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수중 혈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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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한 번 습격을 받았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되겠네요.”
클레타는 계속해서 수중 통로의 지형과 이곳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분석하며 최대한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그거 확실히 확인했어?”
난 클레타를 향해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물었다.
“네, 확실해요. 제가 몇 번이고 확인한 거예요.”
며칠 전 클레타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이 수중 통로가 밑으로가 아닌 위로 뚫려 있다는 것과 우리가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 그는 이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그동안 수중 통로에 들어서며 점점 테르코나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들에겐 정말 큰 희소식이었다.
“어떻게 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거지?”
아무리 우리가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완벽하게 물리 법칙을 무시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저도 아직 찾지 못했어요. 단지…… 무엇인가 강력한 힘이 이 물을 위로 끌어당기는 것 같아요.”
“그럼 우리는 이 수중 통로만 따라 올라가면 되는 거야?”
마가레타는 방금 해치운 메갈로돈의 피가 잔뜩 묻은 두 자루의 검을 물에 씻으며 물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하지만 정확히 언제까지 이 통로가 이어지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것저것 실험을 해봤는데…… 도통 답이 안 나오네요.”
클레타는 그 나름대로 무척이나 노력하는 중이었다. 특히 수중 통로의 함정 같은 경우는 거의 그가 전담해서 모두 해체했다.
전투 능력을 제외하면 그는 거의 만능에 가까운 도적이었다.
물론 그 전투 능력 때문에 종종 무시를 당했던 클레타였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그를 무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밖에 없겠지. 근데 이거 도통 물 밖으로 나갈 기회가 없네. 아무리 ‘인어의 숨결’을 계속 이용하면 된다고 해도 계속 이렇게 물속에만 있으면 좋지 않은데…….”
대략 3일 전 물이 얕아지며 몇 시간 동안 발목에만 잔잔히 물이 찬 공간을 만났었다.
그전에도 몇 번 비슷한 공간이 존재했었다.
그런 공간은 우리에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휴식시간을 제공했다. 그리고 ‘인어의 숨결’을 이용한 인공적인 숨쉬기가 아닌 진짜 공기를 들이쉴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그런데 벌써 3일 동안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징그럽게 이어지는 물로 가득 찬 통로.
그 깊이는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말도 말아요. 통로가 너무 커져서 길 찾는 것도 쉽지 않을 지경이에요. 방법이 없어요. 그저 빠르게 이 구간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클레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기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첩첩산중(疊疊山中)이군.”
상황은 극도로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는 중. 하지만 이미 우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여기서 다시 그 등에서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살 수 있는 방법은 달리는 호랑이를 우리 손으로 길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16일(게임 시간).
우리가 수중 통로에 들어선 지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단순히 통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곳은 일종의 던전이었다. 우리는 이곳에 불가해(不可海)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불가해(不可解)가 아닌 불가해(不可海)이다.
그만큼 난해하고 어지러운 물의 미로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던전도 결국 시간과 노력에는 버텨내지 못했다.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의 공략.
그 결과 우리는 드디어 이 불가해를 빠져나왔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특히 불가해 마지막에 등장한 던전 보스 몬스터는 우리를 아주 힘들게 했다.
거대하다는 말이 좀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
생긴 건 딱 문어와 같았다.
대왕문어?
아니, 그건 대대대대대왕 문어 정도는 될 거 같은 놈이었다.
여덟 개의 다리에 수없이 붙어 있는 빨판 하나의 크기가 우리보다 훨씬 컸으니 놈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예상이 될 것이다.
그런 놈이 불가해를 빠져나가는 통로를 막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시간이 넘게 계속된 혈투.
우리는 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처음 한 시간은 일단 최대한 방어적으로 플레이를 하며 놈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그 과정에서 탱커조의 한 유저가 희생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녀석의 정보를 모은 우리는 대충 놈의 행동 패턴과 전투 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해 냈다.
그리고 이어진 네 시간가량의 전투.
이미 한 명의 탱커를 잃은 우린 최대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 마갑까지 이용했다.
미리 지정해 놓은 다섯 명의 유저는 빠르게 마갑을 소환하고 대왕문어와의 전투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탱커 한 명과 힐러 한 명, 그리고 딜러 세 명.
총 다섯 명.
단 다섯 명뿐이었지만 그 위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마갑을 소환한 건 그 다섯 명뿐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프로젝트 S에서도 특별한 유저들로 구분되는 천무칠성의 유저들이 최전방에서 같이 활약해 준 결과 사망 네 명, 중상 열 명, 경상 25명이라는 최소한의 피해로 놈을 해치울 수 있었다.
사망 네 명이란 숫자가 적지 않은 건 맞았지만 대왕문어의 파괴력을 감안하면 그렇게 큰 숫자가 아닐 수도 있었다.
누구보다 강력한 몬스터들과 많이 싸워본…… 심지어 몬스터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드래곤과도 싸워본 내가 단언하건대 놈은 거의 내가 싸웠던 그린 드래곤 베나인과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물속이라는 특수한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녀석의 힘이 크게 증가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놈은 강력했다.
우리는 그런 놈을 사전 준비도 하지 않고 잡아냈다.
놈을 잡는 순간 우리 모두에게 옥터퍼스 킹(Octopus King) 슬레이어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
무려 S급 타이틀.
이것만 봐도 놈이 얼마나 강력한 몬스터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타이틀 자체의 옵션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타이틀 장착 시 수중 호흡 가능과 물속에서의 이동 능력 +100%, 공격력 +40%, 방어력 +40%였다.
물속에서만큼 대단히 훌륭한 타이틀일지 몰라도 평상시에는 그다지 쓸 일이 별로 없는 타이틀 같아 보였다.
그나마 놈이 떨어뜨린 아이템 쪽은 좀 더 나았다.
레전드급 타워쉴드 하나와 양손도끼 한 자루, 그리고 최상급 스킬북 열 개와 유니크 아이템 다수.
모두가 아주 쓸 만한 것들이었다.
일단 레전드급 방패는 방어조에게 넘겼고 검은 검을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유저에게 자율적으로 입찰을 하게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모든 아이템은 순수하게 주사위로 결정했다.
이 방법이 가장 좋았다.
괜히 아이템 같은 것 때문에 호흡이 깨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공정하게 나누는 게 중요했다.
물론 난 아이템 입찰에서 무조건 빠졌다.
어차피 지금 내가 가진 아이템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의 스킬은 필요 없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더 갈고 닦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든 그렇게 모든 뒤처리를 끝낸 우린 빠르게 옥터퍼스가 막고 있던 수중 터널의 출구로 빠져나왔다.
16일 만의 불가해를 벗어난 우리는 절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만큼 지겨웠던 나날이었다.
사망 일곱 명.
부상자야 다시 추슬러서 며칠만 쉬게 하면 충분히 원래대로 회복될 이들이었기 때문에 전혀 상관없었다.
문제는 사망자였다.
테르코나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늘어만 가는 사망자. 100명으로 시작해 이제 남은 인원은 나까지 포함해 85명.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사망자가 늘어갈수록 우리에겐 불리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망자들이 전부 자이언트를 소유하지 못한 유저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실력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나는 것일까?
지금까지 사망한 열여섯 명의 유저는 모두 마갑만 소유한 이들이었다.
한마디로 실력이 떨어질수록 죽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뜻이었다.
한순간의 방심, 또는 한순간의 빈틈이 곧장 사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실력이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낙오될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런 의미에서 남은 85명의 유저는 정말 정예 중의 정예였다.
이제부터 우린 위험할 때 마갑과 자이언트를 적극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아끼다간 흔히 말하는 것처럼 똥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가 힘의 절약 모드였다면 이제부턴 힘의 폭발 모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