합치자 그것마저 막아내 버렸다.
[……!!!!]
이세리노는 나름 충격받았다.
자신의 공격을 이렇게 쉽게 막아내는 벌레가 존재했다니, 순간 이세리노는 자신이 너무 벌레들을 우습게 생각했다는 판단을 했다.
‘확실히 이 테르코나의 중심부까지 침투할 정도의 벌레들이라면…… 벌레들 중에서도 좀 많이 특별한 놈들일 게 분명하겠군.’
이세리노는 순순히 자신의 판단 실수를 인정했다.
[……알겠다. 내가 너희를 너무 우습게 생각했구나. 그렇다면 좋다. 너희에게 최고의 마지막을 선물해 주마!]
조금 특별하다는 걸 인정했으니 그에 걸맞은 공격을 하면 될 것이라는 이세리노.
그는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고오오오오오오!
그의 입가로 모여드는 강력한 마력의 덩어리!
이세리노는 드래곤이 가진 최강의 궁극기인 드래곤 브레스를 사용해 프로젝트 S를 한꺼번에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온다!!”
하지만 프로젝트 S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실 그들은 오히려 드래곤 브레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계속해서 이세리노를 자극한 것은 이 드래곤 브레스를 사용하게 만들려고 그런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드래곤을 잡으려면 드래곤 브레스를 철저히 봉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리 준비는 해놓았다.
마갑과 자이언트.
이 절대적인 도구들을 이용해 에이션트 드래곤 이세리노의 아주 강력한 드래곤 브레스를 막아낼 생각이었다.
무모한 도전?
아니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도전이었다.
프로젝트 S의 드래곤 사냥…… 그건 지금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