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로드(The Lord)-241화 (241/250)

241. 밝혀지는 진실(上) ― 2

* * *

그때 그 사건으로 대부분의 힘을 잃은 가이아와 우라노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태초에 가장 먼저 신의 자격을 획득한 네 명의 고신(古神) 중 하나였다.

그 어떤 신보다 강한 신성을 지니고 있었던 그들…… 그렇기에 설사 힘을 잃었다고 해도 아예 소멸되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을 소멸시킬 수 있는 건 이 모든 차원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창조의 기적을 일으킨 ‘창조주’와 그들 자신뿐이었다.

‘창조주’는 단 한 번의 기적을 끝으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을 소멸시킬 수 있는 건 그들 자신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흔적은 수만 년을 걸쳐 계속 등장했다.

칼슈타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역시 그저 몇 가지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칼슈타인이 활동한 이 수만 년이란 시간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었다.

차원과 차원은 늘 시간의 흐름이 달랐고 그는 오로지 자신의 기준으로 수만 년의 시간을 살아온 것이었다.

즉, 그가 살아온 수만 년은 어느 차원에선 수백, 수천만 년이 될 수도 있었고, 또 어느 차원에선 수천 년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보통의 경우는 차원이 열린 지 오래된 차원일수록 시간의 흐름이 느렸다.

현재 칼슈타인이 목표로 삼고 있는 423298차원 같은 경우는 비교적 오래된 차원이라 할 수 있었다.

차원의 개수?

그걸 물어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차원이었다.

차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차원이 늘어나는 속도는 빨라졌고, 이제는 그 어떤 존재도 차원의 개수를 셀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전이(轉移)의 힘이 아무리 차원을 먹어치워도 차원의 절대적인 숫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만큼 차원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빠른 속도로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각설하고, 엄청난 세월을 꿋꿋이 견디며 주인의 명령을 수행했던 칼슈타인.

그는 이제야 왜 가이아와 우라노스의 흔적이 이번 차원에서 이렇게나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군. 그 때문에, 그가 가진 그 속성의 힘 때문에 온갖 차원의 초월 의지들이 이 차원으로 끌어 당겨진 것이었어.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멍청했군.’

완벽한 실수였다.

모든 것들을 ‘그’를 중심으로 나열하자 완벽한 그림이 탄생했다.

그동안 의문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해졌다.

결코 생각하지 못한 존재.

그 존재를 중심에 놓자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확실하다. 이건 자칫 잘못하다간 나 하나만의 소멸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정말로 칼슈타인의 예상이 맞는다면…….

‘그’가 나타난 것이라면…….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어둠의 원천 속에 자신을 꽁꽁 숨겨 두었던 그의 주인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의 주인이 나타난다는 것은…… 모든 존재의 소멸을 의미했다.

심지어 타이탄 일족이 소멸될 때도 그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그에게 소멸의 힘을 조금 나누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 그건 막아야 한다.”

칼슈타인은 두려움을 느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칼슈타인이었지만 유일하게 단 한 존재, 바로 자신의 주인에게만큼은 한없이 큰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모든 드래곤 일족을 희생시키더라도, 아니, 자신이 가진 힘의 일부가 소멸되더라도…… 절대 자신의 주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등장하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모든 힘을 이곳에 집중시킨다. 그리고 무조건…… 성공시킨다.”

더더욱 굳어진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칼슈타인.

그의 말에서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 * *

그것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것의 숫자는 무한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은 꾸준히 생성되고 있다.

당신의 노트 한 구석, 또는 몇 바이트의 문서 한구석에서 그것이 만들어진다.

신(神)?

그건 무척이나 추상적이지만 때론 지극히도 현실적인 단어가 된다.

…….

…….

언제가 시작이었을까?

창조.

그것의 시작은 언제 어디서 일어난 건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아주, 아주 오래전에 첫 번째 차원이 생겨나고 그 뒤로 수많은 차원이 연쇄적으로 생겨났다는 것만 알려졌다.

첫 번째 차원을 만든 ‘창조주’는 단 한 번의 기적을 끝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그에겐 어떠한 호칭도…… 이름도 붙여지지 않았다.

그저 ‘창조주’라 불릴 뿐이었다.

그 뒤를 이어 생겨난 차원과 각종 창조물들은 모두 다른 이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아는가?

당신도 창조할 수 있다는 걸…….

아는가?

당신이 모르는 사이 당신이 만든 세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이렇게 모든 차원, 모든 세상은 한줄기로 엮여 있다.

너무나도 복잡하게 엮여 있어 사실상 하나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아무도 그 복잡하게 엉킨 차원들의 관계를 정리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아예 정리하기보단 진정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비록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억겁의 세월을 거치며 그 일을 해낼 생각이었다.

전이(轉移)…… 그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태초의 어둠과 빛, 그리고 땅과 하늘은 모든 존재의 대표가 되었다.

그들은 특별했다.

첫 번째로 만들어진 차원에서 첫 번째로 신성을 얻은 존재들…… 최초라는 글자는 그들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했다.

태초의 고신(古神)들.

그들 넷은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어둠을 대표하는 닉스(Nyx).

빛을 대표하는 진(Jin).

땅을 대표하는 가이아.

하늘을 대표하는 우라노스.

그들은 거의 동시에 신성을 얻었고 그와 함께 서로의 존재를 깨달았다.

태초의 고신이 된 그들은 강력한 힘 덕분에 차원과 차원의 경계마저 쉽게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수없이 많은 차원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고…… 그 흔적들은 다시 또 다른 존재들을 초월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렇게 탄생한 존재들은 그들의 차원에서 또 다른 신(神)들이 되었고, 그 차원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과정은 정말 무한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태초의 고신들이 아무리 차원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차원에 손길을 뻗쳤다고 해도, 그들에겐 역시 최초로 신성을 얻게 된 차원인 제1차원이 가장 특별했다.

그래서 그들은 설사 다른 차원을 갔다고 해도 늘 마지막에는 다시 이 1차원으로 돌아왔다.

1차원은 최초의 차원답게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상태였고 벌써 몇 번의 ‘차원 윤회’가 행해진 곳이었다.

차원 윤회란 차원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운명 에너지가 쌓였을 때 신들이 직접 모든 운명 에너지를 무(無)로 돌려주는 작업을 뜻했다.

즉, 1차원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하며 수많은 운명을 만들고 지워낸 차원이라는 뜻이었다.

태초의 고신들은 어지간해서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었다. 특히, 어둠의 여신 닉스는 늘 빛의 신 진에게만큼은 먼저 양보해 주었다.

어둠과 빛은 공존할 수 없었기에…… 빛이 존재하면 어둠이 물러가야 했고 어둠이 존재하면 빛이 물러가야 했다.

서로의 힘은 동등했기에 사실상 닉스가 먼저 양보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닉스는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빛이 들면 어둠이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동경이었다.

어둠의 여신 닉스는 놀랍게도 빛을 동경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빛의 신 진을 동경했다.

빛의 신 진은 모든 존재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한없이 자유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닉스는 존경과 사랑보다는 공포와 무관심을 더 많이 받았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빛의 신 진을 동경했고…… 결과적으로 신(神)에겐 존재하지도, 존재해서도 안 되는 감정까지 생겨 버렸다.

사랑?

그것을 사랑이라 말해야 할까?

신이 사랑을 한다?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말일지 몰랐다. 하지만 분명 닉스의 마음속에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생겨 버렸다.

신에게 감정이란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오류인 상황. 그렇지만 닉스는 그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감정을 더 키워만 갔다.

그렇게 또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났다.

1차원은 계속해서 차원 윤회를 거듭했고…… 태초의 고신들은 이제 정말 신 중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거대한 힘을 얻었다.

늘어나는 차원과 흘러가는 시간은 그들의 신성을 계속해서 강화시켰고, 그 결과 그들의 힘은 대부분의 차원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커져 있었다.

물론 신성이 강해졌다고 해서 닉스의 마음속에 생겨났던 이상한 감정이 사라졌을 일은 없었다.

오히려 더욱 커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빛에게 모든 걸 양보했다.

빛의 시간이 시작되면 어둠은 바로 사라졌고 빛의 영역이 생겨나면 어둠의 영역은 무조건 사라졌다.

이것은 거의 모든 차원에서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사람들은 빛은 어둠을 이기는 게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사실 어둠과 빛의 동등했건만 그 누구도 어둠이 빛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사실 닉스의 배려로 빛의 존재감이 커진 것은 빛의 신인 진에겐 큰 부담이었다.

쏟아지는 사랑, 존경, 관심.

천성이 자유로운 진이었기에 지나친 사랑과 존경, 그리고 관심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종종 신이라는 자신의 부담스러운 위치를 벗어나 차원의 평범한 창조물들과 어울렸다.

강력한 힘을 지는 그였기에 그 정도의 유희(遊戱)를 즐기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수많은 이들과 어울리고, 같이 슬퍼하고, 모험하고…… 같이 싸우고, 같이 사랑하고…….

그는 그렇게 수없이 많은 종류의 삶을 살며 자신이 느낀 부담감을 털어냈다.

특히 자신이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1차원에서의 유희를 더욱 즐겼던 진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 유희에 더 빠져들었다.

가이아와 우라노스, 그리고 닉스는 그런 진의 행동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지만…… 사실상 서로의 영역에 절대 간섭하지 않는 그들이었기에 그저 그런 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은…… 바로 그 와중에 일어났다.

1차원이 차원 윤회를 두 번이나 할 동안 계속해서 유희에만 집중했던 진.

하지만 아무리 유희에 푹 빠진 그라고 할지라도 신으로서 꼭 지켜야 할 것들은 모두 지키고 있었다.

유희는 말 그대로 놀이.

장난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의 놀이일 뿐이었다.

결코 그 놀이에 신의 힘이 개입돼서는 안 됐다.

진도 그걸 잘 알았기에 유희는 유희로서 즐기기만 했다.

그 일,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정말 그걸 잘 지켜왔다.

유희를 즐기며 수없이 많은 사랑을 경험했던 진.

그 와중에 그는 단 한 번도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꿈꾼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그에게 사랑은 단순히 유희 속에서의 즐거움 중 하나일 뿐이었고…… 언제나 끝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멸의 사랑을 꿈꾸고 말았다.

‘아드리안.’

단 네 글자의 이름을 지닌 여인.

유희를 즐기던 삶의 모든 시간을 그녀에게 투자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두 번째 유희마저 그녀를 위해 투자한 진.

하지만 두 번의 삶으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은 끝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사랑은 더욱 깊어져 도저히 유희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아드리안’은 마치 빛을 흡수하는 특별한 존재라도 된 것처럼 진의 모든 관심을 가져가 버렸다.

유희의 존재가 아닌 빛의 신 진으로서의 관심까지 모두 다…….

그래서일까? 진은 결국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빛의 신으로서의 힘.

그는 그 힘을 통해 ‘아드리안’을 불멸의 존재, 즉 신성을 지닌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영원불멸한 사랑을 하기 위한 진의 시도.

하지만 이것은 신들의 세계에선 결코 용납되지 않는 사도(邪道)의 길이었다.

한 번이라도 사도의 길에 들어선 신은 더 이상 신이라 불리지 않았다.

‘사도(邪道)’.

그들은 사도라 불렸고…… 사도는 모든 신의 적이었다.

신들의 임무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이 바로 사도를 봉인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사도는 위험하고 없어져야 할 존재였다.

그 법칙을 만든 건 태초의 고신이라 불리는 가이아와 우라노스, 그리고 닉스와 진이었다.

그런데…… 그 법칙을 만든 진이 사도의 길에 들어섰다.

이건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일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역시나 같은 태초의 고신이었던 가이아와 우라노스, 그리고 닉스였다.

그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아무리 유희에 빠져 있었다고 해도 진이…… 사도의 길을 걸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인 이가 있었다.

닉스.

진을 동경했고…… 결국은 몰래 사랑의 감정까지 만들어낸 그녀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권능을 이용해 초월적인 존재가 된 ‘아드리안’을 진의 영역에서 빼돌렸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결코 어둠은 빛보다 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어둠을 일으키자 그 힘은 순식간에 빛의 장막을 뚫고 그 영역 안에 있던 아드리안을 어둠으로 집어 삼켰다.

그렇게 ‘아드리안’을 빛의 영역에서 빼낸 그녀는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아드리안의 신성을 모두 빼앗았다.

그리곤 아드리안의 영혼에 너무나 강력한 어둠의 저주를 건 후 수없이 많은 차원과 차원이 교차하는 차원의 교차점에 던져 넣었다.

닉스의 처리는 아주 빠르고 완벽했다.

태초의 고신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아드리안’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고 태초의 고신들은 물론 심지어 그녀 자신도 더 이상 ‘아드리안’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스스로 이 모든 게 진을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사도가 된 진은 도저히 볼 수 없기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해 이 일을 처리한 것이었다.

그녀는 진이 모든 걸 깨달으면 곧 제정신을 차리고 신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그녀만의 생각이었다.

진이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은 것은 맞았다.

스스로 사도의 길을 걸었다는 걸 깨달은 진.

그리고 그는 그와 함께 ‘아드리안’이 어떻게 된 건지도 모두 알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만 닉스의 예상이 맞았다.

그 뒤로는 모든 게 다르게 진행되었다.

분노?

아니다. 진은 결코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걸 포기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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