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밝혀지는 진실(上) ― 1
* * *
불가해를 탈출한 이후 비교적 정상적인(?) 통로를 이용해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위로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커다란 원형 석판이 바닥에서 1m가량 떠 있었고 그 밑에는 매우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법진 중간중간엔 마정석으로 보이는 돌들이 수천 개가 박혀 있었다.
처음에 우린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몰라 매우 당황했었다.
하지만 곧 내가 그 마법진 외곽에 새겨져 있는 고대어를 읽어내며 어떤 곳인지 대충이나마 알아낼 수 있었다.
이곳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종의 엘리베이터였다.
이 마법진에서 발현된 힘은 지상에 살짝 떠 있는 거대한 석판을 빠르게 위로 밀어 올리게 되어있었다.
즉, 우리가 석판 위에 올라가서 마법진을 작동시키는 시동어를 외우면 저 커다란 구멍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함정이 없는지 살펴봐.”
어떤 곳인지는 알았다.
이제 남은 건 과연 진짜로 확실히 그렇게 작동하는 곳인지 또는 교묘한 함정은 아닌지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네.”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던 클레타는 도적들을 이끌고 석판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난 클레타가 그렇게 함정의 유무를 찾는 동안 마법사 유저들과 함께 마법진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고대어로 친절하게 설명이 쓰여 있다고 해서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마법진에 관해선 내가 거의 독보적인 지식을 쌓고 있었다.
마갑을 연구하며 얻은 성과 중 하나였는데, 덕분에 난 마법진의 구조만 봐도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흐음. 대충은 맞는 것 같은데…….”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크게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 마법진.
조금은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그 힘의 방출 방식 자체는 매우 간단하게 되어있어 생각보다 쉽게 분석을 끝낼 수 있었다.
단지…… 조금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은 보지 못했지만 나는 확실히 보이는 한 가지…… 바로 이 마법진이 평범한 마법진이 아니라 아주 정밀한 기술로 만들어진 이중 마법진이라는 것이었다.
이중 마법진.
고대 마도 시대 때도 몇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대단한 마도사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그 기술.
그 기술이 바로 이 마법진에 적용된 게 거의 확실해 보였다.
‘문제는…… 내가 이중 마법진인 것까지는 알아낼 수 있어도, 그 안쪽에 새겨진 두 번째 마법진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이지.’
그건 나뿐만 아니라 누가 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걸 볼 수 있는 이는 이중 마법진을 새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뿐이었다.
한마디로 지금은 절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통로는 이곳 하나뿐이었다.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중으로 그려져 있는 마법진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결국 한 가지 선택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험을 하든지.
아니면 하지 않든지.
난 곰곰이 두 가지를 비교해 보았다.
그런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모험을 하지 않는 쪽은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남은 것은 하나,
모험을 하는 것뿐이었다.
‘오래 고민해 봤자 결론은 하나다.’
난 이중 마법진에 대한 사실을 숨기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안고 가야 하는 불안 요소라면 나만 알고 넘어가는 게 좋아 보였다.
“깨끗해요. 아무것도 없어요.”
모든 점검을 마친 클레타가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이점 없음.
물론 나만 알고 있는 특이점이 하나 있었지만 일단 그건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마법진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모두 이 석판 위에 올라가세요.”
고민 따위 오래 해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법.
난 일단 결정을 내린 이상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85명의 유저들이 모두 석판 위에 올라왔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전부 석판에 올라온 걸 확인한 난 고대어로 되어 있는 시동어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시동어를 읽을 땐 그 말 자체에 마력을 담아야 했다.
모든 마법의 발현이 다 이런 식이었다.
이 작업은 마법을 사용하는 유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
당연히 나도 자연스럽게 말속에 마력을 담아 시동어를 외쳤다.
“디아코라 듀마이온 드톤 트라이언!!”
우우우웅!
시동어는 그 자체로 언령의 힘이 되어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마법진이 엔진이라면 시동어는 그 엔진을 작동시키는 열쇠였다.
쿠쿠쿠쿠쿵!
작동하기 시작하는 엔진(마법진).
우리들을 모두 태우고도 많은 공간이 남았던 거대하고 두꺼운 석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띠링, 고대의 신들이 만들었다는 영혼의 석판을 작동시켰습니다.
띠링, 여러분은 앞으로 20초 후 ‘영혼 가속(4단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충격에 대비하세요.
띠링, 환상의 경계를 넘어 현실로 들어설 여러분의 건투를 빕니다.
고오오오오오!!
조금씩 빨라지는 석판.
그리고 들려온 시스템 메시지.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영혼 가속!! 현실!!’
영혼 가속은 자이언트에서 경험해 봤던 것이었다. 물론 그때 경험했던 영혼 가속은 1단계였고, 이번엔 4단계라고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말이 다음에 나왔다.
환상의 경계를 넘어 현실로 들어설…… 이 말은 곧 내가 이미 한 번 경험해 보았던 부분 융합이 일어난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다면, 설마…… 영혼 가속은 부분 융합을 일으키는 특수한 기술이었던 건가?’
내 예상이 전부 맞는다면 자이언트는 결국 유저를 현실로 보내기 위한 도구라는 소리였다.
물론 지금까지는 단지 모든 게 예상일 뿐이었다.
정확한 것은 이 4단계 영혼 가속을 직접 경험해 보고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이이이이이잉!
점점 더 빨리지는 석판.
그와 동시에 그 위에 있던 우리들의 몸에는 기묘한 느낌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어!?”
“으음??”
“어라?”
마치 몸이 조금씩 떠오르는 느낌…… 그리고 그 몸이 조금씩 흩어지는 느낌…….
띠링, 영혼 가속(4단계) 시작 5, 4, 3, 2, 1, 0…… Start!!
번쩍!!!!!!
스타트라는 말과 함께 강력한 빛이 우리를 뒤덮었다.
그리고…… 우린 모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그그그긍…….
강력한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점점 하나로 뭉쳐지는 테르코나의 분화구.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단순한 분화구가 아니었다.
어둠의 화로, 칼슈타인이 만들어낸 강제적인 융합 에너지 생성 장치가 바로 이것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융합 에너지가 상당히 부족한 것을 깨달은 칼슈타인은 자신의 권능을 사용해 이것을 만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천천히 마력을 쌓고 또 쌓아 완벽하게 작동할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 제대로 힘을 발휘하게 되어있었지만…… 지금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갑작스럽게 각종 마력이 빠르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둠의 화로는 마치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로 계속 가열되고 있었다.
그런 어둠의 화로 앞에 서 있는 두 드래곤.
그들의 얼굴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상관없어. 그냥 강행해.”
한눈에 봐도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은 칼슈타인.
그는 며칠 전부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어둠의 화로에 너무 많은 부담이 생깁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어둠의 화로가 멈추지는 않겠지만 불안정한 상태에서 계속 사용하면 제대로 융합 에너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30%도 되지 않습니다. 너무 피해가…….”
“상관없다고 했잖아!! 30%가 되든 20%가 되든 일단 모두 밀어 넣어!! 모자라는 건 드래곤들을 더 쥐어짜서라도 더 만들어내면 된다. 설사 이 일에 투입된 드래곤들이 다 죽어도 상관없어!!”
조급한 칼슈타인.
그는 매우 서두르고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퓨전홀(Fusion Hole)을 본격적으로 작동시키겠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이세리노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원래대로라면 암흑 마력을 100%까지 모아 그때까지 만들어진 암흑의 군세를 동대륙과 서대륙으로 진군시켜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라이프 스톤(소울 스톤)을 제거한 후 안정적으로 퓨전홀을 완성시켜야 되는 것이었다.
그래야 100% 완벽하게 융합이 가능해지고, 그렇게 되면 전이(轉移)는 거의 끝났다고 보면 된다.
모든 준비는 거기에 맞춰 진행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며칠 전 칼슈타인은 이 모든 계획을 뒤집었다.
아직 제대로 자리도 잡히지 않은 퓨전홀.
그 퓨전홀로 무작정 암흑의 군세를 밀어 넣으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다급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며칠 전 아주 짧게 느꼈던 하나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분명 그의 존재감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 확실했어. 어떻게 그의 존재감이 이곳에서 느껴진 것이지? 그는 영원히 사라졌을 텐데? 설마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준비한 것이 이것이었나? 그렇다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칼슈타인…… 그는 며칠 전부터 제대로 앉을 수도 없을 만큼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이아와 우라노스라고 해도 그를 부활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분명 그는 스스로 자신을 소멸시켰다. 그렇기에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절대 관여할 수 없다.’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정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불안한 마음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어쨌든 그의 존재감이 느껴진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빨리……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이 융합을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우리 일족은…….’
그의 주인은 무자비하다.
특히 그때 그 일을 기점으로 더욱 무자비하게 바뀌었다.
그렇기에 타이탄 일족도 가차없이 버려졌던 것이다.
칼슈타인은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강제로라도 융합을 완성시킨다. 필요하면 내 힘도 보태겠다. 이 대륙의 신이라는 그 레아…… 그녀의 지배력을 무시하고 강제적인 융합을 하는 쪽으로 간다.”
라이프 스톤(소울 스톤)이 존재하는 이상 융합은 완전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없애고 유저들의 불멸성(不滅性)을 없애야지 완전한 융합이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변하며 칼슈타인은 무리수를 강행하기 시작했다.
부분 융합을 통한 강제적인 융합.
즉, 암흑의 군세를 이용해 게임 속의 장애물을 완전히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넓어진 퓨전홀을 이용해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그 통로가 대충 자리를 잡은 퓨전홀에 막대한 물량의 암흑의 군세를 밀어 넣어 강제적으로 현실 세계와 이 세계와의 융합을 끌어내려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모든 것이 순서대로만 된다면 완벽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아주 찰나였지만 ‘그’의 존재감을 느낀 칼슈타인.
그는 수만 년 동안 지금의 주인을 따르며 여러 일을 경험했던 백전노장이었다.
그렇기에 너무나 갑자기 느껴진 ‘그’의 존재감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무엇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아무리 그라고 해도 몰랐다.
단지 시간이,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다는 것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유가 없어진 그는 첫 번째 방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완벽하지도 않고, 힘의 낭비도 무식하게 크면서 성공 확률도 결코 높지 않은 방법을 선택했다.
어떻게 보면 미련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칼슈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만 년 동안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해서 해왔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 적은 없었다.
자신의 주인이 나누어 준 힘을 이용해 수많은 차원을 직접 주인에게 갖다 바쳤던 그였다.
그런 그가 위기를 느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절대 아니었다.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남긴 흔적이 너무 많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그 때문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