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45화 (245/250)

245. 돌파 ― 1

* * *

퓨전홀은 막혔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일단 첫 번째 퓨전홀은 막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퓨전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더 크게 뚫릴 것이다. 칼슈타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강제 융합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끝이란 말을 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몬스터들의 진출을 막고 퓨전홀을 강제로 소멸시켜 버린 프로젝트 S의 유저들은 아슬아슬하게 현실의 사람들과 충돌하는 걸 피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환계회회는 현실에서도 제대로 작동했고, 북한산으로 출동한 군과 경찰 병력들은 그 환계회회에 걸려들어 퓨전홀 근처로 접근하지 못했다.

물론 급하게 설치한 것이라 환계회회의 유지 시간이 길지 않아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퓨전홀을 막고 다시 가상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어쨌든 큰 혼란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혼란은 막았을지 몰라도…… 프로젝트 S의 혼란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특히 그들은 몬스터와 본능적으로 싸울 때는 잠시 잊고 있던 사실들을 가상현실로 돌아오며 다시 떠올렸기 때문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충격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게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이고 조금 어려운 게임 속 퀘스트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세상을 뒤덮는 거대한 음모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전처럼 행동할 수 없는 게 당연할지 몰랐다.

난 일단 충분히 시간을 주었다.

비록 1분, 1초가 아까운 지금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충격을 받은 이들을 끌고 앞으로 나아갈 순 없었다.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유저들은 하나둘 나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난 차근차근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며 유저들을 다독였다.

난 그들에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그렇게만 하면 되는 것이고, 굳이 가상현실이 현실이 되었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고 말해주었다.

모든 것은 똑같다.

단지 거짓이 진실이 되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서 진짜로 죽지도 않았다.

아직까진 이 차원의 신인 레아가 일루젼의 통제권 중 절반 이상을 지니고 있었고, 그 레아가 직접 만든 라이프 스톤(소울 스톤)들이 대륙에 남아 있는 이상 이곳에서만큼은 불멸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 세상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세상을 구하든 구하지 않든 이 퀘스트를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도전하지 않았던가?

때론 가볍게 생각하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난 그래서 유저들에게 최대한 부담을 버리라고 말해주었다.

시간과 내 조언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프로젝트 S의 유저들은 점점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진짜 자신이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것이냐고 웃었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스스로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렇게 모두 제각각 자신만의 합당한 이유를 만들며 각오를 다졌다.

과연 신의 선택을 받은 이들답게 모두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을 프로젝트 S에 합류시킨 것은 나였지만 이들을 선택한 건 차원신 레아였다.

레아는 운명의 안배를 교묘하게 조작해 자신이 선택한 유저들을 다른 유저들보다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즉, 많은 행운이 그들에게 집중되게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나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프로젝트 S의 유저들도 어느 정도 큰 행운과 기연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얻었다.

이것은 모두 레아의 선택이었고, 그녀는 확실히 모든 진실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한 정신력을 지닌 이들만 선택했던 것이다.

덕분에 프로젝트 S는 모든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리는 끝났다.

모든 이가 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고 이제 남은 것은 진짜 세상을 구하는 일뿐이었다.

프로젝트 S의 유저들은 오히려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다.

단순한 퀘스트를 넘어서 진짜 세상을 구한다는 현실은 그들의 정신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테르코나의 중심부였다.

가이아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놓은, 테르코나의 밑바닥에서 이 중심부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바로 우리가 석판에 올라타 이동한 그 거대한 통로였다.

덕분에 우리는 한 방에 테르코나의 중심부로 침투할 수 있었고, 이제 남은 건…… 칼슈타인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상층부로 돌격하는 것뿐이었다.

세상을 구할 영웅들의 돌진.

그 돌진이 지금 바로 시작되었다.

* * *

테르코나의 중심부는 말 그대로 복마전(伏魔殿)이었다.

어둠의 마력이 소용돌이치는 곳. 드래곤들이 특별히 만든 각종 가디언들이 곳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 가디언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굉장히 강력한 최상급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아무리 강력해도 우리를 막을 순 없었다.

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제한을 풀어버렸다.

특히 현실에서 있었던 히든 퀘스트의 보상으로 받은 보상품이 마갑과 자이언트의 소울 에너지를 강제로 충전시켜 주는 특수한 마정석이었기 때문에 굳이 제한을 계속해서 둘 필요가 없었다.

적극적으로 마갑과 자이언트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우라노스가 남긴 가장 큰 안배였던 마갑과 자이언트는 드디어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강행돌파(强行突破)!!

그 말 그대로 우리는 무작정 돌진했다.

가디언들의 엄청난 공세도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길은 하나였다.

빛의 기운을 명확하게 느끼는 만큼…… 어둠의 기운 역시 명확하게 느끼게 된 난 정확한 하나의 길을 안내했다.

그 길을 따라 빠르게 돌진하는 중이었다.

콰드득!

오우거 킹의 몸을 그대로 두 동강 내는 자이언트의 괴력.

다크오크는 방어조였지만 자이언트를 소환한 후에는 거의 돌격조에 가까울 정도의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으아아아아!!”

콰광!

“밀어붙여!”

돌격전차, 다크오크가 소환한 자이언트의 이름이었다. 이름이 그래서일까?

실제로 그의 자이언트는 굉장한 돌파력을 보여주며 빠르게 길을 뚫었다.

현재 자이언트를 소환한 유저는 10명.

그리고 마갑을 소환한 유저는 30명.

40명의 화력은 정말 대단히 강력했다.

꽝!

또 한 마리의 거대한 몬스터를 발로 차서 밀어버리는 돌격전차.

이 속도라면 칼슈타인이 퓨전홀을 뚫고 있다는 어둠의 화로까지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둠의 힘이 점점 강해진다. 서둘러야 해.’

칼슈타인이 무슨 방법을 동원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둠의 힘이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퓨전홀이 열 개 이상 뚫렸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계속 퓨전홀이 늘어가고, 그곳을 통해 다수의 몬스터가 현실로 쏟아진다면…… 강제 융합이 충분히 가능했다.

다소 무식한 방법일지 몰라도 강제 융합도 융합은 융합이었다.

한 번 융합된 차원은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없다.

무조건 막아야 했다.

띠링, 어둠의 화로에 모여든 힘이 너무나 커졌습니다.

띠링, 여러분은 어둠의 화로를 작동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띠링, 어둠의 화로 작동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44분입니다.

띠링, 이것은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최종 퀘스트입니다. 제발…… 여러분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주세요.

레아는 마지막 힘을 짜내 우리에게 최종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미 많은 신성을 여러 군데 써버린 레아였기에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레아의 마지막 메시지를 들은 프로젝트 S의 유저들은 갑자기 더욱 힘을 내기 시작했다.

불타오르는 그들의 의지.

마치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 같은 그 강력한 의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 * *

그그그그그그!!

어둠의 화로로 집중되는 마력들…… 어둠의 화로는 미친 듯이 마력을 계속해서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미 한계를 넘어서 거의 폭주하듯 융합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어둠의 화로.

물론 그 융합 에너지 자체가 너무나 불안정해 제대로 작동하는 건 30%를 간신히 넘어선 수준이었지만 칼슈타인은 계속해서 더 많은 마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아예 자신의 마력도 일부분 사용하면서까지 무조건 강제 융합을 빨리 완성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드!! 두 번째 방어선도 뚫렸습니다. 이대로라면…… 놈들은 한 시간 안에 이곳에 도달할 것입니다.”

다급하게 보고하는 이세리노.

이미 모든 드래곤이 어둠의 화로에 마력을 쏟아붓는 중이었기에 테르코나에서 제대로 활동하는 드래곤은 그가 유일했다.

“……크으, 하찮은 것들이 귀찮게 하는구나. 애초에 일루젼이 제대로만 작동했어도 이런 어이없는 일이 없었을 텐데…….”

얼마 전 칼슈타인은 왜 자신이 만든 초월령인 일루젼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이곳의 신인 레아.

그녀의 개입, 즉 그녀가 스스로의 신성을 발휘해 일루젼의 명령권을 일부 획득했고 그것을 이용해 유저들에게 막대한 편의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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