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수중 혈투 ― 1
* * *
풍덩!
대략 10초.
내가 던진 돌이 물에 빠지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뛰어들 만하겠는데?”
난 클레타를 보며 얘기했다.
“그렇긴 한데 수중 통로라니……. 다른 길을 못 찾았다고 해도 이 길을 통해 이동하는 건 꺼려지네요. 아무리 우리가 미리 ‘인어의 숨결’을 충분히 준비해 왔다지만 그래도 이 통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건데…….”
클레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 나흘 동안 이 근처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길은 이 수중 통로 밖에 나오지 않았잖아. 그리고 계속 실험한 결과 이 수중 통로가 테르코나의 안쪽으로 흘러간다는 것도 알아냈고. 어쩔 수 없어. 이제 와서 길을 되돌아 나간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인어의 숨결’은 우리가 수중 통로에서 한 달(게임 시간)은 버틸 수 있는 양이야. 내가 볼 땐 그 정도라면…… 충분할 것 같다.”
우리는 며칠 전 큰 난관에 봉착했다.
끊어진 길.
거울의 미궁에서 빠져나와 순조롭게 테르코나 안쪽으로 이동하던 우리는 갑자기 끊어진 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엔 다른 통로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지만…… 며칠 동안 주변을 살피고 또 살핀 결과 정상적인 통로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절벽 아래로 연결된 수중 통로만이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중 통로.
‘One’에는 엄청난 종류의 던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당연히 수중에 지저인 던전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던전을 경험한 이들도 많았다.
특히 ‘인어의 숨결’이라는 소모성 아이템을 사용하면 한 개당 하루 동안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정확히 이런 사태를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기 때문에 충분한 양을 아공간 창고에 챙겨온 상태였다.
당연히 나 역시 이미 몇 가지 수중 던전을 경험해 보았다.
그리고 클레타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는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 다양한 던전을 경험한 이였다.
그런데 왜 그런 클레타가 수중 통로에 회의적인 의견을 보내는 것일까?
그건 바로 경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나 또한 수중 통로가 보통의 통로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비교해도 이동이 불편하고, 함정을 발견하거나 해체하는 것도 훨씬 어렵고, 심지어 몬스터가 나타났을 땐 전투를 치르는 것도 더 힘들었다.
그렇기에 클레타는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다른 통로를 찾아 그쪽으로 이동을 하고 싶어한 것이다.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쉬는 클레타.
그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중 통로가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어쩔 수 없겠네요. 대신 30분만 시간을 주세요. 제가 저희 조원들하고 최대한 준비를 끝내볼게요.”
클레타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대신 어차피 가야 한다면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해서 최대한 피해를 줄이려는 것 같았다.
“알았다. 시간 충분히 줄 테니 확실하게 준비해라.”
난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내 입장에서도 어설프게 준비하고 수중 통로에 뛰어드는 것보단 확실하게 준비를 하고 가는 게 훨씬 좋았다.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수중 통로.
이것은 평범한 통로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겪은 여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하거나 물러날 수는 없었다.
설사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가 우리를 기다린다고 해도 도전해야 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었다.
* * *
쏴아아아!
물살을 가르는 거대한 지느러미.
메갈로돈(Megalodon)이라 불리는 거대 상어였다.
길이가 무려 15m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괴물. 마스터 급에 이른 몬스터답게 매우 강력했지만 그나마 보스 몬스터가 아닌 준 보스급 몬스터인데다가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대할 만한 놈이었다.
“우회한다! 방어조 뒤를 막아!!”
나 연합채팅을 사용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수중 통로는 예상보다 깊고 길었다.
우리는 벌써 일주일(게임 시간) 동안 계속해서 수중 통로를 이동하는 중이었다.
물이란 요소는 우리에겐 마이너스(-) 요소였고 몬스터에겐 플러스(+) 요소였다.
그렇기에 우린 땅 위에서라면 충분히 넉넉하게 잡을 수 있는 몬스터들을 물속이란 이유 하나 때문에 무척 고생스럽게 잡고 있는 중이었다.
콰광!
반응을 빨리한 덕분에 메갈로돈의 우회 공격을 방어조가 미리 커트할 수 있었지만…… 사실 메갈로돈을 우회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일종의 굴욕이었다.
“지느러미를 공격해! 놈의 움직임을 최대한 제한해야 해!!”
메갈로돈과 같은 놈을 잡기 위해선 우선 놈의 빠른 이동 속도를 떨어뜨려야 했다.
내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 이미 딜러들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메갈로돈의 꼬리지느러미와 옆 지느러미를 노렸다.
퍼퍼펑! 퍼펑!
앞선 공격에서 이미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던 것 때문일까? 메갈로돈은 몇 번의 공격을 맞곤 휘청거리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됐어!! 이제 마무리를 하자!”
메갈로돈은 일단 움직임을 제한시키면 그때부턴 커다란 샌드백이나 다름없었다.
꽈광! 꽈과광!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공격들.
결국 대략 10분 만에 우리를 괴롭히던 메갈로돈은 시체가 되어 물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메갈로돈을 잡았다고 해서 좋아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훨씬 전에 잡혔을 수준의 몬스터인 메갈로돈. 10분이란 시간을 놈에게 소비했다는 것 자체가 불만인 프로젝트 S의 유저들이었다.
“젠장…… 물 때문에 기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네.”
짜증이 잔뜩 섞인 방어조 유저의 목소리.
그랬다.
물속이란 이유로 대부분의 유저들이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고, 그랬기에 그 누구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없는 것이었다.
유저들이 낼 수 있는 힘은 기껏해야 평소의 80%? 좀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60%도 힘겨웠다.
물론 분명 예외적인 유저들도 몇 명은 있었다.
수공(水攻) 관련 무공이나 스킬들을 높은 수준까지 익힌 유저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우 능숙하게 물에 적응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내 경우는 쥬니스 지역에 존재하던 고대의 도서관 ‘쿠할니스’를 이용하며 어쩔 수 없이 수공 계열의 숙련도가 상승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 덕을 지금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이 물에 익숙한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물과는 별로 친하지 않은 탓에 우리의 이동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휴~ 연속해서 습격을 당한 건 처음이라 초기 대응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네요.”
프로이드는 방어조를 이끄는 조장으로서 실수를 인정하며 말했다.
방어조의 임무는 최대한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주며 몬스터들을 자신들에게 묶어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메갈로돈 같은 경우는 방어조가 너무 쉽게 돌파당해 자칫 힐러조나 딜러조가 큰 타격을 입을 뻔했다.
다행히 돌격조를 이끌고 있던 천위강이 센스를 발휘해 메갈로돈의 돌진을 막은 덕분에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던 건 맞았다.
“아닙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메갈로돈이 거의 동시에 두 마리가 습격할 줄은 저도 몰랐으니까요. 그나마 연속 공격의 주인공이 메갈로돈이었던 건 다행이네요. 만약 붉은 해파리 떼가 연속해서 공격한 것이었으면 정말 위험할 뻔했어요.”
좀 어울리지 않지만 우리는 거대한 원시 상어인 메갈로돈보다 손바닥만 한 붉은 해파리를 더 무서워했다.
한 번에 수천 마리가 몰려다니는 붉은 해파리.
한 마리, 한 마리의 레벨은 낮았지만 그들이 모이면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맹독을 지닌 붉은 해파리.
놈들이 한꺼번에 그 독을 풀며 촉수를 이용해 또 하나의 강력한 공격인 전기 공격을 감행하면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놈들이 사방에 풀어놓은 독 때문에 마음껏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혹시라도 촉수에 잘못 휘감기면 몸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한 전기 공격이 시도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산개하여 각개 격파로 놈들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런 놈들이 연속해서 공격을 해온다면 메갈로돈의 연속 공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힘겨운 전투가 될 것이 분명했다.